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성매매 여성을 주변에서 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여성을 보셨다면, 어떤 생각들을 떠올리십니까? 대부분의 남성이라면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한번쯤 훔쳐 볼 것이고, 여성분들이시라면 자못 눈쌀을 찌푸리거나 혐오스런 마음으로 해당 성매매 여성들을 넌지시 바라 보시겠지요? 

  필자도 남성인 관계로 그런 여성분들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이나 가슴, 몸매의 굴곡에 시선이 가서 꽂히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관념상으로나 머릿 속으로는 필자와 같은 혈기왕성한 남성들의 성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여성의 성까지도 철저하게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렇게 무섭구나라고 생각하며 절치부심하곤 합니다.

 
 프롤로그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금도 경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분들은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에 부차적인 것이거나, 사회 구성원들이 원한다
면(?!) 언제든지 바꾸거나 선택 혹은 통제할 수 있는 체제, 이념 정도로 간단하게 치부하거나 생각하시겠지만, 필자는 그런 식의 어설프고 순진하며 이상에 찬 이분법적 견해와 단순 무식한 사고 체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한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든 혹은 그것과는 다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를 지녔던간에, 그 곳에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일단 침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매우 흡사하게 변해 버리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성매매 여성들이 아닐까 싶어서, 오늘은 영화 인터걸을 통해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진단하고, 결론 부분에서 필자가 하고픈 얘기들을 조목조목 소개하면서 이 포스팅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인터걸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구소련 개혁파들에 대한 강렬한 의문이 생기다
  여러분들은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지금의 러시아에서 공공연히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구소련의 후신격인 국가입니다. 구소련은 한때 자본주의 체제의 본산인 미국과 일대 자웅을 겨루었던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지닌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지요.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소위 시장의 원리보다는 공공재의 개념과 국가의 역할이나 기능이 매우 강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사익 추구나 각 집단간의 사적 이해 관계보다는 국가 혹은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도록 규정하고, 그런 이념과 사상을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통하여 끊임없이 주입시켰으며, 국가 경제는 철저하게 계획 경제의 개념으로 움직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렇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시킨 사람들의 노동 의욕은 갈수록 떨어져만 갔고 방만해진 정부 내 관료들의 무사안일함과 부정 부패는 극에 달했으며,  사회 전반에 대단히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사고가 넘쳐 흐르다 보니까, 점차 구소련 사회 전체가 활력을 크게 잃어 버리면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경제적 여력마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여러 군소국가들을 지원하기는 커녕, 중앙 정부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참담한 실정에까지 이르렀으며, 바로 이것이 구소련의 경제적인 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하려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낳은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와중에 나온 영화가 인터걸이었는데요. 필자가 짐작하기엔 아마도 지금 한국의 10대와 20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잠시, 인터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인터걸 개봉당시 고르바초프를 위시한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이 영화를 보며 " 인터걸이야말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정한 산물 " 이라고 찬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강렬한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세계 초강대국 소련의 최고 권력자와 개혁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행하던 구소련의 최고 엘리트인 개혁파 세력들이, 당시 구소련의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기로서니, 고작 성매매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보고서, 그토록 극찬을 하고 구소련 내에서만 영화 관램객이 무려 4천만명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의문은 당시 어린 나이의 필자가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경제적 지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졌음을 훗날 깨달았는데요. 
필자가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로써 훗날 깨달은 고르바쵸프를 위시한 구소련 개혁파 세력들의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소련은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익 추구를 금기시하다 보니 사회가 점차 극단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은 필연이었겠지요. 자연히 유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잔재해서 성문제에 관한한 제대로 된 공론조차 나오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 구소련도 성과 성담론을 극단적으로 터부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당시 구소련에서는 지금의 러시아에서와 같은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는 존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폐쇄적이고 경직된 체제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로 인해 소위 시장 개방의 물결이 구소련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성적인 측면도 활짝 열리게 되면서 인터걸이라는 존재가 생겨났고, 이것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당시 소련인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것인데요..

