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009. 8. 5. 01:04
  여러분들은 블로그를 가지고 계십니까? 만약 블로그를 가지고 운영하신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가요? 돈 혹은 인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흔히 말하듯이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입니까? 필자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분명히 여러가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여러분들에게 던지는 필자도 블로그를 운영한지도 벌써 3년이 넘었고 그 와중에 여러 독자들을 만났는데요. 이분들이 종종 물어보는 대표적인 질문이 바로 블로그 포스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함께 블로그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조금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시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분들의 요청에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답을 드리지 않았는데요. 그 이유는, 그동안 다음 뷰에서 블로그 운영과 포스팅에 관한 원론적 얘기들을 수도 없이 보았었고,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 보이는 마당에, 굳이 필자까지 나서서 밥 한 숟가락 더 얹는 식의 결과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필자가 블로깅을 하면서 몇몇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지켜 보자니 일말의 우려가 생겨나고, 그런 측면에서 독자들에게도 일정부분 필자만의 블로그 포스팅 노하우를 조금 공개해 드려야겠다라고 마음이 바뀌어서, 오늘은 블로그 포스팅과 관련해서 몇 자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1. 빙산의 일각 법칙을 적용해라
  필자가 가장 먼저 꼽는 블로그 포스팅 노하우는 빙산의 일각과 같은 글쓰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다음 뷰의 잘 나가는 베스트 뷰 블로거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소수의 블로거를 제외한 대다수 블로거들은 포스팅 소재 선정도 마땅치 않고, 필력도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관계로 인해 유명인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의 말이나 글 혹은 사진등을 인용하여 포스팅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바로 아래와 같은 식인데요... 
  ...황금기는 1960년대 중반을 전환점으로 종식되고 그 이후 장기불황, 즉 구조적 위기에 빠진다. 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 축적조건의 악화와 구조적 위기를 보여주는 기본 지표는 이윤율이었다. 또한, 토빈q도 경제동향과 전망의 좋은 지표가 되었다. 이윤율과 토빈q 지표 모두 1965년에 정점에 달했다가 이후 80년대 초까지 약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이것은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자가 정의하는 1960년대 미국의 스테그플레이션에 대한 일단의 설명중 일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여기서 스테그플레이션은 굳이 경제학도가 아니라도 많은 분들이 들어봐서 대충은 알고 있는 경제학적 용어나 개념이고,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에다가 한국의 IMF 외환위기를 미리 예견했었고, 현재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문제점을 비판하고 그것을 보완하고자 하는 신케인즈 학파의 대표 주자라는 사실쯤은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인데요...

  바로 이러한 대중들의 인식을 이용해서, 바로 위에 예시와 같이 전문적인 용어로 장식된 그의 글 일부를 인용하고 이윤율이나 토빈q에 관련된 도표나 그래프를 몇 개 제시한 뒤, 포스팅 말미에 가서 스테그플레이션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몇 마디 거론하며 마치 자신이 이런 얘기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식의 결론(?!)을 내며, 자신의 포스팅에 일종의 권위를 부여하는 행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포스팅은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현혹시킬지 몰라도 이 분야에 관심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 특히나 IMF 외환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고자 이 방면에 능력있는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외환위기를 예견한 폴 크루그먼같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치밀하게 분석했었던 필자같은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웃음거리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필자가 위의 예시를 다음 뷰에 포스팅한다면, 폴 크루그먼의 스테그플레이션에 대한 일단의 설명은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기업의 이윤율이 전반적으로 크게 하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유로는 흔히 강성 노조의 임금상승 압력에 의한 것으로 풀이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니, 상대적으로 임금 상승률이 낮았고 노동력 공급도 원활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윤율 하락의 최대 원인은 단순하게 노조의 임금상승 압박보다는 생산성 상승률, 다시 말해서 미국 경제의 축적조건이 전반적으로 둔화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합니다. 또한 당시 미국내 기업 환경 전반이 크게 바뀜으로써, 세계 2차 대전이후 미국 기업의 롤 모델이었던 소위 포드주의적 노동체제의 효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할 것인데, 그러려면 기업 환경과 이윤 기대를 나타내는 토빈q를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필자가 처음 예시를 들었던 폴 크루그먼의 스테그플레이션에 대한 일단의 경제학적 정의를 좀더 알기쉽게 풀려고 하니까 글이 원문보다 두 배 이상 길어지고 사뭇 장황해지지요?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을 길게 풀기 때문에, 경제를 잘 모르는 혹자는 필자의 포스팅이 정말 수준이 없고 글의 전개가  매우 산만하다라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알기 쉽고 전문 용어를 가급적 배제한 체, 글을 길게 풀어야만 경제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고, 또한 토빈q 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도 어느정도 유발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런 측면에서, 흔히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음 뷰의 독자들은 워낙에 수준이 낮아서 소위 연애, 연예 블로거나 가쉽성 기사들이 베스트 뉴스 목록에 주로 오르고, 진짜 실력있는 블로거들의 글은 묻힌다고요...그리고 다음 뷰 편집진이 무슨 여론 조작을 한다느니 편파적이라느니, 열린 편집자들이 문제라느니 하는 진짜 대책없는 비난과 개념없는 뻘소리들을 아주 태연하게 지껄이게 되는 것인데요...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건 그야말로 넌센스 중에 넌센스입니다. 정말로 실력이 있는 블로거는 자신이 가진 전문 지식을 최대한 쉽게 풀어서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필력의 블로거이지, 독자들이 알아볼 수 없는 전문 용어들로 범벅이 된 포스팅을 작성하는 이들이나, 무턱대고 위명이 쟁쟁한 관련 연구소나 기관 혹은 전문가들의 말이나 칼럼 서적의 내용등을 그대로 인용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주관적 신념이나 허접하기 짝이 없는 지식에다가 가당치도 않은 권위를 부여하려는 소위 신세한탄형 내지는 인신공격형 막장 블로거가 아닙니다.

  그리고, 글을 쉽게 풀어서 쓰게 되면 해당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지만,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경제를 잘 아는 어떤 이가,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자의 이름조차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풀어놓은 일단의 설명을 읽게 되면, 그것을 작성한 필자의 수준을 한번쯤 진지하게 가늠하게 되고 이 분야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고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빙산이 자신의 모습 중 단지 10% 정도만 수면 위에 보이는 이치와도 매우 흡사합니다.

  따라서,
설명은 최대한 쉽게, 그리고 자신의 진짜 실력은 마치 빙산처럼 가급적 깊이 갈무리하는 글쓰기를 하신다면, 어느 순간 독자들의 반응을 부르게 되고 다음 뷰 베스트 목록에도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감히 확신합니다.


2. 쉬운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면 말을 하면서 동시에 포스팅을 작성하라(소제: 스토리 텔링을 하라)
  위 문단에서, 필자가 글은 최대한 쉽게, 그리고 전문적인 용어나 유명인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행위는 최대한 지양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알기 쉬운 글쓰기를 해야 한다라는 대전제에는 동의하겠는데,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 뷰에 올려진 대부분의 포스팅은 원론적인 얘기만 반복하고 있는 관계로 필자만의 노하우 하나를 살짝 가르쳐 드립니다. ^^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보면, 도대체 글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자꾸만 글이 막히는 경우가 있음을 블로그 포스팅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하셨을 겁니다. 이것은 뇌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말과 글은 뇌가 담당하거나 작동하는 부위도 사뭇 다르고 심리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말이란 대부분 상대가 자신의 눈 앞에 있고 어떤 식으로든 특수한 상황과 분위기를 타기 때문에, 대단히 역동적이고 가변적입니다.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어떻게든 자연스러운 반응이 도출되지만 글은 이와는 정반대인 관계로 글의 서두부터 전개 자체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블로그 포스팅을 보다 쉽게 전개하고 싶다면, 일단 글의 기본 개요를 간단하게 적은 뒤, 여러분들의 앞에 독자가 있다라고 생각하거나 가정하시고 소리를 내어 개요를 상세하게 풀어 설명을 하면서, 그 내용을 동시에 키보드로 작성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의외로 글이 쉽게 풀리고 마치 상대에게 대화를 하는듯한 문장이 도출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우울하거나 슬픔에 복받쳐 있을 때, 일부러라도 웃고 쾌활해지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정말로 그렇게 되어 버리는 행동 심리학의 묘미를 적절히 이용하는 셈이지요...^^

3. 포스팅의 목적을 명확히 하라 
  블로그 포스팅을 계속하다가 보면, 소재의 고갈도 큰 문제이지만 과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사뭇 헷갈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현상은 포스팅의 목적과 포스팅에 영향을 받을 독자층을 치밀하게 예측하지 않고,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거의 습관적으로 블로깅을 계속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한때엔 필자도 그랬었지만 대다수 블로거들은 소통이라는 단어에 너무 민감하거나 약해지곤 합니다.

  자신이 작성한 글이 의도와는 다르게 욕을 먹거나 심지어는 글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인신공격성 악플까지 받기를 원하는 블로거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감한 소재나 사회 전반 혹은 여론의 대세에 반하는 글들은 쓰지 않게 되는 것이죠...바로 빌어먹을 소통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일종의 자동적인 자기 검열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이렇게 독자들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다가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완곡한 어법으로만 일관하려다가 원래의 포스팅 취지마저 무색해지는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가령, 필자가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아주 민감한 포스팅을 작성하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왜 그런 식의 포스팅을 작성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우선 독자가 아닌 필자 자신에게 항상 던져야만 애초의 목적과 초심을 망각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에서 필자같은 경우,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됩니다. 첫 번째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정같은 과오나 실패를 진지하게 되
짚어 봄으로써, 현정부 이후에 진정 서민들을 위한 더 나은 대안과 비전을 모색하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흑백논리식 이분법과 반사심리에 찌든 네티즌들의 그릇된 집단주의와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여론을 크게 환기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민감한 소재의 글쓰기를 하려면, 반드시 아주 치밀한 사전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 참여정부 부동산 실정과 같은 극히 민감한 내용의 포스팅을 하고 싶다면, 노무현 참여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관련 정책 전반을 모두 훑어보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여당인 열린우리당, 그리고 재경부, 건설교통부 관료들간의 관계같은 정치 행정적 상황, 그리고 국내외적인 경기 동향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원칙을 지키려면, 자연스럽게 노무현 참여정부 부동산 실정에 대한 비판 의견이나 반대로 노무현을 비호하는 세력들의 주장이나 논리를 모두 조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난 후에, 이런 정보들을 종합하여 필자 자신이 가진 포스팅의 목적을 살리고 독자들(노무현 지지자, 반대자 모두)의 반향을 불러 일으킬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4. 독자들의 반응을 치밀하게 예측해 보고, 악플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라
  그러면, 십중팔구 필자의 예상대로 노무현 지지자란 분들 중에서도 상당히 과격한(?!) 성향을 가진 분들이 악플을 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역시 필자가 예상한 범위와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존의 주장을 다시 반복하는 수준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필자가 작성한 포스팅의 제목이나 문구 한 구절을 문제 삼아서 전체 포스팅을 부정하거나, 자신들은 온갖 욕과 할말을 다하면서도 필자의 맞대응을 문제 삼으며 인신공격을 하거나, 비록 욕이나 인신공격은 아닐지라도 이미 포스팅에서 언급한 내용을 계속 반복시키는 식의 댓글은 그저 악플일뿐이지 절대로 포스팅을 보완하거나 객관적인 견해의 반대 의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필자가 이미 기존의 비호 세력들의 주장과 반대 세력들의 의견, 논리등
을 모두 살피고 글을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기존의 얘기들을 댓글을 통해서 반복한다는 것은 무슨 소통이나 의견 교환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필자의 비판적 논리를 무조건 부정하고 소모적인 말싸움을 걸겠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경우, 소통이라는 이름은 한낱 구호나 사치에 불과하기에, 그런 것에 너무 연연하다가 보면 포스팅 작성자의 스트레스만 쌓이게 되니까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악플에는 강력하게 맞대응을 하시거나 과감하게 삭제 차단조치하시길 권합니다. 

  설혹 여러분들이 그렇게 조치를 해도 포스팅의 내용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관계와 크게 어긋나면서도 다른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고 판단이 되면, 곧이 포스팅을 봐 달라고 애원하거나 부탁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계속와서 포스팅을 보니까요. 물론 되지도 않는 낚시질에 걸렸다고 항상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필자의 포스팅을 극구 부정하고 폄하하는 실정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조금 도움이 되셨나요?...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행위...특히나 공개적인 포스팅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뚜렷한 목적 의식과 꾸준한 성실함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또한 블로그 글쓰기임을 필자는 매순간 절감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실력을 끊임없이 갈고 닦으며 그것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끔 최대한 풀어 쓰려는 부단한 노력 속에서, 또다시 자신의 지식을 더욱 탄탄하며 확고하게 만들 수 있을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반응 속에서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심도있게 점검할 수 있는 블로그 포스팅만의 개성과 장점을 오늘 여러분들도 한번 멋지게 활용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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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궁극의 마약이다  (26) 2009.06.20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성매매 여성을 주변에서 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여성을 보셨다면, 어떤 생각들을 떠올리십니까? 대부분의 남성이라면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한번쯤 훔쳐 볼 것이고, 여성분들이시라면 자못 눈쌀을 찌푸리거나 혐오스런 마음으로 해당 성매매 여성들을 넌지시 바라 보시겠지요? 

  필자도 남성인 관계로 그런 여성분들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이나 가슴, 몸매의 굴곡에 시선이 가서 꽂히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관념상으로나 머릿 속으로는 필자와 같은 혈기왕성한 남성들의 성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여성의 성까지도 철저하게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렇게 무섭구나라고 생각하며 절치부심하곤 합니다.

