시사 평론2009. 5. 27. 01:23

  지난 주말, 한국 사회에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는 비극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지난 참여정부의 수장이자 대한민국의 최고 통수권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서거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사회 각계 각층의 슬픔과 충격이 실로 대단하고, 이런 모습은 외국의 유명 언론에까지 보도될만큼 세계사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인데요. 이런 슬픔과 참담한 현실 앞에, 그동안 노무현 참여정부의 공과와 실정에 대해 비판하고 논했던 진보적 인사들을 비롯한 수구 보수 세력들까지도 애도를 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과 애도의 물결이 넘치는 와중에, 돌연히 지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얘기하면서 사실은 그렇게 크게 잘못하지 않았었다는 포스팅이 등장한 겁니다. 여러분이 해당 포스팅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중동이나 한나라당같은 수구 보수 세력의 책동으로 인해 국민들이 필요이상 과민하게(?!) 반응해서 오늘날과 같은 정권이 왔다라는 식으로 그를 변호하고 두둔하는 논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거기에 호응하는 막말과 욕설의 댓글들은 도저히 눈을 뜨고 좋게 봐줄 수가 없어서 부득불 몇 자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문제의 글은 친노 세력이 가장 억울했던 일(주택 가격) 이란 포스팅인데요. 이 글 속에서 해당 포스팅의 작성자는 주장하기를,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집값이 많이 뛰었다고는 하지만 당시엔 세계적으로 부동산 붐이 크게 일었었고, 한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그 상승폭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말하며,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이 그렇게 난리를 칠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었고, 그로 인해 국민들에게 선거를 통해 그렇게 가혹하게 비판받을만큼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라는 요지의 기사를 올린 것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당시 그 포스팅을 읽고 필자가 떠올린 생각은,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중인데 벌써부터 노무현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한 것인가(?!)라는 한가닥 의혹과 함께, 그 포스팅에서 보여지는 단순한 수치만으로 참여정부 당시 서민들의 삶이 다른 국가들의 대도시 시민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라고 감히 강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남다른 의문이 들어서 댓글란에 강하게 이런 의혹을 얘기하며 비판을 했더니만, 글쎄 이 양반이 필자를 쓰레기 논객 혹은 곡학아세 블로거라고 말하며 비난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해당 포스팅의 댓글에서 보여지는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의 집단적인 행태를 보면서, 비록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중이고 다시는 이런 식의 비판을 하고 싶지 않았었지만 글쓴이도 몇 가지 반박을 간략하게나마 해야겠습니다.

  문제의 해당 포스팅을 자세히 살펴 보시면, 참여 정부 시절 주택 가격이 그리 크게 오르지 않았다면서 다른 OECD국가와의 비교를 한 도표가 보이실 겁니다. 이건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맞습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엔 세계적인 부동산 버블이 있었고 해당 포스팅 작성자가 필자에게 반박한다며 올린 미국의 일부 대도시 주택 가격에서 보여지듯이, 그리고 그런 부동산 버블로 인해 미국 내에서 모기지론뿐만 아니라 재정 상태가 건전하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이라는 것을 통해 자금이 마구 풀려 나갔었고 부동산 버블이 커지기 시작하다가 거품이 한순간에 꺼지자 결국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발전한 것이니까요.

글쓴이가 한국의 부동산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점에 주목하는 이유 
  문제는 필자가 그 포스팅의 댓글에서 분명히 지적하였듯이, 한국은 부동산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필자가 이 부분에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은 부동산의 가격이 오르내림에 따라서 나라 전체의 경제에 미치는 파장과 국민들이 받는 체감 경기의 폭이 훨씬 크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래 자료는 삼성 금융 연구소와 KDI가 미국 FRB 그리고 일본의 내무성의 자료를 재인용한 것입니다. 


※자료 출처: 삼성 금융 연구소 월간리포트 제11호   2. 가계 재무구조 변화의 특징 및 시사점 
                 
                                       자료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파일을 참조하세요.



  필자가 처음 해당 포스팅을 보았을 때에는 이것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서 댓글로 그것을 지적하고 강하게 비판하자 해당 포스팅 작성자도 글쓴이가 던진 비판 중 이 부분은 인정하고 포스팅의 내용에 자료를 보완하면서도, 다른 국가들과 한국과 자산 대비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며, 글쓴이를 이른바 쓰레기 논객, 곡학아세 블로거라고 계속 비난을 하고 필자의 블로그 주소에 링크까지 걸어서 다른 이들에게 필자를 공격하라고 선동(?!)을 하였는데,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해당 포스팅을 작성한 이가 한 가지 크게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 듯 합니다. 해당 블로거가 당당하게 주장하는대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자산의 50%라는(?!) 캐나다나 다른 국가의 땅값이 한국만큼 그렇게 높던가요...?

 한국의 부동산은 외국과는 달리 아파트로 대변되는 주택 가격의 거품도 큰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바로 땅값이라는 부분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2년 전에 이런 뉴스를 보셨을 것입니다. 아래 2007년 통계청이 작성한 도표를 보아 주십시오.


  위의 통계청 도표에서도 보여지듯이 한국은 서울, 경기도를 위시한 수도권의 땅만 팔아도 한국보다 930배나 넓은 캐나다 땅을 사고도 남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국토부의 통계를 살펴보면, 서울의 땅값은 1963년에서 2007년 참여정부 말기까지 무려 1,176배가 뛰었으며, 바로 이런 비정상적인(!!!) 배경 때문에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가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이런 땅의 소유자는 전체 국민이 아닌 0.5%에 해당하는 부자 10만명이 전체 국토의 30%를, 그리고 5%의 부자들이 전체 국토의 44%를 소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이들을 포함해서 27%에 해당하는 가구가 전체 국토의 99%를 소유하고 있고, 이들이 소유하고 남은 땅 1%에 33%의 가구가 몰려 있으며, 나머지 전체 가구 40%는 발 디딜 땅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슬픈 현실입니다...

※자료 출처: 통계청 2005년 인구 주택 총조사         
통계청 홈페이지 통합 검색창(☜ 글쓴이가 하는 주장이 끝까지 미덥지 않다고 고집을 부리실 분들은 해당 홈 페이지를 방문하셔서 인구 주택 총조사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시고 직접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

  ...글쓴이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에게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부동산에서 주택 가격만 오르고 땅값은 항상 그대로 그냥 있었던가요?   참여정부에서 아파트 가격이 크게 들썩이면서 그 주변 일대의 땅값이 덩달아 요동을 쳤고 그로 인해 당시 참여정부가 투기 과열 지구나 투기 지정 지역으로 선포한 시와 도가 전국적으로 과연 몇 군데이며...그 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무총리, 경제 부총리, 그리고 건교부 관료들과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이란 것들이 어떻게 수시로 말을 바꾸며, 진짜 서민들을 우롱하고 기만했는지를 조금만 알아 보시면 더더욱 부동산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며, 이미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래도 서민들의 대통령이었던 것처럼 포장하면 안되는 것 아니던가요...

건설 교통부 투기 과열 지구 및 투기지정 지역 현황(2006년 1월 20일 추가분 포함)
노무현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배경과 문제점에 대한 기사 모음

주택 가격만 고려해도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부동산에서 땅값을 아예 빼고 백번 양보해서 문제의 포스팅에서 주장하듯이, 주택 가격만을 놓고 생각해도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부동산 폭등이 한창이던 2005년 참여정부 시절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사람은 105만 가구(전체의 6.6%)이며, 이들이 소유한 총 주택수는 477만 채로 가구당 평균 5채씩 가지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한국은 주택 가격이 단순히 오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소유 형태에 심각한 왜곡이 숨어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 자료 출처:  행정 안전부 세대별 주택 보유현황, 2005. 8 중에서

  이것은 해당 포스팅의 작성자가 크게 간과하거나 아예 언급을 하지 않은 부분으로써, 다른 OECD국가에서 부동산의 가격이 설령 참여정부 시절의 한국보다 많이 올랐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과 같이 특정 소수 계층이 거의 독식하다시피하는 극히 왜곡된 주택 시장 구조였던가를 세세히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참여정부 당시에 아파트로 대변되는 주택 가격이 크게 폭등함으로써,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더욱 멀어졌었고 땅과 집을 다수 보유한 부자들은 빌어먹을(!!!) 부동산으로 인해 말 그대로 매일같이 놀고 먹으면서도 자산이 크게 늘었었는데, 그와 같은 상황에서 집 한칸이 없거나 내 집을 소유하고픈 꿈을 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고 빠듯한 월급을 쪼개 한푼두푼 절약하면서 저축이나 적금을 붓던 진짜 소박한 서민들이 어떻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지지하고 좋아할 수가 있었겠느냐는 말입니다. 


  또한 역대 정권들과 똑같이(!!!) 노무현 참여정부도 공급을 늘림으로써, 그러니까 이른바 주택 보급률을 높여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좀더 쉽게 하겠다며 재건축,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계속 지음으로써, 2002년 이후로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어 주택이 남아돌기 시작하였으며, 2007년 말에는 108.1%를 기록해 전체 국민이 내 집을 한 채씩 갖고도 103만채가 남아도는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이 아예 없는 서민들의 수가 2005년 기준으로 43%에 달했었던 미스테리한(?!) 사실들은 까맣게 잊은 모양입니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것은 노무현 참여정부시절의 부동산 폭등이 아주 소수 계층의 사람들의 배만 가득히 불렸었고, 그 결과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타국가에 비해서 현저히 높은 한국의 경우에서는 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를 크게 늘리는 중대한 요인이었으며, 불행하게도 정권이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엄연하고 냉혹한 현실을 외국과의 단순 비교형 데이터와 수치를 들이대며 그렇게 잘못하지는 않았었다라는 내용의 포스팅을, 그것도 지금같이 국민 모두가 참여정부시절 공과가 어찌되었든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시점에서 그렇게 간단하게 올려도 되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이게 단순히 수구 보수 언론인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이 부풀려서 대다수 국민들이 멍청하게 세뇌가 된 것인가요? 아니면 노무현 참여정부가 부동산을 잡으려고 나름 노력(?!)은 했지만 정책적인 혼선과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해, 결국 부동산 정책이 실패를 했고 그로 인해 주택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간의 자산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짐으로써, 이른바 사회적 양극화에 크게 기여하였기에 그랬던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에 대한 대답은 자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의 포스팅을 작성한 이는 유감스럽게도, 당시에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주택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었고, 따라서 이건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너무 비판하거나 매도하며 오버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흡사 수구 보수 세력이 늘상 하던 짓거리...다시 말해 문제의 본질을 다른 소재나 이슈를 이용해서 은근슬쩍 외면하는 소위 물타기와 비슷한 것이며, 일종의 자기 비판이 결여된 모습이 아닐까요.

  한국 사회는 외부의 비판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고 도무지 받아 들이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이 유리한 부분에서는 자신들과는 그닥 맞지 않는 외국의 사례를 수평적으로 비교하고 막연한 수치나 데이터를 들이밀며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곤 하는데, 정말 다른 국가들의 주택 가격과 한국의 그것을 문제의 포스팅에서처럼 수평적으로 놓고서 감히 비교할 여지조차 남아있는 상황이나 현실인가요? 많은 분들이 가슴 아파하고 분개했던 용산 참사의 모순에서도 분명히 보여지듯이, 한국의 주택 가격과 땅으로 대변되는 부동산은 다른 OECD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사례와 지극히 복잡한 배경과 문제를 지니고 있지 않던가요...