  ...문제는, 당시 고르바초프나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그저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려는 자본주의 체제보다는 인간적인 가치와 사회 공동체적 이상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100%로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생각이 영화 인터걸의 주인공인 타냐가 경제적 안정을 원해서 스웨덴으로 가지만,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시 소련으로 돌아간다라는 기본 줄거리에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 배경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이미 알다시피, 고르바초프와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이 확신에 차서 추진하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로 대변되던 시장 개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 증명이 결코 아니었으며구소련 체제내에 시장 개방의 물결이 가속화될수록 급격하게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제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로써만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소련의 붕괴와 몰락을 외신을 통해 바라보면서 소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함께, 그로 인한 필연적인 역사적 종말을 갈망하였던 필자나 그 밖의 많은 운동권 선후배들은 커다란 충격과 방향 상실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필자도 그랬었지만, 한국 사회내의 수 많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가들은 소위 물질 만능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도로 경멸하였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소련 붕괴 당시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선뜻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인정과 자기 반성, 그리고 성찰과 학습의 깊이가 점차 심화되고,  대학 졸업후 사회에 진출하여 정말로 돈 많고 능력이 있으며 똑똑한 이들을 많이 알고 사귀게 되면서, 그리고 사회와 회사를 통해서 이론이 아닌 실무적인 경험들이 하나 둘씩 쌓여 가면서, 또한 간간히 외국 출장등을 통해 현지 실정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20대 초반 무렵의 필자가 거의 신앙처럼 믿고 간직하였었던 무슨 가치와 사실의 구분같은 이분법적인 생각이나 민주주의적 가치 추구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거나 혹은 그것을 추동하고 바꾸는 근본적인 힘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인데, 이제 그 성찰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에필로그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개혁파 세력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일부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공산주의 체제에 들어와도 사회 구성원들의 투철한 공동체적 의식과 가치,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수십년간 다듬어진 사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질서와 통제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까지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는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서 사회 전반에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외려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동안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극도의 불신 회의와 함께, 중앙 정부에 대한 주변 복속 국가들의 반발까지 겹쳐지면서, 당시 구소련 사회 전체에 위기감을 크게 증폭시켰으며, 

  이런 급격한 사회 혼란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우려하고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쿠데타를 부르게 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더더욱 구소련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급격하게 상실시킴으로써, 결국엔 구소련 공산주의 체제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소련의괴와 몰락으로써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그저 소설이나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만 치부되고 마는 상황이 온 것이지요.

  그 반면에 자본주의 체제는 어떨까요...자본주의 체제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분명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었는데요. 과거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든 심각한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 대공황이라는 사태였죠.

  당시 자본주의는 정말로
생존 자체가 의심될만큼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소위 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었던 시장의 원리와 합리적 인간의 경제동이나 선택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철저한 허구였음이 만천하에 증명된 역사적 사건이 바로 대공황이었는데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대공황 당시 자본주의 체제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그랬듯이,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과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을 일부 받아들여,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복지와 공공재의 성격을 크게 강화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형태로 일대 변신을 꾀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입니. 한마디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자 그 모습이 크게 변형되거나 무너졌었는데, 자본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오히려 더욱 강고한 체제로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구소련
의 공산주의 체제는 전제 군주에 맞서 일어선 농민과 노동자들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서 세상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사상과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서 비롯되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의 익성과 공공재, 그리고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과 만인의 평등을 열렬하게 추구하고 꿈꾸었었던 희대의 천재들이자 철두철미한 상가이며 행동가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와 이상, 천재들 나름의 투철한 개인적 실천, 그리고 세뇌 수준에 가까운 사상 이념 교육들은 정작 현실에서 대다수 평범한 인간들의 기본적인 성향과 본능과는 그리 맞지 않았었던 겁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기심과 탐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공공재와 공익성, 인간적인 가치를 아무리 강조하고 주장해도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으며, 바로 구소련처럼 종국에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상실하고 무너지게 되었던 겁니다.

