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평론2009. 6. 12. 07:03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그다지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 이후, 한국 사회는 예상한대로 여러가지 갈등과 혼란이 다시 재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 노무현 참여정부의 모든 과오를 묻어 버리고 다 잘했다라는 식의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어서 몇자 적어 봅니다. 

  우선 무슨 저작권 문제가 걸린다고 해서, 해당 포스팅의 도표나 본문은 이 포스팅에 아예 제시하지 않고 부득불 해당 포스팅에 링크를 걸도록 하였으니까, 조금 번거롭더라도 여러분이 직접 비교,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크리트라는 블로거가 계속해서 글쓴이의 블로그에 링크를 걸고 자료가 틀렸다라고 주장을 하면서 필자를 피곤하고 귀찮게 만들고 있는데, 해당 블로거가 제시한 자료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근거가 약한지를 간략하게 지적을 한 뒤에, 오늘의 얘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크리트라는 블로거가 작성한 아직도 노무현을 향한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라는 글을 보시면, 2번 문항으로 처리된 부분에 일본 노무라 경제 연구소와 내무성의 금융자산이란 도표가 보이는데, 해당 블로거는 그 도표를 근거로 주장하기를, 일본은 금융자산이 34%이고 실물자산이 66%라면서, 필자가 전에 작성하였던 포스팅의 수치는 근거가 약하다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기에다가 전부 엉터리라고 극단적인 말을 서슴치 않았고, 그런 필자의 포스팅을 베스트 뉴스로 뽑아준 다음 편집진에게까지 짐짓 호령을 하였는데요...-_-;;;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노무라 경제 연구소의 해당 도표를 자세히 살펴 보시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도표의 우측 상단에 영어로 Debt라고 표기된 부문이 아마도 빚...다시 말해서 가계 부채 비율이라고 짐작되는데요. 그 비율이 13% 정도에 불과하네요...? 밑에 일본 내무성 자료라는 곳에서는 필자가 불민해서인지 이런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찌되었거나 해당 포스팅의 일본 노무라 경제 연구소가 제시한 정도의 가계 부채 비율대로라면, 벌써 일본은 90년대 초반의 부동산 버블로 인한 충격을 완전히 벗어나서 경제가 고성장을 해야만 했고, 소위 유동성 과잉이 넘치는 지난 2000~2007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상당히 들썩였어야만 시장의 이치에 부합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시쳇말로 일본이 그동안 엄청나게 부동산 관련 정책을 잘해서 가계 부채 비율은 획기적으로 줄이고 세계적인 부동산 버블의 거품은 완벽하게 피했다는 말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부동산 폭락 장세로 접어든 한국의 부동산 정책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일본의 사례만 전폭적으로 연구하면 만사형통일테니까 한국내 부동산 관련 전문가들은 전부 일본으로 보내야겠네요...^^

  해당 포스팅의 3)번 미국의 사례에서도 도표를 들어가며 금융자산은 40.6%이고 가계 부채는 3.6% 정도 된다라고 크리트 자신 스스로가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가계 부채가 고작 3.6%밖에 안되는 미국 가계가 불과 5년여만에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인해서 이토록 엄청난 가계 부실과 함께 경제적 고초를 겪고,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불렀다고 말하면, 아마 제대로 된 경제적 마인드와 기초 상식을 가진 이라면 코웃음을 치거나 그런 말을 하는 이를 가리켜서 정신이 완전히 나갔거나 아예 미쳤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

  하지만 크리트라는 블로거 말마따나 해당 포스팅의 자료는 전부다 무슨 1차 자료, 원자료라고 하니까 한치의 오차나 틀림도 없겠지요?^^ 

 
 물론 필자나 이 포스팅을 보시는 생각있는 여러분들은 일본이나 미국의 부동산 담보 대출 비율이나 가계 부채 비율이 크리트라는 블로거가 제시한 도표의 수치보다는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는 점은 굳이 글쓴이가 따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할 것이지만 관련 신문 기사 하나만 링크시킵니다. ^^
(※관련 기사: 가계 금융자산대비 부채비율 47.8% 일본의 두배 )

  이 시점에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렵니다. 왜 크리트가 제시한 도표에서 금융자산과 실물자산만을 보았을 때에는 상당히 그럴싸한데, 필자가 말하는 가계의 빚 문제, 다시 말해 가계 부채 비율을 생각해 보니까 수치가 이상하게 나오는지 사뭇 의아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모든 경제학의 수치나 도표는 변수에 따라 모양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경제 성장률 수치와 각종 민간 연구소나 기업에서 발표하는 수치가 완벽하게 똑같던가요? 모두 어느 부분에 좀더 치중하고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수치는 바뀌기 마련이기에, 한국만의 특별한 부동산 사정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자꾸 외국과 단순 비교를 하려는 데이터는 지금 크리트라는 블로거가 하듯이 그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욱 가증스럽고 우스운 것은, 자신이 무슨 경제학계의 세계 석학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하루하루를 사는지, 능력은 쥐뿔도 안되면서 감히 국내 유수의 민간, 기업 연구소들과 모든 언론 그리고 민주노동당이나 경실련, 새사연, 김광수 연구소등의 연구 자료가 전부 엉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지함과 담대함에 진실로 질리고 있고 거기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글쓴이가 그전부터 누누히 강조했지만 크리트라는 블로거가 제시한 모든 도표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전반적인 부동산 정책의 실정과 본질적인 제반 모순들을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 참여정부 당시 있었던 잘못을 아예 없애고 미화를 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크리트는 단지 금융자산과 실물자산의 비율과 같은 극히 한정된 부분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핵심이자 본질인 한국 부동산 시장 전반의 모순과 문제들, 더 나아가서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며 잠재적인 핵폭탄인 가계의 부실과 담보 대출의 비율, 그리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갚을 가처분 소득의 비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서 나온 단순한 수치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도표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오류와 문제가 숨어 있다는 말입니다.


  전에도 거듭 말했지만, 한국의 부동산은 자산 대비 비중이 너무 높다라고 필자는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동산의 편중이 극히 왜곡되어서 소수의 계층에게만 수혜를 톡톡히 베풀었다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자 크리트라는 블로거가 지극히 멍청하고 미련하게시리, 이에 반박을 시도한답시고 금융자산과 실물자산만을 단순 비교하며, 다시 노무현은 나름 선방을 했다라고 주장하고, 참여정부 당시 서민들의 고통을 폄하하며 진짜 빌어먹을 망언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 해당 블로거에게 보다 근본적인 한국 부동산의 핵심 문제 중에서 딱 하나만 설명하고자 합니다.

  한국의 부동산은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을뿐만 아니라 집을 구입할 시, 자기 자본 100%으로 그것을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은행등을 통해서 대출을 받아서 부동산을 구입하기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 혹은 폭락같은 방법으로 요동을 치게 되면, 자칫 실물과 금융 전반의 복합적인 경제위기로 확산될 핵심고리가 바로 부동산이란 기본적인 사실을 해당 블로거는 잘 모르는 듯 합니다. 