 
 프롤로그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금도 경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분들은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에 부차적인 것이거나, 사회 구성원들이 원한다
면(?!) 언제든지 바꾸거나 선택 혹은 통제할 수 있는 체제, 이념 정도로 간단하게 치부하거나 생각하시겠지만, 필자는 그런 식의 어설프고 순진하며 이상에 찬 이분법적 견해와 단순 무식한 사고 체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한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든 혹은 그것과는 다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를 지녔던간에, 그 곳에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일단 침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매우 흡사하게 변해 버리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성매매 여성들이 아닐까 싶어서, 오늘은 영화 인터걸을 통해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진단하고, 결론 부분에서 필자가 하고픈 얘기들을 조목조목 소개하면서 이 포스팅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인터걸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구소련 개혁파들에 대한 강렬한 의문이 생기다
  여러분들은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지금의 러시아에서 공공연히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구소련의 후신격인 국가입니다. 구소련은 한때 자본주의 체제의 본산인 미국과 일대 자웅을 겨루었던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지닌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지요.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소위 시장의 원리보다는 공공재의 개념과 국가의 역할이나 기능이 매우 강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사익 추구나 각 집단간의 사적 이해 관계보다는 국가 혹은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도록 규정하고, 그런 이념과 사상을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통하여 끊임없이 주입시켰으며, 국가 경제는 철저하게 계획 경제의 개념으로 움직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렇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시킨 사람들의 노동 의욕은 갈수록 떨어져만 갔고 방만해진 정부 내 관료들의 무사안일함과 부정 부패는 극에 달했으며,  사회 전반에 대단히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사고가 넘쳐 흐르다 보니까, 점차 구소련 사회 전체가 활력을 크게 잃어 버리면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경제적 여력마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여러 군소국가들을 지원하기는 커녕, 중앙 정부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참담한 실정에까지 이르렀으며, 바로 이것이 구소련의 경제적인 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하려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낳은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와중에 나온 영화가 인터걸이었는데요. 필자가 짐작하기엔 아마도 지금 한국의 10대와 20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잠시, 인터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인터걸 개봉당시 고르바초프를 위시한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이 영화를 보며 " 인터걸이야말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정한 산물 " 이라고 찬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강렬한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세계 초강대국 소련의 최고 권력자와 개혁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행하던 구소련의 최고 엘리트인 개혁파 세력들이, 당시 구소련의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기로서니, 고작 성매매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보고서, 그토록 극찬을 하고 구소련 내에서만 영화 관램객이 무려 4천만명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의문은 당시 어린 나이의 필자가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경제적 지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졌음을 훗날 깨달았는데요. 
필자가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로써 훗날 깨달은 고르바쵸프를 위시한 구소련 개혁파 세력들의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소련은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익 추구를 금기시하다 보니 사회가 점차 극단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은 필연이었겠지요. 자연히 유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잔재해서 성문제에 관한한 제대로 된 공론조차 나오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 구소련도 성과 성담론을 극단적으로 터부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당시 구소련에서는 지금의 러시아에서와 같은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는 존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폐쇄적이고 경직된 체제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로 인해 소위 시장 개방의 물결이 구소련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성적인 측면도 활짝 열리게 되면서 인터걸이라는 존재가 생겨났고, 이것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당시 소련인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것인데요..

  ...문제는, 당시 고르바초프나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그저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려는 자본주의 체제보다는 인간적인 가치와 사회 공동체적 이상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100%로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생각이 영화 인터걸의 주인공인 타냐가 경제적 안정을 원해서 스웨덴으로 가지만,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시 소련으로 돌아간다라는 기본 줄거리에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 배경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이미 알다시피, 고르바초프와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이 확신에 차서 추진하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로 대변되던 시장 개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 증명이 결코 아니었으며구소련 체제내에 시장 개방의 물결이 가속화될수록 급격하게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제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로써만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소련의 붕괴와 몰락을 외신을 통해 바라보면서 소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함께, 그로 인한 필연적인 역사적 종말을 갈망하였던 필자나 그 밖의 많은 운동권 선후배들은 커다란 충격과 방향 상실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필자도 그랬었지만, 한국 사회내의 수 많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가들은 소위 물질 만능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도로 경멸하였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소련 붕괴 당시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선뜻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인정과 자기 반성, 그리고 성찰과 학습의 깊이가 점차 심화되고,  대학 졸업후 사회에 진출하여 정말로 돈 많고 능력이 있으며 똑똑한 이들을 많이 알고 사귀게 되면서, 그리고 사회와 회사를 통해서 이론이 아닌 실무적인 경험들이 하나 둘씩 쌓여 가면서, 또한 간간히 외국 출장등을 통해 현지 실정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20대 초반 무렵의 필자가 거의 신앙처럼 믿고 간직하였었던 무슨 가치와 사실의 구분같은 이분법적인 생각이나 민주주의적 가치 추구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거나 혹은 그것을 추동하고 바꾸는 근본적인 힘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인데, 이제 그 성찰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에필로그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개혁파 세력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일부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공산주의 체제에 들어와도 사회 구성원들의 투철한 공동체적 의식과 가치,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수십년간 다듬어진 사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질서와 통제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까지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는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서 사회 전반에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외려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동안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극도의 불신 회의와 함께, 중앙 정부에 대한 주변 복속 국가들의 반발까지 겹쳐지면서, 당시 구소련 사회 전체에 위기감을 크게 증폭시켰으며, 

  이런 급격한 사회 혼란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우려하고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쿠데타를 부르게 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더더욱 구소련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급격하게 상실시킴으로써, 결국엔 구소련 공산주의 체제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소련의괴와 몰락으로써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그저 소설이나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만 치부되고 마는 상황이 온 것이지요.

  그 반면에 자본주의 체제는 어떨까요...자본주의 체제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분명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었는데요. 과거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든 심각한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 대공황이라는 사태였죠.

  당시 자본주의는 정말로
생존 자체가 의심될만큼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소위 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었던 시장의 원리와 합리적 인간의 경제동이나 선택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철저한 허구였음이 만천하에 증명된 역사적 사건이 바로 대공황이었는데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대공황 당시 자본주의 체제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그랬듯이,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과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을 일부 받아들여,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복지와 공공재의 성격을 크게 강화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형태로 일대 변신을 꾀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입니. 한마디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자 그 모습이 크게 변형되거나 무너졌었는데, 자본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오히려 더욱 강고한 체제로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구소련
의 공산주의 체제는 전제 군주에 맞서 일어선 농민과 노동자들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서 세상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사상과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서 비롯되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의 익성과 공공재, 그리고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과 만인의 평등을 열렬하게 추구하고 꿈꾸었었던 희대의 천재들이자 철두철미한 상가이며 행동가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와 이상, 천재들 나름의 투철한 개인적 실천, 그리고 세뇌 수준에 가까운 사상 이념 교육들은 정작 현실에서 대다수 평범한 인간들의 기본적인 성향과 본능과는 그리 맞지 않았었던 겁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기심과 탐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공공재와 공익성, 인간적인 가치를 아무리 강조하고 주장해도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으며, 바로 구소련처럼 종국에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상실하고 무너지게 되었던 겁니다.

  따라서,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적절하게
사람들의 기본 욕구도 채워 주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는 강력한 배경이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고, 개인만의생활과 사익 추구를 터부시하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또한 그것을 통해서 자본의 논리를 또다시 강화시키고 그 범위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는 완벽에 가까운 피드백 시스템을 갖춘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특정 사회 내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과 행태는 세계 어디든지 비슷하게 변하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아닌가라는 말입니다.

  필자가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을 다룬 자료 몇 가지를 세세히 살펴보니, 지금의 러시아 젊은이들은 구소련의 기억들이 거의 없으나 바로 위에 부모 세대들은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이것이 급격한 시장 개방과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또 하나의 세대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사회적 요인이 되고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과거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며, 개인의 행복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한결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니, 이거 한번 깊이 생각할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바로 이측면에서 이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한 영역에서 사회의 공익성과 공공재의 개념을 추구하고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는 과연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통제하거나 제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것이 인간의 기본 본성이나 욕구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일까요?...

  산업 혁명이 발발하고 시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사회 집단이 역사에 출현하며 자본주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과거부터 지금 현재까지, 세계 유수의 모든 경제학자들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상하는 정치가와 시민 사회 모두가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한 그 근저에 도사린 본질적인 난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각 한국사회 내에서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위 미디어 법 문제도 결국 이것과 동일한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의 본능이라는 영역까지도 침투하고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단지 민주주의적 가치와 공공재라는 막연한 구호와 이념만으로써,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이나 절충 혹은 타협 없이도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취사선택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문제냐는 말입니다.


  필자는 구소련의 영화 인터걸과 그것의 실제 연장판격인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동안의 끊임없는 학습과 사회 경험등을 모두 종합해 볼 때, 자꾸만 회의적인 결론이 도출되며, 이런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일개인이나 어떤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막거나 거스를 수 없다라 일종의 무기력과 절망감,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진실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심각한 우려와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 오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좀더 생각해 볼 문제
  대공황 당시의 자본주의는 소위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시장의 원리를 맹신하였고 합리적 인간의 선택과 경제적 행위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다가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 공산주의 이념을 일부 채택하여,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말하는 복지 국가와 사회 공공재의 개념이 탄생한 것인데요.

  문제는, 인간이란 존재가 태생적으로 이기심과 탐욕을 가져서인지 이런 역사적 교훈을 철저하게 망각하고, 또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시장의 질서만을 강조하고 공공재와 공익성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불황을 낳았다는 것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모두 동감하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과거 대공황을 극복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을 취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또다시 복지라든가 공공재의 개념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 체제나 역사가 수렴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경제 불황은 과거 대공황 때만큼의 위기는 아니기에, 모든 것을 상품화시킴으로써 결국 인간까지도 하나의 자원이나 물질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심화를 좀더 지켜 보아야만 모종의 결론이 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그런 결말이 필자나 여러분들 생전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Posted by 네 오 NEO
 요즈음 다음 뷰 시사란과 뉴스 지면을 장식하는 최고의 핫이슈는 역시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와 그에 대한 여론의 역풍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민주당은 전면 장외투쟁을 선언하는 상황이라서, 당분간 정국은 급랭 구도로 갈 것이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전부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양당 모두 문제의 본질과 국민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라고 비판한 필자가 판단하기엔,

  이번 미디어법 논란에서 보여지는 모습 또한 가히 짐 캐리가 출연했던 영화 덤 앤 더머를 능가하는 바보들의 대향연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데, 이제부터 필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1. 한나라당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이른바 보수(?!)를 표방하며 서민들보다는 부자들의 이해 관계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정당입니다. 그리고 현재 그들은 국회에서 다수 여당입니다. 따라서, 지금 국회내에서 벌어진  파행의 일차적 책임은 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게 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이나 필자나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이번에 막가파식으로 통과된 소위 미디어 법도 특정 신문사와 일부 재벌들을 위한 법이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라도 능히 짐작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은, 이들이 내세운 구호와 논리 중에 미디어 산업이 점차 융합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거대 자본이 투입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라는 말은 분명히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낸 미디어 법안은 자신들이 언급한 진실을 대변하기 보다는 특정 신문사와 일부 대기업들을 위한 조치로 비춰지는 몇 가지 독소 조항과 함께, 법안의 무리한 강행처리에서 보인 비상식적인 행위 때문에, 분명한 진실과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더더욱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2. 바로 위에서, 한나라당이 자본주의 논리를 대변한다면, 민주당은 민주주의적 가치(?!)와 국민을 내세웁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하는 주장은 역시나 여러분이나 필자도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미디어가 특정 세력에게 넘어가면 국민들의 사고나 의식은 통제되고, 결국 민주주의는 사라질 것이라며, 결사 반대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민주당이 내세운 민주주의 가치와 원칙은 지켜져야만 하고, 미디어 산업이 특정 세력에게 접수되면 국민들의 의식과 사고마저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는,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나 그 밖의 다른 나라의 몇몇 사례에서도 보여지는 일이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필자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문제는,  바로 위에 한나라당 미디어 법 관련 주장에서도 언급했었듯이, 미디어 산업은 이제 거대한 장치 기반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과 함께, 과거처럼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촬영을 하는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신속한 보도를 위한 대형 중계차부터 시작해서, 초대형 드라마 셋트장, 쇼 오락 프로그램의 현란한 무대조명과 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위성 방송과 케이블 TV, 그리고 영화와 에니메이션, 캐릭터 산업등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인 성격을 가진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디어 산업이 점차 거대화되고 융합되면, 자연히 막대한 자본이 소요될 것임은 누구라도 쉽게 예상이 가능하겠지요. 게다가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그리고 미디어도 엄연히 산업의 한 영역이니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는 무슨 민주주의에 부차적인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차원은 절대로 아닙니다.

  또한, 한국은 소위 대기업 위주의 수출지향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통신은 자본 서비스 상품이 결합되어, 국경과 문화 민족을 모두 초월해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21세기 유망 산업군중에 하나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앞에 펼쳐진 상황이 이와 같다면, 정말로 문제가 많은 특정 신문사는 아니라고 해도, 일부 대기업의 방송 참여는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불편한 진실은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법 결사 반대한다는 얘기만 할 뿐, 여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도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8개월 동안 민주당이 주구장창 한 일은, 오로지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으로 인해, 국민들의 의식이 통제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조성과,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라는 원론적 선언 이외에는 거의 없다라는 점에서, 필자의 눈에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만 철저하게 고려하고, 정작 이들이 앞세운 국민들의 입장과 현실은 전혀 생각을 못하는 진짜 기회주의자이자 바보들의 하소연처럼 비춰집니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한국 사회 내에서 힘이 있는 세력이 결국 이기는 것은 필연이겠지요.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이고, 대기업들이 경제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으며, 국회에서의 의석수를 살펴 보아도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회 의원이 다수이므로, 이번에 날치기된 미디어 법을 요행히 부결시켜도, 어차피 결과는 언젠가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귀결되겠지요...

3. 이제 네티즌과 국민들 얘기를 좀 해볼까요. 다음 뷰의 대다수 시사 블로거들과 국민들중 상당수가 이번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중이며,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십분 동감합니다.