  따라서,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적절하게
사람들의 기본 욕구도 채워 주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는 강력한 배경이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고, 개인만의생활과 사익 추구를 터부시하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또한 그것을 통해서 자본의 논리를 또다시 강화시키고 그 범위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는 완벽에 가까운 피드백 시스템을 갖춘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특정 사회 내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과 행태는 세계 어디든지 비슷하게 변하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아닌가라는 말입니다.

  필자가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을 다룬 자료 몇 가지를 세세히 살펴보니, 지금의 러시아 젊은이들은 구소련의 기억들이 거의 없으나 바로 위에 부모 세대들은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이것이 급격한 시장 개방과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또 하나의 세대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사회적 요인이 되고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과거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며, 개인의 행복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한결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니, 이거 한번 깊이 생각할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바로 이측면에서 이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한 영역에서 사회의 공익성과 공공재의 개념을 추구하고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는 과연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통제하거나 제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것이 인간의 기본 본성이나 욕구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일까요?...

  산업 혁명이 발발하고 시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사회 집단이 역사에 출현하며 자본주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과거부터 지금 현재까지, 세계 유수의 모든 경제학자들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상하는 정치가와 시민 사회 모두가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한 그 근저에 도사린 본질적인 난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각 한국사회 내에서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위 미디어 법 문제도 결국 이것과 동일한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의 본능이라는 영역까지도 침투하고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단지 민주주의적 가치와 공공재라는 막연한 구호와 이념만으로써,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이나 절충 혹은 타협 없이도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취사선택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문제냐는 말입니다.


  필자는 구소련의 영화 인터걸과 그것의 실제 연장판격인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동안의 끊임없는 학습과 사회 경험등을 모두 종합해 볼 때, 자꾸만 회의적인 결론이 도출되며, 이런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일개인이나 어떤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막거나 거스를 수 없다라 일종의 무기력과 절망감,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진실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심각한 우려와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 오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좀더 생각해 볼 문제
  대공황 당시의 자본주의는 소위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시장의 원리를 맹신하였고 합리적 인간의 선택과 경제적 행위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다가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 공산주의 이념을 일부 채택하여,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말하는 복지 국가와 사회 공공재의 개념이 탄생한 것인데요.

  문제는, 인간이란 존재가 태생적으로 이기심과 탐욕을 가져서인지 이런 역사적 교훈을 철저하게 망각하고, 또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시장의 질서만을 강조하고 공공재와 공익성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불황을 낳았다는 것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모두 동감하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과거 대공황을 극복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을 취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또다시 복지라든가 공공재의 개념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 체제나 역사가 수렴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경제 불황은 과거 대공황 때만큼의 위기는 아니기에, 모든 것을 상품화시킴으로써 결국 인간까지도 하나의 자원이나 물질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심화를 좀더 지켜 보아야만 모종의 결론이 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그런 결말이 필자나 여러분들 생전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7. 20. 13:24
  요즈음 한국 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 정국을 서서히 벗어나 이른바 미디어 법 찬반논란으로 굉장히 시끄러운 모양새입니다. 수 많은 민주 진보 인사들은 주장하기를,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소위 미디어 법은 그동안 한국 근현대사에 여러모로 지대한 영향을 준 조중동으로 명명된 몇몇 메이저 신문사들, 그리고 역시나 한국 경제의 중추이자 핵심인 일부 대기업...좀더 구체적으로는 재벌이라고 불리우는 특정 계층의 사람이나 집단 혹은 회사가 미디어를 장악하면, 한국 사회가 해방후 수십년간 힘들게 이룩한 민주주의는 모두 허사가 되며, 소위 그들만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지금 현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미디어 법만은 결사 반대 내지는 결사 항전으로 버텨야 한다라고 하는 내용은 이곳 다음 뷰에서도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선 분명히 할 부분은, 지금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필자도 원칙적으로는(!!!) 그런 여러분들의 의견에 적극 동의합니다. 그러나 미디어 법 반대 그 이후와 함께 현대 미디어의 본질적 부분들을 좀더 생각해 보니까, 마냥 동감만 하기에는 뭔가가 석연치 않을뿐만 아니라, 반대를 한다는 이들의 진정성이나 비전이란 것에 대해서도 중대한 의문이 생겨서, 이 부분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SK글로벌 증권 분식회계와 소버린의 SK경영권 위협에 대한 단상
  미디어 법에 대한 논란을 다루기 전에 우선적으로 반드시 짚고 가야할만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노무현 참여정부 임기시절인 지난 2003년, SK글로벌 증권이 1조5천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에 관한 얘기입니다.