 
  위에서 크리트가 제시한 도표가 어설프게 제시한 가계의 부채, 다시 말해 수치 자체가 사뭇 의심스러운 가계 부채...이 부분을 한국의 부동산에서는 담보 대출 비율에 대한 문제와 그것을 갚을 실제적 자본과 능력...즉 가처분 소득이란 문제로 한정해서 보고, 그로 인해  노무현 참여정부가 2006년 후반기에서야 뒤늦게 내세운 양도세 중과라든가 부동산 담보 대출 비율 제한 조치가 어떻게 현실에서 헛발질을 했었는지 간략하게 예를 들어 보이면서 오늘의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클릭하세요!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패야말로 이명박 정부 부동산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는 기준이자 잣대  
  ...그리고 이렇게 노무현 참여정부 기간에 부동산 버블이 커졌고 결국 실패했다라고 진단함으로써만이, 비로소 현정부의 의도가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부동산이 끝을 모르는 폭락장세이니까, 이런 시점에서는 가격을 더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노무현 참여정부동안 형성된 부동산 거품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고 이른바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1% 계층만 잘사는 국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관련 포스팅: 한국 부동산 거품 해소에 10년 걸릴 수도)

  그래서 국민들의 반대를 그토록 무릅쓰고 4대강 정비라는 미명아래 대운하도 강행하려는 것이고, 헌재를 통한 종부세 폐지, 대출 규제 완화, 투기 지역 해제, 건설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등등이, 모두 어떻게든 노무현 참여정부 기간에 키워온 부동산 버블을 유지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이 결국엔 참여정부와 마찬가지로 일반 서민들에게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으며, 지금과 같은 폭락장세에서는 더욱 뻘짓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비판해야 사리에 맞지 않을까요...? 

  노무현이 부동산에서 나름 선방했다라는 식의 말도 안되는 미화로 아무 의미도 없는 소모적 논쟁을 낳지 말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그런 참여정부의 엄연한 부동산 실정을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공세를 취한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의도가 결국 당시 국민들에게 먹힌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노무현 참여정부가 어떤 덜떨어진 블로거의 말마따나 부동산 문제에서 진실로 선방을 했더라면, 국민들은 제아무리 조중동이나 한나라당, 아니 그 할애비가 와서 거짓말을 해도 결코 믿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 주변에서 벌어졌던 당시 상황은 위의 포스팅에서 언급한 단순 수치들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심각하고 처절했었기에, 결국 국민들이 사상 최대의 표차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뿐입니다.

  2007년 당시 필자도 대선 중계를 지켜보며 일종의 경악과 함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광경에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워야만 했습니다. 비록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세라고 하는 사실을 이미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그토록 큰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곤 미처 예상을 못하고 있었기에, 내심 충격이 상당하였으며 그 원인을 분석하고자 나름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조중동이 노무현 참여정부때에만 거짓말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난 60여년간 그들은 늘상 그래 왔었고, 그런 와중에서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을만큼 국민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었는데, 왜 5년이 지난 2007년 당시엔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니까, 주요 원인은 바로 참여정부의 최대실정인 부동산 폭등이었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일부 극렬 노빠들이 이런 엄연한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정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언젠가 수구 꼴통 작가
이문열이 말했었던 대선 불복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던 모습에 필자는 찬성할 수 밖에 없으며, 당연히 그런 세력은 민주 공화국의 원칙에 따라 지금의 한국 사회내에서 가장 먼저 척결이 되거나 경계해야 할 부류것입니다.


  요즈음 다음 뷰를 살펴보면 과거 필자도 그랬었지만 여러분들도 개신교를 참 싫어합니다... 여러분은 왜 그들이 그렇게 싫었나요? 뒤로는 온갖 부정과 세속적인 일은 다하면서도 자신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향해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단죄하거나 구원한다면서 귀찮게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바로 글쓴이가 노무현을 미화만 하려는 일부 노빠들에게서 발견하는 태도가 일부 그릇된 광신적 기독교 신자들과 비슷하다라고 말하면 크게 문제가 되려나요...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크리트라든가 또다른 누구처럼 노무현을 성자 예수나 혹은 사회주의 혁명의 대명사인 체 게바라에 비교하면서, 인터넷을 장악하고 설쳐대는 일부 극렬 노무현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인도의 비폭력 투쟁을 이끌었던 간디가 한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예수는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그리스도 교인은 정말 싫어한다" 라는 말을 필자는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글쓴이는 재야 운동가 시절 노무현의 이상은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후의 모든 행적을 미화하려고만 하는 노빠들은 정말로 질색이며, 그로 인해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꾸 비판하게 되고 진짜로 저주하고 싶어진다" 라고 말입니다.... 
  P.S:   
  크리트라는 극렬 노빠 블로거가 필자가 제시한 자산 대비 부동산의 비중이 89%라는 수치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냐고 물어 보아서 답변을 남깁니다. 글쓴이가 자료를 얻은 곳은 대한상의입니다.^^ 일반적으로 가계자산은 크게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 구성되는데, 우리나라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대한상의 89%, 한국은행(주택자산) 83%, 국민은행 80%, 삼성금융연구소 79%, 통계청(전월세 포함) 81% 등으로 위에서 말했듯이 조사기관에 따라 수치의 차이가 상당해서 최소 79%에서 최대 89%에 달합니다. 가계자산 중 부동산의 실질적인(!!!) 비중은 미국은 36%, 일본은 43%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정설이자 평균치입니다. 이 부분은 삼성 금융연구소를 비롯한 기타 민간 연구소의 리포트에서도 이미 여러 번 지적한 사항이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왜 이런 수치를 냈느냐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은 자산대비 금융 자산이 다른 나라에 비해 극히 낮으면서, 또한편으로 금융자산의 분포가 극히 한정되어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의 금융 자산은 부동산으로 인해 지극히 저평가되어 있는 동시에, 대부분 저축이나 주식같은 것에만 한정이 되어 있어서, 앞으로 이 부분을 좀더 공략하여 금융 자산을 세분화하며, 금융 자산 시장을 개척하고 우위를 선점하여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자는 지극히 사적인 관점에서 나온 시장 보고서나 리포트들이기에, 오히려 거짓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였답니다.  


  또한 일본의 버블을 얘기하며 참여정부 당시 한국의 GDP 대비 320%는 큰 무리는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데, 통상 한국의 부동산이 공시지가로 거래되던가요? 아니면 실거래가, 혹은 실제시가로 거래되던가요?^^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140361.html)
  이미 전포스팅에서 언급하였지만 경실련같은 시민 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참여정부 당시 한국의 아파트 가격과 실거래가 지가를 합치면 약 6000조원이 됩니다. 참여정부 당시 우리나라 GDP는 6800억 달러로 700조 원 정도가 되며, 따라서 6000조 원/700조 원으로 계산해보면, 우리나라 부동산 값은 GDP의 8배를 넘어 일본, 홍콩보다 부동산 거품이 배 이상 크다는 얘기가 된다는 것이 참여정부 당시 부동산 폭등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말입니다. 

  일개 블로거일뿐인 필자는 다음 뷰에 글을 송고하는 이들 중에 진짜 부동산 전문가가 많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글쓴이가 전개하는 이론이 항상 부족함에 내심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하는 마지막 충고인데, 크리트라는 노빠 블로거는 이 시간 이후로 능력도 안되면서 주제넘게 경제학자들을 흉내내며 무의미한 숫자와 데이터 놀음으로 문제를 자꾸 호도할 게 아니라, 참여정부가 부동산 문제만큼은 정말 잘하지 못했었다라는 발언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다시한번 기억하고, 한국의 부동산이 여러모로 심각하고 정책적인 제어가 매우 어렵다라는 진실을 마주 보기를 권합니다. 
     (크리트가 특히 필독해야 할 포스팅 ※참여정부 부동산 폭등사태에 대한 시국 선언문)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아무리 해 보았자 필자가 애초 제시하거나 지적했었던 당시 노무현 참여정부의 과오가 결코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글쓴이의 필명을 거론하거나 블로그에 링크를 시키고 자꾸 소모적 싸움을 걸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5. 3. 00:03
  엊그제, 글쓴이는 어느 일본 남자가 말하는 한국 여자 라는 글을 통해, 한국 사회내에 광범위하게 퍼진 명품 열풍과 성형으로 대변되는 외모 지상주의에 물든 사회 분위기를 다시 생각하라는 취지의 포스팅을 올렸었습니다. 당시 해당 기사를 올리면서 일본인의 말이라는 점이 가져올 불필요한 오해와 함께,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보여 왔던 한국 젊은 세대들의 그간 행태를 잘 알고 있었던 필자는 노파심이 생겨 글 속에 여러 사전 당부를 하였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염려는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몇몇 이들에 의해서 극심한 반대와 인신공격성 댓글의 홍수를 받게 되었는데, 그 중 흥미로운 유형의 댓글이 보여서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내 주위엔 그런 사람 없어요~라는 말 속에 숨겨진 그릇된 집단주의
  글쓴이가 다음 블로거 뉴스에 글을 써 온지도 어언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참 여러가지 모습의 댓글을 접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고 그 전부터 뚜렷하게 보였었던 한 가지 흥미로운 유형의 댓글들은, 바로 내 주위엔 그런 사람이 없다라는 투의 말로 시작하는 답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댓글은 대부분 해당 포스팅을 반박하고 반대하는 측의 것이더군요...
  내 주위엔 그런 사람없다며 해당 포스팅의 내용이 일부의 얘기를 전체로 환원했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의 댓글 중 일부를 올려 보았다.