  분명히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은 조중동과 소수 재벌들만을 위한 특혜라는 의혹를 받을만한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날치기로 통과된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은 마땅히 부결되어야만 하고, 무리한 미디어법 강행을 시도한 한나라당은 국민들앞에 진솔하고 정중하게 사과함이 마땅하며, 미디어법은 시간을 두고 다시 논의되어야 할 사항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문제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모두 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주장만 극단적으로 내세우다 보니까, 대다수 국민들은 양측의 주장 중에서 그나마 한가닥 진실이 서린 부분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분노하는 국민들의 상당수는 미디어의 미래와 거기에 얽힌 본질적 철학적 폐해보다는, 이번에 한나라당이 보인 절차적인 하자와 막가파식 행동에 포인트가 놓여 있다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들이 미디어 법에서 보인 한나라당의 태도에 대해 분노해서, 여론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퇴보를 부르짖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십분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춘다면, 이는 작년의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와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작년 촛불집회 때에도 필자가 여러차례 비판했듯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잘못되었다라는 한 가지 사실에만 너무 집중하고 흥분하게 되면,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부터 진행된 쇠고기 위생 검역 단계의 파격적인 대폭 축소와 함께, 검역상의 문제로 일찌감치 반송이 되었어야 할 미국산 쇠고기가 이미 항구의 창고 속에 쌓인 체, 시중에 풀릴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당시의 정황 전반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돌아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왜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졸속으로 수입이 될 수 밖에 없었으며, 여러분들의 식탁을 크게 위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들과 체제적 모순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지요.


  또한,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대등하게 협상을 한다는 것은 그저 이상과 원칙적인 얘기일뿐이고,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여건과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게 무조건 재협상을 요구함으로써, 소모적인 논쟁과 국론 분열,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 그리고 결국 남은 것은 안전이 의심스럽고 왠지 꺼림찍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뿐이었지 않습니까...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미디어 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정작 헌재에서 미디어법 부결이 되더라도, 미디어 산업 전반에 산재한 문제점과 앞으로의 활로에 대해서는 다들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특정세력 편들기가 이미 도를 넘은지 오래이고,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은 그에 대한 반대 입장 표명 이외에는 치밀한 반대 논리나 대안을 세울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미디어 산업 전반에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릴 마음은 더더욱 없으며, 그런 와중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지 못해서 판단의 근거가 미약한 일반 국민들은 그나마 허상만 남은 한가닥 민주주의적 가치를 다시 세우겠다고 헛되이 분노하는 모습이... 

  바로 지금의 미디어 법 논란의 실체이며, 이는 짐 캐리 주연의 영화 덤 앤 더머를 가뿐히 능가하고도 남는 소위 바보들의 삼위일체적 합창이며, 마지막에 가서 남는 건 아무 것도 없는 사회 총체적인 자멸 시나리오이자 최고의 리얼 막장 코미디인 셈입니다...

P.S: 
  필자를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시킨 미디어 법 찬성론자로 단정하고, 계속해서 노골적인 인신 공격을 하고 있는 모 블로거가 급기야 필자의 미디어 법 논리를 강간범에 비유하는 포스팅을 올린 것을 어제 우연히 목격했습니다.

 
  우선, 필자는 해당 블로거가 이미 정도를 넘어선 인신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해당 블로거의 포스팅 말미나 포스팅 제목, 그리고 글 중간마다 필자의 필명이 거듭 거론되고 링크가 되어 있으며, 또다른 한편으로 치밀하고 빈틈없는 논리적 반박보다는, 필자가 써 놓은 포스팅 구절의 일부만을 문제삼고 비틀어 왜곡하는 식으로 전체 논지를 호도하는 행태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음에, 사뭇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특히나, 지난번의 친일파 논리도 모자라서 이제 성폭행이라는 좀더 순화된 단어를 놓아두고, 굳이 강간범이라는 아주 자극적인 단어를 포스팅 제목에 넣어가면서까지 필자의 주장과 논리를 심히 왜곡하고, 또다시 조중동식 물타기를 시도하는 해당 블로거를 지켜 보면서, 이제는 안타까움과 측은함을 넘어 혐오감이 밀려오는데, 이는 마치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회피하고픈 그런 심정이랄까요...그리고 자연히 이런 인간 말종들은 아이피를 차단하고 필자의 방에서 내쫓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수순이었다는 필자의 확신에 한층 힘을 실어줍니다.

  ...하긴 모 블로거나 노무현 참여정부 부동산 실정을 미화하려던 사람들 입장에서야, 오죽 필자의 논리가 불편하고 반박이 어려우면 저토록 막가는 포스팅과 자극적인 제목으로 그저 평범한 블로거일뿐인 필자를 계속 인신공격하면서까지, 자꾸만 억지를 쓸까라는 생각도 일면 들기는 합니다만, 
  
  어쨌거나, 지극히 저속하고 유치한 논리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여기에 대해 제대로 된 논리적 반박을 하겠습니다.

   우선  블로거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대세이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한다는 필자의 논리(?!)는 마치 성폭행범을 막을 수 없으니까, 해당 피해 여성은 그냥 성폭행을 즐기면서 당하라가 아니냐는 지극히 이분법적이고 저절로 눈쌀이 찌푸려질 인신공격을 거듭하면서, 미디어 법 반대자들을 비판하는 필자는 그럼 무슨 대안이 있느냐고 되려 따집니다.
 
 그러나, 대단히 애석하게도 모 블로거의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은, 필자의 논리대로라면 이렇게 되어야 맞습니다... ^^

  성폭행이라는 범죄는, 마치 자본주의와 시장 논리가 지금의 대세인 것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사회 문제중에 하나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사전 대책을 세워도 모든 성폭행 범죄를 막을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사회적 현실이지요.
 
  따라서, 이성과 현실 감각을 가진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 사회라면, 먼저 성폭행범의 행동 패턴이나 유형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사전 예방 조치를 좀더 치밀하게 강구하거나 여성들에게 개별적으로 호신술을 가르침은 물론, 가스총이나 전기 충격기같은 개인 호신용 도구를 국가가 무료로 지급하거나 착용토록 적극 권장하고, 

  또한 피해를 당한 여성이 신고시엔 즉각 출동이 가능한 경찰 시스템이나, 피해를 본 여성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서 성폭행 전담 여성 수사관을 더욱 많이 양성하며, 성폭행범에게는 단호한 법적 대응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필자가 말하는 현실적인 최선의 대안인 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확실한 사전 예방책이나 근절책은 못되는 것이며, 바로 이게 현실이라는 여건이 갖는 딜레마이자 일종의 극복할 수 없는 한계라는 말입니다. 바로 지금 미디어가 처한 현실과 자본의 잠식이라는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는 얘기이지요.
 
  거듭 말하지만, 필자는 모 블로거가 거짓과 왜곡 선동으로 계속 주장하듯이, 무슨 성폭행범이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니까 피해 여성은 그대로 당하면서 즐겨라라고 하는 식의 막가파 논리을 편 적이 없습니다. ^^ 

  그리고, 이렇게 필자가 다시 제대로 된 논리적 반박을 하였으니, 해당 블로거는 더욱 자극적인 소재로써 필자를 인신공격하려고 할텐데, 한번 필자가 모 블로거의 포스팅 제목을 넌지시 예측해 볼까요? 아마도 모 블로거에게 남은 가장 자극적인 인신공격 소재는 무슨 연쇄 살인범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요즘 한국 사회는 무슨 막장 드라마, 막장 개그라는 식으로 소위 막장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인 모양인데, 블로거도 막장 블로거들이 있다는 사실을 필자는 요즘 들어 거듭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마지막으로 필자가 해당 막장 블로거에게 정중하게 충고하노니, 막가는 것도 어느 정도껏 하시고 이제 그만 자제하시길 바랍니다!  민주주의와 국민을 생각하고 올바른 사회적 공론을 논해야 할 다음 뷰 시사란에서 읽어 보기엔, 당신의 무슨 강간범 운운하는 눈쌀 찌푸릴 포스팅 제목과 일개 블로거중 한 명인 필자에 대한 노골적인 인신공격들은 이제 더는 지켜 보기가 참으로 안쓰럽고 매우 추해 보입니다! 

  그리고, 적반하장식으로 미디어 법의 대안이 있느냐고 자꾸 되묻는데, 그동안 작성된 필자의 비판 포스팅 속에 대안의 방향성이 고스란히 나와 있지 않았습니까? 해당 블로거는 영어도 아닌 한글도 제대로 해석을 못합니까? 또한 필자가 없는 사실을 꾸며서 본질을 호도했었나요?
  
  ...그래도 모르겠다고 억지를 쓰는 이들에게 간단히 설명하자면 필자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니, 한나라당의 주장 중에서 일리가 있는 부분과 민주당과 여러분들의 주장중 진실이 담긴 부분들을 서로 허심탄회하게 인정할 것은 과감히 인정하고 대화와 합의로써 타협 절충하면, 그나마 작금의 미디어 현실을 반영한 최선의 대안이 도출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내용을 담은 비판이 그토록 이해가 안되고 받아 들이기가 어려운가요? 설령 한나라당이 정 맛(?!)이 가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파괴하고 국민을 우습게 여겨 대화를 한사코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소위 서민과 국민들을 위한다는(?!) 민주당과 여러분들만은 이런 식의 생각과 논의를 지난 8개월동안 자체적으로라도 진행하고 한층 발전시켰어야 마땅하지 않았느냐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번 미디어 법 논란이 지나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다른 정치 사회적 이슈에 매몰되어 먼 훗날 진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신세가 되려고 하시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이번 미디어 법 논란 와중에 무슨 번개팅마냥 신속하게 통과되었던 은행법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함께, 이에 대한 다각도의 심도있는 문제제기와 비판, 그리고 사회적인 공론화가 반드시 뒤따라야만 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하지만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지금 이 시간까지 이것이 전혀 되지 않는 여러분들과 민주당의 진정성 없고 무사안이한 태도와 함께, 모두가 미디어 산업의 현실과 미래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 혹은 무시하고, 한낱 구호로써만 머무는 국민들의 입장과 민주주의적 가치를 부르짖는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인 논리와 사고가, 

  이역만리 머나먼 미국 땅에서 한국 사회를 지켜보는 평범한 블로거중 한 명인 필자로 하여금, 소위 미운 자식에게는 떡 하나 더 주고 이쁜 자식에게는 회초리를 한번 더 드는 심정의 비판을 하게끔 만드는 근본 원인임을 이제는 제발 좀 깨닫기를 부탁 드리면서,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치렵니다...

                                    ※사진 출처: http://www.newline.com/properties/dumbanddumberer.html

 

P.S 2 :
  분명히 말하는데, 계속 같은 말을 하거나 포스팅 문구의 말꼬리를 잡고 깐죽거리는 인간들은 삭제 차단 조치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잘 알면 본인들이 직접 글 써서 다음 뷰에 올리시고, 나는 이래서 미디어 법 반대를 한다라고 분명하게 말하시길 바랍니다.

  필자는 그 누구에게도 생각을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았고, 단지 의견을 하나 더 보탠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여기 들어와서 필자를 인신 모독하고, 마치 미디어 법 찬성론자를 대하는 양 비꼬거나 따지지 말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필자의 반발심만 키울뿐임을 다들 명심하세요!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이나 투명인간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 투명인간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았다면, 그 영화의 제목이나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무엇입니까? 필자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이번에도 답은 여러가지로 나오겠지요... 여러분들은 어떤 답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투명인간 소재의 영화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폴 베호벤 감독의 할로우 맨입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영감과 생각을 얻었었는데요. 필자가 최근에 작성한 노무현 미화에 대한 비판 포스팅과 미디어 법 반대자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 글이 몹시 거슬렸었는지, 상당수의 악플러들이 마치 스토커마냥 필자를 따라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필자가 그들의 행태를 가만히 살펴보니, 영화 할로우 맨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오늘은 그래서, 영화 할로우 맨을 통해 악플러들의 행태를 한번 정의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영화 할로우 맨의 줄거리를 대충 요약하자면... 

 
  ...그럼 이제부터 악플러들의 행태를 하나하나 짚어 본 뒤, 결론 부분에서 영화 할로우 맨의 줄거리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필자가 수 많은 악플러들을 상대해 보니까,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몇 가지 있었는데, 대표적인 습성이 극단적인 이분법과 선악 구도에 대단히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가령 예를 들어서 필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일단의 극렬 노무현 지지자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필자의 의도가 소위 대책없는 조중동식 노무현 죽이기가 아니라, 근거없는 사실들과 감정 이미지 조작등을 통해서, 노무현을 미화하려는 것을 비판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 것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미화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필자의 비판은 곧 노무현 죽이기이고, 그것은 바로 조중동 혹은 한나라당과 동급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그들에게 필자가 아무리 노무현 비판의 진정한 의도를 자세히 설명해도 결과는 항상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원하는 해답은 오직 하나, 노무현이 다 잘했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항상 나쁘다라는 대답 이외에는 결코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필자가 쓰는 포스팅은 모두 쓰레기 내지는 다른 이가 읽어서는 안되는 진짜 요주의 글이 되고 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요.

논점의 왜곡
  대표적인 무리수를 거론하자면, 필자가 이런 극단적 이분법에 사로잡힌 악플러들의 댓글을 삭제하고 아이피를 차단해서 필자의 포스팅 댓글란을 자기들 마음대로 어지럽히기가 힘드니까, 포스팅 속의 한 부분만을 유난히 강조하거나, 문구 하나만을 트집 잡아서 전체를 부정하는 방식의 반박 포스팅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건 이른바 악플러의 진화라고나 할까요...^^

  예를 들자면,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폭등은 크나큰 과오이며 최대 실책이라는 기본 사실을 부정하고 노무현이 굉장히 선방(?!)을 했다고 미화하려는 노무현 지지자가 있었습니다. 필자가 해당 노무현 지지자에게,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실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정은 분명한 과거 사실이었다라고 강력하게 비판을 가니다.

  그러면, 이성을 가진 사람답게 겸
허하게 과거 사실들을 인정해야 기본 원칙이겠지만, 극단적인 이분법에 사로잡힌 이 노무현 지지자에게는 그게 안됩니다.