이미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더이상 욕보이지 말길...
  ...물론 해당 포스팅을 작성한 이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애틋한 심정이야 글쓴이도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참여정부시절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던 부동산과 같은 부분들을 그런 식으로 단순 비교하면서 불필요한 변호를 시도하고, 거기에 아무 생각없이 동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은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누를 끼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한, 지금같은 시점에서 그런 류의 포스팅들은 필자와 같은 이들의 불필요한 비판과 반박, 그리고 소모적 논쟁을 다시 부르게 될 뿐이며, 또한편으로는 엄연한 작금의 현실을 철저히 부정하고 대다수 국민들을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의 술책(?!)에 세뇌되었었던 바보 멍청이로 취급하며 서민들을 모욕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왜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당신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이성이고 논리고 뭐고간에 다 집어 던지고, 매양 이런 식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적 아니면 아군식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거나, 수치나 데이터를 통해서 지극히 관념적으로, 그리고 무미건조하게 바라보고 살아가시는지 글쓴이는 심히 안타깝게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해당 포스팅에서 하던 식의 태도나 접근들은 이제는 그만 접어 두시고, 이미 세상을 등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묵묵히 지켜주는 것이 도리나 예절에 맞다라고 필자는 감히 판단하는데, 여러분의 의견과 생각은 어떠십니까?...

P.S:
  글쓴이가 오늘의 포스팅을 작성한 이유는, 이 시점에서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고 현 시점에서 일부 보여지기 시작하는 노무현 미화성 글에 대한 사전 예방 조치격의 비판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 포스팅은 그저, 모든 국민이 슬픔과 비탄에 잠긴 틈을 타서 분명히 문제가 있었던 참여정부 시절의 정책들에 대한 변호나 포장을 하는 모습에 대해, 상당한 회의와 함께 한 가닥 깊은 우려를 느껴서 작성된 것임을 깊이 헤아리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필자는 여러분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지나친 비호나 두둔만 하지 않으신다면, 이런 류의 비판은 두번 다시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P.S 2: 
  글쓴이가 해당 포스팅의 작성자를 보며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논란이 가득할 부동산 문제를 들고 나오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또다시 그는 자신의 반박글에 미국의 주택 가격을 들먹이며 선방을 했다라고 거듭 주장하고, 자산 대비 부동산 비율에서도 그렇다면서 수치를 들이미는데, 그걸 정말 잘 아는 글쓴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전혀 생각을 안하는 모습을 보자니 정말이지 못 말리겠더군요...-_-;;;

  기본적으로 노무현 지지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실정이나 잘못이 정권 교체에 가장 큰 밑거름이었다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바로 지금처럼 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모든 의제에서 왈가왈부를 계속하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참여정부의 기간동안 부동산 문제는 누가 봐도 가장 뼈아픈 대목이었으며, 이 부분으로 인해서 서민들이 받은 상대적인 박탈과 괴리감을 어떻게 몇몇 의심스런 수치로 환산하고 선방을 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필자는 의구심이 앞섭니다. 요즘은 몇 가지 변수만 바꾸면 모양이 완전히 바뀌는 알량한 각종 통계와 무미건조한 수치 속에 일반 서민들의 꿈과 좌절, 절망같은 인간적인 사항들도 나오나 봅니다...^^


  필자가 계속해서 보아하니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도 나라도 아닌 오직 노무현뿐인 모양새입니다.
만약 그 어떤 사람이나 세력도 노무현을 비판하면 그들에게는 그가 누구이든 바로 적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 더구나 웃기는 것은 자신들만이 진정한 진보라고 생각하는지 꼴통 진보, 꼴통 보수라는 말을 참 좋아하더군요. 그리고 이런 헛된 우월감과 흑백논리적 사고가 너무 지나치다 보니, 자신들이 지금 무슨 오버를 하는지도 분간을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글쓴이가 누군가를 너무나 좋아했었는데, 그가 세상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자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행적과 말들을 생각할수록 그의 죽음이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의 상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설명하며 다닌다면 그 사람과 친분이 있었거나 관계된 입장이라면 모를까, 전혀 모르던 사람이나 반대 입장을 가진 이들이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글쓴이를 바라 볼까요...

  지금 노무현 지지자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이 양반들은 앞뒤가 꽉 막혔는지 모르겠어요...세상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애통해 한다고 해서 마치 모두가 자기들처럼 노무현에게 열광하고 지지를 보내는 줄 착각하나 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면서 조금은 더 지혜로워져 할텐데...왜 이리 겁들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악과 오기만 남아서 저러는 것인지 분간이 잘 안갑니다....-_-;;;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5. 25. 07:54
  여러분 간밤에 평안하셨나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과 그로 인해 느끼는 심적인 충격과 슬픔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크시지요? 이미 유명 외신을 통해서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소식들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고, 그 소식을 접하고 놀라는 미국인들도 상당히 많은데요. 그들 중에는 글쓴이의 미국 친구들도 예외가 아니었는가 봅니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수 없었던 이유
  한국 시각으로는 토요일 오전, 미국 시각으로는 금요일 오후의 일입니다. 필자의 미국 친구중 한 명이 글쓴이에게 조심스럽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신이 뉴스를 보니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 서거를 했다면서 글쓴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와, 문제는 그것이 자연사가 아닌 자살이라는 점과 함께 그런 충격적인 소식이 정말인지, 그리고 그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그들의 눈에도 차지 않을 작은 나라이지만 그래도 일국의 지도자까지 했던 이가 무슨 이유로 자살까지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필자는 그의 질문이 상당히 곤혹스럽고 내심 괴로왔습니다.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에게...그것도 이역만리 머나먼 이곳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대처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의 서거 소식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았었던 당시 글쓴이는 그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당신이 박연차 게이트로 대변되는 검은 돈(?!) 문제 때문에 그의 측근과 가족들이 줄줄이 검찰에 구속되거나 불려 다녔고, 그로 인한 심적 고통으로 인해서 결국 자살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말을 어떻게 미국 친구들에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냥 눈에 보여지는 피상적 사실만으로도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판국에, 그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면 할수록 한국에 대한 이미지만 더 나빠지겠다라는 노파심에, 결국 필자가 택한 답은 이것뿐이었답니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뛰어난 두뇌와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좋은 지도자를 한번도 가져보지 못해서 너희들처럼 강대한 나라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뿐이라고요...
 
  그렇게 간략한 얘기를 나눈 뒤, 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서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히고 기분이 울적하더군요. 
그래도 한때는 한국을 대표했었던 최고 지도자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자살을 통해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남겨진 자들과 사회 전체에 얼마나 큰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올지를 깊이 고민했는지에 대해서도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난 참여정부 5년,그리고 그가 야당 시절에 원했던 이상들을 떠올리며 남다른 회상에 잠기다
  그런 울적한 기분과 마음을 가지고서 글쓴이는 나도 모르게 필자가 지난 3년간 비밀방에 모아 두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야당 후보 시절 모습과 함께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수 백개의 파일과 문서들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찬찬히 돌아 보면서 지난 참여정부 시절의 일들이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사실 글쓴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이 야당 시절 국회의원을 할 때나 200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설 때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만큼 당신을 열렬히 지지했었고,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잘못된 과거 역사가 드디어 바로 서겠다는 희망에 가슴이 뿌듯했었습니다. 

  또한 집권 초반기에 당신이 너무나 어이없는 탄핵을 당했을 때에도 매일같이 주변인들을 설득해서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었으며, 그 와중에 치러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정당이 되자, 마치 내 일처럼 기뻐하고 크게 안도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과 희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중략:☜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클릭해 보세요. )

  ...그런데 당신은 글쓴이의 이런 한 가닥 바램이나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네요...

  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필자가 당신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면 아마도 비슷한 방식의 종말(?!)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당신의 심정을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합니다. 당신처럼 남다른 자존심과 오기가 있고 원칙과 소신, 도덕성을 자산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이에게 박연차 게이트로 드러난 측근들의 부정과 비리, 그리고 가족들의 고통은 무척이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겠지요. 또한 당신을 지켜보는 수 많은 지지자들과 비판자들 모두에게도 볼 낯이 없었을 겁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이 말을 떳떳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마셨어야 했다고 글쓴이는 절실히 느낍니다. 이미 당신은 세상을 등졌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정치적 후진성과 역사의 아픔, 모순에 대한 무기력한 확인,
 그리고 현실에서는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수구 꼴통 세력에게 맞서지 말아야겠다는 무의식적인 패배주의만 사회 내에 한층 더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수 많은 당신에 대한 추모글과 함께 한때나마 당신을 비판했었던 몇몇 블로거 기자들의 회한이나 감성에 가득찬 자기 반성조의 글들을 보았지만, 그동안 참여정부의 실정을 강하게 비판했필자는 당신에게 미안하다거나 회한이 생긴다라는 식의 감상적인 말로써, 이 참담하고 비극적인 현실 앞에 자기 위안이나 죄의식, 그리고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의 비난과 분노를 벗어나려는 심약하고 비겁한 행위나 모습은 결코 보이지 않겠습니다. 

  다만, 당신이 야당 후보 시절에 보였었던 그 순수한 이상과 정치적 열정만은 높이 평가하고 가슴깊이 간직하고 기억하며, 그것을 이루는데 글쓴이 나름으로도 열심히 살다가 이 세상을 뜨겠다는 말이나 다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말마따나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이기에, 언젠가는 글쓴이 역시 당신을 만날 날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만약 그곳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이렇게 당당하게 말을 하고 싶습니다. 

  2009년 5월 23일...그때는 비록 당신의 죽음에 대해 외국인들에게 떳떳하게 설명하거나 말할 수 없었던 그런 대한민국이었지만, 그리고 당신은 결국 당시의 두터운 장벽 앞에 외롭게 무너졌었지만, 글쓴이를 비롯한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 날의 당신처럼 홀로 외롭게 현실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다 지쳐서 끝내는 무기력하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결국 당신이 그토록 원했었던 그 순수했던 이상을 현실에서 이룩했다라고 말입니다... 



 글쓴이가 한국 근현대 정치사를 통털어 정말 대단하다고 판단했고 한가닥 희망을 걸었으며,
애증의 감정을 품었었던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정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5. 23. 11:27
  한국 시각으로 토요일 아침, 너무나 뜻밖의 소식에 당황스럽고 놀라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한국 근현대 정치사의 일대 풍운아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시도해서 결국 사망을 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글쓴이는 뭔가 잘못된 오보이거나 사망(?! 서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뉴스 보도를 보니 유서까지 남긴 정황으로 보아 아마도 기정사실인 모양입니다.