  위에서와 같이, 해당 댓글을 작성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답글을 달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한국인 특유의 집단주의를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전 포스팅에서 강조하는 명품과 성형에 대해, 자신이나 주변의 여성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면 좀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포스팅에서 말한 상황을 바라보고, 이런 부분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거나 현실적으로 이런 어려움이 있다라는 정도로 끝날 얘기가 이들에게는 마치 전체를 호도한 양 받아 들여지며, 글쓴이는 순식간에 한국 여성 전체를 호도하는 편협한 사고를 가진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겁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명품과 성형에 지나치게 민감하며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거기에 휩쓸리는 한국 여성들이 많다는 엄연한 현실을 어느 일본인의 시각을 통해서 조명했던 해당 포스팅도 글쓴이와 함께, 졸지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극히 편협한 시각을 가진 글로 폄하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글에서 말하는 내용이 정말로 한국 사
회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고 극소수만이 벌인 일인가요? 만약 내 주위엔 그런 사람이 없다라고 주장을 하며 반대하는 분들의 말이 100% 맞다면, 글쓴이나 일본 친구는 그동안 유령들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글을 썼다는 말인가요? 또한 해당 글이 진실로 전체 한국 여성을 비판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믿고 계시나요? 솔직히 말해서 정말로 우스운 것은, 그런 말을 하는 분들도 자신의 경험만이 절대적인 기준인양 생각하고 위에서와 같은 답글을 달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런 말을 수시로 하는 이들이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요? 


  글쓴이는 이런 비판 글을 쓰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 한국 사회는 이상하게도 해당 포스팅에서 언급하는 것과 같은 민감한 문제가 생기면, 그래서 누군가가 거기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소수의 목소리를 내면, 마치 전체가 매도를 당한양 극도로 흥분하면서, 나와 상관없는 이들과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묘한 습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런 한국인들만의 특유한(?!) 속성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일상 생활속에서 수시로 나오는 단어가 바로 우리라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들다보니, 해당 포스팅에서 말한 그릇된 사회적 풍조에 대한 개개인마다 다른 색깔의 성찰을 모으거나 수렴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겠지요. 또한 그러다보니, 자신만의 특별한 개성이나 멋,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기도 더욱더 힘겨워지고, 이는 자연스럽게 다양성과 창의성을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관통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의 흐름과는 완벽하게 대치되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는 사회적, 개인적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자연스럽게 어떤 사안이든지간에 결론 도출이나 합의보다는 논란만 분분한 사회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신과 다른 이를 지나치게 일체화시키려는 모습이 부르는 사회적인 폐해
  ...이렇게 현대 시민 사회를 관통하는 의식인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과도기적인(?!) 혼란상을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 살았던 글쓴이가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가장 확실하게 느낀 점은, 대다수 미국인들이 개인적인 일과 공적인 일을 철저하게 분리할 줄 알며, 그러다보니 나와 상관이 없거나 해당이 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 누군가가 비판을 가하면 제목이나 글의 내용중 일부만을 문제로 삼아, 우리 모두를 도맷급으로 매도했노라고 흥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런 식의 사고와 행태를 가졌다면, 다민족 국가로 이루어진 미국이라는 나라는 인종과 국적별 그룹으로 수없이 쪼개져 서로를 비판하고 헐뜯다가 일찌감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식의 그릇된 집단주의를 멀리하고 철저한 개인주의와 합리주의 노선을 따랐었기에, 근대 자본주의의 시기를 거치면서 성장을 거듭했으며, 오늘날 세계 최강의 국가로 우뚝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 반면에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을 통상 보이던가요. 한국이 아닌 외부에서 비판이 오면, 우선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니네는 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반문을 하고 따지기 바쁘며, 우리는 우리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외국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판에 박은 주장으로 상대방의 비판을 간단하게 무시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나 혹은 우리 주변엔 그런 사람 없다라는 말 속에 숨은 그릇된 집단주의 의식 때문이 아닐까요...게다가 지금은 세계화의 시대이고, 한국에도 수 많은 외국인과 그들의 2세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캐캐묵은 집단주의,단일민족 의식을 고수하며 살려고 하는지 실로 답답한 마음이 생깁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특별한 정치인,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좋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거기에 한 수 더떠 그들과 자신을 일치화시킴으로써 다른 사람이 해당 스타에게 가하는 비판이나 우려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 그 와중에 지나치리만큼 강하게 해당 스타에게 몰두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다퉈서 자신이 일체화시키고 추앙하는 누군가를 비호하겠다며 가히 투쟁적 내지는 전투적으로 나서게 되는 이유도, 바로 내 주변엔 그런 사람 없다라는 말 속에 깃든 패거리 의식과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배타적인 생각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우리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일체화가 너무나도 지나치다 보니까, 누군가가 자신의 기대에 크게 어긋나거나 실망을 주게 되면, 필요 이상으로 크게 상심하거나 그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철저하게 기만을 당했었다라는 생각에 빠져 그토록 흥분하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성토 분위기로 급격하게 돌아서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암튼간에, 누군가가 무엇을 비판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해당하지 않으면, 그런 사안이 사라진다고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거나 포스팅을 반박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인지는 필자가 그분들을 일일히 만나 심경을 들어보지 못해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말로써, 비판적 기사를 작성한 이들을 폄하하고 포스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좀더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넘치는 한국 사회, 한국인으로 거듭나시기를 희망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P.S: 어느 일본 남자가 말하는 한국 여자 라는 포스팅이 얼마나 불편하고 내심 거슬렸는지, 몇몇 분들은 아주 심한 행태와 반응을 보였는데, 이것도 극단적으로 왜곡된 집단주의의 형태 중 하나라고 보여져 일부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해당 포스팅의 댓글창에 와서 내 주변엔 그런 사람 없었다라고 시작하는 답글은 그나마 양반이었고, 조금 더 나아가서 글쓴이와 일본 친구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고, 심지어는 식민사관이나 사대주의를 운운하며 필자를 공격하는 이들도 있었고, 해당 포스팅과는 아무 상관없는 글쓴이의 백인 여자 친구와의 사연을 담은 포스팅에 몰려가, 너같이 여성을 비하하고 권위적인 사고에 빠진 인간이 무슨 백인 여자를 사귀냐는 둥 그나마 브라질 출신 백인여자니까 너같은 형편없는 인간을 봐주는 것이라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도 굉장히 많아서 부득불 삭제, 차단 조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이들이 외부 댓글창에 진을 차고 앉아서 끝없이 글쓴이와 일본 친구를 헐뜯다가 안되겠으니까, 급기야는 일본 친구 얘기가 사실이 아닌 허구라는 둥 외부 댓글창에 답글을 남기던 필자와 다른 이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둥, 심지어는 작년에 노무현 참여정부와 촛불 집회에 회의적이었던 글쓴이의 포스팅을 문제 삼으며, 마치 필자가 그럼으로써 현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미국 유학을 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근거 없는 비방과 막말을 해대는 이들을 보면서, 이런 식의 행태는 결단코 좋은 의미의 집단주의가 아니라 지독한 아집과 자기 기만에 빠진 일부 꼴통 페미니스트들과 몇몇 난독증에 빠진 이른바 된장녀들만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편에서는 측은한 심정까지 들기 시작하는데, 여러분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NOTICE: 글쓴이에게 지나칠 정도로 인신 공격적이고 근거없는 비방성 댓글을 계속 남긴 이들의 닉 네임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공개합니다. 사전에 글쓴이가 누차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기들 멋대로 댓글을 남긴 것에 대해, 그리고 비판적 글을 쓰는 또다른 이들이 필자가 받았던 것과 유사한 형태의 인신 공격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응분의 사전 조치이니까 이 점 너그럽게 양해하시길 바랍니다.
  필자와 다른 이를 하나의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 끝없이 조롱하는 김유상이라는 닉을 가진 악플러의 모습입니다.

