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평론2012. 6. 24. 18:10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까지 10년동안 한국 사회를 지켜보면서,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고 불합리한 모습들이 보여져서, 오늘은 상당히 민감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외눈박이를 양산하는 이상한 한국 사회ⓒ구글 이미지

 

 오늘의 포스팅은 소위 진보적 가치를 논하려거나 범야권에서도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친노 그룹들과 그 지지자들의 이중성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질 것인데, 필자가 굳이 이런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도무지 자신들의 문제점과 과오에 대해서 단 한점도 인정을 못하겠다라는 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모습들이나, 소위 진보 시즌2를 주문하면서도 무엇이 가장 중요한 기본이며 가치인지에 대한 성찰과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라고 보였기 때문인데, 이제부터 필자가 전개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불편한 이면을 보시면서, 친노 그룹이 주축이 된 민통당과 그들을 지지한다라는 범진보 세력들은 깊이 자숙하시길 바라는 바이다!!!  



 

 

 

                                                                       ⓒ구글 이미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학생인권조례에서의 이중적 잣대

 지난 2008년, 한국 사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논쟁으로 날을 세우다시피 하였다라는 기억들은 여러분 대부분이 가지고 계실 것이다.

 

 당시에, 진보적 성향의 언론이나 논객들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촛불집회에 먼저 나서면서 미국산 쇠고기 집회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라고 진단하면서, 과거 4.19 학생 의거와 비교하거나 혹은 대한민국의 획일화된 교육제도에서 학생들의 이런 열정과 잠재력을 받아줄 수 없다라는 둥...그리고, 학생들이 비록 나이가 어려도 이 땅의 왠만한 어른들보다도 사리판단이 똑 부러진다면서, 그 얼마나 칭송을 하고 그런 학생들을 격려하며 촛불대열에 더 많이 합류하라고 독려하였는지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상당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집회에 나섰던 학생들에게 보수 언론을 비롯한 범보수 세력들의 대응이란 것이, 학생들은 아직 사회나 국제 관계에 대해서 명확히 알지 못하는 연령대이고, 따라서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촛불집회에 앞장서게 만드는 세력들의 배후와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을 때, 진보 세력들이나 범야권에서 뭐라고 반박하셨는가...

 

 "학생들도 성인들 못지않게 민주시민으로써의 책임의식과 주권을 가지고 있다"(?)라고 맹비난하지 않았던가? 또한, 그런 진보 세력들의 가치를 바탕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학교 내 교칙이나 여러 준칙들을 폐지하거나 개정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런 일련의 움직임들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곽노현 교육감을 필두로 하는 "학생인권조례 탄생의 배경"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의 권리와 주권을 보호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와 의무에 대해서 지각하게 만들겠다라는 취지와 의도에 대해서는 필자도 원론적으로 공감하겠으나, 지금 이 시각에도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학교폭력과 왕따 혹은 집단 괴롬힘에 대한 문제"에서, 진보 교육감이라는 양반들이나 정치인 시민단체의 반응이라는 부분을 살펴보면, 도저히 후한 평가를 내릴 수도 없을뿐만 아니라, 이들이 "결국 학생들의 인권과 진보라는 가치를 엮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나 이해관계에 동원"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오는데...

 

 

 여기서 한번 잘 생각하시길 바란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학생들을 향하여...진보라는 가치를 들먹였던 분들이 하셨던 그 말...학생들도 자신들의 주권과 시민으로써의 도리는 충분히 지각할만한 나이와 이성을 지녔다라고 하였는데...그렇다면, 학교폭력이나 왕따 집단 괴롬힘같은 반사회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에 대해서도...어른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처벌받거나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시켜야 일관성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보수 세력들이 학생들은 아직 뭘 모르기 때문에, 일부 불순한 세력에 의해서 선동된 촛불집회에 참석하였다라고 하는 시각에는..."아직 학생들이 나이가 어리고 사리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라는 대원칙"이 깔려있고, 바로 그런 부분의 연장선상에서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학생도 치유를 중점으로 하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나름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있는데 반해서, 학생들의 주체적인 이성과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진보 세력들과 그 잘난 진보 교육감들은 여기에 대해서 어떤 일관성과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상당히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이다.

 

 막말로, 촛불집회나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기의 학생은 주권과 시민의식이 갖추어진 학생들이고, 학교폭력이나 왕따 집단 따돌림 혹은 괴롬힘같은 문제로 사회가 시끄러운 시기에는 그저 철이 없고 모순된 사회적 시스템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나약한 청소년으로 입장이나 위상이 수시로 바뀐다면, 이거 진짜로 곤란하지 않을까...

 

 곽노현을 비롯한 진보 교육감들 ...그리고 진보 세력이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이들에게 다시 묻겠다. 

 

 필자가 언급한 이 부분에 대해서 당신들은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학생들의 주권과 인권 혹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만큼 학생들의 책임의식과 인격체로써의 대접을 추구한다면...그들이 저지른 잘못이나 과오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크기만큼의 사회적 책임과 제재를 강조하는 것이 진짜로 진보적인 가치이고 형평성에 맞는 모습이 아닐까???   

 

 


 

 

 국방의 의무에 대한 여성시민단체와 여성인권운동가들의 이중적인 잣대

 이제, 이야기를 좀더 민감하고 격렬한 논쟁이 오갈 수 있는 장으로 넘기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국방의 의무""진보적 여성시민단체" 혹은 "페미니스트로 대변되는 여성인권 운동가들의 이중성"에 대해서 짚어보려고 한다.

 

                                                                        ⓒ구글 이미지   

 

 

 우리 사회가 북한과의 대치 문제로 인해서, 성인이 된 대다수 건장한 남성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있는 사회라는 사실은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만큼의 "사회적 보상"으로써, "군대 가산점"이 존재하였었으나 ...여성단체들과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분들에 의해서 헌법소원이 이루어졌고 여성의 사회진출과 위상의 변화를 반영이라도 하듯이...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나옴으로 인해서, 이제는 역으로 남성들의 공직 사회 진출이나 전문직 진출의 기회는 줄어들지 않았는가...

 

 물론, 과거에 권위주의적이고 남성 주도적인 한국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한 여러 종류의 사회적 억압과 굴레를 감안하면, 분명히 진일보한 발전이며 민주주의적인 사회로 나가고 있다라고 주장할만한 명분이나 사례는 널리고 널렸다라고 필자도 십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원하는 권리를 확보한만큼 비워진 남성들의 국방의 의무에 대한 사회적 보상심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특수성 때문에 남성들은 당연히 군대를 가야 하고 그것은 의무이지 보상을 바랄 형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또다른 형태의 집단이기주의이자 무책임의 극치라고 판단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남성들이 국방의 의무를 치루는 2년 남짓이라는기간동안에 여성들은 사회 진출에 대한 준비를 할 시간적 여력을 얻었고, 그 결과로써 공직 사회나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같은 의료계 혹은 법조계에도 여성 진출의 폭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크게 늘어났다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한만큼 국방의 의무로써 보건소같은 의료 시설로 대변되는 외딴 시골 지역의 의료인들의 수는 그만큼 줄어들었다라고 말할 여지가 생겼다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 아닌가... 과거처럼 공직 사회나 법조계 혹은 기타 국가공무원급에 준하는 시험에 반영된 군가산점이 폐지된만큼 여성들이 차지한 자리수가 늘었다라면, 남성들이 담당하였던 국방의 의무에 준하는 책임과 의무도 병행해야 형평성에도 맞고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부응하는 진정한 시민이 아닐까...

 

 비박계 3인방 중의 한명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이재오가 남북한 분단 상황을 언급하면서, 여성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이재오의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인가...아니면, 국방의 의무라든가 그에 준하는 "남성들만의 의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들은 나몰라라 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발언인지에 대해서는 정말로 진지한 토론과 사회적 공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흔히, 전세계를 주름잡는 유대인들의 탁월함과 우수성을 논할 때...우리는 그들의 가정 교육과 나라를 지키려고 중동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었던 이스라엘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런 이스라엘이 남녀 모두 국방의 의무에 대해서는 똑같이 짐을 짊어지거나 사회적 책임을 공유한다라는 부분들은 언급하지 않는 이 불편한 진실들...

 

 공중 보건의 의사들의 수가 점점 모자라서 정부가 장학의사를 선발한다고 목소릴  높여도...의사 자신들의 밥그릇과 이해관계에 묻혀서, 반대의 주장이나 논리는 내세워도 여성계를 주축으로 하는 여성의사들의 자발적인 헌신이나 사회적 책임론은 전혀 나오지 않는 이 볼쌍사나운 진보 성향 여성시민단체들의 행태...

 

 이재오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 정치적 이해관계와 자신들의 정치적 주관과 이해득실에 따라서...입장 표명조차 변변히 이루어지지 않는 이런 이상한 상황과 현실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할까...     

 

                                                        



 

 

 

 국방의 의무에 대한 일반 남성들의 이중적 잣대

 이제 본격적인 문제제기는 시작되었으니까 여성계뿐만 아니라 일반 남성들의 군대에 대한 이중적 잣대도 도마 위에 올려야 하겠다...

 

                                                                       ⓒ구글 이미지

  

 

 바로 얼마전에...   "축구선수 박주영 논란"을 여러분들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에, 박주영이 국방의 의무에 대한 입장을 정확히 표명하지 않았고, 그게 병역을 기피하려는 의도나 정황이 있다라고 논쟁이 확대되면서, 급기야 박주영 선수 본인과 홍명보 감독까지 나서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그간의 오해나 불신을 풀려고 노력하였지만 여전히 논란과 불신의 기류는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인데...이거 진짜로 불편한 얘기가 아닌가 싶다!!!

 

 잘 생각들을 해 보시길 바란다!!!

 

 지난 4.11 총선 전에 크게 이슈가 되었었던 제주해군기지 문제에서, 범야권과 진보 세력들이 보여준 주장이나 논리가 과연 무엇이었는가...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전에, 먼저 환경과 주민들의 인권과 의사를 존중하고 동북아시아에서의 평화라는 가치에 좀더 집중하여야만 한다라고 주장하였었고, 그 주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도 그런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바로 그런 부분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노무현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공통점과 실책을 비판하였을 때,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여러분들은 어떤 말들을 하셨는가? 

 

 우린 결코 안보라는 가치를 소홀히 하자는 것이 아니며, 주민들의 권리라든가 환경적 차원의 문제제기가 안보나 국방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국방의 의무...즉 군대입대에 대해서만큼은 어떠한 이론의 여지조차 없다라는 이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보아야만 할까...