  그는 필자의 포스팅을 한사코 부정하기 위해서, 필자가 제시했었던 자료가 모두 엉터리이고 짜집기라는 식의 근거없는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필자와 나누었던 방명록의 비밀 댓글이나 댓글상 공방에서 보여지던 필자의 비아냥 섞인 댓글(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이 폭등해서 빈부격차를 더욱 늘렸다는 엄연한 사실 관계마저 왜곡하려는 모습에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그럼 당신이 제시한 자료의 출처인 일본의 모 연구소는 위치가 어디냐는 식의 비웃음을 말함!)의 일부 구절만을 편집하고 짜집기해서 계속 퍼뜨리며, 필자의 논리 자체를 무력화시키려고 했습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위의 사례만이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미디어 법 반대자들의 행태를 필자가 강하게 비판하자, 어떤 미디어 법 반대론자가 필자에게 나름 반박을 시도했는데, 그 반박 내용이란 것이 필자는 자본주의의 예찬론자이며, 자본주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니까 그냥 따라서 가자라고 필자가 동을 했다면서, 성토를 하고 거기에 대해서 상당한 이들이 공감을 표시했었데요.

  문제는, 필자는 자본주의가 대세이고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 가자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려면 보다 정교한 반대 논리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취지의 비판을 가한 것인데, 해당 블로거는 계속해서 필자의 이런 논리와 포스팅 내용을 왜곡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해당 블로거는 필자의 논리를 친일파의 논리라고 단정하면서, 과거 친일파가 독립 운동을 하던 이에게 일본의 한국 점령은 대세이니까 그걸 따르라고 주장하던 모습과, 지금 필자가 자본주의 흐름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니이까 미디어 법 반대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어처구니없는 반박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말 재미있는 것은 필자의 논리대로만 가자면, 친일파 논리는 이렇게 되어야 얘기가 맞습니다... 

  친일파들이 일본의 한국 점령은 대세라고 말하면, 지금 미디어 법 반대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그냥 일본 침략 반대만 외치면서 독립 운동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고, 필자는 일본의 한국 침략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니 그들의 한국 점령을 일단은 지켜보되, 그들에게 맞설 무기라든가 치밀한 전술전략을 다시 수립해서 국가를 되찾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게 해당 블로거에게는 미디어 법 반대자를 비판하면 미디어 법 찬성이 되고 자본주의 흐름에 무조건 굴복하자라고 하는 식의 이분법적 기가 된다는 것이죠...


자신은 주인이고 필자는 하인이라는 식의 자기중심적이고 과대망상적인 행태
  또한 악플러들의 특징은 자신들은 온갖 욕과 근거없는 비방이나 인신공격을 가하면서도 필자에게는 수시로 예의를 주문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웃기는 얘기이지요.

  필자가 포스팅을 작성했고 그 포스팅이 올라온 블로그는 필자의 방인데, 거기에 불쑥 찾아 온 방문객이 대뜸 반말이나 욕을 하면서 포스팅을 부정한다면, 이것은 결국 방문자는 왕이고 포스팅을 작성한 필자는 그저 자신들에게 굽신거리고 원하는 답을 해주는 하인이나 서비스 맨이라고 생각한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이제 슬슬 영화 할로우 맨의 스토리로 악플러들의 행태에 대한 결론을 내 보려고 합니다.
  투명인간이 된 세바스찬 카인은 점점 독단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자신의 특수한 능력에 심취해서, 마침내 자신이 절대선이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악이고 없어져야 할 존재쯤으로 규정을 하는데, 악플러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오프 라인상의 투명인간 세바스찬이 그런 것처럼,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을 무기로 자유롭게 어디든지 돌아다니면서, 자신들이 가진 생각과 다른 사고나 가치관을 지닌 이들을 공격하거나 입을 막으려고 시도하지요...

  오프 라인상에서라면, 감히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의 집에 방문하면서 대뜸 욕을 할 수는 없겠으나 사이버 공간이라는 특수성과 얼굴이나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소위 투명 인간의 속성인 익명성 때문에, 어느 순간 자유가 지나쳐 방종이 되면서 자신들이 왕이고 주인이라는 과대망상적 생각으로 발전하였고, 그래서 자신들은 멋대로 지껄이면서도 전혀 자기 반성이나 죄의식이 없으며, 자신들의 마음에 안드는 포스팅을 작성한 필자에게만 예의를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강점인 익명성을 무기로 지껄이는 온갖 억측과 악플에 대해서 누군가가 비판하거나 성토를 하면, 그 사람에게 집단으로 몰려가서 어떻게든 공격을 해서 결국 입을 다물게 만들고, 그것을 즐기는 가학적이고 악마적인 모습을 아무 스스럼없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영화 할로우 맨에서, 카인의 독단과 전횡을 우려한 린다가 국방성 위원에게 보고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듯이, 이런 악플러들의 모습이 너무 지나치고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갈수록 늘면서, 급기야는 인터넷 실명제를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하게 되자,

  투명인간 세바스찬이 그랬듯이, 표현의 자유라는 구호 속에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고, 인터넷 실명제를 주장하는 이들을 마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수구꼴통쯤으로 규정하면서 또다시 공격을 가함으로써, 결국 영화에서처럼 익명성을 무기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자신의 존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표현의 자유까지도 점차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악플러들과 영화 할로우 맨 사이에 공통점이 상당히 많지요? 

  필자는 영화 할로우 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결국 인간의 도덕이란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타인이 보지 않는 영역에서는 도덕이 설 공간은 점점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 때문에, 남들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온갖 범죄가 생기는 것이며, 이는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악플러들의 기본 속성과 익명성의 상관 관계야말로 인터넷 실명제를 찬성할 수 밖에 없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Columbia Picture

   

Posted by 네 오 NEO

  요즈음 다음 뷰의 문화 연예 카테고리에는 가수 비의 헐리우드 진출작인 영화 닌자 어쎄신에 관한 포스팅들이 간간히 보입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시겠지만, 닌자 어쎄씬은 영화 매트릭스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위쇼스키 형제의 작품이지요. 과거 매트릭스를 통해서 보여 준 그들의 경이로운 창조적 능력은 영화 닌자 어쌔씬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한데요.

  오늘은 그래서, 지금 다음 뷰 시사란을 장식하는 핫 이슈인 미디어 법 반대와 관련해서 자본주의의 실체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결론 부분을 영화 매트릭스의 줄거리로 한번 풀어 보려고 합니다.

  영화 매트릭스를 대부분 보셨다고 짐작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우선 매트릭스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필자를 둘러싼 현실과 영화의 내용을 비교하며 여러가지 측면에서 깊이 탄복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한국 사회를 선도하고 지배하는 세력이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니까 국민들이 주인이고,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사회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답을 하시겠지요...

  아주 오래전부터, 필자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앤더슨(네오)처럼 세상의 주인은 국민들이다라는 명제가 과연 맞는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를 해서 일종의 통찰을 얻었는데, 필자가 가진 통찰적 결론과 거의 동일한 해답을 아주 명확하게 제공한 유명 인사가 한분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냐면, 다름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는데요... 

  분명히 원칙상으로나 가치상으로는 국민이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들에게서 나오는데, 왜 이런 일들이 공공연벌어졌을까요...

 
또한, 작년 쇠고기 촛불집회에 관련하여, 이른바 이메일 파문을 일으킨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일선 판사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소위 사법파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들이 많았었고, 3권분립의 원칙이 무너진다고 많은 이들이 비판하고 개탄했었지만, 정작 이렇게 집단 반발을 한 일선 판사라는 것들이 삼성이나 기타 재벌들의 집행 유예나 무죄 판결같이 사법적 형평성을 잃은 모습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광경을 여러분들은 한번이라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더더욱 이상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는데, 바로 이런 와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필자가 글머리에서 언급한 권력이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말을 합니다.

  국민이 주인이며, 그래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서 선출한 최고 권력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이 시각 여러분들이 필자의 신상에 대해서 온갖 억측과 허위 사실 유포와 인신공격을 하면서까지 극구 부정하는 내용...바로 국민들이 부여했다는 그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정말 말도 안되고(???!!!) 논리도 이상한(???!!!), 진짜 개념이 없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했었던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과연 민주주의가 시장...

  다시 말해서, 원론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자본주의 논리에 확실하게 우선합니까? 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가치이지만 자본주의는 그저 부차적인 것이라고 간단하게 구분할 수 있나요? 또한, 헌법으로 보장된 사유 재산권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자본주의적인 것입니까?

  필자나 여러분들의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담당하는 경제 영역이 철저하게 사유 재산권을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것이 모 블로거가 주장하듯이 간단하게 부차적인 것이라고 구분짓거나 말할 수 있는 차원의 권리나 체제일까요?

  국민이 주인이라는 국민국가의 주권 축소와 자본주의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였습니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공식 발표로는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을 축출하고 소위 민주화를 이루겠다고 하였지만, 미국이 전쟁을 하려는 진짜 목적이 이라크의 석유 때문이었으며, 당시 부시 행정부를 막후에서 지원하던 거대 석유 자본과 군수 기업체들의 의중대로 치러진 부당하고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그나마 의식이 있다라는 분들 중에서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한국이 미국의 요청으로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한다면, 그것은 한국 국민들의 진정한 찬성이나 뜻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와 여러 방면에서 교류와 수출을 해야만 돌아가는 한국 경제의 절박한 처지를 민주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인정하고, 비록 전쟁은 분명히 나쁘고 그런 부당한 전쟁에 한국군 파병을 하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한국의 젊은이들을 이라크로 보낸 것이 아니던가요?...

  그러므로, 이라크 전쟁은 한국 국민들이 원하면 할 수 있었던 차원이 아니라, 미국 부시 행정부를 앞세운 이른바 초국적인 거대 석유 자본과 군수 산업체의 철저한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치러진 전쟁이라고 보아야만 하겠지요. 그리고, 이런 참담한 현실 앞에서 무슨 가치와 사실의 구분이라는 유치한 말장난을 계속한다면 정말로 한심하고 우스운 일이 되는데, 진짜 개념없는 인간들이 다음 뷰에는 너무 많더군요...^^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분들이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이 이대로 통과되고, 그로 인해 재벌과 일부 신문사가 방송에 진출하면 국민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계속해서 필자에게 반문합니다.

  필자는 그런 미디어 법 반대론자들에게, 이미 미디어 통신 분야가 종합 산업이 되었고, 자본의 논리를 거스를만한 대안이 아직까지는 없으므로, 차라리 21세기 국가 성장 잠재력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지만, 진짜 논리도 이상하고 사상이 의심스러운 인물로 낙인찍히고 있는 중입니다.


  필자를 자본주의 예찬론자 혹은 한나라당 알바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권력이 이미 시장에 넘어갔다라고 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과, 이미 자본의 논리로 미디어 통신 분야가 움직인다라고 말한 필자의 판단이나 주장과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요?

  언론은 소위 제4의 권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언론은 미디어 통신 분야의 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거대 자본의 유입과 권력의 이동은 시간 문제일뿐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고, 모든 결정과 권한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정말로 그런가요?...

   그래도 여전히 그렇다고 믿는다면, 여러분들은 일종의 매트릭스에 깊이 빠져 있는 셈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의 권력과 국민의 주권은 자본에 굴복하였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도 말이 많은 한미FTA, 한 EU FTA나 NAFTA , GATT 혹은 WTO같은 기구들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혹시 아시나요?  이것은 상품, 서비스, 그리고 자본이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서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국제 기구나 사상 초유의 규모를 가진 무역 협정들의 명칭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구나 협정들은 어떤 국가나 국민들도 감히 터치할 수 없습니다.

  가령, 한국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같은 먹거리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싶어도, WTO가 무역 제재 조치를 가하면 한국 국민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계속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게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원칙에 정말로 부합하나요? 오히려 자본주의 논리에 가까워 보이지 않습니까?

   국민이 주인이라는 국가가 이런 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한 WTO의 조치에 항의하거나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습니다. 반대로 WTO는 과도한 시장 개방이나 특정 품목을 자국의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제는 수입하기 싫다고 돌발 선언을 하는 국가를 상대로 무역 제재를 언제든지 가할 수 있는데, 이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골때리는 일이 아닙니까...국민들의 뜻을 따르는 국가도 아니고 실체도 없는 무역 기구나 일개 협정이 국민 국가의 주권을 감히 제약하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주인이라는 소위 국민 국가의 주권을 제약하는 WTO의 영향력 아래로, 한층 더 들어가게끔 만드는 한미FTA 협정을 받아들이고, 필자를 비롯한 수 많은 국민들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밀고 간 인물이, 바로 지금 이 시각 민주주의의 화신인양 미화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라는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요...

  또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한미FTA 협정문 조항속에 미디어 통신 시장 개방에 대한 내용은 단 한줄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당시에 뭐라고 했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쩔 수 없는 결단을 내렸다고 강변하지 않았던가요?


  
기존의 초중고교 교육과 언론을 통해서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원칙과 상식이 여전히 통할 수 있다라고 그럴싸한 희망과 환상을 계속 심어주면서, 또다른 한편으로 현실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일들이 여러분들의 짧은 식견과 지식 이면에 공공연히 벌어진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미디어 법 날치기 사태를 살펴 보시면, 한나라당이 왜 저토록 무리수를 두었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바로 나올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자본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자본의 논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주목하고 키워 온 현대 미디어 통신 분야, 좀더 범위를 좁혀서 제4의 권력이라는 언론의 뉴스 보도 분야까지도 흡수하고 있는 중인데...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어떻게 맞서야만 할까요?  그냥 순진하게 여전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국민이 주인이니까 미디어 법만은 막아야 하고 또한 막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 만사 끝인가요? 그리고, 진짜 식상하고 진부하게 미디어를 일부 재벌이나 신문사가 소유하게 되면 국민들의 의식을 완벽히 통제당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감만 심어주며, 결사 반대만 외치면 인간의 본능까지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악마적 속성과 근원적인 체제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고 사라질까요?


  왜 여러분들은 거대 자본이 국민과 국가를 넘어선지 오래라는 현실의 심각성과 불편한 진실을 진지하게 인정하지 않습니까?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국 처절한 실패를 했으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고 서민을 위하지는 못했다라는 뼈아픈 비판을 진보 진영으로부터 받게 되었을까요?...

결론: 매트릭스를 깨는 유일한 해법은...