 그가 이 댓글을 남기기 전에 썼었던 막말과 욕설들은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올리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글쓴이와 히카라는 인물을 동일 인물이라고 계속 우김으로써, 글쓴이와 히카라는 닉을 가진 분 모두를 모욕하는 비열하고 더러운 행패는 자제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필자의 포스팅을 극구 부정하고 반대하다가 안되니까 급기야는 필자를 다중의 아이디를 써서 찬성 댓글을 쓰는 찌질이라든가 일본 친구 얘기는 소설이라는 식의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비방으로 답글을 남기는 이와 작년에 글쓴이가 촛불 집회를 회의적으로 본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보고 와서는 현정부의 도움(?!)을 받아 미국 유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매도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선입견과 오해를 유도하는, 그야말로 막가파 내지는 부끄러움이나 양식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혹자는 외부 댓글창의 악플들은 과감하게 무시하라고 하시지만 글쓴이는 본인이 작성한 포스팅 못지 않게 외부 댓글 창도 포스팅을 대변하는 하나의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얼굴에 이런 식으로 낙서를 하면 되겠습니까...블로그 내의 댓글창은 욕이나 근거없는 인신 공격, 비방을 하면 블로그 주인이 삭제,차단 조치하면 그만이라지만 외부 댓글창은 말 그대로 포스팅의 대문에 위치하고 있는 격인데, 이런 식의 댓글이 달려있는 것은 해당 포스팅을 읽고자 방문하는 분들과 필자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아닐까요...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보다 분명한 보완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다음 블로거 뉴스 개발자님께 강력하게 건의합니다.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혹시 이런 질문을 받아 보셨나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거나, 소개팅 혹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이성의 신체 부위중 어디를 가장 먼저 보느냐는 질문 말입니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아마도 여러분 대부분은 이런 질문을 받아 보았거나 다른 이에게 한번쯤은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특히나 남성분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거의 정형화된 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 부분에서도 한국과 미국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보여져 몇 자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여성의 신체 부위중 어디를 가장 먼저 보냐는 질문을 한국에서 받게 된다면...
  TV에 나오는 인기 절정의 남자 연예인들이 한번쯤 받게 되는 질문, 바로 여성의 신체 부위중 어디를 보느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 통상적으로 해당 남자 연예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잠시 머뭇거리거나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여성의 눈이나 손 혹은 얼굴 전체를 본다는 답변이 거의 대부분이죠. 물론 가끔은 특이하게도 발목이나 손목 등을 본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글쓴이가 언급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대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비단 인기 연예인만이 아니라 평범한 한국 남성들도 이 질문을 받으면 비슷한 답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남성들끼리만 모여 있을 경우에는 좀더 솔직하고 적나라한 얘기들이 오고 가지 않습니까. 물론 여성들도 그렇겠지만 말이죠...^^

  흔히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말 중에 여성들에겐 내숭이 있다고들 하는데, 이 경우를 살펴보면 여자만 내숭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남자들끼리 있을때는 스스럼없이 여성에 대해 혹은 제일 먼저 여성의 어디를 보고 매력을 느끼는가에 대해 솔직하게 말을 하던 이들 대부분이, 여자들 앞에만 서면 자신은 여성의 눈을 본다는 둥 혹은 외모는 그리 중요치 않다는 둥 하는 것을 보면 한국 남자들에게도 내숭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미국 남자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까요...?

여성의 신체 부위중 어디를 가장 먼저 보냐는 질문을 미국에서 받게 된다면...
  성은 인간의 본능에 해당하는 사항이기에, 국경과 사상등을 초월한다는 보편적 사실을 글쓴이는 머리가 아닌 실제 경험으로 느낀 적이 몇번 있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미국은 세계 각국에서 유학을 오는 젊은이들이 넘치는 나라이지요. 그러다보니 학교에서 혹은 파티나 모임에서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습니다. 글쓴이도 예외는 아니어서 브라질,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대만 같은 나라에서 온 남자나 여자들을 여럿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하루는 그들과 모여서 얘기를 나누다가 보니 여성의 특정한 신체 부위를 나라에서는 어떻게 부르고 발음하는지를 물어보는 상황이 있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었던 발음과 소리들이 나와서 모두가 그것을 듣고 서로 따라해보거나 흉내를 내면서 박장대소를 하다가 배꼽이 빠질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필자에게도 그들은 질문을 던졌었는데, 글쓴이는 한국말로 그걸 가르쳐주면서도 왠지 쑥쓰럽고 무안한 겁니다...물론 당시엔 그래도 남자들끼리만 있으니 그런 기분은 금방 털어버렸지만 말입니다.


  암튼간에, 그렇게 남자들끼리 모이면 국경이나 그 밖의 조건들을 초월해서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소재중 하나가 여성이나 성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의 모임은 그렇게 끝났고, 그 이후에 글쓴이가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파티에 초대를 받아서 참석을 했을 때의 일인데,
그 자리에서 필자를 비롯한 일단의 남성들에게 우연히 던져진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을 보면 어느 신체 부위를 먼저 보냐는 식의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대답을 주고 받는 것을 지켜 보면서, 내심 상당히 솔직하다라는 느낌과 함께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앞에 있는 경우, 위에서와 같은 질문을 남자가 받게 되면 일단 주변의 분위기와 눈치를 정말로(!!!) 잘 살펴야만 합니다. 만약 해당 모임의 분위기가 가볍고 유머러스한 얘기를 위주로 하는 자리라면, 좀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이를테면, 나는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제일 먼저 본다는 식의 솔직하고 당돌한 성적 농담을 가볍게 던질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정말로 상황과 분위기를 잘 타야 할뿐만 아니라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가장 먼저 본다는 말이, 자칫 다른 여성들에게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거나 혹은 그런 류의 성적 농담을 하는 남자는 저속하고 육욕적이며 아무런 생각이 없이 오로지 그거(?!)만 밝히는 남자로 여성들에게 비치거나 낙인찍히지나 않을까하는 일종의 노파심에서,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알아서 조심을 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런 성적인 얘기를 하는 것 자체를 상당히 쑥스럽고 무안하게 여겨지게끔 하는 한국 사회의 유교적 가치관도 큰 몫을 하고 말입니다.

  그 반면에, 미국 남자들도 남자들끼리 모여 있을때만큼 적나라하고 솔직한 얘기를 여성들 앞에서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성적 농담들은 좀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하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야 그들의 성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가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점은 여러분도 대부분 동의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글쓴이가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성이란 국경과 사상, 문화를 초월한다는 점과 비단 한국 여성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미국의 남자들에게도 일종의 내숭이란 것이 있는데, 그 정도나 깊이에 있어 미국 남자들보다는 한국 남자들의 그것이 좀더 강하다라고, 필자는 나름 판단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혹시 이런 말을 들어 보셨나요? 한국에서 여자가 결혼을 하기 전이건 그 이후든간에 자신의 과거(?!)를 절대로 남편에게 말해서는 안된다는 얘기 말입니다. 또다른 한편으로 요즘 한국 사회에서 소위 연상연하 커플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여자가 이미 한번 결혼했다 이혼을 했었다거나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까지 데리고 살고 있다면 어떨까요?