 

 박주영이 외국에 나가서 열심히 축구를 하고... 그로 인해 한국의 위상과 이미지를 알리는데 기여하는 것은 안보적 차원이나 국방의 의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인가...반드시, 군대를 가야만 국방의 의무를 치룬 것이요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라는 사고는 당신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전체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생각들은 조금이라도 하시느냐는 말이다!!! 이것은 비단 연예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지성과 창의적인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외국에 유학을 보내거나 오랜 기간 체류시키면서 고도의 연구나 학습을 수행할 여지조차 줄일 소지가 다분하기에 드리는 얘기이다.

 

 물론, 이 부분도 가진 자들의 자제들이 외국에 나가서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병역을 기피한데서 온 사회적 불신이란 측면이 크기는 하겠지만....그런 부분에 매몰되어서 진짜 잠재력이 있는 유학생들까지 도맷급으로 불신이나 비난을 듣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그리고, 이런 이들에게 대한 병역의 의무는 군대 입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정의를 내리면 분명히 반발하거나 반박할 이들이 계시겠지만....솔직히 말해서, 과거 한국의 기득권과 특권을 누려왔던 자들의 병역면제와 그에 대한 열등감 내지는 피해의식과 분노 불만들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통해서 보상받거나 풀어보려고 그러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과거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필자는 안보와 국방이라는 가치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논조를 전개하는 입장이지만...반드시 군대 입대를 통해서만이 안보와 국방의 가치를 준수한다라는 대의명제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데...그 누구도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거나 정치적 소신을 보여주는 이가 없거나 매우 드물다라는 불편한 진실들...

 

 정말로, 군대 입대에 대한 합치된 의견만이 국방의 의무라는 신성한 가치를 지킬 길이라면...그에 합당한 사회적 보상과 기전도 마련되어야 사회적 불만도 쌓이지 않을 것이며...과거부터 불만의 원인격이었던 기득권 자제들의 병역 혜택과 보직 유무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루어져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게 필요이상의 분노와 울분을 토하는 비정상적인 사회 분위기부터 지양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여야만 하는 것 아니던가...

 

   

 

 

 

 그리고, 기득권층으로의 편입이 확실하게 보장될 가능성이 큰 법조계...다시 말해서, 사법연수생들이 군법무관이 아닌 일반 현역사병으로써 복무하길 꺼리거나 반대한다라는 부분과 연관시켜서, 한국에서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나 혹은 법조계 진출같은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은만큼의... 군대 보직에서의 형평성 문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SNS를 통한 사회적 이슈 전파나 논의는 집단지성이라고 강조하는 이들의 이중적 잣대

                                                                     ⓒ구글 이미지

 

 작년 2011년 12월 말경에...필자는 만3년이라는 공백 기간을 깨고 다음 뷰에 블로그 포스팅을 재송고하기 시작하였었다. 그전부터도 그랬었고, 당시에도 그랬고...필자를 잘 알고 있던 친지나 지인들은 필자가 블로그 포스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극구 만류하였었다.

 

 그들이 필자의 포스팅을 만류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필자처럼 진보도 아닌 것 같고, 보수도 아닌 것 같은 애매모호하고 중간자적인 글을 쓰게 되면, 양측 모두에서 비난을 받거나 신상털기 및 마녀사냥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었는데, 이미 필자같은 경우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정과 과오를 비판하면서부터 줄곧 당해왔거나...개인적으로 더욱 악화된 문제였기에...이미 마음의 준비나 각오를 하고서 포스팅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밝히면서, 이제 오늘의 마지막 파트인 SNS를 통한 이슈와 논의에 대해서 불편한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이미, 필자가 작년 12월의 포스팅에서도 분명히 짚었듯이...한국 사회에서 건전한 중도적 여론이나 공론을 형성한다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며...이에 대해서 보수보다도 인터넷과 SNS 여론을 거의 장악하거나 주도하다시피하는 진보 세력들의 책임과 문제 의식이 매우 부족하다라고 진단하였으며, 이런 부분들을 고려하거나 해결할 교육 시스템이나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라는 필자의 논조에 여러분들은 동의하실 수 있겠는가...

 

 이 부분도 잘 생각하시길 바란다!!!

 

 

 요즈음, 사회면의 뉴스를 살펴보면 자주 보이는 단어가 무슨무슨 막말녀 내지는 어떤 막말남 혹은 무슨 무개념의 노인 혹은 아줌마에 대한 동영상 유포와 그에 대한 진위여부로 SNS공간이 시끄럽거나 떠들썩한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지 않았는가...

 

 문제는...그렇게 해서 신상이 털린 이들이 대부분 사실관계나 당시 정황 혹은 개인 사정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특정 치부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부분들까지 일반 대중들에게 모두 노출되어 버렸으며, 그로 인해서 본의아닌 심적인 혹은 물질적인 피해를 보는 부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부분에서 그 누구도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이들도 없고...그런 동영상을 멋대로 올려서 마녀사냥을 유도한 몰지각하고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인 진짜 악질들을 반드시 찾아내거나, 그런 행태 자체를 뿌리뽑아야 한다라는 자정의 목소리는 비난의 화살이나 마녀사냥의 불길만큼 거세지 않았다라는 이 불편한 진실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악질적인 일을 벌인 이들에게도 집단지성이란 단어나 개념이 과연 어울린다라고 보시는가...

 

 

 그리고, 그런 행태를 보이는 몇몇 이들로 인해서 SNS규제에 대한 목소리에 동조하는 일반인들의 수가 점점 커진다라고 보여지지는 않는 것인가...

 

 당장, SNS를 통한 여러 장점에는 열광하면서도...그에 합당한 개인적 윤리의식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무차별적인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에 대한 부작용을 자정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하고 방치하는 이중적 잣대와 비겁함에 대해서,진보라는 가치와 단어를 들먹이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신가!!!! 

 

 결국엔...진보라는 단어와 가치는 자신들의 이해 관계와 정치적 신념 혹은 어떤 특정한 동기에 부합할 경우에만 실천하는 부수적인 항목이란 불편한 진실을 본인들 스스로가 여실히 증명하는 한...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진보적 가치와 중도적 목소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설 공간이나 여력은 없다라는 것이며...바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우려와 염려가 안철수 교수님을 향한 열렬한 지지로 연결된다라는 불편한 사실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P.S: 필자가 오늘의 포스팅에서 지적한 교육 여성 군대 SNS를 통한 신상털기 마녀사냥의 배후에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가면을 쓴 진영논리와 막가파식 이분법이 자리잡고 있으며...바로 그래서., 진보 세력들이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보수세력들 못지않게 일관성도 없고 이중적인 잣대를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으로 대변되는 양당구조가 가진 문제점과 안철수 교수님에 대한 사회적 지지에 대해서 좀더 논의를 피력하고 싶다...

 

 우선, 한국의 정당은 국민들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는 행태를 그동안 너무 많이 보여왔다라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이란 친노 인사가 4.11 총선 전에 민통당과 뜻을 같이 한다라고 하였고....당시 민통당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에 한미FTA협정 폐기서한을 일방적으로 발송하였다가 국민들의 지지를 까먹고 여론의 역풍을 맞았는데...그 이유도 사실 따지고 보면...노무현 참여정부 당시부터 4.11 총선이 있기까지의 장장 5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어떠한 성찰이나 대안도 없다라는 사실을 일반 국민들이 깨닫거나 무의식중에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4.11 총선이 끝나고 통진당 당권파가 부정경선의혹으로 지나치리만큼 보수 진보 양측 언론에 십자포화를 받는 것과 궤를 같이 하려는 것처럼...모든 책임을 통진당 당권파의 지나친 좌클릭에 돌리면서...자신이나 민주통합당은 사실 한미FTA를 큰 줄기에서는 처음부터 동의하였었고, 다만 ISD 조항 부분만 재협상하겠다라고 말바꾸기하는 모습은 상당히 한심스럽고 딱하다고 보여지지 않는가...

 

 어차피, 그 ISD조항도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의 협정문 조항의 내용과 하나도 틀리지 않는데...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 이명박 정부에게 공연한 정치공세를 하였다라는 말인가...그렇다면 정치적 도의로 보거나 국제적 외교에 대한 대권주자로써의 국정 철학으로 보나 우선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게 사과를 하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문재인과 민통당의 한미FTA에 대한 진실된 입장과 국정 철학...구체적 대안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필자가 이런 부분을 다시 짚은 이유는, 소위 범야권에 해당한다라는 이들이 현시대의 상황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적 질서 재편에 대한 성찰과 고민 혹은 해법에 대한 부분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전혀 신뢰를 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자연스럽게도, 이런 부분은 두번째 문제인 과거로부터의 사상과 관습이라는 부분에 매몰되어서 급변하는 시대의 가치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구태에 머물게 되고, 그런 모습들이 수권정당이나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이란 얘기를 하고 싶었다...

 

 과거부터, 군사 독재와 반민주주의 혹은 기득권으로 대변되는 재벌들이나 대기업 위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에 근거한 논리는 1970~80년대부터 지금까지 변화가 거의 없다라고 보여질만큼 그 내용이나 논리가 이미 구시대적인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이를테면, 대기업 위주의 경제 혹은 재벌들의 특혜가 문제이니까 이 부분만 해결하면 만사형통일 것이란 식의 논리 전개라든가...미국을 통한 종속적 외교와 관행이 한국 사회를 망치는 지름길이니까 미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라는 논리들은 이미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도 주구장창 읊었던 레퍼토리인데, 어디 일반 국민들의 현실이나 한국을 둘러싼 대내외적 여건들이 그렇게 만만하거나 녹록하더냐라는 말이다!!!

 

 새누리당은 사회적 보수주의자와 경제적 자유주의자 혹은 기득권층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이에 반해서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으로 대변되는 범야권 혹은 진보 세력들은 소수의 엘리트적 시민단체와의 연대나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같은 대기업 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거대 노동조합들의 이해관계와 주장을 읊어대는 하수인처럼 보여질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필자같은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들이나 무당파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더욱 늘리는 근본적인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측면들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정당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진영논리와 자신들의 지지층을 위한 립서비스와 정치행태에만 집중"하다보니, 시대적 변화와 상황에 점점 뒤떨어지게 되었으며, 이를 보며 실망하거나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는 필자같은 무당파 혹은 중도적 시민들의 지속적인 증가는 자신들의 정치력과 외연을 더욱 좁히는 족쇄가 되었다라는 점이다.