  당시,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은 위에서 언급한 SK그룹의 분식회계와 같은 한국 대기업 특유의 부정과 편법, 그리고 소위 황제 경영으로 불리는 재벌들의 경영 지배 구조의 폐쇄성이나 후진성을 개선하겠다라는 원대한 구상을 가지고서 소액주주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자 했었던 시민 운동이었으며, 이런 참여연대의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발휘하여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력 이양으로 독립을 하게 된 검찰이 의욕적으로 수사를 진행했었던 사안이 바로 SK글로벌 증권 분식회계 사건이었는데요.

  그런데, 그 당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검찰의 의욕적인 수사, 그리고 국민들의 염원과 바램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뜻하지 않은 제3의 세력이 등장하면서 SK글로벌 분식회계와 SK그룹 총수에 대한 사법 처리에 관한 국민들의 여론이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의 취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서 일부 혹자는 소버린을 건전한 투자자라고 규정하면서, 덕분에 SK그룹의 지배구조가 크게 투명해졌고 주식 투자자들도 이득을 보았다고 주장하시지만, 당시 정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정말 아차하는 순간에 그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해외의 일개 사모 펀드가 국내 최대의 통신 회사를 가진 대기업을 거의 헐값에 집어 삼키는 참담한 비극을 맞을뻔한 상황이었을뿐만 아니라,

  국내적인 시각에만 머물러(!!!) 재벌들의 그릇된 관행을 고발하고 시정하려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도 빛이 크게 바래게 되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이제 미디어 법에 대한 얘기를 본격적으로 한번 해 보겠습니다.


미디어 법 반대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
1) 통신 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초거대 다국적 미디어 기업들의 탄생
  현대의 과학 기술은 인류가 그 전세기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나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은 과거 인류가 수 개월을 소비해야 받아볼 수 있었던 정보를 빛의 속도로 전달할 수 있게끔 만들었으며, 여러분이 일평생을 살아도 가 보지 못하는 지구 반대편의 오지나 그 곳 사람들의 풍습도 자신의 집 안방에서 TV를 통해 볼 수 있는 시대...다시 말해 전지구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이는 진정한 세계화 추세에 통신과 미디어의 발달은 주춧돌의 역할를 차지했던 겁니다.

 여기서 통신 미디어 분야의 획기적 발전을 좀더 자세히 묘사하자면, 컴퓨터, 휴대폰및  무선 와이브로등으로 대변되는 이동통신, 케이블 TV, 백색가전 제품, 지상파와 TV로 대변되는 방송, 출판, 전자 게임, 연예 엔터테인먼트등으로 표현되는 유희나 오락등등이 점차 하나의 거대한 통신망과 유기적인 네트워크 안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가장 유망한 산업 분야중에 하나로써 통신 미디어 분야를 일찌감치 주목하게 되는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21세기의 거의 모든 산업 영역과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될 미디어와 통신 분야를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암투와 함께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규모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초국적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는, 1995년 월트 디즈니와 ABC TV 와의 합병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주목할 부분은, 이런 식의 초거대 다국적 미디어 기업들이 연이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1996년 미국 의회의 통신법(지금 한국의 일명 미디어 법과 유사함!)이 가결되면서부터였다는 것입니다. 

  이 통신법은 지역 전화 회사와 케이블 TV를 포함한 모든 사업자나 기업이 미디어 통신 시장에 참여하도록 허용했었는데, 그 결과 미디어 통신 분야 시장을 선점하고 장악하기 위한 이합집산과 각축전이 이루어지면서, 바로 위 문단에서 필자가 언급한 초거대 기업들간의 합병이 줄을 잇게 된 것입니다.