 
영화 매트릭스의 앤더슨(네오)은 환상에서 깨어났지만, 처음에는 기계가 지배하는 현실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려준 모피어스에게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냐고 넌지시 반문합니다. 또한 자신이 매트릭스 시스템에 외롭게 맞설 구원자 네오의 운명을 지녔다는 사실도 그리 실감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앤더슨(네오)보다 한참 먼저 진실을 깨달은 사이퍼의 배신으로 인해서, 트리니티를 제외하고 매트릭스에 저항하던 다른 동지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저항군의 지도자였던 모피어스가 매트릭스를 지키는 요원들에게 사로잡히자, 앤더슨(네오)은 트리니티와 함께 분연히 매트릭스를 수호하는 요원들에게 맞서다가 허무한 죽음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앤더슨(네오)은 매트릭스 체계를 완전히 간파하지 못했었습니다. 그가 허무하게 죽고 난 후, 트리니티는 그동안 부정하고 숨겨왔던 마음 속 진심을 드디어 인정하고 자신이 앤더슨...다시 말해서 매트릭스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구원자인 네오를 사랑한다는 것을 떳떳하게 고백하고 밝힘으로써, 비로소 죽었던 앤더슨이 부활하고 네오로 변신하면서, 매트릭스 시스템의 본질과 모순을 한눈에 간파하게 되고 요원들에게 맞설 수퍼 파워를 갖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참담한 현실...즉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현실에서 자본이 여러분들을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다라는, 정말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생각하기조차 싫은 불편한 진실부터, 매우 진솔하고 아주 각하게 인정하고 받아 들이시길 필자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 속의 네오가 깨달음을 얻은 후, 매트릭스를 지키는 요원 스미스를 처치한 방법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 안에서부터 파괴를 시도하였듯이, 러분들도 자본주의라는 매트릭스를 깨달았다면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생동안 항시 긴장하고 끊임없이 학습하며 여러분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 논리에 부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된 현실적인 대안을 내거나 고민하면서 거기에 맞서야만 하는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진실만 알고 거기에 안주하며 그래도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혹은 자본주의 체제는 민주주의에 비해서 부차적인 것이라고 마치 앵무새처럼 원론적인 얘기만을 반복하거나, 

  혹은 국민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다라고 그럴싸한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이고 자위를 하거나, 지금 이 시각까지 일부 악플러들이 필자에게 하듯이, 이
런 불편한 진실을 말하려는 이들을 극구 폄하하고 무턱대고 인신공격을 하게 되면...

 
  바로 영화 매트릭스의 배신자 사이퍼처럼, 자신에게 불편한 진실을 알려 준 모피어스를 결국 부정하고 원망하며 죽이려고 달려들게 되고, 그로 인해 소수의 깨우친 자들마저도 여러분들이 활보하는 사이버 공간에서는 입을 다물게 되면서, 결국 본질적 측면에서는 여러분들 자신이 스스로를 죽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이 세상과 여러분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라는 불편한 진실과 여러분들을 완전히 둘러싼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매트릭스의 무서움을 진실로 깊이 깨우치고 인식하지 못한다면, 결국 영화 매트릭스에서 얘기하는 건전지와 같은 신세...

  좀더 쉽게 말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이 자본주의 사회 내의 부속품 정도의 인생을 살면서도, 그래도 국민이 주인이라는 환상에 잠겨 스스로를 자위하며 하루하루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진짜로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결론 부분에서 혹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그것에 역행하는 여러 사회 운동이나 조짐들을 열거하며, 필자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메트릭스 시스템에서 생기는 일종의 사소한 버그 내지는 오류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오류나 버그가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를 다운(붕괴)시키거나 재부팅 내지는 포맷(사회주의 혁명) 수준으로 가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필자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고 판단합니다. 


  문제는,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기계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 들이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은 네오가 결국엔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것이 영화에서처럼 명확하게,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승자와 패자의 구도로 구분되지 않을 것 같다라는 불길한 판단과 예측이 필자를 매순간 힘들게 하고, 진실로 가슴 저미게 만드는 근본 원인인 것입니다... 

P.S:
  한나라당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두다 보니까, 미디어 법 날치기 통과시에 절차상 하자가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미디어 법을 둘러싼 해묵은 좌우 이념과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은 더욱더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우려하거나, 그와는 반대로 다른 한편에서는 사뭇 기대를 가지고 주목하는 중인데요..

  이 부분도 매트릭스적 시각으로 예측을 해 보자면, 진정으로 자본주의가 매트릭스라고 한다면 어차피 미디어 산업은 자본에 이미 오래전에 잠식되었기에, 지금 당장 미디어 법 통과를 서두를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연히 미디어 뉴스 보도 분야의 자본 잠식은 확고부동한 현실이 될 것이므로, 이번에는 짐짓 민주주의적으로(?!)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처럼 결론이 날 확률이 매우 큽니다.

  그리고 이래야만 일반 국민들이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스스로를 자위할 최소한의 여지를 남겨주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살펴 보자면, 이미 미디어 법 날치기 통과 와중에 은행법도 통과되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를 깨닫고 두려워하며, 그 무서움과 함께 현실적 대안을 고민하는 필자가 생각하기엔, 이것이 대다수 한국 국민들의 생활면에서 볼 때는, 오히려 미디어 법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고 자본의 집중과 심화를 한층 가중시킨다라고 판단하는데, 오로지 그 놈의 미디어 법 반대에만 집중하는 단세포적 뇌를 가진 아메바형 민주 투사들이 한국 사회에는 너무나도 많아서 공론화조차 되지 않고 있는 한심한 실정입니다.


  또한, 미디어가 자본에 종속되면,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일당 독재 체제, 영구 집권 체제가 오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주인인 매트릭스 체제가 더욱더 교묘해지면서, 때에 따라 지금의 정치권이 그러듯이, 매사 국민들의 이름을 빌려서 거대 자본이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맞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수시로 바꾸거나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민주당 그리고 미디어 법 결사 반대를 주장하는 분들 모두가, 현실에서도 그리고 다가 올 미래상도 완전히 잘못 짚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현정부 퇴진이라는 극히 협소한 정치적 동기와 목적만 가지고 있어서 은행법으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삶이야 어떻게 되든말든, 일단 미디어 법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필자는 의심을 하게 되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사진 출처: Warner Bros Picture

P.S 2: 
  필자가 미디어 법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한 가지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필자는 없는 사실을 있다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명령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는데, 마치 필자가 존재하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한 양 극도로 흥분하고, 자신들에게 명령하지 말라고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며 따지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필자는 조중동이든 노빠든 그 누구이든간에, 과거 있었던 잘못을 부정하고 미화하는 세력들은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지금같은 모습의 조중동이 방송 참여하는 것은 필자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조중동에게 방송 참여를 허용하지 않아도, 지금의 추세대로 가면 거대 자본의 미디어 잠식은 이미 시간이 정해진 문제라는 것입니다.

  공영방송은 이미 경영상 위기를 맞고 있고, 이것을 넘어서려면 지상파 방송과 영화 그리고 캐릭터 산업과 고도의 상품 마케팅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뉴 미디어를 만들지 않고서는 해결책이 없으며, 그런 식으로 융합된 통신 미디어 산업이 국가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데, 나름 기여할 것이라고 필자는 보는데요.

  자연히 여기엔 거대 자본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그 정도 돈을 대고 마케팅부터 시작해서 기획, 캐릭터 산업에 필요한 다방면의 제조 산업체, 그리고 디지털 방송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업체, 그리고 영화사 배급망까지 모두 고려하면...

  가슴 아프게도 지금 한국 내에서 소위 재벌들밖에는 그 일을 할 세력이 없어요...

  그래도 재벌은 절대로 안된다면 결국 외국의 자본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지요...

  문제는, 과연 외국 자본은 국내 정치와 국민들 사정을 봐 줄 것인가인데, 그것도 극히 의문스러우니 무조건 미디어 법 반대, 재벌들의 방송 진출 반대만 외치지 말고, 뭔가 현실적인 대안을 내면서 반대를 하자라는 말입니다.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7. 24. 05:04
  미디어 법의 절차상 하자 문제를 두고 또다시 시끄러운 한국 사회를 지켜 보면서 필자는 바로 어제, 미디어법 반대, 참을 수 없는 논리의 가벼움이라는 포스팅을 작성하였습니다. 
 
  그 포스팅의 내용인즉슨, 한나라당의 소위 날치기 통과가 문제라지만, 좀더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은 그들을 지지하는 핵심 계층을 결집시키고, 이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책을 하겠다고 하는 차원에서 일말의 진정성이라도 보이는 반면에,

  지금의 제1야당인 민주당은 지지층을 결집시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지지층을 만들만큼 이해 관계를 뚜렷하게 반영하는 실제적인 법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또한, 인터넷에서 현정부와 여당의 미디어 법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이들이 보인 논리가 사뭇 비약되고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였는데요.


  문제는, 필자의 포스팅을 본 일단의 사람들이, 해당 포스팅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현행 미디어 법을 적극 찬성하는 글이라고 여겼었는지, 급기야 모 블로거는 필자가 작성한 포스팅과 제목도 매우 유사한 반박 포스팅(미디어법 찬성, 참을 수 없는 논리의 가벼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란 것이 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고 자본주의는 필요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내용도 사뭇 진부했지만,

  더더욱 문제인 것은, 필자를 수준낮은 포스팅을 작성하는 사람인 것처럼 폄하하고, 필자의 포스팅의 내용중 일부를 크게 부풀리고 왜곡함으로써, 여전히 자신의 반대 주장을 합리화시키고 있기에, 반박을 하려는 취지에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해당 포스팅은 주장하기를, 민주당을 지지해서 미디어 법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자신들과 정치적 이해 관계가 맞기에...소위 말해서, 잠시동안 전략적인 공조를 하였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글쓴이의 포스팅 내용을 왜곡하기 시작하고 있는데요... 
  분명히 말하지만, 필자는 여러분들이 민주당을 지지해서 미디어 법을 반대한다고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강조한 것은 미디어 법을 반대하는 여러분들이나 민주당의 진정성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만약, 민주당이 지지층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조직으로써의 진정성을 가지려면, 지지 계층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는 실질적 법안을 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필자의 논조는 여러분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민주주의라는 가치 수호라든가 언론의 자유같은 진짜 초등학교 수준의 원론만을 과장 반복하면서, 미디어 법 반대를 하는 모습들은 이제는 지양하시라고 비판한 것인데,

  전혀 글귀를 해석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또다시 그 빌어먹을 흑백논리식 이분법적 사고로 필자의 포스팅을 자본주의 예찬론 내지는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 찬성 논조라고 몰아 부치면, 이건 심히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이상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
  진짜 대책이 없는 난독증 환자들 때문에 이런 얘기까지 부연하는 것도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만, 어찌되었든간에 한번 간단하게 예를 들어 봅시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명 사회에서 거짓말은 분명히 나쁜 것이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가르치고 배웁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거짓말을 한번도 안하고 사는 이는 없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사회 생활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직장 상사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소위 아부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친구, 애인이나 아내 혹은 남편, 자식, 부모에게도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 바로 우리네 현실입니다. 
또한,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해서는 안되며, 더 나아가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자살을 시도하면 안된다고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피치 못할 이유들과 개인적 혹은 사회적 국가적인 상황 때문에 끊임없이 이런 부조리들이 일어나곤 한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모두 인정하실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분명히 이상과 가치는 사람들을 좀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하나의 이정표와도 같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거나 너무 먼 곳에 있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왜 여러분들은 미디어 법 문제에서는 혼쾌히 이런 부분을 인정하지 못하고 같은 말만을 반복할까요?...-_-;;;
  
  너무나도 똑똑한(???) 모 블로거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초등학생들까지도 다 알고 있듯이, 민주주의가 모든 이들의 권리와 주장을 반영한다는 것이 원칙이고 이상이기는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돈 있고 많이 배우고 권력이 있는 이들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주장과 이해 관계가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적용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여러분들은 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보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이고, 대학 졸업후에는 좋은 직장을 잡거나 소위 전문직을 취득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인간적이고 질적인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자 하루하루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이것도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같은 사고를 가진 모 블로거의 천진난만한 말처럼, 필요에 따라서는 선택이 가능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세상의 통념과 방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기는 너무나 힘들지요.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자본주의는 필요에 따라 선택 가능하고 부차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지극히 한심하고 교과서적인 발언도 두번 다시 없겠다라고 필자는 판단하는데, 이런 필자의 주장에 또다시 반박을 하려는 분들을 위해서, 실제적 사례를 하나 더 들어 보겠습니다.

  전쟁이 나쁘고 다른 이들을 죽이는 것이 지극히 부도덕하며 죄악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을까요? 물론 말로는 이라크의 민주화를 원해서라고 하였었지만, 진짜 목적은 바로 석유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리고 그게 결국 자본의 논리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던가요? 

  또한, 한국은 왜 그런 미국을 도와서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을까요?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적 이상과 원칙대로라면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 했던 것이 아닙니까? 민주주의적 가치와 원칙 어디에, 다른 나라를 부당하게 침공하고 그곳의 주민들을 죽이는 국가를 도와야 한다라는 규정이나 내용이 들어 있습니까?
...라고 필자가 이렇게 질문을 하면, 십중팔구 혹자는 이라크에는 평화 유지군만 보냈다라는 유치찬란한 답변을 하실 겁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을 일으키고, 공연한 일들을 벌인 나라의 요청으로 무슨 평화를 지킨다고 이라크를 갑니까? 그게 진정 민주주의적 원칙과 이상에 부합하나요?


  한번 이 부분에 대해서 민주주의적 원칙과 자본주의적 현실의 조화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해당 포스팅을 작성한 모 블로거는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놓아야만 할 것이라는 점과 함께, 미디어 법도 이것과 마찬가지라고 필자는 감히 단언합니다.


삼척 동자도 아는 구닥다리 원론을 짐짓 새로운 것인양 포장하고 칭찬하는 한국의 네티즌들
  너무나 논리정연한(?!) 모 블로거만이 아닌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처럼,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만 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겠지요...