 

 유권자층의 외연확대와 시대정신을 추구하기보다는 특정사안과 이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합종연횡을 반복하는 소수 압력집단이나 로비 세력들에게 휘둘리고, 또한 그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점점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바로 그래서, 이런 정치 모리배들에게 실망한 중도적 성향의 필자같은 유권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본질과는 하등 상관없는 부분들로 무한 정쟁과 소모적 논쟁만을 거듭하는 기성 정치권에서 중도층을 잡아야만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라는 사회적 전망이 가능해진 것이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중도적 유권자들의 열망에 부합하는 인물이 바로 안철수 교수님이 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지 못한다면....문재인 이하 친노그룹들은 진짜 가망없는 것이라고 필자는 감히 단언하는 바이다!!!

 

 

 필자같이 중도적이고...과거부터 지금까지 정치 상황이나 한국 사회 여건에 대해서 진보 보수 양측의 장단점을 나름 취합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대한민국과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부합하는 길은 일자리 문제로 편의점 알바를 하루 실천해 보시는 것도 아니며, 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아래 과거 특전사 경력을 자랑하는 정치적 퍼포먼스에 있지도 않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만...정권교체에 대한 진실한 희망도 생기는 것이고...화합이라는 정신에 기반한 리더쉽도 바랄 수 있지 않겠는가...

 

 ...오늘이 6월 25일이란다...과거 한민족끼리 외세의 이해관계와 몇몇 국내 정치 세력들의 권력욕과 맞물려 벌린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지도 어언 60년도 더 훌쩍 지나간 이 시점에서도...여전히 진보라는 혹은 보수라는 이름 아래..사실은 전혀 진보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은 가치와 논리로써 일반 국민들의 눈과 귀를 계속해서 흐리는 한 ...

 

 

 한국 사회에서 일반국민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 정치적 여력이나 제반 세력의 출현은 초기단계에서부터 원천봉쇄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보수 세력들을 비난하거나 이분법과 진영논리에 기반한 막가파식 비난 행태와 정치적 반사이익에 골몰하는 "분단형 리더쉽"보다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화합과 희망의 리더쉽"을 가진 "안철수 교수님"같은 인물의 출현과 지지 세력들의 외연 확대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9. 6. 02:01
  요즈음 한국의 뉴스를 살펴보자니,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현정부로부터 국무총리 지명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말들이 굉장많은 모양새입니다. 특히 민주당이나 친노 세력 그리고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모두가 그를 가리켜서 배신자나 변절자 혹은 기회주의자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인데요...


  필자는 정운찬 총리 지명 소식을 들으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어서 몇 자 적어 보려고 합니다.

 권위주의, 흑백 논리에 물든 한국 사회, 그리고 메시아 대망론
  한국은 과거 유교 문화와 군사 문화에 기반하여 권위주의가 너무나도 만연된 그런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권위에 도전하거나 그것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당하거나 제거해야 할 주적(?!)으로 간주되어 철저하게 소외되곤 하였지요.

  그러다가, 지난 10년간의 민주화 정권을 거치면서 과거의 권위주의나 구태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그래서, 사회내 많은 영역에서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모습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권위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의 심성이나 의식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인지,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보여져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심히 안타깝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구태의연한 기존의 관행이나 모습들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고 반발을 하면서도, 속된 말로 누군가가 좀 뜨거나 잘 나간다 싶으면 거기에 편승하는 모습은 여전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가지다 보니 현재의 정치판이 환멸스럽고 근본적인 개혁이 실현되어야 한다라는 대전제에는 대부분 동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 스스로가 뭔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카리스마적 능력을 가진 인물이 출현하기를 기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시절,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김대중이 소위 친북좌파라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고서도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도 카리스마적인 인물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고, 그 다음 대의 대통령이 된 노무현에게서도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개혁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느꼈었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한 것이 아닌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다시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능력(?!)으로써 한국 경제를 과거 박정희 시절처럼 부활(?!)시킬 것이라고 믿어서 현재의 대통령을 선택한 것인데, 문제는 이런 형태의 지도자가 상황을 주도하거나 개선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라고 보인다는 점입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새로운 트렌드인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이 대변하는 시대적 흐름
  이 시점에서 얘기의 방향을 잠시 돌려서, 최근 한국 사회에 인기높은 연예 오락 프로그램들의 형태를 잠시 짚거나 논하고자 합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은 한 명의 카리스마적인 개그맨이나 코미디언 혹은 기타 분야의 연예인이 나서서 자신의 특출한 개인기와 입담으로 진행하는 형식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런 모습들은 점점 사라지고, 대신에 소위 리얼 버라이어티 토크 쇼라는 이름아래, 패널들이 각자의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큰 틀에서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는 연예 오락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었으며,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메인 MC는 단지 출연하는 이들의 개성과 매력을 최대한 끌어 내거나 프로그램의 분위기에 동화되도록 하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로써, 그 능력과 가치를 평가받는 시기가 되었다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이것은 마치 한국 정치판에서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끌고 나가던...다시 말해서, 주도형 리더쉽의 과거 정치 행태에서 벗어나, 점차 사회 각 계층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통합시켜, 전체적으로는 한층 질적인 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조정형 혹은 수평형 리더쉽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과 그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그토록 강조하던 수평적 네트워크의 정치가 아닌가라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판단하는데요...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무현이 그런 리더쉽을 지향함으로써 발생한 공과를 따지기에 앞서, 이런 사회적 시대적 흐름이 점차 강해지고 가속화되다 보니, 중도 개혁이나 실용주의 노선이라는 말이 상투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보다 집중하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과거 권위적인 군사독재 정권을 지나고 민주화 정부가 들어선 지난 10여년간 여야나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실용과 중도 개혁을 얘기하지 않은 정치 집단이나 그룹이 있었습니까?

  문제는 입으로는 모두가 중도와 실용을 강조하였지만, 그것을 현실로 보여준 이들이 없어서 정치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더욱 키웠으며, 그럼으로써 또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 속에 권위주의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나오기를 바라는 혼란스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 혹은 한국 정치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현정부가 탄생한 배경에는, 중도 실용을 강조하던 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한 염증 환멸로 인해, 권위주의의 잔재인 소위 메시아 대망론을 열망하던 다수의 국민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또한 현정부가 보이는 구태의연한 정치 행태에 대해서 반발하는 이유도, 다름아닌 권위주의에 대한 부정이라는 이 지독한 아이러니를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한국 사회에는 더 이상의 질적인 개선이나 발전은 없다라고 필자는 감히 주장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국무총리 내정 소식이 들려 옵니다. 또한, 민주 진보 진영에서는 한결같이 그를 향해 가시돋친 비판과 함께, 부정적인 전망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소식들도 보입니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머무는 일개 블로거인 필자가 보기에도, 지금 이 시각 민주 진보 진영이 그러는 이유야 너무나 눈에 뻔히 보이지만, 잠시 언급을 하고 가려고 하는데요...

  정운찬이 과연 어떤 인물인가요? 한국 내에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미국에 유학와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가 그가 지금껏 보인 모습은 비록 사람들마다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대체적 시각으로는 중도 실용 노선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래서,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그에게 한은 총재 자리를 맡기려고 했었고,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도 경제 각료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정운찬에 대해서 민주 진보 진영이 얼마나 환영 일색에 후한 평가를 했었는지, 당시 상황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다 알고 있는 얘기이지 않습니까? 또한, 그동안 현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비판하였었고, 대운하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기에, 지금에 이르러서 정운찬 총리라는 타이틀이 민주 진보 진영에게는 너무 낯설고 일종의 변절이나 배신에 가깝게 느껴지겠지요...

  솔직히 말해서, 필자도 개인적으로 정운찬의 최근 행보에 대해 지식인의 역할과 개인적 욕망간의 괴리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지켜보며 실망과 회의를 느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운찬을 맹비난하거나 인간 이하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대응이나 반응은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일반 국민들이 보기엔 그동안 현정부를 강하게 비판하였던 명망이 있고, 민주 진보 진영에 가까워 보이던 인사가 현정부의 총리가 된다라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정부가 중도 실용 노선을 추구한다라는 강력한 신호로 보일 것이며,

  또한, 과거의 권위적인 리더쉽이 아닌 수평적 조정적 의미의 리더쉽을 추구한다라는 표면적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강력하게 심어줌으로써, 그간 쌓였던 여러 불만들...그리고 그로 인해 무의식적으로라도 형성된 반발심을 크게 누그러뜨릴 여지가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상치 못한 돌발적(?!) 상황이 일어났다면, 즉각적인 비난과 냉소적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일단 사세를 관망하고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도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라고 개인적으로 판단합니다. 

  한번 생각들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얼마전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미디어 법에 대해서 사람들이 반발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판단합니까? 진정 미디어 법이 부르게 될 폐해나 영향력 때문에 그랬다고 보시나요? 정말 그렇다면, 지금쯤은 벌써 작년의 촛불 집회를 능가할만한 국민적 관심과 저항이 뒤따라야만 하는데, 왜 이토록 조용할까요? 민주당은 왜 전면적인 장외 투쟁 노선을 접고 무조건적인 원내 복귀를 하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가 판단하기엔 국민들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보였던 날치기 통과에 대한 반발심과 염증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지,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자기 반성 혹은 성찰과 비전 때문에 미디어 법 통과에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라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미디어 법을 빌미로 장외투쟁을 벌이는 민주당에게 민심이 그토록 싸늘한 이유도 정작 민생 법안과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은행법에는 철저하게 무심하면서, 유독 미디어 법에 대해서만 민주주의와 국민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올인하려는 모습이, 마치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로 비쳤기 때문이 아닌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지며,

  그런 측면에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 보아도, 이번 정운찬 총리 내정 소식에 대한 민주 진보 진영의 반응이라는 측면으로 보나 정치 역학 구도 면에서나, 모두다 좋은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결론: 코미디 프로그램만 못한 민주 진보 진영의 구태를 청산해야 비전과 희망이 보인다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소식으로, 특정 인물이 민주 진보 진영을 주도하는 시대나 상황은 이제 막을 내린 상태에서, 지금 민주당이나 친노 세력과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이 그러하듯이, 이미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을 아무런 단점이나 과오가 없는 거의 신격화 수준으로 미화해서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고,

  그것
을 바탕으로 정치를 하려는 구태는 이미 탈권위주의를 지향하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다지 반갑거나 신선한 소식도 아니며, 또한 그런 퇴행적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서 주도권 다툼과 기득권에 골몰하며 서로간에 분열과 반목을 자초하고 있으니까 자연히 민심이 등을 돌리게 되고,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필자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당파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필연이겠지요...