  노무현...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써 지난 5년간을 살았었고 그 이전에 야당 후보 시절에는 정치계의 천연 기념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수 많은 지지자를 끌어 모았으며, 대통령을 퇴임한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았었던 한국 근현대 정치사의 큰 획을 그은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 계시는 그의 지지자들의 충격과 분노, 울분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가며, 비록 그를 좋아하지 않았었던 필자 또한 그의 돌연한 서거 소식에 큰 충격을 느끼고 실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마냥 슬퍼하고 그간 현정부의 부당한(?!) 수사와 정치적 압박,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과 세상의 부당성에 대해 분노한다고 해서 이미 세상을 등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시 부활하지는 않습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지지자들이 보인 묻지마 노무현 추앙은 이역만리 머나먼 미국 땅에서 보기에도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모습도 아니었었고, 보다 나은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리 바람직스럽지 못했으며, 한편으로 그를 추앙하는 일부 지지자들의 지나친 극성이 수구 보수 세력으로 하여금 더욱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압박하게 만든 원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그 전부터 누누히 지적하였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위상이 너무나도 컸었던만큼 그 자리를 대신할 후임자가 없다는 점이 정말로 큰 문제였는데, 이제 그가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렸으니 지지자들의 허탈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이며, 이후의 정치적 지형이 얼마나 흔들릴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진정으로 그를 기릴 방법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지난 참여정부의 대통령이 아닌 야당 후보시절에 그토록 바라고 원했었던 그 순수한 이상을 여러분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고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그것을 실현할 대안 정치 세력을 하루빨리 복원하거나 찾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진정으로 기리고 사랑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쓴이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서거) 소식을 접하면서 큰 충격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지극히 우려스런 것은 또다시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정치 공방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만약 여야를 막론하고 현 정치권이 그런 일을 벌인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두 눈을 감지 못하며 계속해서 모욕을 당하는 것임을 모두가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나 노무현 지지자분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돌연한 그의 죽음에 많이 가슴 아프고 이런 현실이 충격적으로 다가 오시겠지만, 이젠 마음을 굳게 먹고 좀더 시야를 넓고 크게 가지시길 바랍니다. 또한 진심으로 부탁하는 바인데 그의 행적을 대책없이 미화시킴으로써, 전직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서거)이란 소식으로 충격에 잠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체의 정치적인 행위들은 자제하시길 부탁 드립니다. 
    
  만약 그런 일을 하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혹시라도 계시다면, 그것보다는 이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넘어설 새로운 인물과 대안 정치 세력을 만드는 일에 자신이 가진 정신적 에너지를 쏟거나 몰두하시길 필자는 진심으로 바라면서 오늘의 경황없는 글을 마칩니다...


 다시 한번 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5. 20. 12:10
  여러분은 동물의 왕국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가 제작한 동물들의 생태나 주변 환경에 대한 영상물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 중 여러분들의 기억에 가장 남는 동물은 무엇이었습니까?

  글쓴이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여러가지 답이 나오겠지요. 필자는 개인적으로 수 많은 동물중에서 백수의 왕이란 사자가 기억에 가장 많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사자를 언급하면 흔히 따라오는 이런 말도 떠오르구요. 사자가 새끼를 낳으면 절벽에서 굴려서 살아남는 녀석만 키운다는 설화같은 얘기말입니다. 이 말은 그만큼 사자가 동물들 중에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더욱 강해져야 하기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런 야수적 본능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보여지는 일화인데, 오늘은 이런 동물들의 습성을 비유로 들어 한국 사회의 모습을 한번 제대로 풍자해 보려고 합니다.

강인한
사자를 닮은 미국의 개인주의
  흔히 미국을 말할 때, 사람들은 개인주의 사회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따라오는 수식어가 철저한 사생활 보장과 공사의 구분, 그리고 확고한 목표 의식같은 말들이 붙곤 하지요. 그런데 이런 속성은 동물중에서 사자와 많이 닮았다고 보여집니다.

  사자는 백수의 왕이며 육식 동물중에서도 가장 용맹한 녀석이기에, 가급적 혼자 혹은 몇몇 무리들로 이루어진 소그룹 단위로 생활하거나 움직입니다. 먹잇감(목표)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사자의 모습은 굉장히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사자는 많은 무리가 모여서 생활할만큼 약하지도 않고, 힘이 강한만큼 지존의 이미지나 절대 고독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가만보면 사람들도 개인주의를 하려면 사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인생을 관리해야 하고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엄청난 내공과 의지가 없으면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육식동물인 사자의 눈이 전방을 향해 있는 이유가 먹이를 주시하고 사냥감에 집중하기 위한 필연적 진화였듯이,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나 어떤 목표를 향해서 주저없이 돌진하고 매사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렇게 어렵고 강인한 사자와 같은 마인드를 요구하는 것이 바로 개인주의이며, 미국은 그런 프론티어적 사고를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순한
양떼를 닮은 한국의 집단주의
  반면에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무리를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마치 연약하고 순한 양떼와 같습니다. 양들은 기본적으로 초식동물이며 매우 약하기에 무리를 벗어나 혼자 떨어지면 늘 불안을 느낍니다. 그래서 무리 속에 있어야만 안심을 하고 편하게 먹이를 먹거나 자신만의 행동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도 누군가와 같이 하지 않으면 뭔가가 불안한 습성을 가진 이가 참으로 많습니다. 특정 정치인 지지 혹은 연예인 그리고 인터넷의 어떤 흐름이나 진영 속에 동참하지 않고 홀로 있거나 그 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됨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한국인들입니다. 그만큼 기본적인 심성이 순하고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맛을 정겹게 여기는 전통적인 사회 풍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초식동물의 눈이 측면에 있는 이유가 먹이를 먹으면서도 주변을 살피고 늘 위험에 대비하듯이, 심성이 약하고 개인주의적 마인드보다는 집단주의적 사고에 능한 한국인들은 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외부의 상황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행태는 초식 동물인 양, 마인드는 사자를 지향하는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동물은 무엇인가
  문제는 과거에는 그런 초식동물같은 집단주의와 상부상조의 순박함이 미덕이었으나 세계화 시대가 되고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이질적인 마인드와 문화가 유입되면서,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자신들의 삶의 형태였던 양의 마인드를 철저히 부정하고 미국과 같은 사자의 마인드를 지향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오랫동안 유지했던 초식 동물인 양의 행태와 사자의 마인드 사이에서 계속해서 갈등하다 보니, 결국 양떼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도 육식 동물의 행태를 띠는 하이에나가 된 것입니다. 하이에나란 녀석은 기본적으로 대단히 음험하고 비열합니다. 사자나 표범 ,치타가 기껏 사냥해 놓은 먹이를 가로채거나 사자의 주변에서 얼씬거리며 떡고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또한 혼자로서는 도저히 몸집이 큰 동물들을 상대할 수 없기에,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니며 엄청난 식욕(탐욕)과 집단적인 공격성으로 아주 악명이 자자한 동물이지요.

  한번 한국 사회를 돌아 봅시다. 혼자서는 아무 소리도 못 내던 익명의 대중들이 조금만 무리를 지으면 온갖 잡음과 행패를 부리고 특정 연예인이나 인사들을 자기들 기준과 잣대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마녀 사냥을 하며 몰려 다니는 것이 바로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입니다. 누군가가 자신보다 약해보이면 한없이 짓밟지만, 자신보다 강해 보이면 순한 양처럼 변해서 그들의 곁을 배회하지요. 마치 먹이를 먹고 있는 사자 옆에서 떡고물을 바라고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말입니다.

  또한 혼자서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무엇을 해 주기만을 바라며 세상 탓, 사람 탓, 시스템을 하며 마냥 시간을 죽이는 것도 하이에나가 혼자서는 사냥을 하지 않고 집단으로 있을 때, 그리고 사자나 표범의 먹이감을 가로채는 모습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이런 걸 바로 공짜 근성, 거지 근성이라고 하지요.

  멀리 볼 것도 없이 인터넷 공간 속을 살펴 보십시오. 누군가가 무슨 글을 쓰면 그 곳에 몰려가 제목이 어떻네 글이 어떻네하며 말들은 더럽게 많지만, 그 중 누구 하나도 자신들이 달려들어 물어 뜯었던 원포스팅이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유용한 정보나 주장, 의견에 버금가는...마치 동물에 비유하자면 독자들에게 맛있는 사냥감 혹은 먹이나 양식과 같은 좋은 포스팅을 쓰는(사냥하는) 이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는 하이에나같은 쓰레기 족속들이 항상 돌아다니지 않습니까.

  엄밀히 따져보면 사회내 대다수 사람들의 기본 심성이나 능력은 정말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데 , 그것을 부정하고 자신들은 모두 사자가 될 수 있다고 난리를 치다 보니 결국 진짜 사자는 못 되고 하이에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에나처럼 먹이를 스스로 잡거나 홀로 다니지 못하고 항상 주변을 배회하듯이, 미국같은 선진국들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아이디어나 고급 기술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수입을 해다가 그것을 약간 변형시켜 먹고 사는...자세히 따지고 보면 지극히 한심한 상태에 놓여 있으면서도 마치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들과 대등한 국가라도 된양 착각들을 하고 외부적 시각의 비판에 대해서 그러는 너희는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오히려 네가지없는 반문을 하거나 진짜 부끄러움과 철저한 자기 반성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사자가 성난 포효를 하면 혼자 있을 때는 꼬리를 말고 도망을 가는 하이에나 주제에, 조금만 무리를 지으면 우리도 사자와 맞먹겠다고 설치는 하이에나의 비겁한 행태처럼, 사회 혹은 집단내에서 도무지 자신들보다 조금 낫거나 괜찮은 사자같은 사람을 혼쾌히 인정하는 꼴을 볼 수가 없으며 어떻게든 그가 약해지거나 틈을 보이는 때를 타서 비난하고 난도질하기 좋아하는 습성들은, 전부 하이에나가 기회를 보다가 상대가 약해지는 틈을 타서 집단적으로 몰려가 물어뜯는 행태와 어쩌면 그렇게 흡사한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사자의 삶이든 양의 행태든 둘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할 때
  이제 결론을 말해 볼까요. 원래 한국인은 심성이 유순하고 다른 이와 더불어 사는 양과 같은 삶과 행태를 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와 사회가 급변하면서 순한 양보다는 사자와 같은 사람이나 라이프 스타을 원하게 되자, 너도나도 사자를 흉내내려고 안간힘을 쏟다보니 양들의 집단적인 행태와 사자의 잔인성과 육식성만을 빼닮은 하이에나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이에나형 사회가 되다보니 사회적 약자나 어려운 이웃들은 무시하거나 무관심, 비난의 대상일뿐이면서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과거 양의 마인드가 남아 있어 주변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피지만, 그것은 남을 배려하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과 남과의 비교선상에서만 이루어지는 소모적인 행태로 바뀐 것입니다. 또한 그럼으로써, 나보다 무엇인가 나은 이들을 도무지 인정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사람의 뒤에서 헐뜯고 물어뜯고 괴롭히는 데에서, 일종의 정신적 쾌감을 얻는 아주 더러운 근성을 가진 이들이 넘치는 살벌하고 각박한 사회로 변한 것이지요.

  따라서 이제는 쓰레기같은 하이에나형 사회를 지양하고 미국처럼 철저한 합리적, 개인주의적 마인드를 구사하는 사자같은 개인이나 사회를 지향하시던가 아니면 과거 우리네 선조들처럼 서로 도와가며 순박하게 살아가는 양과 같은 상부상조형 사회나 개인이 되시던가의 양자택일을 하지 않는다면, 하이에나가 주로 먹는 썩고 부패한 먹이처럼 사회 곳곳에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부패가 만연해서 결국 사자같은 마인드를 가진 이나 양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사회내에서 그런 이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하이에나형 인간만 남게 되는 비극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여러분은 이 비유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P.S:  혹시나 노파심에서 언급하는데, 이 포스팅은 동물들의 분류나 습성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한 글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동물들의 습성을 이용해서 작성된 비유적인 글임을 헤아리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비유나 풍자적 함의를 무시하고 동물의 속성이나 행태를 들어 원글을 부정하면서 글쓴이에게 소모적 싸움을 거 하이에나같은 댓글들은 삭제 조치할 것임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뉴욕 전철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쥐가 나온다는 둥 비가 샌다는 둥 혹은 자리가 지저분해서 도저히 앉을 수가 없다는 식의 갖은 얘기와 함께, 한국의 전철과 비교되곤 하지요. 그렇다면, 미국에서 한인들이 제일 많이 모여 살고 있고 , 한인 유학생이나 관광객들 또한 가장 많이 찾는 LA의 전철은 과연 어떨까요?