 
하지만
, 현실에서는
이미 신문 시장을 비롯한 언론 환경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고, 또한 언론이 속한 통신 미디어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개방화와 산업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이른바 거대 자본이 투입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무조건 일부 재벌들의 지분 참여나 방송 진출만은 절대 안된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정말로 대책이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처한 주변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래서 민주주의적 이상만을 얘기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차라리 그것들을 인정하되 보다 현실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방법 혹은 일반 국민들에게도 이득이 돌아올 수 있는 법안이나 대안을 구상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보다 순리에 가깝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필자가 여러분들과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실질적 내용을 담은 미디어 법안을 막무가내로 통과시킨 지금 이 시간까지, 민주당이나 여러분들은 과연 무엇을 했습니까? 

  일부 신문이나 재벌들의 방송 진출이 갖는 문제점, 다시 말해서 누구나 알고 있는 진짜 초등학생같은 얘기들을 계속 반복하며, 한번 지나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것 외에,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말입니다.


  정말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고 자본주의적 논리를 견제하고 하나의 선택 사양쯤으로 만들려면, 지금의 여러분들처럼만 하면 만사 OK가 되는 것입니까?   정말로 그런가요...??? 

  필자의 포스팅을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현행 미디어 법에 대한 찬성쯤으로 받아 들이고,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원론적인 얘기를 사뭇 진지하게 꺼내며 반박을 하는 모 블로거처럼, 교과서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무조건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 반대만 외치면 대단히 논리가 있고 똑똑한 진보가 되는 것인가요?  

  바로 그런 식으로 진부하고 식상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소위 진보가 매사 말만 앞서지 실제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비판과 함께,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의 불신을 받으면서 정치적 입지가 점점 줄고 있다라는 생각들은 왜 못하실까요...-_-;;;  

  
앵무새와 앵무새형 인간들의 공통점
  과거 한때나마, 필자는 앵무새를 키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앵무새라는 녀석은 필자가 하는 말을 곧잘 따라하더군요. 그래서 가끔은 이 녀석이 필자가 하는 말을 알아 들어서 이런 말을 할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도때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의 모습을 보노라면 필자만의 환상은 금방 깨지더군요.


  마찬가지로 지금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부르짖으며, 누구나 다 아는 원론적인 얘기들로 미디어 법 반대를 목청높여 부르짖는 이들도 앵무새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처한 주변 현실이 얼마나 복잡하고 심각하며, 무슨 선택을 할 여지조차도 거의 없다라는 자각과 성찰은 하나도 없이...
 
  그저 누군가가 혹은 교과서같은 것들을 통해서 익힌 현실성 없는 구호들을 아무런 자기 반성없이 반복해서 읊어대는 진짜 새대가리, 아니 앵무새형 인간들의 집단적인 합창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매우 시끄럽게 하고 있고, 소위 미디어 법 논쟁을 일반 국민들이 보다 깊은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또다른 원흉인 셈입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S: 
댓글창을 어지럽히는 새대가리 앵무새들은 보거라 

당신들이 하는 짓을 보면 이 포스팅의 논조인 양비론도 호사다!^^

아무 대책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

거기에 아래에 어떤 머저리들이 보이는 엄한 인신공격과 함께, 무슨 초밥집 사장이라는 이상한 단정들까지....바로 당신들 평균 수준이지!^^

너무 웃기는 것은, 자신들 뜻에 안 맞는다고 엄한 인신공격을 계속하다 보니, 필자가 민노당 지지자가 되었다가 한나라당 지지자 혹은 알바 , 백수 그리고 이제는 초밥집 사장님으로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는 거다!^^

당신들의 행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진짜 정신분열증 환자같아!^^

어떻게 필자가 민노당과 한나라당을 동시에 지지하나?^^

초밥집 사장은 또 뭐래?^^

이제 발광을 하다가 아주 맛들이 갔구나!^^   진짜 볼만하다!^^ 

포스팅에서 표현한 새대가리라는 말....정말 니네들한테 딱 어울린다!^^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7. 23. 02:16
  한국 시각으로 7월 22일인 어제 오후,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디어 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이나 청와대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고, 야당과 인터넷의 네티즌들은 미디어 법 표결 자체가 날치기 혹은 절차상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며, 절대 이러한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또다시 전의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조중동의 방송 진출만은 안된다며 미디어 법 결사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 ⓒ다음 미디어
 
  그러나, 제1야당인 민주당, 그리고 소위 미디어 법만은 절대 안된다고 주장하던 여러 네티즌들이 그간 보였던 논리의 심도라는 측면과 함께, 이른바 진정성에 대해서 필자는 강한 의구심이 들어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민주당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  
  지금 한나라당이 소위 날치기 통과라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미디어 법을 서둘러 통과시킨 이유야 그간 많은 분들이 하도 강조를 하셔서 더이상 부연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핵심지지층 계급의 이해 관계를 충실히 반영하였다는 측면에서, 다시 말해서, 누구나 익히 알고 있지만 소위 1%부자들을 위한 정당의 목적을 위해서 충실히 일하였고, 진정성 측면에서도 미디어 법에 관한 일반인들의 여론이 사뭇 나쁨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국회 표결을 감행하였다는 사실등을 미루어 볼 때, 능히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반면에,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지금의 민주당은 과연 어떨까요?...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민주 개혁 세력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국가보안법, 과거사 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을 통털어 일컫는 소위 4대개혁 입법을 한나라당이 결사 반대한다고 결국 입법을 포기했었지요...


  여기에서 혹자는 당시 열린우리당이 지금의 한나라당처럼 막가파식 물리력으로 정치를 하지 않은 모습을 칭찬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의 천박한 토론 문화나 정치 수준이 그렇게 합리적 절차를 따져가며, 천천히 가는 선진국형 구조가 결코 아니지 않던가요? 정말 당시 민주당이 개혁세력을 대변하는 진정성이 있었다고 한다면, 설령 4대개혁입법 강행으로 인한 여론의 역풍을 맞아서 다음 선거에서 의원직을 모두 잃더라도 목숨걸고 4대개혁 입법을 국회에서 성사시켰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의 결과는 여러분들도 이미 아시다시피, 한나라당의 물리적 반대에도 너무나 무력했고, 소위 조중동과 보수 계층의 반발등을 우려하면서, 계속 이곳저곳 눈치를 보다가 결국 죽도 밥도 안되었지요. 그 결과, 개혁 세력들의 상당수가 민주당(당시 열린우리당)에 실망을 하고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기력하고 민주적 절차를 따지던 민주당이 노무현 참여정부 말기 대선 국면에서 보여 준 모습은 그야말로 이율배반의 극치였다는 겁니다...
 
  소위 BBK로 대변되는 김경준이 미국에서
귀국을 하자, 이른바 BBK특별법을 통과시켜 선거 국면을 일거에 바꾸려고 했었고, 여기에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결사 반대하자 이 양반들이 어떻게 했던가요?


  이번에는 4대개혁입법 때와는 달리 결사 항전의 자세로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BBK특별법을 통과시켰지요? 그 때에는 왜 그랬을까요? 어차피 이판사판...대선 선거 판세는 이미 기울고 있었고, 자신들이 지난 참여정부 임기 5년간 누렸었던 온갖 기득권이 이제 공중으로 날아갈 판국이 되니까, 절박한 마음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진정성(!!!)을 가지고 죽자사자 덤빈 것이 아니겠습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보여지듯이, 시류에 따라서 진짜 가증스럽고 얄팍하게 말을 이리저리 바꾸는 기회주의자적인 측면에서는 한나라당과 거의 막상막하의 경지이지만...또다른 한편으로 자신들을 지지하는 계층의 이해를 어떻게든 반영하려고 거의 막가파식 모습까지도 불사하는 지금의 한나라당과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
 
 
그리고, 시대적 요구에도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낡은 이념과 비전을 가진 기성 보수
정당이라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면서, 이제 미디어 법에 대한 민주당과 일부 네티즌들의 논리적 부실함과 소위 진정성을 한번 논해 보겠습니다.

  한국 경제의 문제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경제 각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들간에, 여러 이견이 존재하지만, 지금까지의 한국 경제가 대기업 주도의 수출지향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정신나간 전문가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재벌들의 전횡과 여러 특혜에 대한 비판이 한국 사회내에서 거세게 일었다가도 결국엔 수그러드는 행태를 반복했다는 사실과 함께, 역대 어느 정권도 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깨지 못하였다는 점도 인정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미디어 통신 분야도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며, 이 분야에 거대 자본이 참여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논리에 부합하고, 그간 한국 경제의 중추를 담당했던 재벌들의 참여는 일종의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야당이나 여러분들은 그것만은 안된다라고 주장하면, 이거 앞뒤가 안 맞는 행태가 아닙니까...

  삼성이 혹은 현대같은 일부 재벌이 방송을 장악하면, 이른바 자사에 해로운 보도 뉴스는 모두 없앨 것이라면서 난리 부르스를 치셨는데요...가령, 삼성 그룹의 분식회계, 부자간 편법 상속, 그리고 경영 구조상의 문제를 심도있고 줄기차게 몇 년간에 걸쳐서 비판한 시사 프로그램이 몇 개나 됩니까?  

  또한, 무슨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것은 일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와 가쉽에 유난히 몰두하고 마녀사냥을 즐기는 대다수 한국 대중들의 가벼움과 천박함이 만들어 낸 필연이며, 자연히 방송도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경영의 일환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수지 타산이 맞을 리가 없겠지요...


  이렇게 이미 오래전부터 공영방송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고, 결국 대기업들에게 손을 벌려 그들의 광고로써 경영을 유지하고 철저하게 기대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재벌의 직접적인 방송 진출만은 절대로 안된다구요? -_-;;;  

  또한, 한나라당이 통과시키는 미디어 법으로 인해 조중동과 재벌이 방송을 장악하면, 소위 영구 집권이나 정권 연장의 길이 활짝 열린다면서, 국민들에게 막연한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었지만, 이것 역시도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닙니까...  

  당장 조중동이나 재벌이 송에 진출한다고 해서 방송 시장 전반이 하루 아침에 확 바뀝니까? 지상파 방송 널을 회수하고 조직과 인력을 구조조정하거나 방송 편성 전반을 새롭게 개편하고, 새로운 통신 미디어 환경에 걸맞는 최신 디지털 방송 장비들을 구입하고 설치하려면, 적어도 1조원대의 거대 자본이 소요되는 것는 물론이거니, 그 준비 기간 또한 2~3년 남짓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인데, 그때쯤이면 이미 현정부 임기는 끝나지 않던가요...?


  또한 한나라당이 내놓은 수정안을 살펴 보아도 현정부 임기가 끝나는 2012년, 소위 디지털 방송 체계로 전환될 때까지는 유예 기간이 있었고, 또한 현실적으로 따져 보아도 사실상 지금 당장 공중파 방송국을 따로 차릴만한 주파수도 없을뿐만 아니라현재 각 방송사 노조들의 자기 밥그릇을 챙기려는 극한 행태와 무사안일한 사고를 볼 때, 방송국에 대한 지분 참여와 경영권 인수 절차 혹은 과정에서도 시간이 빠듯하게 걸릴 판국인데, 왜 지금 이 시점부터 당장 방송이 넘어가서 국민들을 향한 왜곡보도가 나가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영구 집권이니 정권 연장이니 뭐니하는 사태가 온다면서 과장과 거짓말을 하시나요?

  다들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모두가 말로는 조중동은 쓰레기 찌라시 신문이라면서도, 그들의 펜대가 네모난 신문 지면을 넘어서서 지상파 방송을 타는 것은 내심 크게 두려운 모양이지요?...


국민 타령도 이제 그만하였으면...
  그리고, 국민들이 분노할 것이라는 말도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당이나 야당, 그리고 네티즌들이나 모두가 때만 되면 그 놈의 국민 타령을 하는데, 이거 해도해도 너무 웃기고 지겨울만큼 식상한 구태가 아닙니까...

  지금 일반 국민들이 정말로 미디어 법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대로 알고 있다면, 작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 집회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만한 규모의 시위나 저항이 뒤따라야만 할텐데, 과연 오프 라인상에서 그러고 있는지를 가만히 따져보고 지켜보면, 그건 아니라는 판단이 생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산 쇠고기 촛불 집회때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필자는 감히 예측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다분히 인식론적인 얘기인데, 쇠고기는 안전한 먹거리와 국민들의 건강권 문제에 해당하며, 대다수 국민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누구나 자신의 문제로 쉽게 환치할 수 있는 그런 사안이었지만, 미디어 통신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말입니다.

  시쳇말로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미디어를 통한 무슨 의식화니 세뇌니 아무리 떠들어 봐도, 그것이 쇠고기만큼 절박하지도,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들리지도 않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오히려, 일부 네티즌들의 그간 논리대로 가자면, 국민들이 얼마나 현명한데, 조중동의 방송을 통한 왜곡 보도에 우리가 세뇌되겠느냐라는 반문과 함께, 우리들을 그렇게 바보로 아느냐는 원론적인 답변이 돌아오기 십상일 것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학적으로 반대보다는 찬성을, 그리고 부정보다는 긍정을 선호하기에, 필자가 위에서 언급했던 여러 현실적 여건과 사정들을 보수 언론들이 줄줄히 늘어 놓으며, 지금까지 야당이나 일부 네티즌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나라를 온통 시끄럽게 하고 시간만 헛되이 낭비시키고 있다라는 공격이 먹힐 수 밖에 없다라는 점입니다.  

결론
  다시 말하지만, 이미 현대적 의미의 미디어 통신 분야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고, 거기에 거대 자본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면, 차라리 그 흐름이나 대세를 혼쾌히 인정화되, 필자가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국가 성장 잠재력을 재고하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과 현실적 대안을 준비하거나, 그런 취지를 반영하는 법안을 주문해야만 했었는데...


  그간 미디어 법에 대해 극한 반대 논리만 열나게 세우거나, 무슨 1980년대 운동권처럼 단식 투쟁 혹은 의원직 사퇴 타령이나 하다가, 이제 한나라당이 미디어 법을 막무가내로 통과시키자 진짜 한심하게도 절차상 하자를 문제삼고 있다지만, 결국엔 반대만 계속할 뿐 현실적인 대안은 결코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누구도, 미디어 법 그 이후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을 필자는 이역만리 머나먼 미국 땅에서 지켜 보면서, 야당과 일부 네티즌들의 진정성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뿐만 아니라, 결국 민주당이나 네티즌들의 진정한 본심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사건건 반대를 해서 현정부를 어떻게든 무너뜨리고 다시 정권을 되찾아오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근시안적 시각과 함께, 소위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라고 보여지며...