  따라서, 이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고 돌파하려면, 이미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에게 카리스마적인 이미지나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작업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우선 과거 김대중 국민의 정부나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의 잘못된 정책이나 부분들에 대해서는 서로가 혼쾌히 인정하며, 처절한 자기 반성과 세밀한 점검을 통해서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비전과 대안을 마련하고, 그럼으로써 지금 남아 있거나 살아있는 자들끼리의 분권형 혹은 조정형 리더쉽을 추구하는 참신한(!!!) 모습들을 대다수 국민들에게 똑똑하게 보여 주어야만 하는데,

  과연 지금의 민주 진보 진영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현정부와 수구 세력들은 구체적인 내부 실상이나 사정은 어떻든간에, 일단 표면적으로는(!!!) 갈등 반목하는 모습들을 최대한 자제하며, 무늬만이라도(!!!) 중도 통합적인 모습을 보여 주려고, 정운찬이라는 깜짝 쇼와 회심의 카드(?!)를 국민들의 눈 앞에 내놓을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하였느냐는 말이며,

  이는 한국에서 지금 한창 인기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형태인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보다도 못한 구태 중의 구태이며, 이런 모습들을 가지고서는 진정한 개혁과 민주주의 구현도 요원하다라고 필자는 판단하면서,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칩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8. 31. 00:50
  엊그제 한국의 인터넷 뉴스를 잠시 살펴보니 진중권 교수의 홍대 강의도 날아갔다라는 제목의 소식이 보였습니다. 얼마전, 중앙대 교수직 해임에 이은 소위 수구 세력들의 진중권 죽이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모양인데요...그런 우울하고 답답한 소식 한편으로 한국내 수 많은 네티즌들이 응원과 격려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라는 이야기들도 얼핏 보이던데, 이렇게 본의아니게 말도 많도 탈도 많은 진중권이란 인물과 그의 교수직 해임 소식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디-워 논쟁을 통해서 진중권의 성향과 지향점을 확인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진중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디-워 논쟁입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말기였던 지난 2007년 여름은 심형래의 디-워라는 영화로 한때 굉장히 소란스러웠습니다. 당시엔, 디-워나 심형래에 대해서 비판적인 말을 한다라는 것은 정말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대책없는 집단주의와 과도한 여론의 쏠림현상에 대해서, 아주 오래전부터 극심한 혐오감과 회의를 느끼고 있던 필자의 눈에 들어온 인물이 바로 진중권이었던 겁니다.

  지금도 필자는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MBC 100분 토론에서 디-워를 비판하는 입장의 토론자로 나섰던 진중권이 한 말들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디-워가 무슨 영화 비평을 할만한 영화가 아니고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도 아니지만, 네티즌들이 하는 모습을 보니까 시쳇말로 꼭지가 돌더라구요...지금 디-워나 심형래 감독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입니다. 다들 말을 못하는 분위기에요...심형래 감독과 디-워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 왜 위험합니까? 이게 무슨 국가보안법입니까? 바로 그렇게 말하는 것에서 지금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보인다는 말입니다...한국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코드가 미국에서도 먹힐 것 같습니까?...코리아 레전드...그런 거 미국애들 관심도 없고 아예 몰라요...심형래 감독은 미국에 가서도 인간극장 할 겁니까? 무릎팍 도사 할 수 있나요? 그런 거 미국에서는 못합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진중권의 이 말들은 대부분 진실임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디-워를 비판함으로 인해서 그는 네티즌들의 공적과도 마찬가지 처지였고, 100분 토론후 디-워 지지자들의 대책없는 인신공격성 비난과 악플에 대해서 진중권이 보인 냉소와 조롱에 가까운 댓글 때문에 더더욱 그는 인기없고 시쳇말로 네가지 없는 논객이 되었었지요.

  당시 필자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그를 보면서 참 용기있고 신념과 근성이 있는 사람이구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한국처럼 타인의 시각과 의견에 너무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독특한 폐쇄 사회에서,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얘기를 한다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개인적으로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리고, 진중권이 비판하고자 한 실체와 본질은 디-워나 심형래가 아니라 바로 아무 생각없이 몰려다니는 군중심리와 극단적 형태로 표출되는 국가주의 집단주의 코드임을 확인하고 더욱 동질감을 느꼈더랬습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노무현 참여정부 시기에도 이곳 다음 뷰는 노무현 지지자들이 다수 포진한 사이버 공간이었는데, 진중권은 노무현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주의적 정책과 정책 수행상의 문제점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다음 뷰를 장악하고 있는 노무현 지지자들의 비난과 공격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일련의 모습을 가만히 돌이켜 보고 종합해보면, 진중권은 다수의 의견과 입장이라는 이름아래 저질러지는 모든 종류의 횡포를 대단히 싫어하고, 자신들은 어떠한 잘못도 없다라는 식의 모습을 보이는 집단이나 세력에 대한 비판을 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며, 

  바로 그랬기에, 조중동이나 한나라당같이 자기 반성이 하나도 없으면서 부와 권력을 독점한 자신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최고이며, 반대자들은 모두 사상이 의심스럽거나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전혀 없는 반역자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매우 강한 비판자적 입장이 되는 것은 일종의 필연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진보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화려하게 부활을 했는데 문제는 이때부터였다라고 필자는 판단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과 촛불 집회에서 보인 진중권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매우 실망스러웠다
  2008년..그러니까 작년 여름은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대대적으로 열렸던 시기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너무 성의없고 대책없는 쇠고기 협상을 해 버려서 많은 분들이 분노했고, 거리에 나와 자신들의 입장과 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정부에게 요구를 했었지요. 그리고, 그 당시 현정부가 보인 협상과정상의 행태나 졸속 협상임이 드러난 다음에 보였던 일련의 모습들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으니 비판을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좀더 냉철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려면, 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그렇게 대책없이 진행되었었는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노무현 참여정부 시기부터 철저하게 과정들을 되짚어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따져 보아야만 했는데, 당시엔 그 누구도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에 필자가 너무 당황스러웠던 것은,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졸속으로 다룬다고 그렇게 비판을 가하던 한겨레나 경향신문같은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 참여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정상의 문제를 누누히 지적하였던 민노당의 강기갑 의원같은 이들마저, 하루 아침에 말을 바꾸어 노무현 참여정부만큼만 하시라는 뜬금없는 소리와 실속없는 주문을 하는 것을 보며, 뭔가 상황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서 원인과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현정부에게 당장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게끔 하려고 하다보니까, 그 때에는 그런 말을 할 여유가 없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현정부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민주 진보 진영의 통합을 위한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이건 전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한 구호나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촛불 집회 이후에도 원인과 과정상의 하자를 정밀하게 분석한 이들이나 진보 시민 단체는 그 어디에도 없었으며, 현실적으로 아무리 따져 보아도 한국은 절대로 미국과 동급의 국가도 아니었고, 역대 어느 정부도 미국에게 한국 국민들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시킨 전력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 미국산 쇠고기가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고 풀렸는지에 대해서...다시 말해서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과정상의 파격적인 절차상 축소라든가 전국 각지의 영세 식당이나 정육점등에 대한 관리 감독 체계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그 누구도 지적이나 비판을 하지 않으면서, 그래도 노무현은 30개월 연령만은 지켰다라고 마냥 칭송하고, 다음을 대표한다는 토론방인 아고라에서는 이른바 [퇴진 명박]이라는 제목하에 내용도 거의 비슷한 수 많은 도배글들로 온통 장식이 되었었으며, 더더욱 한심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에게 보인 모습을 비교하는 사진이나 이미지같은 것들을 이용해서, 현정부를 맹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정말로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서 사람들이 그토록 강하게 반응한 것은 그것이 대다수 국민들이 접하는 먹거리에 관한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졸속협상에 따른 재협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단순한 먹거리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이란 사안 속에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맺은 국가 안보 외교 경제적 관계들의 모순들이 첩첩히 쌓여있는 그런 종류의 차원이나 난제였었는데, 당시 촛불 집회에 나온 이들은 한결같이 이런 복잡하고 심층적인 문제는 전혀 생각을 안하고, 계속해서 아무런 실체도 없고 그저 구호나 허울뿐인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이것도 엄밀히 따지자면, 민족주의 국가주의 혹은 집단주의 코드의 또다른 형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와 재협상을 말하니까, 현정부와 촛불집회 참가자 사이에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서로간에 원망과 증오만 쌓였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정말 눈쌀 찌푸리게도 전경차를 밧줄로 묶어서 끌어내고 차량에 불을 지르는 극단적인 폭력시위 행태까지 보인 것이지요. 또한, 시청앞에서 장사를 하던 일단의 상인들이 촛불집회로 인해서 손해를 보았다며 소송을 내자, 광우병 대책회의에서 보인 반응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신상 명세를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소위 여론 재판이나 마녀 사냥을 유도하였었는데, 그건 정말로 정상이 아니었으며 광우병 대책회의의 대응이 너무 무책임했다라고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이들도 상당했는데, 진중권은 당시 어디에서 무엇을 했었을까요?...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진중권은 촛불집회에 매일같이 참석하고, 현장 소식을 전하는 일을 주로 했었습니다. 또한, 촛불 집회와 관련해서 또다시 손석희의 100분 토론에 토론자로 참가하여 현정부를 강하게 비판하였지요. 문제는, 촛불 집회자들이 보이는 과도한 시위 행태나 쇠고기 졸속 협상의 원인을 제공한 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적 얘기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부분에서 촛불 집회가 한창이고 현정부의 과격한 시위진압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감정이 극도로 복받친 작년 이맘때라면, 진중권의 그런 모습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진정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미국과의 관계적 모순 타파와 보다 나은 사회를 구현하려는 대표적 진보 논객이라면, 1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쯤에는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 자행되었던 쇠고기 졸속 수입 과정상의 하자와 문제점들을 냉철하게 되짚어보는 모습이 있어야만 했고, 촛불시위 과정상에서 보였던 비정상적인 모습들에 대한 자기 반성이 보여야 했는데, 그 후에라도 그런 모습들이 대표적인 진보 논객 진중권에게 있었나요?...