  미국이 통신법을 가결한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통신 산업을 규제하는 나라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이 분야에 진출하기를 꺼려 왔습니다. 가령, 독일같은 나라에서는 통신 사업을 국영 기업이 독점하거나 정부가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는 형태로써 이 분야를 강력하게 견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비단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내 다른 몇몇 국가들도 통신 미디어 사업 주체는 민간 기업이지만, 그들이 통신 미디어 사업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는 대신에 공공성을 유지하려는 정부의 여러 규제 조치를 받아들여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세계 60개국이 모인 WTO의 주도 아래, 회의가 열리고 미디어 통신시장의 국가 독점과 규제를 점차적으로 종식시킨다는 조약이 맺어지면서, 사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혹시 알고 계십니까?


   ...여기에서 필자가 이렇게 구구절절히 여러 다국적 기업의 사례와 함께, 1996년의 미국 통신법 가결과 1997년의 WTO에서의 조약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 미디어 통신 시장의 융합 혹은 통합과 개방은 세계적인 흐름이자 대세라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TV, 라디오와 같은 매체들이 각자 독자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대중들을 접하였다면, 이제는 모든 통신 미디어 수단이 융합되고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나아가는 환경과 구조로 변하였기 때문에,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소요되는 미디어 통신 산업 분야의 대기업 진출을 반대할 구실(구체적으로 민주주의 수호라든가 일반 시민들의 알 권리,여론의 다양성등등과 같은 추상적 가치와 구호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명분이나 실리라는 양쪽 측면 모두에서 입지가 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 통신 미디어의 속성과 국가 권력의 축소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여러 세계적인 추세와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를 볼 때, 결국 한국의 미디어 통신 시장도 자본을 축적한 일부 대기업들에게 개방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면, 혹자는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통신이나 미디어가 갖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시장의 논리에만 맡겨서는 안되며, 바로 그런 역할을 담당하라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또한 지금 오바마 미 행정부도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예를 드실지도 모릅니다. (※관련기사: 오바마가 몰고 올 미디어 혁명)

  다시 거듭해서 말하지만 이러한 여러분들의 주장에는 분명히 나름의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좀더 깊게 생각을 하면, 이것 역시도 현실적으로는 커다란 난관과 모순에 봉착하여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들은 WTO(세계 무역 기구)라든가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NAFTA( 북미 자유 무역 협정) , 그리고 요근래의 한미FTA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들이 일반 시민들을 위한 국제 조직이나 기구 혹은 무역 협정이라고 보시나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국제 조직이나 기구, 혹은 협정들은 모두 기존의 노동 관행이나 환경 혹은 기업의 규제에 대한 각국 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한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깊이 반영된 결과물중의 일부입니다.

  이를테면, WTO체제 내에서의 각국 정부는 이른바 무역 자유화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국가 주권을 행사해야만 합니다. WTO와 같은 국제 조직의 관리들은 어떤 정부의 통제도 받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WTO에서 맺어진 무역 협정과 기준을 위배한 나라들에게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해서,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활동과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인 셈입니다. 
상품과 서비스, 자본의 교류를 원활히 한다라는 명목으로 국경이 없는 시장, 그리고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며, 그것를 위해 설립된 기구나 협정이 바로 WTO라든가 FTA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자본이 결합되어 빛의 속도로 전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대표적 분야는 바로 통신 미디어 산업이 아닙니까? 게다가 한국은 수출과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지요? 자연히 WTO같은 기구들의 동향이나 방침에 소위 내수 시장이 든든한 다른 나라들보다 더 민감하겠지요?