  이렇게, 아무 대책이 없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 무늬만 야당인 민주당과 일부 네티즌들의 모습은 지극히 유치찬란하며, 정말로 참을 수 없는 논리의 가벼움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다라고 필자는 판단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P.S :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없이,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목을 멘 몇몇 인간들이 필자가 너무 강하게 자신들의 그간 행적과 논리의 문제점들을 찌르니까, 경기를 일으키며 고작 한다는 소리들이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을 찬성하는 포스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나라당의 막가파식 법안 통과 과정이나 그 목적이 모두 정당하다라고, 그 어떤 포스팅에서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21세기 미디어 통신 분야, 특히 그 중에서 뉴스 보도로 대변되는 언론 분야까지도 이제는 자본의 논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급변하는 미디어 통신 환경과 함께, 거기에 걸맞는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거대 자본의 유입은 필연인데, 그것을 할만한 세력은 한국내에서는 재벌들뿐이니 이걸 어쩌라는 것인가라고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7. 22. 04:10
  요즈음 다음 뷰에는 용산 참사 6개월을 맞아 당시의 참상과 정부의 무관심및 과잉 진압, 그리고 지금 진행중인 쌍용차 노조의 파업에 대한 경찰의 대응도 용산 참사와 점점 닮아간다라는 내용의 포스팅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그리고 현정부가 소위 가진 자들만을 위해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 제기와 함께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모든 사람의 인권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하며, 현정부의 부도덕과 야만성을 꾸짖고 비판하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게 되고 그런 자본주의적 논리가 강력하게 작동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계는 어느 한순간에 유명무실해지게 되며, 바로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실제적 사례중 하나가 바로 용산 참사였다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용산 참사의 모습 ⓒ다음 이미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필자가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일단의 사건들을 몇몇 사진을 통해,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와의 역학 관계는 과연 어떤 것인지를 여러분들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하시길 바라는 목적의 포스팅을 작성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중국도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체제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노선을 취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급속도로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며, 소위 중국 사회내에서 개발 정책들이 봇물 쏟아지듯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과거 한국처럼 부동산 투기를 통한 벼락 부자들도 많이 생겨나고 이른바 재개발 지구를 둘러싼 분쟁도 있기 마련이겠지요?

  그리고 이러다 보면, 한국의 용산 참사에서 보았던 것처럼, 재개발 건축 업자나 투자자들과 철거민 혹은 주민들간에 이주비나 보상비 문제로 인해서, 좀처럼 합의점이 보이지 않는 분쟁이나 극심한 갈등 양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지금의 중국 사회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으며,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 또한 한국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더라는 얘기인데, 그럼 지금부터 바로 사진을 보시죠... 


  도심에 상가와 아파트 단지를 새로 조성하려는 개발업자가 나타났는데, 거기에 반대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집과 터전을 버리지 않겠다고 몇몇 주민들이 버티자, 해당 주민들이 사는 집 주변의 땅을 파서 완전히 고립을 시켜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위 사진을 보시면 금방 짐작하시겠지만, 철거와 이주를 거부하는 몇몇 주민들의 집 주변을 마치 작은 언덕처럼 만들어서 고립을 시켰지요? 그래서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LPG가스라든가 생필품들을 굵은 밧줄을 통해 힘들게 끌어 올려서 생활하는 형편이 되었구요. 

  하지만 이것은 그래도 양반중에 양반입니다. 이렇게까지 해도 주민들이 집을 비우지 않는 또다른 경우에, 재개발업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아시나요? 그들이 주민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바로 아래 사진을 보시죠...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남의 일, 다른 나라 얘기라고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왠지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점이 보이지요?...

  필자는 이 일단의 사연과 몇몇 사진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소위 민주주의든 혹은 공산주의든간에, 외형적인 정치 체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입니다...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지금 이 시각까지도 많은 분들이 성토하듯이, 현정부가 과거 정권들보다 더 부도덕하고 훨씬 부조리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강하게 작동되면, 인간의 생명보다도 소위 자본을 우선시하는 용산과 같은 비극이나 참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여러분들의 주변 어디에선가 또다시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중요하고 여러분 각자가 일생을 두고 풀어야 할 진짜 문제는, 정치 체제 정비나 법적 제도적 장치에 대한 보완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는 도덕이나 의식마저도 전부 돈과 수익성으로 간단하게 환원시키고 흡수할 수 있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필자는 판단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사진 및 정보 출처
http://bbs.news.163.com/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7. 20. 13:24
  요즈음 한국 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 정국을 서서히 벗어나 이른바 미디어 법 찬반논란으로 굉장히 시끄러운 모양새입니다. 수 많은 민주 진보 인사들은 주장하기를,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소위 미디어 법은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에 여러모로 지대한 영향을 준 조중동으로 명명된 몇몇 메이저 신문사들, 그리고 역시나 한국 경제의 중추이자 핵심인 일부 대기업...좀더 구체적으로는 재벌이라고 불리우는 특정 계층의 사람이나 집단 혹은 회사가 미디어를 장악하면, 한국 사회가 해방후 수십년간 힘들게 이룩한 민주주의는 모두 허사가 되며, 소위 그들만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지금 현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미디어 법만은 결사 반대 내지는 결사 항전으로 버텨야 한다라고 하는 내용은 이곳 다음 뷰에서도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선 분명히 할 부분은, 지금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필자도 원칙적으로는(!!!) 그런 여러분들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러나 미디어 법 반대 그 이후와 함께 현대 미디어의 본질적 부분들을 좀더 생각해 보니까, 마냥 동감만 하기에는 뭔가가 석연치 않을뿐만 아니라, 반대를 한다는 이들의 진정성이나 비전이란 것에 대해서도 중대한 의문이 생겨서, 이 부분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SK글로벌 증권 분식회계와 소버린의 SK경영권 위협에 대한 단상
  미디어 법에 대한 논란을 다루기 전에 우선적으로 반드시 짚고 가야할만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노무현 참여정부 임기시절인 지난 2003년, SK글로벌 증권이 1조5천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에 관한 얘기입니다.

  당시,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은 위에서 언급한 SK그룹의 분식회계와 같은 한국 대기업 특유의 부정과 편법, 그리고 소위 황제 경영으로 불리는 재벌들의 경영 지배 구조의 폐쇄성이나 후진성을 개선하겠다라는 원대한 구상을 가지고서 소액주주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자 했었던 시민 운동이었으며, 이런 참여연대의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발휘하여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력 이양으로 독립을 하게 된 검찰이 의욕적으로 수사를 진행했었던 사안이 바로 SK글로벌 증권 분식회계 사건이었는데요.

  그런데, 그 당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검찰의 의욕적인 수사, 그리고 국민들의 염원과 바램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뜻하지 않은 제3의 세력이 등장하면서 SK글로벌 분식회계와 SK그룹 총수에 대한 사법 처리에 관한 국민들의 여론이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의 취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서 일부 혹자는 소버린을 건전한 투자자라고 규정하면서, 덕분에 SK그룹의 지배구조가 크게 투명해졌고 주식 투자자들도 이득을 보았다고 주장하시지만, 당시 정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정말 아차하는 순간에 그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해외의 일개 사모 펀드가 국내 최대의 통신 회사를 가진 대기업을 거의 헐값에 집어 삼키는 참담한 비극을 맞을뻔한 상황이었을뿐만 아니라,

  국내적인 시각에만 머물러(!!!) 재벌들의 그릇된 관행을 고발하고 시정하려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도 빛이 크게 바래게 되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이제 미디어 법에 대한 얘기를 본격적으로 한번 해 보겠습니다.


미디어 법 반대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
1) 통신 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초거대 다국적 미디어 기업들의 탄생
  현대의 과학 기술은 인류가 그 전세기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나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은 과거 인류가 수 개월을 소비해야 받아볼 수 있었던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게끔 만들었으며, 여러분이 일평생을 살아도 가 보지 못하는 지구 반대편의 오지나 그 곳 사람들의 풍습도 자신의 집 안방에서 TV를 통해 볼 수 있는 시대...다시 말해 전지구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이는 진정한 세계화 추세에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은 주춧돌의 역할를 차지했던 겁니다.

 여기서 통신 미디어 분야의 획기적 발전을 좀더 자세히 묘사하자면, 컴퓨터, 휴대폰및  무선 와이브로등으로 대변되는 이동통신, 케이블 TV, 백색가전 제품, 지상파와 TV로 대변되는 방송, 출판, 전자 게임, 연예 엔터테인먼트등으로 표현되는 유희나 오락등등이 점차 하나의 거대한 통신망과 유기적인 네트워크 안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가장 유망한 산업 분야중에 하나로써 통신 미디어 분야를 일찌감치 주목하게 되는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21세기의 거의 모든 산업 영역과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될 미디어와 통신 분야를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암투와 함께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규모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초국적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는, 1995년 월트 디즈니와 ABC TV 와의 합병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주목할 부분은, 이런 식의 초거대 다국적 미디어 기업들이 연이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1996년 미국 의회의 통신법(지금 한국의 일명 미디어 법과 유사함!)이 가결되면서부터였다는 것입니다. 

  이 통신법은 지역 전화 회사와 케이블 TV를 포함한 모든 사업자나 기업이 미디어 통신 시장에 참여하도록 허용했었는데, 그 결과 미디어 통신 분야 시장을 선점하고 장악하기 위한 이합집산과 각축전이 이루어지면서, 바로 위 문단에서 필자가 언급한 초거대 기업들간의 합병이 줄을 잇게 된 것입니다.

  미국이 통신법을 가결한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통신 산업을 규제하는 나라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이 분야에 진출하기를 꺼려 왔습니다. 가령,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통신 사업을 국영 기업이 독점하거나 정부가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는 형태로써 이 분야를 강력하게 견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내 다른 몇몇 국가들도 통신 미디어 사업 주체는 민간 기업이지만, 그들이 통신 미디어 사업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는 대신에 공공성을 유지하려는 정부의 여러 규제 조치를 받아들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세계 60개국이 모인 WTO의 주도 아래, 회의가 열리고 미디어 통신시장의 국가 독점과 규제를 점차적으로 종식시킨다는 조약이 맺어지면서, 사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여기에서 필자가 이렇게 구구절절히 여러 다국적 기업의 사례와 함께, 1996년의 미국 통신법 가결과 1997년의 WTO에서의 조약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 미디어 통신 시장의 융합 혹은 통합과 개방은 세계적인 흐름이자 대세라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TV, 라디오와 같은 매체들이 각자 독자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대중들을 접하였다면, 이제는 모든 통신 미디어 수단이 융합되고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나아가는 환경과 구조로 변하였기 때문에,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소요되는 미디어 통신 산업 분야의 대기업 진출을 반대할 구실(구체적으로 민주주의 수호라든가 일반 시민들의 알 권리,여론의 다양성등등과 같은 추상적 가치와 구호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명분이나 실리라는 양쪽 측면 모두에서 입지가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 통신 미디어의 속성과 국가 권력의 축소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여러 세계적인 추세와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를 볼 때, 결국 한국의 미디어 통신 시장도 자본을 축적한 일부 대기업들에게 개방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면, 혹자는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통신이나 미디어가 갖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서는 안되며, 바로 그런 역할을 담당하라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또한 지금 오바마 미 행정부도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예를 드실지도 모릅니다. (※관련기사: 오바마가 몰고 올 미디어 혁명)

  다시 거듭해서 말하지만 이러한 여러분들의 주장에는 분명히 나름의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좀더 깊게 생각을 하면, 이것 역시도 현실적으로는 커다란 난관과 모순에 봉착하여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들은 WTO(세계 무역 기구)라든가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NAFTA( 북미 자유 무역 협정) , 그리고 요근래의 한미FTA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들이 일반 시민들을 위한 국제 조직이나 기구 혹은 무역 협정이라고 보시나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국제 조직이나 기구, 혹은 협정들은 모두 기존의 노동 관행이나 환경 혹은 기업의 규제에 대한 각국 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한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깊이 반영된 결과물중의 일부입니다.

  이를테면, WTO체제 내에서의 각국 정부는 이른바 무역 자유화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국가 주권을 행사해야만 합니다. WTO와 같은 국제 조직의 관리들은 어떤 정부의 통제도 받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WTO에서 맺어진 무역 협정과 기준을 위배한 나라들에게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해서,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활동과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인 셈입니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의 교류를 원활히 한다라는 명목으로 국경이 없는 시장, 그리고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며, 그것를 위해 설립된 기구나 협정이 바로 WTO라든가 FTA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자본이 결합되어 빛의 속도로 전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대표적 분야는 바로 통신 미디어 산업이 아닙니까? 게다가 한국은 수출과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지요? 자연히 WTO같은 기구들의 동향이나 방침에 소위 내수 시장이 든든한 다른 나라들보다 더 민감하겠지요?

  또한 이 부분에서도 익히 아시다시피, 과거 산업 혁명 시절에, 시민 계급이 출현하고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계가 완성되면서 출현한 정부라는 기구나 조직은, 지도상으로 확연하게 구분지어진 국토를 관리하고 통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통신 시장의 규모나 발전 속도 그리고 범위가 전지구적으로 확대되는 상황과 WTO같은 국제 무역 기구 체제하에서는, 각국 정부의 규제와 권한은 축소되거나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다시 말하지만, 미디어 통신 분야만큼 국경을 초월하고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자본을 아우르려는 초거대 다국적 기업의 목표와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분야가 있던가요? 그리고 이런 흐름은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3. 공영방송의 실상과 한계
  필자가 이렇게까지 설명을 해 줘도, 혹자는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그래도 소위 지상파 방송만은 대기업의 진출을 막고 소위 공영 방송 체제로 가야만 한다라고 주장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이미 오래 전부터 텔레비젼으로 대변되는 공영방송이 추구했던 가치와 노력들...

  다시 말해서, 일반 대중들의 의식 함양과 공익을 위해 만들어졌던 각종 교양 프로그램은 천박한 대중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철저하게 외면당하였으며 사실상 거의 유명무실해지는 단계에 이르렀고, 또한 자본주의 체제내에서의 방송사 운영이란 것도 어차피 이윤 추구를 외면할 수 없기에... 