  오늘은 이렇게 한번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했고 거기에 아이가 있는 여자가 재혼을 하게 될 경우에, 한국과 미국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논하고자 합니다. 미리 밝혀 두지만 한국의 경우에서, 필자가 드는 사례 중 인물들의 이름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영어 이니셜로 처리했음을 알려드리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아이가 있는 이혼녀가 재혼을 한다면...
  지금으로부터 6년전의 일입니다. 봄 바람이 산들산들 불던 어느 날, 필자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S라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과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를, 글쓴이를 비롯한 친한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면서 저녁에 시간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소식도 아니고 그런 좋은 소식에, 당시 글쓴이는 다른 스케줄을 뒤로 미루고 친구와 그의 여자 친구를 보러 갔었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친구가 소개한 M이라는 여자를 처음 보았는데, 그녀의 첫 인상은 정말 참하고 지적인 모습으로 지금도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맥주와 다과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보니, 한국에서는 으례껏 그렇지만 우리 일행중 한 명이 그녀의 나이를 물어보게 되는 순간이 있었고, 알고보니 그녀는 S라는 친구보다 5살 연상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필자가 전에도 언급(동안 열풍에 대한 한국여자와 미국여자의 차이)했듯이 한국에서 나이를 물어본다는 것은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나 그 밖의 여러 부대 조건을 가늠하는 하나의 중요한 잣대라고 말했었는데, 바로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갓 서른을 넘긴 우리네 나이에 비하면 그녀는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였기에, 여러모로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말을 하는 모습이나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로 보아서는 성격이라든가 그 밖의 면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고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앳되어 보이기까지 한 외모를 가진 M이라는 이름의 그녀가 왜 그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암튼 그렇게 그 날의 만남은 기분좋게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S라는 친구가 결혼을 약속했다는 M이라는 그녀가 과거 이혼을 했었고, 거기에 이미 5살이 되는 아들까지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왠지 처음 만날 때처럼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필자의 친구나 선배들중 평소 S와 친했던 몇몇 사람들은 그에게 정말 M과 결혼을 할 거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고, 자기들 딴에는 S를 생각한다며 결혼만은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을 하다가 S와 본의아닌 말다툼까지 생겨 서로간에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당시 우리들 대부분은 머리로야 결혼은 당사자간의 문제이니 주변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었지만, S의 사정을 지켜보면서 현실은 그와는 또다른 문제임을 절감했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S라는 친구의 집안은 소위 말하는 보수적인 가정이었기에, 주변의 반대가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 지역에서는 꽤 신망을 얻는 유지의 집안이었는데, 그런 집에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 상대가 하필이면 아이 딸린(?!) 이혼녀라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일 부모는 한국 사회에는 그리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심지어 필자는 S의 어머님으로부터 '친구 좋다는 것이 무엇이냐며 너희들이 나서서 S를 좀 설득하거나 말려 보라' 는 대단히 난처한 부탁까지 들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쓴이가 S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사실 'M은 자신이 이혼녀에다가 아이까지 있어 자격(?!)이 없다' 며 한사코 S의 애정공세를 거부했었답니다. 그러나 무려 2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S라는 친구가 M과 그녀의 아들에게 보였던 열성과 진지함은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M은 결혼을 허락하게 되었으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필자가 무슨 말을 S에게 더 했겠습니까만, 문제는 그들이 결혼을 하면서 이젠 해피엔딩으로 이야기가 모두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데에 있습니다...

  평소 사업가로써 주변의 신망을 많이 쌓았던 그의 부모님들은 남들을 대하기가 난처하다며 다른 이들에게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리기를 원치 않았으며, 그로 인해 청첩장을 보낼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음은 물론이거니와 결혼식 당일, 많지도 않은 하객이 오고 가는 자리와 결혼식이 거행되는 시간내내 S의 부모님은 한번도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 M의 아들 문제로 인해서 S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 수 없는 형편이었고 그나마 명절에도 찾아 뵙지 못하는 경우에 처하게 되면서 그의 부모님과는 사실상 의절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다가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눈치를 주고 이런저런 얘기들이 자꾸 오가다 보니, 결혼 전부터 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M의 전남편과 S라는 새로운 아빠 사이에서, 갓 유치원에 들어간 M의 아들이 정신적 혼란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성격이 비뚤어지고 엇나가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암튼 그렇게 여러모로 힘들다는 소식을 간간히 전하던 S와 M 커플은 결혼 후 3년만에 일본으로 갔다는 얘기를 끝으로 지금껏 연락이 되지 않고 있지만, 필자는 매년 이맘때면 그들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 아이가 있는 이혼녀가 다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구나라는 것은 굳이 필자가 S라는 친구의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분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거나 혹은 잘 알고 있는 일인데,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아이를 가진 이혼녀의 교제나 결혼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미국에서 아이가 있는 이혼녀가 재혼을 한다면...
  글쓴이가 알고 지내는 교회의 교우중에는 엘리스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는데 그녀는 바로 위 문단에서 언급했던 M처럼 아이가 있는 이혼녀입니다. 만약 한국에서라면 아이가 있는 이혼녀라는 사실은 물론이거니와 누군가와의 교제 사실을, 다른 이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는 실정이 아직은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도 대부분 동의하실 겁니다.

  하지만 엘리스는 스스럼없이 교회에서 주관하는 potluck 파티등에 자신의 남자 친구를 초대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조만간 결혼할 사이라며 자연스럽게 소개를 하는 것을 보면서 이곳에서는 그런 얘기들은 전혀 그 사람의 핸디캡이나 치부가 되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라면 아이가 있는 이혼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부분도 극히 한정되고 생활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은데, 엘리스의 경우를 보니 면접을 볼시 결혼, 이혼
유무에 대한 질문 자체를 받지 않는 관계로 직업을 구하기도 한결 쉬운 것은 두말할 것도 없더군요.


  그러나 글쓴이가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놀랍게 받아들였던 점은 바로 엘리스의 전 남편과 현재 그녀가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라든가 엘리스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보인 반응이었습니다. 한국 같으면 십중팔구 어딘지 어색하고 서먹서먹할 수 밖에 없는 전 남편과 현재의 남자 친구 혹은 남편과의 사이라는 것이 미국 사회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며 그렇게 원만하고 서로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필자는 지금까지도 100%로 납득이 되지는 않으며 마음 한 구석에는 일말의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또한 그녀의 주변인들이나 동료들도 이런 문제를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고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반응을 보이니까 그녀의 아이 또한 별다른 정서적 혼란이나 성격상의 문제로 마음 고생을 한다거나 눈치를 살피는 일도 없으니,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들을 바라보는 제 3자도 마음이 덩달아 편안해지는 일종의 선순환이 계속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조만간 엘리스가 현재 만나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남자 친구 집안의 반대라는 말이나 개념을 의식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처럼 주변의 시선을 살피고 그로 인해 결혼식 하객으로 누구를 초청하고 말 것인지와 같은 사안들이 관심이나 고려의 대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여러모로 상당히 좋아 보였고 한편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지고 행복이란 이런 것이겠구나라는 느낌에, 글쓴이가 과거 한국에서 보았던 S와 M의 너무나도 힘들었던 러브 스토리를 엘리스에게 조금 들려 주었더니, 엘리스가 하는 말이 '둘이 정말로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였구나' 라며 연신 감탄사를 발하고 눈빛까지 반짝이며 필자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과 자연스러운 반응을 대하면서 글쓴이는 또한번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와 사회적 인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비단 아이가 있는 이혼녀가 아니라도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여자의 과거라든가 결혼 혹은 이혼 유무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닌 주변인들 전체의 문제로 받아 들여지는 분위기는 집단주의적이며 혈연을 지나치게 따지려는 사고가 팽배한 한국 사회의 현주소이며 점차 지양되어야 할 모습 중 하나라고 필자는 판단하게 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혹시 이런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마음에 드는 이성을 사귀면 시외나 도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교외로 나가 시간을 끌어 차가 끊기기를 기다리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한국에 있을 때에는 이 얘기가 우스갯 소리 내지는 일종의 연애 공식(?!)으로만 여겼었던 필자가 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이 말이 한국의 밤 문화와 이성간 교제에 대한 상황을 잘 반영한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글쓴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지금부터 한국과 미국의 상황을 비교해서 논하고자 하오니 한번 눈여겨 보시길 바랍니다.
                                                        영화 '생활의 발견' 중 한 장면.