  이건 모든 종류의 집단 쏠림현상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던 진중권의 평소 모습과도 많이 다르고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반향의 정치적 포지션을 취하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교수직 해임과 강의가 날아간다라는 소식이 들리는 지금이야말로 진중권이 원래의 날카로운 모습을 되찾고 한층 강해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임으로써 진중권은 이제 천길 낭떠러지에서 퇴로가 없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게 된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수구 세력들에게 찍힐만큼 찍혀서 교수직도 다 날아갈 판국이며, 지금 뜨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듣보잡 변모씨같은 이들에게 각종 인신공격과 근거없는 의혹 공세에 시달리고 있으며, 또한 각종 법적소송에도 휘말려 있다지요...

  이건 하나의 가정인데, 만약 진중권이 촛불집회 소식을 전하면서 평범한 일개 블로거를 지향하는 필자처럼 현정부의 졸속협상도 문제이지만 그 전에 원인을 제공했던 노무현 참여정부도 문제가 많았다라고 말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수구 세력들이 법적 소송이나 교수직 해임을 거론하기 전에, 오프라인상에서는 촛불 시위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린치나 매도를 당하거나 사이버 공간상에서는 온갖 인신공격과 조롱으로 인해 시쳇말로 매장되지 않았을까요...그리고, 별로 영향력(?!)이 없는 논객으로 다시금 자리매김을 했을 것이고, 자연히 수구 세력들이 소위 블랙 리스트에 올려놓고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물론 당시에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덕분에(?!), 지금 이 시각 진중권을 구하려고 여러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고 있기는 하지만, 그 대응이란 것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무기력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뿐일까요?...

  다른 주장들은 다 접어두더라도, 어떻게든 진중권을 구하려고 하다보니 뜬금없이 시간제 강사들의 집단 해고와 처우 문제까지 거론하며, 진중권이 이대로 해임이 된다면, 시간제 강사들의 처우 문제는 이제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지를 펴는 이들이 몇몇 보이던데, 한번 곰곰히 생각을 해 봅시다. 


  그동안 대학에서 시간제 강사들이 당하는 여러 불평등과 처우 문제가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까?...또한 시간제 강사의 처지와 어려움을 호소하며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저버린 이들은 단 한명도 없었던가요?...그리고, 과연 그런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 난 후에 여러분들의 반응과 시간제 강사에 대한 사회 인식이나 대우는 근본적으로 많이 달라졌었나요? 진중권이 아무 이름도 없고 허울뿐인 직함을 가진 시간제 강사들과 동급으로 인식되는 처지입니까?... 

  이 부분에서, 여러분들의 이해를 좀더 돕고 동의를 구하기 위해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하나 털어 놓겠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필자가 다녔던 회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아주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었고 자연히 회사내에 노조가 있었으며 민주노총 산하에 속해 있었습니다.

  2003년...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전 어느 날, 필자는 노조의 대의원을 선출하는 자리에서 민주노총의 무슨 지부장인가 하는 직함을 가진 이와 자리를 동석해서 간단하게 상견례를 하고 서로 명함을 주고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필자가 속한 노조도 임금협상을 한다고 파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파업의 와중에서 필자는 마음이 그리 편치가 않았는데요... 왜냐하면, 정직원들은 자신들의 임금과 처우 문제를 파업을 통해서 회사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들이나 용역업체 직원들 그리고 아르바이트들은 끽소리도 못하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막연하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분명히 깨달았
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필자는 휴게실 한켠에서 그들끼리 나누는 비수같은 원망과 하소연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그들은 말하길, 왜 자신들의 처우 문제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면서 비정규직 처우 문제 개선이라는 구호를 걸고 임금협상을 진행하는지와 함께, 파업을 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감은 더욱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노조원들은 전혀 미안한 줄을 모른다라는 말이 지금도 기억속에 똑똑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정직원들처럼 총파업을 하고 회사에 요구할 것 하면서 좀 지내보고 싶다고도 말하더군요... 또한, 파업이 끝나면 정직원들은 그동안 일도 전혀 안했으면서 밀린 임금 다 받아가고 있는데, 이거 가만히 생각하면 회사보다 더 얄밉고 짜증나는 것이 바로 정직원들이고 파업을 배후에서(?!) 부추기고 주동하는 민주노총이라고 말입니다.

  필자는 당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뜨끔했으며 머리속에 깊이 새기고 있다가 노조의 대의원 대회를 마치고 난 후 뒷풀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 민주노총의 무슨 지부장이라는 사람에게 진지하게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그랬더니 이 양반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아십니까?...필자가 하는 얘기가 다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슬그머니 필자의 옆자리를 떠나 다른 이의 자리에 가서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누더군요...

  바로 이런 모습과 진중권의 처지나 상황이 본질적으로는 같다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들이 진중권을 구한답시고 시간제 강사들의 집단 해고 문제와 처우 개선까지 논하는 것이 정작 이 시간에 박봉과 온갖 불평등한 처우에 허덕이고 지친 시간제 강사들에게 얼마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일지 깊이 생각해 보셨나요?...언제부터 여러분들이 시간제 강사에 대해서 그토록 관심을 보이고 배려를 하셨나요?...미국에 머무는 필자가 보기에도 진중권을 염두에 둔 너무 도식적인 행태라고 생각되는데, 왜 보이지 않는 잠재적인 적들을 자꾸 늘리는 얄팍한 술수를 쓰려고 하지요? 진중권이란 인물이 강의 몇 개 못한다고 당장 생계마저 위급한 시간제 강사들과 똑같은 처지입니까?... 

  한번 다들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여러분들이 지금 진중권에게 보이는 그 넘치도록 충만한 성원과 격려가, 모든 것을 다 떠나서 한 개인이나 인간에게 보내는 정말 순수하고 진정성이 있는 것들인지, 아님 정치적 포지션과 상황에 따라 현정부를 마구 까대고 비판해주는 진중권의 지금 논조만이 마냥 좋아서 잠시 그러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제 진중권은 어느 한 방향의 극단을 본의아니게 택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실현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만약에라도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의 노력이 빛을 보아서 진중권이 교수직에 복직을 하던 혹은 아니던간에, 그는 이미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입은 격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서, 이제 두번다시 과도한 형태의 집단 쏠림 현상과 네티즌들의 군중심리에 대한 허심탄회하고 날카로운 비판은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진중권이 여러분들을 향해서 그런 비판을 또다시 하게 된다면 그는 진짜 은혜와 도리도 모르는 상놈이라는 수치스런 타이틀이 하나 추가되면서, 한국 사회내에서는 그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겠지요...

  지금도 노무현이라면 무조건 잘했다라고만 말하고 온갖 허접한 자료와 통계들로 억지를 계속 부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과거 참여정부의 여러 실정에 대한 처절한 자기 반성이나 성찰이 전혀 없는 친노 세력들의 신당창당의 문제점과 한계라든가, 소위 민주 진보 진영의 통합을 위해서는 진보든 민주당이든 혹은 친노든간에 전부 처절하게 자기 반성을 할 수 밖에 없게끔, 진짜 날카롭게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통렬히 비판을 가해야 하는 진정한 논객의 입장을 취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었다라는 얘기입니다.

  중앙대 교수직에 이어 홍대 강의마저 날아갔다라고 네티즌들에게 호소하는 그의 모습에서, 매사 흑 아니면 백을 기어이 선택하게끔 만드는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분위기와 내부 비판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전근대성과 폐쇄성을 새삼 확인하며 다시 한번 개인적으로 마음이 너무나 아팠었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히 안타깝지만 진중권이란 논객의 수명과 한계가 서서히 보인다는 점과 함께, 정말로 솔직하게 말해서 결국 그도 인간이기에 자신의 이름값에 너무 집착하고 연연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한가닥 불순한 의구심도 잠시 가졌었으며, 

  마지막으로, 바로
지금이야말로 진중권은 개인적으로 더욱 강해지기 위한...다시 말해서 진정한 고독의 미학을 추구해야 할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도래했으며, 이제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더욱 날카로우면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논조를 지닌 논객으로 거듭나기만을 바랄뿐이라고 필자는 판단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성매매 여성을 주변에서 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여성을 보셨다면, 어떤 생각들을 떠올리십니까? 대부분의 남성이라면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한번쯤 훔쳐 볼 것이고, 여성분들이시라면 자못 눈쌀을 찌푸리거나 혐오스런 마음으로 해당 성매매 여성들을 넌지시 바라 보시겠지요? 

  필자도 남성인 관계로 그런 여성분들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이나 가슴, 몸매의 굴곡에 시선이 가서 꽂히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관념상으로나 머릿 속으로는 필자와 같은 혈기왕성한 남성들의 성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여성의 성까지도 철저하게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렇게 무섭구나라고 생각하며 절치부심하곤 합니다.

 
 프롤로그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금도 경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분들은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에 부차적인 것이거나, 사회 구성원들이 원한다
면(?!) 언제든지 바꾸거나 선택 혹은 통제할 수 있는 체제, 이념 정도로 간단하게 치부하거나 생각하시겠지만, 필자는 그런 식의 어설프고 순진하며 이상에 찬 이분법적 견해와 단순 무식한 사고 체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한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든 혹은 그것과는 다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를 지녔던간에, 그 곳에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일단 침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매우 흡사하게 변해 버리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성매매 여성들이 아닐까 싶어서, 오늘은 영화 인터걸을 통해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진단하고, 결론 부분에서 필자가 하고픈 얘기들을 조목조목 소개하면서 이 포스팅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인터걸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구소련 개혁파들에 대한 강렬한 의문이 생기다
  여러분들은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지금의 러시아에서 공공연히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구소련의 후신격인 국가입니다. 구소련은 한때 자본주의 체제의 본산인 미국과 일대 자웅을 겨루었던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지닌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지요.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소위 시장의 원리보다는 공공재의 개념과 국가의 역할이나 기능이 매우 강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사익 추구나 각 집단간의 사적 이해 관계보다는 국가 혹은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도록 규정하고, 그런 이념과 사상을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통하여 끊임없이 주입시켰으며, 국가 경제는 철저하게 계획 경제의 개념으로 움직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렇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시킨 사람들의 노동 의욕은 갈수록 떨어져만 갔고 방만해진 정부 내 관료들의 무사안일함과 부정 부패는 극에 달했으며,  사회 전반에 대단히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사고가 넘쳐 흐르다 보니까, 점차 구소련 사회 전체가 활력을 크게 잃어 버리면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경제적 여력마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여러 군소국가들을 지원하기는 커녕, 중앙 정부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참담한 실정에까지 이르렀으며, 바로 이것이 구소련의 경제적인 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하려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낳은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와중에 나온 영화가 인터걸이었는데요. 필자가 짐작하기엔 아마도 지금 한국의 10대와 20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잠시, 인터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인터걸 개봉당시 고르바초프를 위시한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이 영화를 보며 " 인터걸이야말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정한 산물 " 이라고 찬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강렬한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세계 초강대국 소련의 최고 권력자와 개혁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행하던 구소련의 최고 엘리트인 개혁파 세력들이, 당시 구소련의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기로서니, 고작 성매매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보고서, 그토록 극찬을 하고 구소련 내에서만 영화 관램객이 무려 4천만명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의문은 당시 어린 나이의 필자가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경제적 지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졌음을 훗날 깨달았는데요. 
필자가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로써 훗날 깨달은 고르바쵸프를 위시한 구소련 개혁파 세력들의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소련은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익 추구를 금기시하다 보니 사회가 점차 극단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은 필연이었겠지요. 자연히 유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잔재해서 성문제에 관한한 제대로 된 공론조차 나오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 구소련도 성과 성담론을 극단적으로 터부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당시 구소련에서는 지금의 러시아에서와 같은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는 존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폐쇄적이고 경직된 체제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로 인해 소위 시장 개방의 물결이 구소련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성적인 측면도 활짝 열리게 되면서 인터걸이라는 존재가 생겨났고, 이것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당시 소련인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것인데요..