  정말 LA 전철도 뉴욕 전철만큼 지저분하다거나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그렇게 위험할까요?...

  글쓴이는 미국 시각으로 바로 어제인 토요일 오후에 LA 전철을 오랜만에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전부터 필자는 종종 메트로 버스와 전철을 일부러라도 종종 이용하곤 하였는데, 그 이유는 미국의 주류인 백인은 물론이고 히스패닉과 흑인 그리고 다른 이민족들을 만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의도하지 않았던 여러가지 상황을 접하게 됨으로써, 미국의 이면과 현실을 정확히 짚어 볼 수 있는 잣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제는 한인 타운에 사는 글쓴이의 지인으로부터 한국인들 특유의 끝장판(?!) 술자리에 초대를 받았는데다가, 최근 필자의 포스팅을 보고 뜬금없는 딴지를 거시는 몇몇 몰지각한 분들에게 글쓴이가 과연 미국에서 글을 보내는지 아니면 한국 내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줄겸, 시간을 내어서 그동안 필자가 알고 있었던 LA 전철의 특징을 한국의 전철과 비교해서 한번 세세히 짚어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글쓴이가 이 포스팅을 쓰기 전에 다음 포털을 검색해 보았더니, 너무나 뜻밖에도 LA 전철에 대해 자세한 소개 내용이 별로 없음을 보고 내심 크게 놀랐으며, 아마도 그 이유가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 유학생이나 교민들이 그만큼 LA 전철에 대한 일종의 안 좋은 선입견(흑인이나 히스패닉이 주로 이용해서 위험하다는!)이나 편견이 있었거나, 그도 아니면 자동차를 주로 이용하시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으며, 암튼간에 지금부터 LA 전철은 과연 뉴욕 전철만큼 지저분하거나 한국에 떠도는 일부 소문처럼 정말 위험한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필자가 머무는 토렌스 시티에서 40분 정도를 차로 이동하면, 연인과의 추억 만들기나 자전거 혹은 스케이트 보드를 타기 안성마춤인 롱비치가 나옵니다. 필자가 이 곳을 택한 이유는 바로 이 장소가 LA로 가는 전철의 종착역이자 시작점이기에, 이곳까지 차를 몰고 와서 파킹을 시킨 뒤, 전철역에서 필자에게 그 곳 주변의 길을 묻는 어느 한국인 여성에게 외려 글쓴이가 도움을 요청해 해당 여성이 본인의 지시대로 티켓을 구입한 과정을 촬영하였습니다. (해당 여성의 얼굴은 개인 프라이버시상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1. 우선, 미국 LA 전철의 특이한 점은 각 전철역마다 역무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티켓 구입은 모두 자동 단말기를 통해서 하여야만 하며, 누가 특별히 전철표 검사를 하지 않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그냥 무임 승차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인데,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양심적으로 표를 사서 전철을 타더군요.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단말기 화면 우측 상단의 시간이, 미국 시각으로 2009년 5월 16일 오후 5시 37분을 지나고 있지요. LA전철을 1회, 1노선만 이용할 경우 1.25 달러, 만약 다른 노선으로 갈아 탈 경우 30센트를 추가해서 1.55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화면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만약 하루종일 이용하거나 모든 노선을 이용하고 싶다면 5달러를 지불해야 합니다.
  글쓴이는 한인 타운에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하는데다가 다시 돌아올 때는 친구의 차를 타고 오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노선을 한번만 이용하는 1.25 달러짜리 티켓을 구입했습니다. 티켓을 자세히 보시면 구입한 시간인 오후 5시 37분으로부터 2시간이 지난 7시 37분이 되면, 티켓의 수명은 다한다고 되어 있네요.
                                              전철 티켓 구입을 위한 자동 단말기의 모습

  2.LA 전철의 또다른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전철 레일 구간의 대부분이 일체의 간막이나 방벽없이 길거리 중간에 그냥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렇게 말입니다...
...이제 기다렸던 전철이 들어 오네요. 한번 올라타 보겠습니다.

  3. LA 전철의 내부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진을 보면서 한국 전철과 다른 특징을 발견하셨나요? 우선 내부 구조가 뉴욕이나 한국 전철과는 달리 서로 마주보고 좌우 일렬로 앉는 의자 형태가 아니라 마치 버스처럼 좌석이 두 사람씩 앉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이런 식의 형태는 개인주의가 잘 발달된 미국인들의 현재 사고를 반영한 구조가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매번 전철을 탈 때마다 하곤 합니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열차의 차량마다 의자의 방향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령 앞 차량이 열차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면, 다음 차량은 그 반대로 그리고 그 다음 차량은 또 그 반대로 되어 있는 식입니다.

  4.또한 한국 전철의 좌우 상단에 흔히 보이는 광고가 하나도 없다는 점도 대단히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사진에서 필자가 사각형으로 표시한 것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문 앞에 설치된 것은 문이 열리고 닫힐 시, 불이 켜지면서 일종의 경보음이 나옴으로써, 시각 장애자들을 배려하는 장치였고, 승객들의 좌석 위에 있는 사각형은 바로 감시 카메라로써, 누군가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위험을 끼치면, 전철 기관사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였는데, 성추행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한국 전철도 이런 시스템은 도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5. 사진 우측 상단에 있는 것은 위급 상황이나 차량내 이상 발견시, 승객이 기관사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인터콤입니다. 글쓴이가 이 포스팅을 쓰라고 하늘이 계시를 내린 것인지, 마침 이날 차량내 문 중에 하나가 열리지 않는 일이 발생했고, 한 승객이 인터콤을 통해 기관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바로 기관사가 차량 내로 나와서 문 위에 설치된 계기판을 점검한 뒤, 열차를 다시 운행하더군요.
                           기관사가 문 위의 계기판을 점검 후 다시 원 상태로 돌리는 모습

  여러분은 혹시 미국에서 통용되는 이런 말을 아십니까? 뉴욕에서는 자동차가 필요없을 정도로 전철과 버스가 잘 연결이 되어 있지만,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에서는 자동차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는 얘기 말입니다. 그 이유를 전철 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전철 노선도를 보시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게 될 겁니다.
  6. 어떻습니까? 면적으로 치면 서울보다 넓고 크다는 LA의 전철 노선도가 상당히 단순하지요. LA 전철도 한국처럼 Red Line, Blue Line, Green Line 등등 해서 여러 노선이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역의 수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전철 역 자체가 한국과는 달리 주택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용하기가 그다지 쉽지는 않다는 의미입니다.

  전철 구간 중 직각으로 꺾여있는 레일 위를 다니기 위해 빙그르르 돌아가는 회전판이 차량 연결 부위마다 장착되어 있는 모습

  7. 자연히 한 열차당 차량의 갯수도 4~6량에 불과하며, 차량의 이음새마다 마치 길다란 메트로 버스의 이음새처럼, 이렇게 회전이 가능하게끔 디자인이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레일 구간중의 상당수가 90도 각도로 꺾이는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LA 7번가에 위치한 UNION STATION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Red Line 전철로 갈아타고 한인 타운으로 가 보도록 하지요. 참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곳에서부터 비로소 전철이 지하로 다니기 시작합니다.
 한인 타운으로 가는 Red Line전철은 이렇게 한 층 더 지하로 내려와서 타야 합니다. 여전히 사람이 별로 없음을 확인할 수 있지요?
  필자가 가야 할 방향은 Wilshire/Vermont 역이었기에, 이 방향(To Wilshire /Western)에서 열차를 기다리게 되었네요. 
 드디어 Red Line 열차가 들어 왔습니다. 한번 올라타 볼까요.
  Red Line 구간의 열차도 필자가 롱비치에서 타고 온 Blue Line 구간의 열차처럼, 버스 형태의 좌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좌석이 번갈아가며 배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좌석 가운데를 자세히 보시면 소형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는 것도 눈에 들어 오시죠. 이건 분명히 미국인들의 개인주의, 합리주의적 사고를 반영한 디자인이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까....^^
                      LA 한인 타운이 있는 Wilshire/Vermont 역 앞에 설치된 티켓 자동 단말기의 모습

  드디어 글쓴이는 목적지인 한인 타운에 도착했습니다. 5시 40분경에 열차를 탔는데 도착해보니 7시 15분을 조금 넘었네요. 이건 결코 자동차에 뒤지지 않는 시간임에 다시한번 만족을 느낍니다.

  또한 지상으로 나오기까지 그 누구에게도 표를 검사하겠다는 것을 본 적도 없고, 오로지 전철과 사람들의 자발적 양심에 기댄 티켓 자동 단말기 그리고 별로 많지 않은 승객과 함께 전철을 타고 오면서 보게 되는 여러 거리의 풍경들이 상당히 낭만적이고 꽤나 인상적인 LA 전철...

  미국 동부 뉴욕처럼 오래되고 낙후된 시설로 인해 더럽고 꾀죄죄한 것으로 세계적인 악명(?!)을 날리는 전철과는 분명히 차원을 달리하며, 한국 전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내부도 상당히 깨끗하고 여러 측면에서 더 나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 떠도는 항간의 소문들과는 달리 절대 안전하니까, LA에 오실 기회가 있는 분들은 한번쯤 LA 전철을 꼭 한번 타 보시길 권하면서 필자는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칩니다.  ^^


  P.S: 이 포스팅의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글쓴이에게 양해를 구하시거나 상업적 혹은 다른 개인적 용도로 변경하지 않으신다면 , 사진 캡쳐나 퍼가기는 언제든 무방함을 분명히 알려 드립니다.
Posted by 네 오 NEO
과학 기술2009. 5. 15. 04:07
  여러분은 하얀 거탑이나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같은 이른바 메디컬 드라마를 보신 적이 있거나 좋아하십니까? 하얀 거탑같은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을 분한 김명민같은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도 돋보이지만, 메디컬 드라마의 흐름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바로 수술 장면이나 전문적인 의학 용어들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그런 얘기나 드라마상의 여러 컨셉들은 상당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는데요.
                        드라마 하얀 거탑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김명민의 모습과 드라마 속 수술 장면

  이런 현대적 메디컬 드라마의 효시는 아마도 1994년 미국 NBC TV를 통해 방영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ER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R의 시나리오 작가는 한국에서 쥬라기 공원으로 널리 알려진 천재 작가 故 마이클 크라이튼이었는데, 그가 이 시나리오를 들고 각 방송국들을 찾았을 당시만 해도, 현대 의학이나 수술 혹은 의학 전문 용어를 드라마로 제작한다는 생각은 미국에서도 무리였던지, 계속해서 퇴짜를 맞다가 어렵사리 워너 브라더스 사에 의해 제작이 되고 NBC TV에 의해 방송이 되면서, 예상(?!) 밖의 흥행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이런 흐름이 가능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는데,그게 무엇이냐면 바로 현대 의학에서 중요한 몇 가지 수술 기법이 지난 20여간 크게 향상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져서, 현대 의학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수술의 진전과 함께 비록 오랜 역사와 연원을 가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현대 의학계와 일반인들의 선호와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수술들은 과연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내용은 글쓴이가 한 외국의 유명 의사가 저술한 현대 의학과 수술, 그리고 일반인들의 궁금증을 담은 책을 읽어보고 관련 자료를 검색하면서 정리한 자료임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1. 복강경 수술
  20년 전만 해도 수술은 사실상 신석기 시대라고 불려야 마땅한 상태였습니다. 그 이유는 병변이 발생하거나 수술을 요하는 질환의 경우, 대부분 해당 부위를 절개하거나 열고 난 뒤, 시술하는 소위 개복 수술 위주로 치료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의학계에서는 개복 수술보다는 복강경 수술 위주로 흐름이나 방향이 크게 비뀌었습니다.