한국에서 여친과 술 마시다가 차가 끊긴다면... 
  과거 글쓴이가 한국에서 여자 친구와 만나서 어울리고 술을 마시다가 보면 간혹 차가 끊기는 적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택시를 태워서 여친을 보내거나 좀더 같이 있고픈 마음에, 비디오 방이나 찜질방 혹은 노래방같은 곳을 가곤 하였었지요. 그리고 심신이 너무 피곤해서 마냥 쉬고 싶다거나 분위기상 그런 장소가 마땅치 않다고 느껴지면, 여관이나 모텔 같은 곳도 종종 가곤 하였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여자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밤에 차가 끊긴다고 해서 그다지 큰 염려를 할만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으며, 요 근래 치안이 불안하다고 말들이 많지만 조금 시야를 넓혀 국제적으로 보자면 한국 사회의 밤 거리는 상당히 안전한 측에 속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반면에, 만약 미국에서 여친과 술을 마시다가 차가 끊긴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모텔

미국에서 여친과 술을 마시다가 차가 끊긴다면...
  필자가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난지 100일째가 되는 날에 생긴 사연입니다. 당시 글쓴이는 여자 친구와의 100일을 기념하기 위해 나름의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였었는데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평소 잘 가지 않는 낯선 장소의 재즈 바로 여친을 초대한 뒤, 무대 위에서 한달동안 틈틈히 연습한 Westlife의 My Love라는 곡을 글쓴이 본인이 직접 연주하는 기타 반주와 함께 들려준 후, 미리 준비한 소정의 선물 (크리스탈로 된 자그마한 장식품)을 그녀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필자의 의도와 연출은 멋지게 성공해서 여친을 크게 감동시키는데 성공했었는데요...문제는 그러다보니 당시 글쓴이도 여자 친구도 평상시와는 달리 분위기에 너무 취해서 상당한 음주를 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서로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다가 재즈 바가 문을 닫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점원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차가 끊기고 만 것을 깨달은 겁니다. 

  이 부분에서 글쓴이가 전에도 한번 언급하였듯이 미국의 버스는 대부분 오후 11시를 조금 넘기면 운행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메트로 버스는 자정을 조금 넘겨서도 운행을 한다지만 대부분 주택가와는 거리가 먼 노선을 다니고 당시엔 그마저도 놓친 시점이라 상당히 난감했습니다. 물론 당시 자동차를 끌고 오기는 하였었지만 음주를 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간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사회 생활에 엄청난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기에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미국 사회에서는 가뜩이나 드물고 비용도 비싼 택시를 부르자니 이미 여친과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술 안주를 많이 시켜서 수중에 남은 돈으로는 계산이 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이 시점에서 사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은 모두 일종의 핑계나 변명(?!)이었고 그날따라 여자 친구와 계속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던 측면이 굉장히 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더 함께 있고픈 마음에, 같이 어울릴만한 장소를 한번 찾아 보았는데요. 미국에서 자정 이후의 시간에는 정말로(!!!) 갈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가게는 자정을 넘기면 문을 닫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간혹 가다가 보이는 24시간 편의점이나 페스트 푸드 코너의 딱딱하고 서늘하기 그지없는 간이 의자에서 밤을 지샌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였습니다. 그렇다고 LA 시내 중심가의 나이트 클럽으로 가자니 그것 역시도 택시를 불러야 할뿐만 아니라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해당 장소는 너무 시끄럽고 얘기를 할만한 장소는 결코 아니었지요.  

  그렇게 이곳 저곳 주변을 살피며 둘만의 장소를 찾아보니 눈에 띄는 곳은 결국 모텔이나 여관뿐이더군요. 그런데 여기에서 상당히 흥미로왔던 점은, 미국의 여관, 모텔은 한국의 그것과는 또다른 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라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친과 여관을 들어가게 되는 상황에서 신분증만 간단하게 제시하고 룸 키를 받아서 방에 들어가면 그걸로 끝이겠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던 겁니다... 

  당시 글쓴이와 여자 친구가 여관에 들어서서 룸을 신청하니, 프론트의 여관 점원이 우선 신분증을 요구하여서 그것을 제시한 뒤, 신원 조회를 하는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고 그것이 끝난 뒤에는 룸을 빌리는 시간이나 옵션 등 (이를테면, 투 베드룸을 쓸 것인가 아니면 원 베드룸을 쓸 것인가와 같은 부분들까지도 세세히 물어 보았다!) 에 대한 일종의 계약서를 작성하다 보니까 얼추 20~30분 정도를 모텔 프론트에서 여친과 함께 그야말로 뻘쭘하니(?!) 대기하는 상황이 생기더군요. (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당시 여관 입구에서 필자가 작성한 것은 단순한 계약서가 아니라 일종의 보증금까지 덤으로 내고 다음 날 우리가 퇴실을 할 시에 방을 훑어본 뒤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
 
  만약 한국 같았으면 이런 상황은 정말 분위기도 묘하고 왠지 쑥스러워서 주위를 계속 살펴야만 하는 그런 풍경이었을텐데 미국은 이 부분에서 대단히 사무적이더군요...^^ 

한국과 미국간 밤 문화의 차이를 생각하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그 날을 보낸 뒤, 글쓴이는 이 부분에 대해서 나름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한국은 여친이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차가 끊기면 갈 곳이 많은 편입니다. 반면에, 미국은 갈만한 곳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LA 코리아 타운이나 미국 뉴욕같은 몇몇 장소는 예외일 수 있습니다.)

  필자는 바로 이 부분...그러니까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를 한번 생각했었는데요.


  미국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별로 반기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사람들의 인식에다가 술집의 영업 시간이란 것도 아무리 늦어봐야 대부분 자정이면 문을 닫기에, 일찌감치 집으로 귀가를 하거나 아예 특정 장소를 통째로 하룻밤 내내 빌리지 않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또한 밤에 술집이나 나이트 클럽같은 곳을 굳이 가지 않아도 학교에서 혹은 친구들의 집에서 열리는 각종 파티에서 이성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교회나 시민 회관같은 곳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성을 사귈 기회도 많구요. 지역 단위로 주관하는 프로그램도 상당합니다. 그러다보니 굳이 한국처럼 저녁에 친구들과 혹은 여친과 만나서 술을 마시고 차가 끊겨 찜질방이나 혹은 여관을 가야 할 일은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사회, 문화면에서 이성간에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기회나 여건이 미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계로 , 찜질방이라든가 비디오 방 혹은 노래방 같과 같은, 따로 어울릴 수 있을만한 공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에서는 이성간의 만남이나 교제를 위해서 일종의 자리를 마련하거나 따로 멍석(?!)을 깔 필요가 있다는 셈이랄까요...^^