  또한 이 부분에서도 익히 아시다시피, 과거 산업 혁명 시절에, 시민 계급이 출현하고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계가 완성되면서 출현한 정부라는 기구나 조직은, 지도상으로 확연하게 구분지어진 국토를 관리하고 통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통신 시장의 규모나 발전 속도 그리고 범위가 전지구적으로 확대되는 상황과 WTO같은 국제 무역 기구 체제하에서는, 각국 정부의 규제와 권한은 축소되거나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다시 말하지만, 미디어 통신 분야만큼 국경을 초월하고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자본을 아우르려는 초거대 다국적 기업의 목표와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분야가 있던가요? 그리고 이런 흐름은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3. 공영방송의 실상과 한계
  필자가 이렇게까지 설명을 해 줘도, 혹자는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그래도 소위 지상파 방송만은 대기업의 진출을 막고 소위 공영 방송 체제로 가야만 한다라고 주장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이미 오래 전부터 텔레비젼으로 대변되는 공영방송이 추구했던 가치와 노력들...

  다시 말해서, 일반 대중들의 의식 함양과 공익을 위해 만들어졌던 각종 교양 프로그램은 천박한 대중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철저하게 외면당하였으며 사실상 거의 유명무실해지는 단계에 이르렀고, 또한 자본주의 체제내에서의 방송사 운영이란 것도 어차피 이윤 추구를 외면할 수 없기에... 

  이론상이나 원칙적으로는 공영 방송에 광고가 하나도 없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각 프로그램의 제작비와 인건비를 대기 위해 소위 협찬 명목으로 민간 대기업들에게 완전히 기대고 있는 실정이나 형편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과정이 무한 반복되면서, 교육 교양 시사 다큐멘터리와 같은 공영방송만의 프로그램 비중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낮아지고, 대신 그 자리에, 지극히 가볍고 시청한 뒤에 머리에 남는 것은 거의 없는 가쉽성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라는 경영상의 압박이 여러모로 가중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가뜩이나 열악한 외주 제작업체에게 피해를 전가하거나 각종 부대 경비를 떠넘기는 그릇된 관행이 왜 생겼을까요?

  이미 작금의 현실이 이러하고, 또다른 한편으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와 일거수일투족이나 사사건건 문제삼으며 마녀사냥에나 열중하는 지극히 말초적이고 천박한 인식과 의식을 가진 사회와 구성원들이...
 
  지금 이 시간 소위 미디어 법을 앞에 두고서는 갑자기 고차원적이고 대단히 성숙한 민주 시민의 모습을 짐짓 가장하며, 현대 미디어가 갖는 여러 철학적 함의와 함께 그것의 영향력이 갖는 파괴력을 우려하고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친다고 한다면, 과연 그런 분들의 진정성과 극히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비전을 그대로 믿고 따르거나 좋게만 보아 줄 수 있을까라는 말입니다. 
 


4. 극소수의 사이버 스페이스 형 인간과 절대 다수의 오프 라인형 인간으로의 철저한 계급 분화 
  필자가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미디어 법 반대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는, 여전히 인터넷과 사이버 스페이스, 그리고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즐길만한 여력이나 인식이 없는 사회 구성원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통계상으로는 한국 사회내에서 3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단순한 뉴스나 정보 찾기 수준이며,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날마다 급변하는 통신 미디어의 실상을 미리 경험하고 그것을 심도있게 평가하거나, 새로운 시대의 사회상을 예측 혹은 그려볼만한 의식과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네트워크, 양질의 문화 콘텐츠, 사이버 스페이스, 그리고 현실을 방불케하는 가상 체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그런 환경에 이미 익숙하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당장 생활하는데에 필요한 의식주 문제마저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는 사회 구성원들이 훨씬 더 많다라는 현실을 생각해 보셨나요? 지금 그분들에게 새로운 환경의 미디어 통신, 그리고 네트워크와 미디어 법 폐해에 대한 논의가 정말 눈에 들어 오기는 할까요?... 