  복강경 수술 기법은 원래는 20세기 초에 개발되었으나 1980년대까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지난 20년간 확고한 수술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직경 5mm~10mm의 작은 내시경을 이용한 이 수술은 개복 수술과 같이 병변의 주변 부위를 크게 개폐하는 일 없이 시술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수술 기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정교하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시간의 회복 기간과 고통의 경감 그리고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 점들은 바쁜 일상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안성마춤이기에, 이 수술은 앞으로도 더욱 번창할 것이 확실하므로 첫 번째로 소개했습니다.

2. 로봇 수술
  이건 마치 SF영화의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의사가 조종하는 로봇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술을 하게 될 날이 멀지 않은 듯 합니다. 의료 보건 서비스의 패러다임이 표준화된 서비스에서 점차 맞춤형으로 진화하고 있고, 그에 발맞추어 외과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지역에서의 수술을 가능하게 하는 이른바 원격 수술 기법이 크게 향상되면서, 로봇 수술 기법도 지난 20년간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로봇을 이용한 최초의 대서양 횡단 원격 수술은 지난 2001년에 미국 뉴욕에 있는 제크 마레스코(Jacques Marescaux) 박사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 있는 68세의 여성으로부터 담낭을 제거한 사례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수술을 위해 대체 수술팀이 대기하고, 연속적인 신호 연결을 위한 전용 대서양 횡단 신호라인을 사용하는 등 많은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2005년 초에는 브로데릭 박사와 그의 신시내티 연구팀이 다빈치 수술 로봇(위 사진) 을 이용해 미국 최초의 생방송 원격 수술을 수행했습니다. 다빈치같은 의료 로봇의 최소 침습 수술을 이용하면 절개부위는 더 작고, 출혈량 및 고통도 더 적으며, 회복이 더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 아직까지는 이 기술이 크게 대중화되지 않은 관계로 치료 비용이 일반 수술보다 무척 비싸지만 조만간 가격은 계속 내려 갈 것이고, 더 많은 환자들이 의사가 원격 조종하는 로봇이 진행하는 수술대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3. 미세 수술
  귀나 후두의 현미 수술과 같이 현미경 하에서 여러가지 기구를 이용해 시행하는 미세 구조의 처치를 미세 수술이라고 합니다. 

  미세 수술 역시 개발된 시기는 20세기 중반이었지만 기술의 극적인 변화는 지난 15년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그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얼굴이나 손의 이식같은 수술들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현대 의학계에서 20년전만 하더라도, 얼굴을 이식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세 수술의 발달은 이러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으며, 이 수술은 이제 현대 의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4. 태아 수술
  누군가가 임신을 했는데, 검사를 받아 보니까 태아가 기형이거나 선천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전에는 아이를 낳을 것인가 혹은 인공 유산을 시킬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지요. 또한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인큐베이터에 넣어서 좀더 발육을 시킨 다음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도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의 발전은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게 하는 수준에 도달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태아 수술입니다. 테아 수술이란 선천적인 태아의 구조적인 결함을 자궁 내에서 외과적으로 교정, 치료해 남은 수태 기간을 유지한 후 안전하게 분만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태아 수술은 1980년에 시술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수술에 대한 인식이나 기술적 측면이 아직은 미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이 분야에도 꾸준한 연구와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2000년도 이후로는 수술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2005년 초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주에서 한쪽 발에 이상이 발견된 ‘엘라’라는 여자 아기가 태아 수술을 받있습니다. 엘라는 임신 19주 만에 초음파 검사를 통해 왼쪽 발목에 양막 띠가 꼬여 있는 것이 발견 됐는데, 1만 명당 한 명 꼴로 나타나는 양막 띠 신드롬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 질병을 치료하지 않을 경우, 태어나서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하거나 심하면 자궁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목이 절단돼버리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증상이었지만, 다행히 출산 3개월 전 90여 분간의 태아 수술로 묶여져 있던 띠를 무사히 제거해 발목의 절단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인해 예전에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수술들이 그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태아 수술도 점차 발전하고 있습니다. 

5. 생체 기관 이식 수술
  누군가가 장기 기증 서약을 했는데 사고를 당해 죽음을 당했다거나, 죽기 직전 본인 혹은 기족들의 동의하에, 장기를 다른 이에게 이식하는 수술은 전에도 많이 행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기증자와 장기 수령자간의 수술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로써 , 이 분야에 대한 수술도 지난 20년동안에 큰 발전을 이룩했다고 합니다.


  생체 기관 이식은 이를테면, 간을 분할하면 인체의 회복 능력에 의해 해당 간이 원래 상태의 크기로 자라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기증자가 그의 건강한 간의 절반을 떼어 그의 병든 친척이나 가족에게 주면, 기증자의 간과 수령자에게 이식된 간 조직 양쪽 모두 원래의 크기로 자라난다는 것이지요. 최초의 수술은 1989년 Teresa Smith라는 이름의 여성이 그의 어린 딸인 Alyssa에게 간의 일부를 기증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위 사진: 시카고 대학 메디컬 센터에 전시된 최초의 생체 기관 기증자 Teresa Smith(맨 우측)와 이식자 Alyssa(가운데)의 모습]

6. 제왕 절개 수술
  이 수술법은 역사도 오래 되었고 수술 기법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시술되고 인기가 있는 수술 중 하나이지요.  

  하지만 제왕 절개술은 19세기까지만 해도 여전히 굉장한 워험을 동반한 수술이었습니다. 이 수술은 출산 도중 산모들의 사망률을 크게 높였던 요인 중 하나였는데, 현대에 들어와서 보건과 예방 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향상되고 수술 도구의 소독이라든가 수술 방법이 한층 정교해짐으로써 산모의 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이제는 아주 대중적인 수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을 증명하는 수술중 하나이겠네요...^^ 


7. 절단술
  절단술 역시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오랜 연원을 가진 수술입니다. 이 수술은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수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팔 다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가진 이들이 급증하자 이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 오른쪽 사진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절단술 교본의 한 장면.)

  최근에는 가급적이면 팔다리를 보존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그에 해당하는 수 많은 방법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현대 의학으로도 손을 써 볼 수 없는 상태에 빠진 팔 다리는 절단이 불가피하며, 시술 횟수 또한 다른 수술과 비견될만큼 상당하기에, 이 수술에 대한 항목도 포함을 시켜야만 했습니다.



8. 비만 수술
  비만 수술 기법은 1960년대에 처음 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술에 의한 영양학적 측면의 부작용이 너무나 커서 이 수술은 시술 자체가 중단되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비만 인구가 크게 급증하고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위장 접합술이나 절개와 같은 이 분야의 수술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영양학적으로 너무 큰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의 비만 수술은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로 하면서 상대적으로 여러 식이 요법과 운동 요법을 병행시킴으로써, 과거의 오명에 대한 설욕(?!)의 기회를 다시 잡은 셈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부작용이 있기에, 의학계 일부에서는 이 수술은 비만에 의한 당뇨병 예방 차원에서만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9. 성형 수술

  이 수술의 이름은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셨겠지요...^^

  하지만 성형 수술도 이미 4000여년전부터 시술이 되었었고 고대 인도(BC 800)에서도 성형 수술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마 잘 모르고 계실 겁니다. 성형 수술 기법은 지난 수천 년간 매우 느리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얼굴이나 신체 부위에 치명적인 흉터나 일생동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이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일종의 복원술로써 기술의 진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겁니다.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시술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60~70년대였기에, 통상 사람들은 이 시기에 성형 수술이 처음 생긴 것으로 알고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에 폭발적으로 시술을 받은 환자가 늘어난 수술 분야 중 대표적인 부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여겨져서 마지막으로 올려 보았습니다.

  이상으로 지난 20년간 크게 발전했거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현대인들에게 각광받는 수술 9가지를 정리했습니다. 흔히 21세기는 과거 수 백년에 걸쳐 일어난 의학의 발전보다 앞으로 20년 동안 일어날 의학의 발전이 더 크고 획기적일 수 있는 시대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무엇보다 보건 의료 분야는 현재에는 상상으로만 가능한, 어쩌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초래될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의 진전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겠지만 지난 20년간 수술과 같은 분야에서 눈에 띄게 그 발전 속도가 빨라졌으며, 또한 앞으로 20년간 이룩될 의학의 성취가 과거 수 백년간의 몫을 능가할 것이 확실하다고 예측되는데,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참고 도서 겸 소스
Simon Marinker [Informed Consent to Surgery : Everything You Wanted to Know About Your Operation but Were Afraid to Ask] Trafford Publishing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5. 14. 06:16
  여러분은 저작권하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특정 개인의 창작물이나 저작을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무단 도용과 그로 인한 법적 제재같은 것들을 연상하시나요? 글쓴이가 짐작하건데, 많은 분들이 저작권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하지만, 또다른 많은 분들은 지금도 여전히 저작권이란 말이 갖는 의미와 개념이 내심 못마땅하고 불편하시거나 혼란스럽고 이해가 안되는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필자는 그런 여러분들의 생각이 분명히 일리가 있고 저작권이란 개념 자체가 불편하고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역사와 배경을 짚어보면서 깨달았으며, 저작권 문제가 단지 법조계 인사(일부 법무법인)나 국회의원같은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만 관여할만큼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간략하게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인쇄 기술의 발전과 저작권 개념의 탄생
 누군가 여러분에게 인류 역사상 인간의 삶과 의식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님들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겠지만, 글쓴이는 인쇄 기술의 발달로 인해 구두, 필사 문화가 사라진 것을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혹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필자에게 물어 본다면, 인쇄 문화의 발전이 사유 재산과 시장이라는 개념과 시민 사회의 형성에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함으로써, 오늘 날 우리를 둘러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형성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사회에 필수 요소인 돈을 금속이 아닌 종이 화폐로 대량으로 찍어 낼 수 있게 됨으로써, 시장의 외연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되었고, 표준화된 지도의 대량 보급으로 육로와 해로를 통한 여행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무역과 교역의 범위도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장의 영역이 점차 복잡해지고 커지면서 거래되는 물품의 종류도 점차 늘어남에 따라, 상품에 대한 균일한 가격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도표라든가 증권, 수표, 약속 어음같은 것들이 속속 출현하게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이것들은 모두 인쇄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전에는 소수에 의해 독점되었던 필사본으로 된 서적들이 인쇄 기술로 인해 대량으로 찍혀 나오면서, 각 나라마다 가진 고유 언어로 된 책을 보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뚜렷한 국민적 정체성이 생기면서 민족주의가 발달하고 국민 국가가 형성되는데에도 인쇄는 일등공신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의 주제인 저작권의 개념도 인쇄 문화의 발전으로 인해서 생겨 났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나 중세 시대에도 이름이 알려진 저자들의 서적이 몇몇 있기는 하였지만, 그 수는 필사본이나 구두 문학으로 전해지는 얘기들에 비하면 극히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이 종이에다가 일일히 손으로 베껴쓰는 필사본은 그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보급량이 한정될 수 밖에 없었고, 해당 서적의 저자도 대부분 익명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한 권의 필사본 속에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집필에 관여했기에, 특정 저자라든가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인쇄의 발달은 저작권이란 개념을 점차 크게 강화시킵니다. 자기가 쓴 글이나 말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개인주의적 발상과 근대 자본주의의 대표적 사조인 사유재산의 개념이 접목되면서, 특정 개인이 생각과 말을 소유할 수 있고, 그것을 알고 싶거나 듣고 싶은 사람들은 일종의 댓가를 지불하거나 치뤄야만 한다는 사고는 그 전의 역사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은 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누군가가 읽어 주는 필사본을 듣거나,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특정 화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써 존재했다면, 인쇄에 의해 대량으로 출판된 서적은 개개인이 조용히 자신의 방에 앉아 생각을 하면서 읽어보게 만듦으로써 개인의 사생활이란 영역도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근대 시민 사회의 형성과 개인이라는 개념을 확립하는데도 크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쇄술은 근대 자본주의와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그 와중에 성격이 크게 강화되었던 저작권이란 개념은 근대의 사고와 철학을 반영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참고 자료: 저작권