  ...문제는, 당시 고르바초프나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그저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려는 자본주의 체제보다는 인간적인 가치와 사회 공동체적 이상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100%로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생각이 영화 인터걸의 주인공인 타냐가 경제적 안정을 원해서 스웨덴으로 가지만,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시 소련으로 돌아간다라는 기본 줄거리에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 배경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이미 알다시피, 고르바초프와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이 확신에 차서 추진하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로 대변되던 시장 개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 증명이 결코 아니었으며구소련 체제내에 시장 개방의 물결이 가속화될수록 급격하게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제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로써만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소련의 붕괴와 몰락을 외신을 통해 바라보면서 소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함께, 그로 인한 필연적인 역사적 종말을 갈망하였던 필자나 그 밖의 많은 운동권 선후배들은 커다란 충격과 방향 상실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필자도 그랬었지만, 한국 사회내의 수 많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가들은 소위 물질 만능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도로 경멸하였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소련 붕괴 당시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선뜻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인정과 자기 반성, 그리고 성찰과 학습의 깊이가 점차 심화되고,  대학 졸업후 사회에 진출하여 정말로 돈 많고 능력이 있으며 똑똑한 이들을 많이 알고 사귀게 되면서, 그리고 사회와 회사를 통해서 이론이 아닌 실무적인 경험들이 하나 둘씩 쌓여 가면서, 또한 간간히 외국 출장등을 통해 현지 실정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20대 초반 무렵의 필자가 거의 신앙처럼 믿고 간직하였었던 무슨 가치와 사실의 구분같은 이분법적인 생각이나 민주주의적 가치 추구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거나 혹은 그것을 추동하고 바꾸는 근본적인 힘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인데, 이제 그 성찰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에필로그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개혁파 세력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일부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공산주의 체제에 들어와도 사회 구성원들의 투철한 공동체적 의식과 가치,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수십년간 다듬어진 사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질서와 통제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까지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는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서 사회 전반에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외려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동안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극도의 불신 회의와 함께, 중앙 정부에 대한 주변 복속 국가들의 반발까지 겹쳐지면서, 당시 구소련 사회 전체에 위기감을 크게 증폭시켰으며, 

  이런 급격한 사회 혼란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우려하고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쿠데타를 부르게 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더더욱 구소련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급격하게 상실시킴으로써, 결국엔 구소련 공산주의 체제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소련의괴와 몰락으로써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그저 소설이나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만 치부되고 마는 상황이 온 것이지요.

  그 반면에 자본주의 체제는 어떨까요...자본주의 체제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분명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었는데요. 과거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든 심각한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 대공황이라는 사태였죠.

  당시 자본주의는 정말로
생존 자체가 의심될만큼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소위 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었던 시장의 원리와 합리적 인간의 경제동이나 선택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철저한 허구였음이 만천하에 증명된 역사적 사건이 바로 대공황이었는데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대공황 당시 자본주의 체제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그랬듯이,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과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을 일부 받아들여,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복지와 공공재의 성격을 크게 강화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형태로 일대 변신을 꾀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입니. 한마디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자 그 모습이 크게 변형되거나 무너졌었는데, 자본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오히려 더욱 강고한 체제로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구소련
의 공산주의 체제는 전제 군주에 맞서 일어선 농민과 노동자들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서 세상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사상과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서 비롯되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의 익성과 공공재, 그리고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과 만인의 평등을 열렬하게 추구하고 꿈꾸었었던 희대의 천재들이자 철두철미한 상가이며 행동가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와 이상, 천재들 나름의 투철한 개인적 실천, 그리고 세뇌 수준에 가까운 사상 이념 교육들은 정작 현실에서 대다수 평범한 인간들의 기본적인 성향과 본능과는 그리 맞지 않았었던 겁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기심과 탐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공공재와 공익성, 인간적인 가치를 아무리 강조하고 주장해도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으며, 바로 구소련처럼 종국에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상실하고 무너지게 되었던 겁니다.

  따라서,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적절하게
사람들의 기본 욕구도 채워 주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는 강력한 배경이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고, 개인만의생활과 사익 추구를 터부시하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또한 그것을 통해서 자본의 논리를 또다시 강화시키고 그 범위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는 완벽에 가까운 피드백 시스템을 갖춘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특정 사회 내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과 행태는 세계 어디든지 비슷하게 변하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아닌가라는 말입니다.

  필자가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을 다룬 자료 몇 가지를 세세히 살펴보니, 지금의 러시아 젊은이들은 구소련의 기억들이 거의 없으나 바로 위에 부모 세대들은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이것이 급격한 시장 개방과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또 하나의 세대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사회적 요인이 되고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과거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며, 개인의 행복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한결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니, 이거 한번 깊이 생각할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바로 이측면에서 이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한 영역에서 사회의 공익성과 공공재의 개념을 추구하고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는 과연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통제하거나 제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것이 인간의 기본 본성이나 욕구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일까요?...

  산업 혁명이 발발하고 시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사회 집단이 역사에 출현하며 자본주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과거부터 지금 현재까지, 세계 유수의 모든 경제학자들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상하는 정치가와 시민 사회 모두가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한 그 근저에 도사린 본질적인 난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각 한국사회 내에서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위 미디어 법 문제도 결국 이것과 동일한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의 본능이라는 영역까지도 침투하고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단지 민주주의적 가치와 공공재라는 막연한 구호와 이념만으로써,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이나 절충 혹은 타협 없이도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취사선택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문제냐는 말입니다.


  필자는 구소련의 영화 인터걸과 그것의 실제 연장판격인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동안의 끊임없는 학습과 사회 경험등을 모두 종합해 볼 때, 자꾸만 회의적인 결론이 도출되며, 이런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일개인이나 어떤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막거나 거스를 수 없다라 일종의 무기력과 절망감,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진실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심각한 우려와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 오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좀더 생각해 볼 문제
  대공황 당시의 자본주의는 소위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시장의 원리를 맹신하였고 합리적 인간의 선택과 경제적 행위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다가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 공산주의 이념을 일부 채택하여,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말하는 복지 국가와 사회 공공재의 개념이 탄생한 것인데요.

  문제는, 인간이란 존재가 태생적으로 이기심과 탐욕을 가져서인지 이런 역사적 교훈을 철저하게 망각하고, 또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시장의 질서만을 강조하고 공공재와 공익성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불황을 낳았다는 것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모두 동감하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과거 대공황을 극복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을 취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또다시 복지라든가 공공재의 개념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 체제나 역사가 수렴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경제 불황은 과거 대공황 때만큼의 위기는 아니기에, 모든 것을 상품화시킴으로써 결국 인간까지도 하나의 자원이나 물질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심화를 좀더 지켜 보아야만 모종의 결론이 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그런 결말이 필자나 여러분들 생전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7. 24. 05:04
  미디어 법의 절차상 하자 문제를 두고 또다시 시끄러운 한국 사회를 지켜 보면서 필자는 바로 어제, 미디어법 반대, 참을 수 없는 논리의 가벼움이라는 포스팅을 작성하였습니다. 
 
  그 포스팅의 내용인즉슨, 한나라당의 소위 날치기 통과가 문제라지만, 좀더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은 그들을 지지하는 핵심 계층을 결집시키고, 이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책을 하겠다고 하는 차원에서 일말의 진정성이라도 보이는 반면에,

  지금의 제1야당인 민주당은 지지층을 결집시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지지층을 만들만큼 이해 관계를 뚜렷하게 반영하는 실제적인 법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또한, 인터넷에서 현정부와 여당의 미디어 법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이들이 보인 논리가 사뭇 비약되고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하였는데요.


  문제는, 필자의 포스팅을 본 일단의 사람들이, 해당 포스팅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현행 미디어 법을 적극 찬성하는 글이라고 여겼었는지, 급기야 모 블로거는 필자가 작성한 포스팅과 제목도 매우 유사한 반박 포스팅(미디어법 찬성, 참을 수 없는 논리의 가벼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란 것이 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고 자본주의는 필요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내용도 사뭇 진부했지만,

  더더욱 문제인 것은, 필자를 수준낮은 포스팅을 작성하는 사람인 것처럼 폄하하고, 필자의 포스팅의 내용중 일부를 크게 부풀리고 왜곡함으로써, 여전히 자신의 반대 주장을 합리화시키고 있기에, 반박을 하려는 취지에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해당 포스팅은 주장하기를, 민주당을 지지해서 미디어 법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자신들과 정치적 이해 관계가 맞기에...소위 말해서, 잠시동안 전략적인 공조를 하였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글쓴이의 포스팅 내용을 왜곡하기 시작하고 있는데요... 
  분명히 말하지만, 필자는 여러분들이 민주당을 지지해서 미디어 법을 반대한다고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강조한 것은 미디어 법을 반대하는 여러분들이나 민주당의 진정성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만약, 민주당이 지지층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조직으로써의 진정성을 가지려면, 지지 계층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는 실질적 법안을 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다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필자의 논조는 여러분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민주주의라는 가치 수호라든가 언론의 자유같은 진짜 초등학교 수준의 원론만을 과장 반복하면서, 미디어 법 반대를 하는 모습들은 이제는 지양하시라고 비판한 것인데,