  ...어찌되었거나, 흔히 하는 말중에 남녀간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 어쩌면 이 말은 밤에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미국보다는 한국의 상황에 훨씬 더 잘 맞는 얘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얼핏 드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평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십니까? 운동, 요가, 혹은 식이 요법으로 대변되는 좋은 음식이나 각종 자연식을 선호하고 계시나요? 하지만 필자의 경험과 판단으로는 많은 이들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위에서 열거한 사항들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어도, 막상 바쁜 하루하루의 일과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생활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인 운동이나 상당한 절제심과 노력이 수반되는 자연식을 매일매일 실천하기는 대단히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소위 말하는 보신의 개념이 다분한 개소주같은 보약이나 일명 건강 보조 식품같은 것들을 더 많이 찾게 되는 듯 한데, 오늘은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려는 이른바 보신 문화에도 한국과 미국간에 표면적으로는 분명한 차이가 보이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서로가 비슷하다고 보여져서 몇 자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보약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신 문화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혐오감을 보이실지도 모르겠는데, 필자가 미국에 와서 생활을 하다보니 종종 생각이 나고 먹고 싶은 것이 하나 있더군요. 그게 무엇이냐면 바로 개고기, 다른 말로 보신탕입니다. 글쓴이가 보신탕과 처음 인연(?!)을 맺은 때는 1992년 여름이었습니다. 당시 군대에서 대민 지원을 나가 1주일내내 일을 도와주고 나니 체력이 크게 소진된 것이 눈에 보였었고 그런 모습의 필자와 다른 군대 동기들이 보기 안쓰러웠는지 마을 주민들이 개고기를 요리해서 주셨는데, 당시 허기가 지고 지친 몸이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먹은 뒤에는 피로감이 한결 덜함을 느꼈었고, 이후 군을 제대하고 나서도 그 느낌을 잊지 못해서 여름 복날이 되거나 체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지면 종종 먹으러 가곤 하였었지요. 또한 필자가 사회 생활에 시달려 건강을 크게 상했을 때에도 개고기는 잃었던 건강을 다시 회복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보신탕에 대해 반감보다는 여러모로 호감이 훨씬 강한 필자가 미국에 와서 미국 친구들과 어울리며 간혹 그들에게 들었던 질문중 하나가 바로 한국인들은 정말로 개고기를 먹느냐는 질문과 함께 너도 그것을 먹어 보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도 개고기를 먹어 보았고 지금도 상당히 많은 한국인들은 개고기를 먹는다고 했더니, 그들의 표정이 딱 이것이었습니다. 뭐랄까...잠시나마 마치 자신들과는 다른 야만인(?!)을 대하듯 하는 느낌이랄까 혹은 어떻게 집에서 자신들과 같이 생활하던 개를 먹을 수 있냐는 사실에 대한 새삼스런(?!) 놀라움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감, 역겨움을 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더군요... 

  게다가 얘기를 계속하다보니 한국의 다른 보약에 대한...이를테면 뱀이라든가 녹용 그리고 보약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산낙지를 먹을 수 있냐는 것들에 대한 질문과 얘기까지 나와서 여러모로 설명을 해 주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글쓴이가 보신탕에 관해 과거 한국의 농경 문화와 어려웠던 시절의 얘기들을 줄줄히 풀어 놓으며 그들의 이해를 구했고 역시나 완전하게 납득시킬 수는 없었지만 상당 부분 그들을 이해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당시 글쓴이가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보신탕이나 뱀탕, 녹용 혹은 개소주같은 보약의 개념을 이해시키기에 확실히 애를 먹었었던 이유야 당연히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오죽하면 필자가 영화 '스타워즈'의 포스라는 컨셉까지 들먹이며 동양의 기를 설명했을까요...^^;;;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보약같은 것은 하나도 없이 그냥 운동이나 좋은 음식같은 것으로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려고 노력할까요?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물론 답은 NO입니다. 이 부분에서 미국인들이 한국같은 보약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필자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는 한국의 보약으로 대변되는 보신 문화라는 것이 전혀 없을까
 글쓴이가 미국에 와서 미국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친해지면서, 그리고 그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을 하게 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냐면, 바로 그들의 부모를 위시해서 미국의 30대 이후의 성인남녀가 굳이 어디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닌데 약을 너무나 많이 먹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종합 비타민은 기본이었고 EPA다 혹은 글루코사민.오메가 3입네 해서 적어도 4~5가지 정도의 약은 항시 복용을 했고, 거기에 불면증이 있다면 수면제, 스트레스로 인한 만성 편두통이나 두통이 있으면 진통 효과가 있는 타이레놀 혹은 아스피린, 반대로 만성 피로에 허덕이면 각성제나 피로 회복제를 , 알레르기 혹은 천식이 있다면 항히스타민제, 철분과 칼슘을 보충한다며 철분,칼슘 보충제 등등의 약들을 추가로 복용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더군요. 심지어 파티나 외식 혹은 여러 날 진행되는 캠핑에 가게 될 경우에는, 소형 약병을 여러 개 갖고 와서 그날 그 시간에 먹어야 할 약들을 각각 병에 따로 담아 두었다가 식사 후, 일정 시간이 되면 모두가 스스럼없이 약을 꺼내서 복용하는 것을 여러차레 목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심으로 미국의 30대 이후의 성인남녀 대부분은 마치 걸어 다니는 소형 약국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국 사람들은 무슨 약을 이렇게 많이 먹느냐고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미국 친구들이 하는 말이 그럼 한국인들은 약을 전혀 먹지 않느냐고 되물어 보더군요. 그래서 한국인들도 아픈 사람이야 약을 여러가지 복용하기는 하지만, 보통은 종합 비타민 정도나 한 두가지 복용하지 미국인들처럼 약을 많이 먹지는 않는다고 답했더니 그들이 하는 말이 , 네가 아직은 젊고 몸이 건강하니까 그러는데,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우리네 부모님이나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대다수 미국인들처럼 약을 많이 먹게 될 것이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설령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들처럼 약을 입에다가 달고 살지는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다분했지만 당시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너무나 확연한 차이,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서로 유사한 한국과 미국의 보신 문화
 
하지만 그 이후에 필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을 정리해보니까, 표면적으로는 너무나 다른 한국과 미국의 차이라는 것도 결국 건강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보신의 개념이란 측면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데 문화와 역사의 차이로 인해서 형태만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뿐이라고 말입니다. 

  요즘에는 한국인들도 물론 건강을 지킨다며 각종 약을 먹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전통적인 동양 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살아 있는 생명체의 기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 들인다는 관념이 일상생활 속에서 보신탕이나 그밖의 다른 여러가지 보약재들을 선호하게 만든 것이고 , 반면에 미국인들은 근대의 계몽 사상의 영향으로 인해서 자연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인간의 이성으로써 그것을 분석하거나 변화시킨다는 관념이 강하다보니까 자연 속에서의 생명체를 잡아서 막바로 섭취하기보다는 그것들의 몸에서 뽑아낸 추출물이나 그와 비슷한 성분을 화학적으로 합성한 캡슐이나 정제된 약을 복용하고 선호하게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또한 한국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거의 모든 국민이 누릴수 있기에 보약은 말 그대로의 단순한 보신의 개념이지만, 미국인들은 의료보험의 민영화로 인해서 비용 측면에서 볼때, 병원을 드나들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관계로 약을 복용한다는 행위는 그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보신의 개념이라기보다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그 무엇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한국에서 흔히 개고기 혹은 보신탕 논쟁이 벌어지면 으례히 음식 문화란 관점에서만 이 사안을 다루거나 접근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좀더 세세히 살펴 보면 개고기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약재로 쓰였던 것은 분명하기에, 그동안은 단지 이 부분에서 보약이란 개념보다는 음식 문화란 차원에서의 논쟁이나 접근이 좀더 보편적이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요...게다가 지금은 옛날처럼 못 먹고 가난한 시대는 결코 아니기에,  더더욱 음식 문화라는 관점에서의 접근은 서로간의 문화적 차이나 이질감만 더욱 키워왔으며 해결점 없는 감정적,정서적 평행선을 그려 온 것이 현실이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미국인들을 만나게 될 일이 생겼다거나 그들과 여러 얘기를 하던 중에, 혹은 개고기 반대론자들이 혹시라도 한국의 보신탕이나 그 밖의 한약재, 그리고 보약의 소재가 되는 여러 동물들을 열거하며 문화적 이질감이나 혐오감을 드러낸다면, 여러분들은 한국과 미국간의 문화적 우월성이나 음식 문화의 관점에서만 그들과 따지거나 논쟁을 하기보다는 필자가 미국 친구들에게 했던 것처럼, 이 포스팅에서 언급한 이른바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이른바 보신 문화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설명을 하거나 이해를 구한다면, 서로간에 느꼈었던 문화적,정서적 이질감에 대한 차이는 비록 완전하게는 아니겠지만 상당부분 해소되거나 좁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한국과는 미묘하게 다르거나 상당히 흥미로운 사회적 현상을 종종 보곤 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동양 남자 아니 좀더 범위를 좁혀서 한국 남자와 백인 여성간의 사랑과 결혼이 어려운 이유를 한번 적어보고자 합니다.