컴퓨터, 인터넷의 발전과 하이퍼 텍스트의 출현, 그리고 저작권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쇄 기술에 이어서 현대인의 생활 형태와 의식을 크게 바꾼 두번째 역사적 계기는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이라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정보가 교환되는 방식은 기존의 통신 체계나 인쇄 서적으로 전파되는 방식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의 정보 전달은 기존의 통신이나 서적의 보급에 의한 순차적이고 직선적이며 단선적인 방식과는 사뭇 다른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순서라든가 인과 관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 그 자리에 연속적이고 통합된 정보의 창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오프라인 상의 주체와 객체라는 것이 접속점과 네트워크로 변환되었으며, 모든 유저가 동시 접속이 가능해지면서, 정보는 순식간에 수정되거나 쇄신되는 역동적 관계의 그물망이 끊임없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터넷은 기존의 인쇄 기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인쇄물은 일정한 수의 사실이나 정보를 정해진 페이지나 권 수가 한정된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폐쇄적으로 제시했다면, 사이버 공간이라는 정보의 창에서는 모든 정보에 대해 각주나 출전이 무한히 확대되거나 수정됨으로써, 새로운 상부 혹은 하부 텍스트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른바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로 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책이 단편적이고 경계선이 분명했었다면, 하이퍼 텍스트는 접속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듯 연결 지향적이며 정확하게 경계선을 정하거나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책은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책은 어떻게든 결말이 있겠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부단히 수정되고 변화하기에 결론이 나기 힘들며 오직 과정만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책은 누군가가 구입했다가 시간이 날때마다 다시 훑어볼 수 있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순간순간 수정, 변환되기에 접속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마련인 겁니다.

  문제는 이런 하이퍼 텍스트의 특성이 기존 인쇄 문화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였던 저작권의 개념에 심각한 의문과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에는 특정 서적의 저자가 누구누구의 소유라는 발상이 별다른 무리없이 적용이 가능했었는데, 하이퍼 텍스트상에서는 이 개념이 너무나 막연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위 문단에서 간략하게 하이퍼 텍스트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하이퍼 텍스트란 것 자체가 피아를 구분짓는 배타성과 개인적 독립성보다는 포괄성과 연결성에 그 바탕과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특정 텍스트의 어디까지가 이 사람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저 사람의 것인지를 나누기가 너무나 힘들고, 이런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굳이 관념적으로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지금의 인터넷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전 세계 수 많은 유저들이 가히 천문학적인 수에 해당하는 개별적인 접속점들을 통해서 어떤 네트워크나 자료에 접근한 다음, 해당 자료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이 가진 정보와 재조합하거나 편집한 뒤, 다른 네트워크나 경로를 통해서 간단하고도 신속하게 전파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식으로 모든 종류의 자료가 한 사람의 창조적 노력이나 노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경과 오프 라인을 초월한 광범위한 시공간인 사이버 스페이스 상에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의 손을 무수히 거친 후에 형성된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면, 과연 이게 누구의 소유인지를 가리기가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일까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프랑스의 이론 문학가인 Roland Barthes는 하이퍼 텍스트란 결국 저자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저작권의 개념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넷 통신은, 기존에 책을 대하던 방식인 읽고 쓰는 성찰적이고 개개인만의 개별적인 과정들을 공개되고 순식간에 변화하는 사이버 공간 속에 연결시켰기 때문에, 창조적인 저작의 존재를 보장하는데 필수적이었던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오프 라인의 틀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크게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커뮤니케이션과 뉴미디어 과정을 지도하고, 가상 현실에 대해 세계적으로 아주 저명한 학자인 Michael Heim도 텍스트가 특정 개인의 저작이라는 의식이 희박해지면 자연스럽게 창조 활동을 하는 저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회적 흐름이나 추세가 강해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저작권 개념이 혼란스러운 이유와 우리가 해야 할 일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쇄 문화의 발달과 함께 생겨난 저작권이란 개념 속에는 근대 자본주의의 사유재산 개념과 시장의 원리가 녹아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그리고 그로 인해 생성된 하이퍼 텍스트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인 개념이기에, 지금도 논란과 혼돈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며, 인터넷 접속자나 개인 홈페이지, 블로그 등을 운용하는 모든 유저들에게 확연한 지침이나 의식이 쉽사리 확립될 수 없는 철학적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오늘 포스팅의 주제입니다.
 
 또한 이렇게 근대 자본주의와 시장의 원리를 반영한 구시대적인 사고와 개념을 토대로 생긴 저작권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나 토론을 일부 법조계 인사나 국회의원같은 특정 인사들에게만 맡겨 놓고, 모두가 무기력하게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법조계 인사, 포털 사이트 관계자, 네트워크 시스템 개발자, 인터넷 보안 전문가, 시민 단체, 시민 패널,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모여서 저작권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토론이나 논의와 함께, 수시로 급변하는 사이버 공간과 하이퍼 텍스트에 보다 적합한 새로운 지침과 윤리강령을 자체적으로 확립해 가자는 대대적인 여론 조성과 노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글쓴이는 판단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 참고 도서겸 소스
*Roland Barthes [Image, Music, Text] New York, Noonday Press
*Michael Heim [Electric Language: A Philosophical Study of Word Processing]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S: 필자가 오늘의 포스팅을 올리기 전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작권과 관련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실로 엄청난 양의 자료와 정보가 뜨더군요. 그 중에서 민노씨네 님이 정리한 자료가 내용면이나 사고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고 , 해당 자료를 작성한 이의 노고가 너무나 역력히 보이는 포스팅이어서 링크를 시키니까, 방문하셔서 한번쯤 참고하시고 저작권에 대한 사유와 개념의 폭을 넓히시길 바랍니다.

※ 저작권 관련 참고 사이트: http://minoci.net/52

 흥미로운 사유 한 토막
  여러분은 왜 유대인들이 지금의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에는 여러가지 답이 가능하겠지만 글쓴이는 오늘의 주제인 저작권과 하이퍼 텍스트와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만큼 그 연원이나 뿌리가 깊은 분야가 없으며, 그런 특정 종교의 교리나 규범을 담은 경전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사고,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마련입니다. 유대인들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만의 종교인 유대교가 있고 , 탈무드라는 경전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탈무드의 원전을 살펴보면 그 구조가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라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시나요...
  사해 주변 미슈나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탈무드 원전(위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본문이 가운데에 위치하고 그 주변 상하 좌우로 각 주와 해설이 붙어 있는데, 고문서학자들과 과학자들의 고증과 분석에 의하면, 그 내용이 수시로 고쳐지거나 계속 첨가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탈무드는 여타의 종교 경전과는 달리 끝 페이지가 백지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또다른 정보와 사유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그것을 재해석해서(!!!) 자신들만의 지혜로 만들고 보존하기 위한 그들만의 독특한 사고와 문화를 반영한다라는 기록이 경전 속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로 지난 2000여년간 나라를 잃고 방황을 할때, 유대인들만의 정체성과 사고를 간직하고 후손에게 전달하는 주요한 매개체였던 무수한 탈무드 사본들도 위의 원전과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점을 세세히 살피고 현대의 사이버 공간과 하이퍼 텍스트라는 개념을 대비시켜 생각해보면, 이미 유대인들은 수 천년전에 오늘 날의 하이퍼 텍스트와 흡사한 사고를 가졌었다는 말이며, 바로 이런 의식과 문화가 그들이 정보를 다루거나 처리하는데에 있어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게 했고, 바로 그런 점이 지금의 세계에서 유대인들을 최고의 자리에 가게 만든 원동력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잠시 가졌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공상 과학 영화, 일명 SF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낱 소설이나 말 그대로의 공상일뿐라고 여기고 그리 즐기지 않으시나요? 아님 그 속에 깃든 남다른 과학에 대한 발상이나 철학을 발견하고 마니아의 대열에 적극 동참하시는 쪽인가요?

  글쓴이는 소위 SF 장르라면 소설, 만화, 게임, 영화를 불문하고 모두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 필자 주변에 공상 과학 영화를 말도 안된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가끔 SF 장르가 현대의 과학에 영감을 주고 발전하는데에 적지 않는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면, 대부분 그건 너의 생각일뿐이라는 반응을 보이시곤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SF라는 장르가 이 분야를 별로 즐기지 않는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거나 황당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영화와 TV시리즈가 있는데, 바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스타 트렉(Star Trek)입니다. 

 
수 많은 무예의 대가나 무술 마니아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무도의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나 영감을 준 것으로 많이 언급하는 것이 바로 이소룡의 영화이듯이, 스타 트렉은 현대 과학, 특히 그중에서도 현대 물리학에 여러 화두를 던졌고 지대한 영감을 제공하였는데, 오늘은 과연 스타 트렉의 어떤 면이 그렇다는 것인지를, 글쓴이의 전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최대한 일반인들이 알기쉽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초광속 우주 여행과 상대성 이론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스타 트렉은 여러 은하나 별들을 여행하며 겪게 되는 여러 사건과 모험,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서 만나는 외계인들을 통하여 여러가지 철학적 물음이나 성찰을 요구하는 일종의 우주 여행기입니다. 그러다보니 수천, 수만 광년의 거리를 지닌 은하계나 항성계를 넘다든다는 것을 기본 가정으로 얘기가 진행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알다시피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빨리 이동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스타 트렉을 처음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진 로든베리는 커다란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빛의 속도에 가까와질수록 질량은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해 결국 빛의 속도를 넘어서는 순간 무한대가 되어 버리므로 , 이론적으로는 초광속 비행이란 말 그대로 공상이었던 셈입니다.

  그는 고민끝에 당대의 물리학계를 향해서 자신의 시나리오 구상을 은밀히 밝히고, 이것을 뒷받침할 이론적 근거를 알려 달라고 정식으로 자문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요청을 받은 물리학자들은 심사숙고와 토론 끝에 워프 항법(Warp Drive)이라는 이론적 근거를 그에게 전해 주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한계를 분명히 그어놓은 광속과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나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의 속도로 물체가 이동할 수는 없지만 또한편으로 시간과 공간 자체를 구부리거나 수축 혹은 확장할 수 있다는 수학적 추론이 가능하기에, 그 부분을 좀더 세분화하고 구체화시킨 것이 바로 워프 항법이었던 겁니다. 한마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라는 절대 기준에 일종의 우회로(?!)를 만들어 초광속 비행이라는 문제에 탈출구를 열어준 셈이었습니다.