  전혀 글귀를 해석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또다시 그 빌어먹을 흑백논리식 이분법적 사고로 필자의 포스팅을 자본주의 예찬론 내지는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 찬성 논조라고 몰아 부치면, 이건 심히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이상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
  진짜 대책이 없는 난독증 환자들 때문에 이런 얘기까지 부연하는 것도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만, 어찌되었든간에 한번 간단하게 예를 들어 봅시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명 사회에서 거짓말은 분명히 나쁜 것이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가르치고 배웁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거짓말을 한번도 안하고 사는 이는 없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사회 생활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직장 상사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소위 아부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친구, 애인이나 아내 혹은 남편, 자식, 부모에게도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 바로 우리네 현실입니다. 
또한, 사람을 미워하거나 증오해서는 안되며, 더 나아가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자살을 시도하면 안된다고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피치 못할 이유들과 개인적 혹은 사회적 국가적인 상황 때문에 끊임없이 이런 부조리들이 일어나곤 한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모두 인정하실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분명히 이상과 가치는 사람들을 좀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하나의 이정표와도 같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거나 너무 먼 곳에 있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왜 여러분들은 미디어 법 문제에서는 혼쾌히 이런 부분을 인정하지 못하고 같은 말만을 반복할까요?...-_-;;;
  
  너무나도 똑똑한(???) 모 블로거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초등학생들까지도 다 알고 있듯이, 민주주의가 모든 이들의 권리와 주장을 반영한다는 것이 원칙이고 이상이기는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돈 있고 많이 배우고 권력이 있는 이들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주장과 이해 관계가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적용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여러분들은 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보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이고, 대학 졸업후에는 좋은 직장을 잡거나 소위 전문직을 취득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인간적이고 질적인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고자 하루하루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이것도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같은 사고를 가진 모 블로거의 천진난만한 말처럼, 필요에 따라서는 선택이 가능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세상의 통념과 방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기는 너무나 힘들지요.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자본주의는 필요에 따라 선택 가능하고 부차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지극히 한심하고 교과서적인 발언도 두번 다시 없겠다라고 필자는 판단하는데, 이런 필자의 주장에 또다시 반박을 하려는 분들을 위해서, 실제적 사례를 하나 더 들어 보겠습니다.

  전쟁이 나쁘고 다른 이들을 죽이는 것이 지극히 부도덕하며 죄악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을까요? 물론 말로는 이라크의 민주화를 원해서라고 하였었지만, 진짜 목적은 바로 석유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리고 그게 결국 자본의 논리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던가요? 

  또한, 한국은 왜 그런 미국을 도와서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을까요? 민주주의와 인본주의적 이상과 원칙대로라면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 했던 것이 아닙니까? 민주주의적 가치와 원칙 어디에, 다른 나라를 부당하게 침공하고 그곳의 주민들을 죽이는 국가를 도와야 한다라는 규정이나 내용이 들어 있습니까?
...라고 필자가 이렇게 질문을 하면, 십중팔구 혹자는 이라크에는 평화 유지군만 보냈다라는 유치찬란한 답변을 하실 겁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을 일으키고, 공연한 일들을 벌인 나라의 요청으로 무슨 평화를 지킨다고 이라크를 갑니까? 그게 진정 민주주의적 원칙과 이상에 부합하나요?


  한번 이 부분에 대해서 민주주의적 원칙과 자본주의적 현실의 조화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해당 포스팅을 작성한 모 블로거는 설득력있는 답변을 내놓아야만 할 것이라는 점과 함께, 미디어 법도 이것과 마찬가지라고 필자는 감히 단언합니다.


삼척 동자도 아는 구닥다리 원론을 짐짓 새로운 것인양 포장하고 칭찬하는 한국의 네티즌들
  너무나 논리정연한(?!) 모 블로거만이 아닌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처럼,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만 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겠지요...

 
하지만
, 현실에서는
이미 신문 시장을 비롯한 언론 환경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고, 또한 언론이 속한 통신 미디어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개방화와 산업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이른바 거대 자본이 투입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무조건 일부 재벌들의 지분 참여나 방송 진출만은 절대 안된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정말로 대책이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처한 주변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래서 민주주의적 이상만을 얘기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차라리 그것들을 인정하되 보다 현실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방법 혹은 일반 국민들에게도 이득이 돌아올 수 있는 법안이나 대안을 구상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보다 순리에 가깝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필자가 여러분들과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는 실질적 내용을 담은 미디어 법안을 막무가내로 통과시킨 지금 이 시간까지, 민주당이나 여러분들은 과연 무엇을 했습니까? 

  일부 신문이나 재벌들의 방송 진출이 갖는 문제점, 다시 말해서 누구나 알고 있는 진짜 초등학생같은 얘기들을 계속 반복하며, 한번 지나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것 외에,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말입니다.


  정말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고 자본주의적 논리를 견제하고 하나의 선택 사양쯤으로 만들려면, 지금의 여러분들처럼만 하면 만사 OK가 되는 것입니까?   정말로 그런가요...??? 

  필자의 포스팅을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현행 미디어 법에 대한 찬성쯤으로 받아 들이고,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원론적인 얘기를 사뭇 진지하게 꺼내며 반박을 하는 모 블로거처럼, 교과서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무조건 한나라당의 미디어 법 반대만 외치면 대단히 논리가 있고 똑똑한 진보가 되는 것인가요?  

  바로 그런 식으로 진부하고 식상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소위 진보가 매사 말만 앞서지 실제적으로 일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비판과 함께,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의 불신을 받으면서 정치적 입지가 점점 줄고 있다라는 생각들은 왜 못하실까요...-_-;;;  

  
앵무새와 앵무새형 인간들의 공통점
  과거 한때나마, 필자는 앵무새를 키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앵무새라는 녀석은 필자가 하는 말을 곧잘 따라하더군요. 그래서 가끔은 이 녀석이 필자가 하는 말을 알아 들어서 이런 말을 할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도때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의 모습을 보노라면 필자만의 환상은 금방 깨지더군요.


  마찬가지로 지금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부르짖으며, 누구나 다 아는 원론적인 얘기들로 미디어 법 반대를 목청높여 부르짖는 이들도 앵무새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처한 주변 현실이 얼마나 복잡하고 심각하며, 무슨 선택을 할 여지조차도 거의 없다라는 자각과 성찰은 하나도 없이...
 
  그저 누군가가 혹은 교과서같은 것들을 통해서 익힌 현실성 없는 구호들을 아무런 자기 반성없이 반복해서 읊어대는 진짜 새대가리, 아니 앵무새형 인간들의 집단적인 합창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매우 시끄럽게 하고 있고, 소위 미디어 법 논쟁을 일반 국민들이 보다 깊은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또다른 원흉인 셈입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S: 
댓글창을 어지럽히는 새대가리 앵무새들은 보거라 

당신들이 하는 짓을 보면 이 포스팅의 논조인 양비론도 호사다!^^

아무 대책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

거기에 아래에 어떤 머저리들이 보이는 엄한 인신공격과 함께, 무슨 초밥집 사장이라는 이상한 단정들까지....바로 당신들 평균 수준이지!^^

너무 웃기는 것은, 자신들 뜻에 안 맞는다고 엄한 인신공격을 계속하다 보니, 필자가 민노당 지지자가 되었다가 한나라당 지지자 혹은 알바 , 백수 그리고 이제는 초밥집 사장님으로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는 거다!^^

당신들의 행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진짜 정신분열증 환자같아!^^

어떻게 필자가 민노당과 한나라당을 동시에 지지하나?^^

초밥집 사장은 또 뭐래?^^

이제 발광을 하다가 아주 맛들이 갔구나!^^   진짜 볼만하다!^^ 

포스팅에서 표현한 새대가리라는 말....정말 니네들한테 딱 어울린다!^^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7. 14. 06:31

  지난 주,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있었습니다. 상식과 원칙의 확립, 그리고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한국 사회를 확 바꾸겠노라던 노무현의 재야 운동가 시절의 이상과 정치적 신념은 결국 비극적인 자살로써 끝이 나고 말았는데, 아직도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언제나 서민들을 위하였으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재평가한다면서 쉴새없이 노무현 미화성 글들을 다음 뷰에 올리고 있는데, 우연히 이런 글('준사람 노무현', 내가 쓰고싶은 노무현 묘비명)을 보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해당 글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노무현은 자신의 권력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넘겨주었었고, 무슨 민주주의적 가치 수호를 위해 끝내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날렸으며, 그 결과 그가 남긴 무슨 가치가 시민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네~~하는 식의 논리와 실상은 하나도 없는 전형적인 신파류 글이었습니다. 그동안 필자는 이런 류의 포스팅을 대하면서 심한 염증과 회의를 느껴왔었기에,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정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하고 발전시켰는지 한번 제대로 짚어 보기로 했습니다.

  글이 조금 길다고 여겨지시는 분들은 마지막 문단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부분만 읽어 보셔도 무방합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의미를 성찰하지 못한 민주화 세력과 국민들
  우선 노무현의 민주주의적 가치 수호를 논하기 전에, 1987년 6월항쟁을 잠시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80년대 당시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의 압정에 지친 국민들은 결국 6월항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6.29 선언을 얻어내게 되지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까지도 사람들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단계 더 발전했고, 그 이후로 민주주의적으로 정치 사회적 변화가 꾸준히 이어지다가 현정부에 들어오면서, 다시 박정희 유신독재나 5공시절로 회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기본적 전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질문에는 여러가지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국민들 스스로가 사회나 정치 그리고 기타 제반 여건들에 대해 분명한 자기 소신과 목소리를 밝힐 수 있고, 그런 식견이 가능한 바른 언론과 함께 관련 정보의 제공이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는 점에서 보면, 6월 항쟁이 진정 민주주의적 가치를 한단계 높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앞서게 됩니다.


  만약, 진실로 국민들이 전두환 군사정권의 폐해와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성찰을 했다면, 아무리 당시 민주주의 진영의 대표라는 양김씨의 반목과 분열이 있었다고 해도, 12.12 군사 쿠테타의 주역인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인데, 결과가 과연 어떠했습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도무지 자기 반성이나 성찰은 하지 않는 관계로, 전두환의 폭정에 대한 반감으로 6월 항쟁을 시작하였으나, 그 뒤에 일어난 사회 정치 그리고 기타 제반 여건에 대한 토론이나 전국민적인 공론은 사실상 없었기에, 결국 전두환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던 노태우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 다음은 김영삼이라는 희대의 변절자가 펼치는 소위 3당 야합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열린 5공 청문회와 김영삼의 일방적인 3당합당 선언에 반대했던 노무현이라는 신인 정치인이 국민적인 주목을 받기는 하였었지만 말입니다.