  이론상이나 원칙적으로는 공영 방송에 광고가 하나도 없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각 프로그램의 제작비와 인건비를 대기 위해 소위 협찬 명목으로 민간 대기업들에게 완전히 기대고 있는 실정이나 형편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과정이 무한 반복되면서, 교육 교양 시사 다큐멘터리와 같은 공영방송만의 프로그램 비중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낮아지고, 대신 그 자리에, 지극히 가볍고 시청한 뒤에 머리에 남는 것은 거의 없는 가쉽성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라는 경영상의 압박이 여러모로 가중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가뜩이나 열악한 외주 제작업체에게 피해를 전가하거나 각종 부대 경비를 떠넘기는 그릇된 관행이 왜 생겼을까요?

  이미 작금의 현실이 이러하고, 또다른 한편으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와 일거수일투족이나 사사건건 문제삼으며 마녀사냥에나 열중하는 지극히 말초적이고 천박한 인식과 의식을 가진 사회와 구성원들이...
 
  지금 이 시간 소위 미디어 법을 앞에 두고서는 갑자기 고차원적이고 대단히 성숙한 민주 시민의 모습을 짐짓 가장하며, 현대 미디어가 갖는 여러 철학적 함의와 함께 그것의 영향력이 갖는 파괴력을 우려하고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친다고 한다면, 과연 그런 분들의 진정성과 극히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비전을 그대로 믿고 따르거나 좋게만 보아 줄 수 있을까라는 말입니다. 
 


4. 극소수의 사이버 스페이스 형 인간과 절대 다수의 오프 라인형 인간으로의 철저한 계급 분화 
  필자가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미디어 법 반대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는, 여전히 인터넷과 사이버 스페이스, 그리고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즐길만한 여력이나 인식이 없는 사회 구성원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통계상으로는 한국 사회내에서 3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단순한 뉴스나 정보 찾기 수준이며,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날마다 급변하는 통신 미디어의 실상을 미리 경험하고 그것을 심도있게 평가하거나, 새로운 시대의 사회상을 예측 혹은 그려볼만한 의식과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네트워크, 양질의 문화 콘텐츠, 사이버 스페이스, 그리고 현실을 방불케하는 가상 체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그런 환경에 이미 익숙하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당장 생활하는데에 필요한 의식주 문제마저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는 사회 구성원들이 훨씬 더 많다라는 현실을 생각해 보셨나요? 지금 그분들에게 새로운 환경의 미디어 통신, 그리고 네트워크와 미디어 법 폐해에 대한 논의가 정말 눈에 들어 오기는 할까요?... 

  일반 국민들의 미디어 법 반대 여론이 다수라고 하지만, 필자가 판단하기엔 그것은 통계상의 수치일뿐이라고 보여집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주장대로 일반 국민들이 지금 미디어 법이 갖는 의미를 정말로 깊이 인식하고 그것의 위험성을 심도있게 알고 있다면, 작년의 쇠고기 촛불집회와는 비교도 안되는 규모의 시위나 행렬이 거리에서 연출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또한, 이미 미국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디지털 방송이 한국에서도 2012년부터 시작될 예정이지만, 이러한 변화가 왜 생겼으며, 어떻게 기존의 통신과 미디어 시장을 재편할지, 그리고 각 산업 분야에는 어떤 효과가 있으며, 어떠한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논하자는 사회적 공론화는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며, 디지털 방송 체제로 전환하려는 기초적인 인프라 구축이나 대국민 홍보라는 측면 모두에서, 한국 사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한나라당이 제출한 미디어 관련 법안의 발효 시점이 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되는 2012년인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넓은 시각과 관점에서 고민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런 국가적, 범국민적 규모와 차원의 사업을 정부 단독으로 주도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또한 각 세대가 그동안 보유한 아날로그 방식의 TV단말기 및 수신기 교체를 비롯해서, 각종 통신망이나 데이터 연결망 일체를 한국 정부가 모두 소유하고 있던가요? 만약 정부가 그 모두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라고 한다면, 지금 그것들의 실제 소유자가 과연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거대 미디어 통신 시장을 하나로 융합해서,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는 디지털 방송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리고 이런 거대한 규모의 사업과 거기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재벌이 아닌 민간 중소 기업체들이 감당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의 미디어 통신 분야에서 민주주의적 이상과 가치만을 추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걸리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고, 반대를 해서 얻고자 하는 결과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 옵니다.

 


결론
  지금 이 시각에도 실로 많은 분들이 소위 미디어 법으로 명명된 현정부와 여당의 언론 관련 법안에 대해서, 심한 우려와 함께 각종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며 다양한 비판적 의견과 주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들은 대부분 기존의 민주주의적 가치라든가 진보주의적 시각에서 기반한 것들이며, 분명히 일리가 있고 결단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시각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된 악마적 속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와 이행과정 (산업 자본주의→금융 자본주의→문화 자본주의)등을 깊이있게 고려하고 바라볼 때에는, 또다른 차원의 중대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벌였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과 검찰의 의욕적인 수사, 그리고 국민적인 지지와 여론등은 한국내 시장 경제의 공정성과 민주주의 체제면에서만 보자면, 분명히 의미있고 진일보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버린이라는 해외 사모 펀드의 출현과 함께 그들이 벌인 일련의 모습으로 인해, SK그룹의 경영 지배 구조 개선이나 그룹 총수에 대한 강력한 처벌보다는, 해외 투기 자본의 국내 기업 경영권 위협이라든가 그룹 총수의 집행유예와 사면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된 과거의 사례와 현실들을 곰곰히 돌이켜 볼 때, 
지금의 미디어 법 문제도 국내적 시각으로만 다루고 무조건 반대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닌 듯 보여집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한국 사회내에서 여야를 비롯한 기성 정치권,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 모두가 신문 방송 겸영과 권력의 구도 문제로만 이 사안을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한심하고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소위 한류 열풍의 주역이라는 한국의 잠재성 있는 문화 콘텐츠 시장을 어느 순간에 외국의 초거대 다국적 기업이 차지하고서 주인 행세를 하게 되는 비극적 상황과 더불어, 그로 인한 국가적 성장 잠재력의 하락이라는 만일의 상황을 확실하게 방지하려면... 

  과연 여러분들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말해서, 지금처럼 계속해서 일부 대기업이나 재벌들을 극도로 부정 불신하고 방송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며, 그렇게 해서 현정부의 의도를 좌절시키기만 하면...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오매물망(?!) 바라는 소위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지금과 같은 미디어 법 문제는 완전히 일단락되고, 두번 다시 거론되지 않는 차원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인...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해서...비관적, 절망적인 견해가 도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인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7. 18. 02:39
  요즈음 다음 뷰와 실시간 검색어의 한 코너를 장식하는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그 이름은 여러분도 익히 아시는 최한빛이라는 성전환자 혹은 트렌스 젠더의 이름인데요. 그녀가 수퍼모델 선발대회 1차 예선을 통과했으며, 대회 주최측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보다는, 트렌스 젠더라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호불호를 가리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두둔하는 양극단의 내용을 담은 포스팅이 여럿 보였습니다.
  트렌스 젠더로써는 한국 최초로 수퍼모델 선발대회 1차 예선을 통과하였다는 최한빛. 그녀의 존재와 소식은 성적 소수자에 관한 담론이 부재한 지금의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논란과 뜨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다음 이미지
 
  트렌스 젠더 최한빛 논란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접하고 있는 필자는 최근 독일의 한 트렌스 젠더의 근황을 알게 되면서, 이 문제에 대한 독일 사회와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좀더 세밀하게 깨닫게 되었으며, 한국 사회에서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성전환자들을 사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하시라는 의미에서, 오늘은 이른바 독일판 하리수인 Kim Petras의 사연과 그녀의 몇몇 사진을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하는데, 우선 사진부터 보실까요!^^
  위 사진의 주인공은 남매일까요?^^  이미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두 사진 속의 주인공은 동일한 인물입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 이름은 Kim Petras라고 하며, 어린 시절에는 Tim Petras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Kim과 그녀의 어머니, 그녀의 일상, 그리고 스튜디오와 뮤직 비디오 촬영 현장과 그녀를 보려는 독일 시민들의 모습등을 올려 보았다. 

  Kim Petras는 1992년 8월 27일 독일 Cologne에서 남자아이로써 태어 났었는데,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우 조숙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미 누나(장래의 언니?!)가 둘이나 있었고, 그녀들과 어울려 자라면서 자신의 여성성을 분명히 확인하였으며, 그녀의 여성성에 대한 누나(언니)들의 거듭되는 지적과 함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라는 굳은 신념을 바탕으로 성전환을 결심하게 됩니다.

  성적인 측면...그것도 성적 소수자에 대해서 한국 사회만큼은 아니지만 독일을 포함한 유럽, 그리고 미국 사회도 트렌스 젠더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합니다.

  따라서 Kim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상당한 고통과 소외감을 경험했고, 그런 세간의 시각과 편견에 맞서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세상과 사람들의 몰이해와 냉혹함과 함께, 결국 자기의 인생은 그 누구도 간섭하거나 관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남다른 조숙함과 더불어서, Kim에게는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놀라운 재능이 있었습니다... 
이미 유년기 때부터 그녀는 Electronic Dance Pop Music이란 음악의 영역을 창조하고 레코드 음반사와 계약까지 하였으며, 이런 그녀의 음악은 YouTube와 MySpace에서 25만여회의 힛트수를 기록하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권에서는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유명인사가 되었는데요...


  이러한 인기와 유명세를 얻어가는 와중에서, Kim Petras에게 성전환이라는 일생일대의 꿈과 목표는 무슨 심각한 결격 사유라든가 장애 혹은 방해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우선 그녀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서, 13살 때부터 호르몬 요법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녀의 이런 시도는 당시 독일TV 다큐멘터리 메인을 장식하게 되면서,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부르게 됩니다. 당연히 Kim의 부모님들은 그녀의 이런 시도를 극구 반대하였고, 의사와의 진료나 상담에 대한 재량과 권한을 자신들이 갖기를 원하였었지만 Kim은 결코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을 부모님과 갈등하며 지냈고, 그 와중에 Kim의 어머니는 알콜로 날을 지샜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님이 없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결국 그녀의 부모님들도 Kim의 의지와 꿈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승낙했다고 해서 성전환과 같은 사회적 이슈와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독일은 18세가 되어야만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게끔 법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이런 사회 제도적인 장치와도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은 분명히 여성이며, 다른 이들이 생각하거나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소년 Tim은 그저 자라나는 과정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호소하면서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했고, 이것은 결국 독일의 성전환 수술 연령과 관련된 법을 수정하게 만듦으로써, 세계 최연소라는 16살이라는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받게 되었으며, 드디어 내외적으로 완전한 여성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세계 최연소라는 16살이라는 나이에 성전환을 한 것만도 아주 의미있고 정말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미 13살 때부터 자신의 인생은 누구의 도움도 아닌 자기가 꾸려가야 한다라는 지극히 어른스러운 생각으로 의사와 상담을 하고 호르몬 요법을 받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런 일체의 호르몬 요법과 성전환 수술 경비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충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독일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성전환 연령에 관한 법마저도 바꿀만큼 열정적이고 치밀한 캠페인을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런 그녀를 지지하고 호응하는 수 많은 평범한 독일 시민들이 있었기에, 이런 모든 일이 가능했다라는 점에서, 필자는 한국 사회의 트렌스 젠더중 대표적이자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인 하리수(좌측 하단, 사진출처: ⓒ다음 이미지)가 문득 생각나더군요.

  대부분의 트렌스 젠더들이 그러하듯이, 하리수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여성성을 깨달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돈을 벌어 성전환 수술을 시도하였으며, 모 화장품 회사 광고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첫 순간부터, Kim Petras가 속한 독일 사회보다도 훨씬 더 지독한 온갖 편견과 기존의 여러 사회 관행에 맞서야만 했고, 결국 그 모든 장벽을 무너 뜨리고 자신이 꿈꾸었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금 한국에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탓, 시스템 탓만으로 날을 지새우는 소위 패배주의와 염세주의, 그리고 사회적 이슈나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적인 호감 혹은 비호감을 조성하는 집단주의, 선정주의에 깊이 사로잡힌 대다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온전한 영혼을 지닌 인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최한빛 논란을 바라 보아야만 하지 않을까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물론, 혹자는 이 포스팅을 보면서 늘상 나오는 공식처럼, 필자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필자가 감히 이런 식의 단정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되는 이유와 근거는... 

 
만약 Kim Petras가 한국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13살이라는 연령 때부터 호르몬 요법을 받기 시작하다가 역시 16살이라는 아직도 어린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하기 위해 의사의 상담을 받는데 있어서도, 과연 한국의 부모님들은 Kim의 독일인 부모님들처럼 대화와 설득이라는 방법을 택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과 주장을 좀처럼 꺾지 않는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셨을까요?  또한, 미성년의 나이와 신분을 가지고 성전환같은 극히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관한 공개적인 캠페인을 전개하거나, 그것을 받아들일만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라든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심도 있는 공론이나 담론이 과연 지금의 한국 사회에 존재하기는 할까요?

  ...라는 식의 여러 의문과 강한 회의감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판단하기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보여집니다만...어찌되었든간에, 
트렌스 젠더라는 화두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독일같은 유럽내 국가에서도 뜨거운 감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는데, 여러분들은 독일의 팝 스타이자 트렌스 젠더인 Kim Petras의 사연과 함께, 그것을 대하는 독일 사회의 이모저모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사진 및 정보 출처
http://www.thesun.co.uk/sol/homepage/woman/2528710/Pop-star-Kim-Petras-had-a-sex-change-at-the-age-of-16.html

※Kim Petras의 음악 세계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좀더 세밀한 정보와 뮤직 비디오를 담은 기사를 링크시킵니다.
http://www.thesun.co.uk/sol/homepage/woman/2532943/First-look-at-teen-transsexual-Kim-Petras-debut-single-Die-For-Youteen-transvestiteteen-transsexaul.html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