  영화나 TV시리즈 스타 트렉에 의하면, 함선 엔터프라이즈 호의 추진기에는 강력한 음에너지가 들어 있어 순간적으로 선체 후미의 공간을 크게 확장시키고 그럼으로써 우주선 엔터프라이즈 호가 손식간에 몇천, 몇만 광년 이상을 이동(확장된 공간에 떠밀려서!)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물리학 이론의 근간입니다.
  문제는 시공간을 비틀거나 수축, 확장할 정도의 에너지라면 그 크기가 무한대의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점이며 , 설사 그런 음에너지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일종의 반중력 상태이기에 그것을 지지할 받침대나 특수한 보호막이 필요할뿐만 아니라, 극도로 높은 고에너지의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극히 짧은 순간만 그런 상태가 유지되다가 사라져 버린다는 수학적 추론이 도출된다는 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당최 실감이 안 가시는 분들은 원자력 에너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원자 붕괴에서 방출되는 고에너지를 제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도의 설비와 기술자 그리고 자본이 투입되는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거나 완벽하게 제어가 가능하다고 그 누구도 말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자 하나의 붕괴가 아닌 시공간 자체를 구부리거나 수축, 확장하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에너지(수학적으로는 거의 무한대의 수준으로 수렴된다!)와 설비가 필요할까요...그리고 과연 이게 임의로 제어가 가능할까요...


  바로 이러한 물리학적 난점 때문에 현대 물리학자들은 워프 항법보다 신빙성있고 가능성 있게 보는 방법을 추론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웜홀(Worm Hole)을 이용하는 시공간 이동 방법입니다. 웜홀은 인간이 만들었다기보다 블랙홀(Black Hole)이 소멸하면서 생긴 시공간의 틈을 인간이 발견하고 그것을 통하여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다는 것인데, 이것도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과연 우리네 공간 어디에 그런 틈이 생기는지를 알아내기도 거의 불가능할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발견하고 들어간다고 해도 그 웜홀을 통해서 어디로 이동할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여전히 이론적인 구상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스타 트렉으로 인해 초광속 문제와 워프 항법 그리고 웜홀에 대한 가설과 논의가 한층 활발해졌고, 그로 인해 광속과 시공간에 대한 이론적 준거를 마련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 보다 철저한 이론적 해석과 수많은 실험과 시도 그리고 음에너지와 반중력에 대한 이론 물리학의 발전이 가속화된 측면이 분명 있기에 스타 트렉의 워프 항법은 여러모로 유의미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성 이론에 대한 보충 설명 자료 링크: http://ko.wikipedia.org/wiki/%EC%83%81%EB%8C%80%EC%84%B1_%EC%9D%B4%EB%A1%A0 )

순간 이동과 양자 역학
  여러분은 스타 트렉 시리즈하면 무슨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글쓴이는 이른바 순간 이동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커크 혹은 피카드 함장이 대원들을 이끌고 미지의 행성이나 공간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지요. 
  스타 트렉의 줄거리에 따르면, 순간 이동의 이론은 매우 간단하게 보입니다. 전송기에 들어간 사람의 원자와 분자 구조의 데이터를 저장한 뒤, 그것을 분해했다가 전송 장소에서 다시 재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많은 분들이 정말 저런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한번쯤 생각하지 않으신 분들은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 이동이 물리학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난제가 숨어 있는지를 자세히 고민하신 분들은 아마도 소수일 것입니다. 위에서 초광속 문제를 다룰 때 주로 사용되었던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었습니다.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고전 물리학이 가진 역학 법칙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도 빛과 공간이란 문제를 보다 확장시킨 것인데 반해, 순간 이동이란 화두는 바로 원자 내의 운동 법칙을 주관하는 양자 역학의 세계와 관련된 것이기에 또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초광속 못지않은 난제를 현대 물리학에 던진 셈이었습니다.

  현대 물리학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의 양대 축으로 이루어졌는데, 스타 트렉은 초광속과 순간 이동이란 화두를 통해 두 분야 모두를 다룬 격이다
  어찌되었거나, 다시 스타 트렉의 얘기로 돌아와서 순간 이동은 그동안 현대 물리학에서는 사실상 공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양자 역학의 모티브를 제공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때문이었는데, 그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원자의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파악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뉴턴의 고전 물리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위치와 속도를 파악함으로써 물체가 다음 단계에 어디로 이동할지와 물체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할 수가 있었는데, 현대 물리학의 양자 역학에서는 원자 수준의 세계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며 위치를 파악하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속도를 파악하면 위치를 알 수 없다는 점과, 다만 관찰자는 확률적으로(!!!) 전자나 양자가 다음에 어디로 이동할지와 상태를 가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불확정성 원리의 골자인데요.

(※불확정성 원리란: http://ko.wikipedia.org/wiki/%EB%B6%88%ED%99%95%EC%A0%95%EC%84%B1_%EC%9B%90%EB%A6%AC )

  그렇게 되니 순간 이동이란 것이 결코 가능할 수 없는 소재가 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란 종족은 결코 포기나 좌절을 모르는 특수한 성향을 가졌나 봅니다.

  최근들어, 물리학계에서는 스핀 입자의 얽힘 현상(Entanglement)을 이용해 양전자 하나를 공간 이동시키는데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 스타 트렉에서 말하는 식의 물체 분해 후 전송 그리고 재조합은 아닙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얽힘 현상이란 특정 장소의 물체(입자)를 완전히 분해하거나 영향을 주면, 그 정보가 다른 장소에 있는 해당 물체(입자)에 즉각적으로 작용하다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전송은 자연히 도착 장소에 해당 물체(입자)를 만들 원재료가 미리 구비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난점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따라서 해당 분야의 연구는 순간 이동보다는 주로 인공 지능 혹은 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양자 컴퓨터 개발을 위해서 연구,정립되고 있는 실정이지요...

  ...어찌되었든간에, 스타 트렉에서 표현했던 의미의 전송은 아니지만, 상대성 이론의 우회로격인 워프 항법처럼 양자 역학에서도 일종의 복제(?!)를 통한 양자 전송이라는 우회로를 만든 셈이니 스타 트렉이 현대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이지 않습니까.
(※양자 이동에 대한 보충 자료:     
http://www.dongascience.com/info/contents.asp?mode=view&article_no=20060801153000 
http://www.studybusiness.com/HTML/Digital/01985-04-2004-DIG-04-K.htm)


함선 엔터프라이즈 호가 발사하는 광자 어뢰와 반물질, 그리고 우주론
 스타 트렉을 보면, 종종 보그 족과의 전투나 교전 장면이 나오고 그들에 대항해서 엔터프라이즈 호가 발사하는 것이 바로 광자 어뢰인데요. 스타 트렉에 따르면, 광자 어뢰는 1.5kg의 물질과 1.5kg의 반물질이 서로 만나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고, 이는 작은 행성 하나를 파괴할 수도 있을 정도라고 묘사되는데, 여기에도 반물질과 관련해 현대 물리학의 우주론이란 분야에 가볍지 않은 문제를 던졌다고 보여져 잠시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는 순간, 서로가 가졌던 질량은 모두 소멸하고 그것이 전부 에너지로 변하기에, 그 규모나 량은 엄청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물질과 물질은 서로 만나면 즉각적인 폭발과 함께 소멸하게 되는데, 스타 트렉의 엔터프라이즈가 쏘는 광자 어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후, 발사가 가능하지요...마치 탄두를 장전했었다가 발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역시 물리학 강의가 아닌 영화이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야 하겠지요...^^

  또한 고에너지 물리 실험실이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는 반물질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보관할지도 미지수이기에 지금은 그저 상상의 단계에만 머무는 무기 체계라고 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반물질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부연하자면, 현대 물리학계에서는 우주 탄생 초기엔 반물질과 물질이 거의 동수의 비율로 존재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인가 대칭성이 깨지면서, 오늘 날과 같은 물질 세계로만 구성된 우주가 되었다고 추론하고 있지요. 따라서, 우주 저편 어딘가에는 상당량의 반물질로만 된 우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체 물리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준항성체(준항성체: 크기는 1~2광년밖에 안 되지만, 밝기는 지름이 약 10만 광년 정도 되는 거대 은하들보다 1,000배가량 더 밝다. 이러한 엄청난 밝기로 인해 이들은 100억 광년 이상의 거리에서도 관측된다.) 를 설명하는데, 이러한 반물질의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물리학자도 상당합니다. 

  또한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주로 연구하는 반입자도 엄밀하게 따지자면 결국 반물질입니다. 이를테면, 전자의 전하는 음(-)이지만 반입자인 양전자는 양(+)이며, 양성자의 전하는 양인데 반양성자는 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반입자는 공상 과학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양전자 단층 촬영장치(PET : 우측 하단의 사진)는 반입자인 양전자를 방출하는 동위원소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양전자는 우리 몸 안에 있는 전자와 만나 소멸하면서,강력한 파장을 지닌 감마선을 방출함으로써 뇌종양과 같이 조기진단이 쉽지 않은 질병들을 100%로 정확하게 진단해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실제 세계가 아닌 고에너지 물리 실험실의 입자 가속기 내에서는 반물질이 일상적으로 생성됩니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고에너지 입자 가속기를 통해 반양성자와 양전자로 이뤄진 `반원자'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중입니다. 
 

  암튼간에, 이렇게 스타 트렉은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우주론뿐만 아니라 궁극의 컴퓨터라는 양자 컴퓨터와 의학의 양전자 단층 촬영장치같은 영역에까지 커다란 화두와 영감을 제공한 정말로 보기 드문 SF 장르의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하겠으며, 지금까지도 TV시리즈나 영화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만큼, 앞으로는 또 어떤 첨단 물리학적 화두를 던지거나 다루게 될지 스타 트렉의 광팬중 한 사람으로써 자못 기대가 큽니다.


  따라서 만약 오늘 여러분이 이 포스팅을 보셨다면, 이 시간 이후로 스타 트렉을 위시한 다른 SF 영화를 보실 때, 결코 허황된 공상만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인간의 상상력은 정말 무한하다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시길 바라고, 이왕이면 SF소설이나 영화를 사랑하는 글쓴이와 같은 SF마니아의 대열에 한번쯤 동참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하는 개인적 바램이 있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P.S: 현대 물리학적 관점에서 바라 본 스타 트렉이 아닌 TV시리즈나 영화 자체의 철학이나 지향점 , 변천사가 궁금하신 분들은 페니웨이 님의 스타 트렉 TV 시리즈의 변천사 를 참조하세요!^^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5. 8. 02:29
  요즘 다음 블로거 뉴스 문화 ,연예란을 보면 종종 누구누구의 매너 손이란 제목의 글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그 포스팅들을 클릭해서 읽어 보면 십중팔구 캡쳐를 한 사진이 나와 있고 그 속에서 남자 연예인이 여자 연예인의 신체 부위를 잡거나 건드릴 때, 민감한 신체 부위는 피하거나 접촉을 가급적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매너 짱이라는 둥 매너 손이라는 둥 하면서 실로 많은 분들이 호응을 하고 계시는데, 이게 과연 매너 손이고 매너있는 행동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약간 회의가 밀려와서 몇 자 간략하게 적어 보기로 했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한국 사회는 이상하게도 성 문제나 남녀간의 스킨쉽에 있어서만큼은 현실적으로 이미 진행되거나 대세가 되어 버린 일들을 좀처럼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도덕적 잣대나 당위성을 추구하거나 자기 기만적인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바로 매너 손이란 부분도 그 중의 하나라고 보여집니다. 

  이미 여러분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계시겠지만 한국의 성개방 풍조는 결코 소수의 일도 아니며, 거리를 다니다 보면 젊은이들의 과감하고 화끈한 스킨쉽이나 애정행각이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조선 후기 시대마냥 매너 손이라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거 정말로 웃기는 일이 아닙니까. 