6.25 남북전쟁이후 최대 동란이라는 IMF외환위기로 탄생한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
  사람들은 흔히 말하길, 변절이건 뭐건간에 그래도 김영삼 문민의 정부 시절부터 서서히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라고 평하지만 필자는 이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형식적, 표면적으로는 민주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으나 내면적으로는 곪고 썩어 들어가고 있었기에, 결국 국가 부도와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상황을 당시 일반 국민들이 전혀 예측하거나 가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치러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과거 박정희 유신 독재의 잔존 세력인 김종필과 소위 DJP연합을 하고서도 이회창 후보를 고작 35만표 차이로 누르고 신승을 하지요.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국민들이 외환위기 사태의 본질, 다시 말해서 한국 경제의 재벌 독식 체제와 수출과 내수간 불균형에 대한 처절한 자기 반성 그리고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깊이 인식하고 자기 반성을 했었다면, 과연 지금의 한나라당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외환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과연 김대중은 당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논리나 이성을 싫어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툭하면 욱하는 감정적 기질로 볼 때, 한나라당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만 했었는데, 그렇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회 원내 1당 혹은 제 1야당의 위치를 확고히 굳혔었지요. 또한 소위 천문학적인 액수의 대선 비자금 문제가 터지면서 차떼기당이라는 수치스런 이미지를 창출하고 국민들의 엄청난 지탄을 받고서도 그들은 지금 이 시간까지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원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민주화 세력들이 진짜로 무능했으며, 일반 국민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되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비단 현정부만이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기성 정치권 세력들이 모두 국민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글쓴이는 판단합니다.

부동산 규제 철폐와 카드 남발로 인위적 경기 부양을 시도했던 김대중 정부
  어찌되었거나, 김대중은 이런 일반 국민들의 천박한 의식과 단순한 심리를 잘 알고 있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속한 시일 내에 외환위기 극복에 힘을 쏟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는데, 문제는 그 방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은행이나 제2 금융권의 신용카드 신규발급에 대한 규제를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잠재적인 신용 불량자(결국 신용 카드 남발은 노무현 참여정부에 이르러 신용 불량자 400만명을 양성하는 결과가 됨!)를 크게 키웠으며, 부동산과 건설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부동산 규제에 대한 법적 규제나 조항들을 대부분 철폐시킴으로써, 노무현 참여정부 기간동안 벌어진 사상 유례가 없는 부동산 폭등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편으로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부터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알짜배기 기업들을 하나하나 외국인들에게 차례로 매각했었지요. 당시 엄청난 기업 구조 조정의 여파로 실업자의 대열에 들어선 이들이 대부분 무슨 창업이랍시고 그동안 자신들이 모았었던 돈과 퇴직금, 그리고 은행의 대출금등을 통하여 마련한 식당이나 기타 오락시설의 범람으로 인해,

  인구 대비 자영업자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이는 훗날 영세 자영업계의 총체적 위기와 그로 인한 가계 부실의 심화 그리고 내수 침체의 악순환으로 들어가는 보증수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선을 꾸준히 밀고 간 것이 바로 지금 이시각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었고, 당시 소수의 진보 인사를 제외한 범민주화 세력과 수구 보수 진영은 모두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었으며, 일반 국민들은 뭔가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사태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거나 깨우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만들어 낸 노무현 대통령의 배신과 변절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늘상 원칙과 합의 그리고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고 말했고, 그가 과거 재야 운동가 시절에 보인 몇몇 모습들은 그의 이런 주장에 강한 신뢰감을 부여함으로써, 결국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뒤집고,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감동을 선사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중 그 누구보다도 한국 사회의 제반 모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랬었기에, 한국 경제와 자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문제만은 반드시 해결하겠노라고 공언했고, 모든 부분에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겠노라고 하였지만, 과연 결과가 어땠을까요... 

  부동산은 노무현 참여정부가 정책을 발표하면 마치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격이 더욱 뛰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를 비롯해서 경제와 부동산에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동의를 하는 부분이니까 말도 안되는 얘기들은 더 이상 없기를 바라지만,

  어찌되었든간에,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했었던 강한 의지와 이상에 비해서 실제 부동산 관련 정책 수행에서 빚어진 잦은 실수와 함께 실무 행정부서 그리고 당시 여당과의 정책 조율 실패는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과 말만 무성하게 많았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복안 그리고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을 심도있게 인식하지는 못했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부의 원천이며, 경제적 불평등의 시작이자 끝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노무현은 부동산 잡겠다는 말만 하다가 참여정부 5년 임기를 끝마친 셈이 되어 버렸지요.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알다시피,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합니다. 따라서, 진정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부의 재분배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데, 부동산 문제가 이렇게 꼬이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될 턱이 있겠습니까.

  또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였는데, 재벌에 대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행태를 보면 의구심은 더욱 강해집니다. 역대 정권들을 보면 한결같이 경제 개혁과 서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을 주장하지 않은 정부가 없었으나,

  그 실제적 방법은 어처구니없게도 한결같이 재벌 중심의 왜곡된 경제 구조를 개혁하기보다는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그들을 더욱 키움으로써,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그들을 통한 수출을 하는 것이 박정희 유신독재 이후의 한국 사회였고, 그런 왜곡된 경제 체제와 패러다임이 바로 특권과 반칙의 진정한 몸통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노무현은 어떻게 재벌들에게 대처했을까요?

  그는 어쭙잖게도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특권을 버리면, 사회 제반 세력들도 그것을 따라오리라고 순진한 어린애마냥 믿은 모양새입니다. 그 결과, 검찰을 비롯한 정부내 주요 사정 기관이 개혁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것이 과연 국민들에게 권력을 이양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 세력을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삼성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해 거의 헐값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넘겨주는 참담한 상황을 지켜 보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모두 분개하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7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직전까지 기소를 하지 않았었으며, 삼성 에버랜드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명의로 삼성생명 주식을 거의 헐값에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세청과 감사원은 아무런 조사도 취하지 않거나 조사를 하고서도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조사 내용을 검찰에 넘기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노라고 했었던 기억들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십니까.

  SK그룹 총수가 계열사와의 주식교환으로 1조 ~2조원대에 달하는 실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당 이익을 취해서 분식회계 혐의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마지못해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기는 했었지만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하였으며, 그 결과 SK그룹 총수가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시기가 과연 언제였던가요...

  또한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엄청난 금액의 횡령과 탈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명목으로 곧바로 사면을 한 것은 또한 누구였습니까... 

  현대 자동차 글로비스 사태에서 보여지듯이, 총수의 개인 회사와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를 통한 자금 빼돌리기가 공공연히 횡행하는데도 아무런 언급도 없이 수수방관하였지요.

  또한 한화 그룹 회장이, 자신의 아들이 구타당한 것에 대한 보복 폭행을 저질러서 엄청난 여론의 질타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 정의 확립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넘쳤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 유예 판결과 함께, 사회 봉사 명령 정도로 상황을 마무리지은 것이 현정부 임기 때의 일이던가요, 아니면 노무현 참여정부 임기 때의 일이던가요...

  그가 넘겨준 소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국민에게 간 모습이란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입니까? 이게 과연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 그리고 노무현이 그토록 말했었던 원칙과 상식에 부합하고, 또한편으로 반칙과 편법, 특권이 없는 사회란 말인가요? 실상은 그가 넘긴 권력이 모두 시장으로 간 것이며, 한국의 시장을 지배하는 재벌들이 그 권력의 수혜를 톡톡히 받았다고 보는 것이 보다 올바른 진단이 아닐까요?

  위에 열거한 모습을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보고 살펴보면, 노무현 참여정부나 현정부나 재벌들만을 편들고 그들을 키움으로써, 경제를 꾸려가겠다라는 지극히 얄팍하고 허술한 발상을 가졌다라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필자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참여정부의 이런 친재벌적 성향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란 것들은 탐욕이 너무나도 지나쳐서 조금 더 이익을 얻기 위해, 노무현을 근거없이 좌파라고 규정지은 것일뿐, 실제 노무현 참여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이나 내용은 대부분 서민들보다는 재벌들에게 돌아가는 과실들뿐이었는데도, 다들 까마귀 고기을 구워 먹었는지 불과 3~4년전의 과거는 모두 잊고 그를 열심히 찬양하고 있는 형국이니 이거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 아닙니까...

  일부 노빠들이 때만 되면 부르짖는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사상 최대의 외환 보유고는 환율 폭등과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로 순식간에 바닥이 보이는 허수에 불과하였으며, 또한 사상 최대의 무역 수지 흑자라는 성과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았었기에, 비정규직은 계속해서 늘었으며 급기야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온 시점이 언제인지를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국민들과의 진솔한 소통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대통령 퇴임 전후의 일이었고, 정작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이랄 수 있는 경제 분야를 완전히 재편하고, 그로 인해 대다수 한국인들의 삶의 형태를 크게 바꾸는 한미FTA협정 추진 과정상의 비민주성과 야만성, 그리고 한미FTA와 관련해서 일반 국민들을 철저히 기만하는 교활함은 도대체 그가 추구하는 민주적 가치와 소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자꾸 회의하게 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이 서민을 위하는 대통령이었다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통하는 근본적 이유는 지난 1987년부터 지금까지 대다수 한국인들이 역사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이 전혀 없었으며, 무슨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인간적인 가치 추구보다는 오로지 돈 잘 벌고 생활이 그럭저럭 유지되면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물신주의적 의식의 천박함과 함께,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민주화 세력과 극렬 노빠들 그리고 수구 꼴통 세력들의 정치적 이해 관계가 서로 맞물려 벌어지는 또 한편의 비극인 셈인데...
 
  무슨 노무현이 날았다는 둥 그의 가치가 시민들의 머리 위에 내려 앉았다라는 둥의 감성에 호소하는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이들이 다음 뷰에는 여전히 넘치네요...-_-;;;

  필자는 마지막으로 해당 포스팅을 작성한 광신적인 믿음의 자칭 논객이라는 노빠와 함께, 너무나 서민적인 대통령인 노무현 찬양가를 부르짖는 이들에게 시원하게 욕을 한마디 하고 싶은데, 공개적인 포스팅에다가 비속어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비슷한 어감의 단어로써, 대책없이 노무현을 찬양하는 여러분들의 위선과 가식에 찬 모습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치렵니다.
                                                   
                         십할  비양심!  족구하라고 그래!


※사진 출처: 다음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