  일반 국민들의 미디어 법 반대 여론이 다수라고 하지만, 필자가 판단하기엔 그것은 통계상의 수치일뿐이라고 보여집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주장대로 일반 국민들이 지금 미디어 법이 갖는 의미를 정말로 깊이 인식하고 그것의 위험성을 심도있게 알고 있다면, 작년의 쇠고기 촛불집회와는 비교도 안되는 규모의 시위나 행렬이 거리에서 연출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또한, 이미 미국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디지털 방송이 한국에서도 2012년부터 시작될 예정이지만, 이러한 변화가 왜 생겼으며, 어떻게 기존의 통신과 미디어 시장을 재편할지, 그리고 각 산업 분야에는 어떤 효과가 있으며, 어떠한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논하자는 사회적 공론화는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며, 디지털 방송 체제로 전환하려는 기초적인 인프라 구축이나 대국민 홍보라는 측면 모두에서, 한국 사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한나라당이 제출한 미디어 관련 법안의 발효 시점이 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되는 2012년인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넓은 시각과 관점에서 고민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런 국가적, 범국민적 규모와 차원의 사업을 정부 단독으로 주도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또한 각 세대가 그동안 보유한 아날로그 방식의 TV단말기 및 수신기 교체를 비롯해서, 각종 통신망이나 데이터 연결망 일체를 한국 정부가 모두 소유하고 있던가요? 만약 정부가 그 모두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라고 한다면, 지금 그것들의 실제 소유자가 과연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거대 미디어 통신 시장을 하나로 융합해서,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는 디지털 방송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리고 이런 거대한 규모의 사업과 거기에 소요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재벌이 아닌 민간 중소 기업체들이 감당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의 미디어 통신 분야에서 민주주의적 이상과 가치만을 추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걸리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고, 반대를 해서 얻고자 하는 결과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 옵니다.

 


결론
  지금 이 시각에도 실로 많은 분들이 소위 미디어 법으로 명명된 현정부와 여당의 언론 관련 법안에 대해서, 심한 우려와 함께 각종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며 다양한 비판적 의견과 주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들은 대부분 기존의 민주주의적 가치라든가 진보주의적 시각에서 기반한 것들이며, 분명히 일리가 있고 결단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시각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에 내재된 악마적 속성과 자본주의 체제의 심화와 이행과정 (산업 자본주의→금융 자본주의→문화 자본주의)등을 깊이있게 고려하고 바라볼 때에는, 또다른 차원의 중대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그리고 그것과 관련해서 벌였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과 검찰의 의욕적인 수사, 그리고 국민적인 지지와 여론등은 한국내 시장 경제의 공정성과 민주주의 체제면에서만 보자면, 분명히 의미있고 진일보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버린이라는 해외 사모 펀드의 출현과 함께 그들이 벌인 일련의 모습으로 인해, SK그룹의 경영 지배 구조 개선이나 그룹 총수에 대한 강력한 처벌보다는, 해외 투기 자본의 국내 기업 경영권 위협이라든가 그룹 총수의 집행유예와 사면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된 과거의 사례와 현실들을 곰곰히 돌이켜 볼 때, 
지금의 미디어 법 문제도 국내적 시각으로만 다루고 무조건 반대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닌 듯 보여집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한국 사회내에서 여야를 비롯한 기성 정치권,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 모두가 신문 방송 겸영과 권력의 구도 문제로만 이 사안을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한심하고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소위 한류 열풍의 주역이라는 한국의 잠재성 있는 문화 콘텐츠 시장을 어느 순간에 외국의 초거대 다국적 기업이 차지하고서 주인 행세를 하게 되는 비극적 상황과 더불어, 그로 인한 국가적 성장 잠재력의 하락이라는 만일의 상황을 확실하게 방지하려면... 

  과연 여러분들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말해서, 지금처럼 계속해서 일부 대기업이나 재벌들을 극도로 부정 불신하고 방송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는 것만이 최선의 방책이며, 그렇게 해서 현정부의 의도를 좌절시키기만 하면...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오매물망(?!) 바라는 소위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지금과 같은 미디어 법 문제는 완전히 일단락되고, 두번 다시 거론되지 않는 차원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인...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해서...비관적, 절망적인 견해가 도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인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