  케이블 TV나 인터넷을 훑어 보아도 널리고 널린 것이 이른바 성인물 영화나 포르노이며, 초등생도 이미 알 것 다 아는 시대라는 우스갯 소리가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 마당에, 매너 손이라니 이거 너무 시대착오적인 사고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하는 말입니다.

  한국은 유교 문화권의 영향 탓인지 성을 마냥 터부시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공론이나 교육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음성적으로만 돌고 있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보여지는데, 그런 모습의 한 극단이 바로 매너 손이란 단어와 스킨쉽에 대한 보수적인 이미지로써 표출된 것은 아닐까요. 

  성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지, 결코 부끄럽거나 불결하다거나 감추기만 해서 해결이 될 무슨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연스럽게 성교육과 성에 대한 교육과 공론이 자리잡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승기같은 남자 연예인이 사진 속에서 보여주는 정도의 스킨쉽을 보았다면 과연 이런 식의 얘기가 오고 갈까요...

  위의 사진을 다시 자세하게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저렇게 손을 떼고 포즈를 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까. 헐리우드의 남녀 배우들이 서로 포즈를 취할 때 저렇게 하고 촬영을 하던가요. 아마도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십중팔구 이승기가 여성 혐오증을 가지고 있다거나 해당 여자 연예인과 사이가 극도로 안 좋은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글쓴이는 막말로 성에 대한 사고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서양인들이 매너 손이란 것을 매너라는 부류에 넣어 주기는 하겠느냐는 의문까지 강하게 밀려 옵니다. 


  물론 글을 여기까지 읽은 시점에서 혹자는 이렇게 말하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승기라는 남자 연예인을 그 전부터 좋아했었는데, 그가 다른 여자 연예인과 마주할 때, 불필요한 스킨쉽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만큼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구나라고 여겼고, 그에 대한 이미지가 한층 더 좋아졌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점은 필자도 일정부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싫어하는 연예인이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에게 다른 남자 연예인이 스킨쉽을 조금 과하게(?!) 한다고 비쳐졌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아마 그 해당 스타나 남자 연예인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무슨 변태(?!)나 혹은 성적 취향이 별난 인물쯤으로 순식간에 낙인찍힐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 온 전례를 볼 때, 필자의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런 일반인들의 생각이나 주장들의 밑바탕에 바로 성과 스킨쉽에 대한 너무나도 보수적인 사고가 강고하고도 깊숙히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이승기같은 남자 연예인들이 대중들의 반응을 의식해서 무슨 매너의 차원이라기보다는 극도로 몸을 사리고 조심을 한 것이라고 보여지지는 않으십니까.

  많은 분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스타들은 대부분 외모가 출중한 선남선녀이기에, 또 그만큼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며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중의 시선이 집중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만능 엔터테이너의 시대라고 해서 장르를 넘나들며 연예 활동을 하는 인기 스타들도 아주 많습니다. 따라서 드라마든 영화든 아니면 다른 그 어떤 장르이든간에, 촬영을 진행하다가 보면 본의아니게 서로간에 스킨쉽을 하게 되거나 여자 연예인의 민감한 신체 부위를 건드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그것을 허투로 흘려보내지 않고 화면 캡쳐등과 같은 방법으로 민감하게 잡아내시는 분들도 계속해서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해서 매번 보수적인 성적 잣대를 들이밀며 특정 스타에 대한 개개인의 기호에 따라서, 어떤 때는 극호감을 또다른 경우에는 비호감을 강하게 드러내며, 사회내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지나친 관심과 비판을 가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글쓴이는 생각합니다.

  이왕지사 이런 흐름이 사회적 대세라면, 보다 편안하고 아름답게 그것을 보아줄 수 있는 의식과 여유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에게 있다면, 그만큼 스타들의 모습도 좀더 자연스럽게 보이고 해당 스타들도 왠지 경직되거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 서로간에 보다 낭만적이고 멋진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다시 대중들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응해 줄 수 있는 선순환적 풍조가 생기지 않을까요.  

  요근래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유교 문화나 과거의 관습, 전통을 대단히 구시대적이며 시급히 버려야 할 부분으로 받아 들이고, 거기에 대해 매사 비판하고 따지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상당하다고 글쓴이는 알고 있는데, 왜 이런 성과 남녀간의 스킨쉽에 관한 문제에서는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인지 사뭇 의아해집니다. 

  지금처럼 이승기같은 스타의 소소한 스킨쉽 하나를 가지고서 매너가 있다, 없다를 따지고 많은 분들이 호응을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겉으로는 성개방 풍조를 받아 들이고 젊은 사람들의 성에 대한 의식이 크게 바뀐 듯 해도, 여전히 그 내면에는 알게 모르게 유교적이고 대단히 보수적인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이어받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그런만큼 한국은 유독 성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특수하고 폐쇄적인 사회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강력한 반증으로 보여져서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라는 생각과 함께, 한국에서 연예인이란 직업은 정말로 피곤하고 힘들겠다라고 필자는 판단하는데, 이 글을 보신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진 출처: 다음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흔히 말하는 청순 가련 혹은 첫 사랑의 추억이나 이상형의 여자를 생각하시나요? 글쓴이는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성을 보면 종종 한국 남자들 사이에서 흔히 회자되던 이런 얘기가 떠오르곤 합니다.

  반짝반짝 빛나고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긴 생머리를 바람결에 살랑살랑 흩날리며 걸어가는 그녀의 뒷 모습에 홀딱 반해, 가슴을 두근거리며 쫓아가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급실망, 좌절하여 서둘러 그 자리를 피신했었다는 농담 말입니다.^^
  긴 생머리 스타일로 인해 청순한 이미지와 함께 늘씬한 몸매로 섹시한 이미지가 배가되면서, 한때 필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의 로망으로 군림했던 전지현, 그리고 역시 긴 생머리 스타일로 인해 청순가련형의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손예진의 모습.

  위에서 언급한 너무나도 대중적이고 유명한(?!)농담에서 보여지듯이, 그만큼 한국의 수 많은 남성들이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에게 끌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전지현이나 손예진같은 연예인들이 그토록 인기를 구가한 것이겠지요. 이렇게 한국 남성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해서 가히 절대 지존(?!)의 헤어 스타일로 각광받는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를 미국 남자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며, 그들도 한국 남성들처럼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잠시 나눈 적이 있어서 오늘은 그 에피소드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미국 친구들에게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다
  어느 금요일 저녁, 글쓴이와 일단의 미국 친구들은 함께 모여서 카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꽤 경과되고 지루한 기분을 느낀 친구들이 게임을 하던 테이블을 벗어나 거실에 있는 TV를 켜고 시청을 하는 이들이 하나 둘 생기는 것을 보면서, 마침 필자도 슬슬 지루함이 밀려오던 터라 분위기를 타서 자연스럽게 TV시청의 대열에 끼어 들게 되었습니다.
               갈색의 긴 생머리 헤어 스타일로 많은 미국 남성들에게 사랑받는 제니퍼 에니스톤의 모습

  당시 미국 친구들이 TV를 통하여 보고 있던 프로그램은 프렌즈라는 아주 유명한 시트콤 형식의 드라마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다가 문득 한 여자 배우에 대한 얘기가 잠시 나왔는데, 그녀가 누구였냐면 바로 제니퍼 에니스톤이라는 배우였습니다. 당시 글쓴이는 처음엔 무심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었는데,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하는 말들이 헤어 스타일에 관한 얘기와 무관하지 않다라는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미국 친구들이 말하는 제니퍼 에니스톤은 대단히 지적이고 차분하며, 고급스런 이미지로 받아 들여진답니다. 그런 그들의 평을 듣고 필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들이 하는 말이 그녀의 평소 생활도 물론 그렇지만 그녀의 스타일이 왠지 그럴 것 같다라는 느낌을 준다네요...

  하지만 글쓴이가 보기엔 제니퍼 에니스톤이란 배우는 외모로 보나 스타일로 보나 다른 헐리우드의 여자 연예인들에 비해서 너무나 평범하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더니, 미국 친구 마크가 답을 하기를 , 필자가 한 말 중에 답이 있다면서, 이것은 미국 남성 전부가 아닌 대체적인 경향이지만 자신들이 제니퍼 에니스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의 바로 그런 평범하면서도 귀족적(?!)이고 지적인 분위기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라며, 특히나 그녀가 주로 선보이는 갈색의 긴 생머리 스타일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글쓴이는 문득 한국 남성들이 갖고 있는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에 대한 남다른 선호가 떠올라서, 직접적으로 한국 남자들중 상당수는 긴 생머리 여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데 너희들도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미국 친구들의 대답이 남자들마다 취향이 각자 다르고 여성의 헤어 스타일도 종류가 워낙 많아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결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미국 남성도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네요...
  미국 남성들도 대체적으로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사진은 긴 생머리의 헤어 스타일로 지적이면서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미국 남성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기네스 펠트로, 니콜 키드먼, 그리고 리즈 위더스푼의 모습. 비록 이들이 그동안 다른 헤어 스타일을 선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았던 이미지는 긴 생머리 스타일이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듯 하다.

미국 남성들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를 보며 떠올리는 이미지는 한국 남성과는 뭔가 다르다
  그들의 이런 대답을 듣자 글쓴이는 더욱 호기심이 생겨서 질문을 이어 갔습니다. 대체적으로 미국 남성도 한국 남성들처럼 긴 생머리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녀들에게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들이 잠시 생각하고 하는 대답이 대부분 자연스러움, 무난함, 실용적(?!), 귀족적(?!) , 지성적, 고급스러움(?!) 등등의 단어를 주로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말을 들으며 글쓴이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미국 거리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미국 여성들의 헤어 스타일이 주로 단발이거나 긴 생머리 스타일이 주류라는 점이 떠올랐고 , 한국 같으면 동네마다 한 두개쯤은 반드시 있기 마련인 미용실도 이곳에서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아,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일상샐활 속에서 한국 남성들만큼 자주 접하지 못한 점도 미국 남성들이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에 대한 호감이란 화두에서 일정부분 작용하지 않았을까라는 뜬금없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어찌되었거나 참으로 흥미로운 점은, 미국 남성들도 대체적으로(!!!) 긴 생머리 헤어 스타일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사실에서, 이 스타일에 어쩌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들을 본능적으로 끌어 들이는 뭔가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한국 남성들의 답변에 흔히 등장하는 청순 가련이라든가 꿈 속의 이상형, 혹은 첫 사랑 속의 풋풋한 소녀 혹은 여성적 등등과 같은 단어는 끝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이런 부분에서도 이들과 한국인과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또한편으로는 미묘한 문화적, 정신적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는데, 여러분은 이 포스팅을 보시며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셨는지, 그리고  어떤 헤어 스타일을 지닌 여성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 하시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P.S: 혹시나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여러 문제를 제기하실 독자들을 위해 노파심 차원에서 미리 밝힙니다. 이 포스팅은 여성의 헤어 스타일에 대한 한국과 미국 남성 전체의 선호도 조사가 아닙니다. 또한 사진에서 보여지는 헤어 스타일의 세세한 설명을 하기 위한 글도 아니며 , 전체 미국 남성이나 한국 남성들이 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들에게만 호감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글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그저 단순하게(!!!) 미국 남자들도 한국 남자들 못지않게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를 상당히 좋아한다라는 사실과 함께,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이 생머리 스타일의 여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와 미국 남성들이 생머리 스타일의 여성에게서 느끼는 막연한 이미지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또 미묘하게 다른 구석이 있다라는 것을 말하는 글임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