  글쓴이가 학교 친구를 만나거나 혹은 주일에 백인들의 교회를 다니다가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보게 되는데, 가령 일본 여자와 백인 남성 커플이나 한국 여자와 백인 남성 커플은 간혹 보여도 그 반대로 한국 남자와 백인 여성 커플의 경우는 글쓴이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는 한번도 보지 못했었고 주변의 미국 친구들에게 물어 보아도 답은 마찬가지임을 곧잘 확인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도대체 왜 한국 남자는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가 힘든 것인지를 놓고 미국 친구들, 구체적으로는 백인 남자 혹은 여자 동료들과 어울리며 이 부분에 대해 물어보거나 좀더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글쓴이가 현재 사귀는 백인 여자친구와의 경험등을 모아서 나름 정리를 한번 해 보았습니다.

  흔히 한국 남성과 백인 여성간의 사랑을 논할 때 피상적인 문화적 차이등을 거론하며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구체적으로 이게 어떤 것인지를 언급한 경우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이상하게도(!) 눈에 잘 띄지 않더군요. 물론 문화적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여성이라는 존재의 심리와 성향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1.글쓴이가 경험하고 판단하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들은 유머와 위트가 넘치며 매사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의 남성에게 더욱 호감이나 매력을 느낀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여자를 결코 웃게 만들지 못하는, 일명 썰렁남은 여성의 사랑을 쟁취하기가 그만큼 힘들게 되는데, 미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재미 한국인 2세가 아닌 다음에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백인 여성을 상대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분위기를 리드하기도 벅차는 판국에 무슨 유머나 위트가 나올 턱이 있나요... 

  한국말로도 상대를 웃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거기에 한수 더 떠서 외국어로 상대방을 웃긴다는 것은 영어를 조금이라도 깊이 공부했거나 어느 정도 회화면에서는 상당한 자신감을 가졌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이라도 또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절감하실 겁니다. 발음은 물론이거니와 인토네이션이라고 해서 어조의 강약을 적절히 구사하지 못하면 본인이 말하고자 했었던 유머가 아니라 자칫 에티켓에 어긋난 지극히 무례한 언사로 비칠수도 있다는 점에서, 감히 시도를 못하게 되고 자연히 백인 여성과 스스럼없는 분위기를 연출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입니다.


  연애는 단순하게 서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면서 감정의 수위가 점차 깊어지는 것이 일반적 모습이지만, 그 와중에도 여자는 남성들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많은 부분을 고려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연애 경험이 풍부한 남자는 진지할 때와 여자를 웃겨야 할 때를 잘 간파해서 분위기를 멋지게 리드하곤 하는데, 정작 그렇게 웃겨야 할 때와 진지해야 할 때를 잘 알아도 그것을 말로써 적절히 표현을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아니겠어요...

  비단 이 부분은 외국을 생각할 것도 없이 한국 내에서의 상황으로 한번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한창 연애를 할 나이가 된 한국 여성인데 어느 날 외국인 남성을 만나 서로 얼굴 정도는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생김새는 그런대로 멀쩡한데 한국말을 전혀 몰라서 도통 말이 없거나 어쩌다가 한 마디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도 선뜻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다면 그 외국인 남자에게서 매력을 발견하기는 결코 쉽지 않겠지요. 물론 본인이 먼저 그에게 반했다거나 주도적으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또한 그렇게 얼굴만 아는 사이로 여겼던 이 남자가 어느 날 근사하게 분위기를 연출하며 사랑 고백을 했는데 그 음성이나 어조가 왠지 심형래의 영구 버전의 뉘앙스로 말을 한다면 무슨 무드가 잡히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실소부터 터져 나오고 시쳇말로 김(?!)이 팍 새고 말 겁니다.

  바로 이와 비슷한 상황을 그동안 많은 한국 남성들이 백인 여성에게 연출했다고 보시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여러 백인 여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글쓴이가 나름 확인하고 느꼈다고나 할까요...

 
  2.물론 영어가 유창하지 않더라도 공통의 관심사, 이를테면 글쓴이의 경우처럼 공통의 학업이나 취미 활동 혹은 같은 직종의 일을 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둘만의 공통분모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경우, 한국남자가 백인 여성에게 접근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 세계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을 보호하거나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나 욕구가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남성들은 한국사회 특유의 보수성과 어울려 이런 생각이 여타의 어떤 나라 남성들보다 강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백인 여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기 남자 친구가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축구나 농구같은 운동을 하러 간다고 하면 한국 여자들은 십중팔구 김밥이나 쥬스 혹은 샌드위치같은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애인을 따라 가거나 운동장 밖에서 자신의 남자친구를 열심히 응원하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또한 그것이 자연스럽고 정감가는 여성으로 비치겠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 무슨 도시락을 싸서 따라 나서기 보다는 여자들도 운동복을 챙겨와서 같이 운동을 하자며 스스럼없이 경기장에 뛰어드는 광경을 너무나 자주 보곤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아주 드물게(!) 같이 게임을 하자고 말하는 이른바 앞서가는 맹렬 여성분(?)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 해당 경기 자체의 분위기가 왠지 흐트러지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여자(?!)인데 남자들과 똑같이 몸을 부딪히거나 같은 강도로 충격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 한국 남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몸을 사리곤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미국 여성들은 남자들이 만약 이렇게 나오면 자신을 깔보았다고 생각하고 똑같이 대해 달라고 먼저 요청을 하곤 합니다. 글쓴이도 개인적으로 축구를 보는 것보다는 직접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서 종종 주말이 되면 여자 친구와 함께 공원에 나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경기를 하는데, 하루는 여자 친구가 누군가의 발길에 채여 넘어진 것을 보고 서둘러 달려가서 부축을 하려고 했더니만 괜찮다면서 훌훌 흙먼지를 털고 금방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나중에 운동화를 벗고 난 후의 발을 살펴 보니까 다른 남자에게 얼마나 세게 발을 채였는지 발목 주위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던데도 말입니다. 

  바로 이와 비슷하게 매사에 있어서, 남자가 어떻게든 관심있는 여성한테 접근을 하려면 뭔가 도움을 주거나 말을 붙일만한 나름의 구실(!)이 있어야만 하는데 당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쿨한(?!) 문화권의 여성이들이다 보니, 도대체 언제 어느 시기 어떤 상황에 도움을 주거나 말을 걸면 부담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주지 않을지를 가늠하기가 무척 어렵고 시쳇말로 백인 여자들은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점점 주눅이 들기 마련인 겁니다. 그리고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대화를 트기 위해서 여러 화제나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지식이 풍부해야 하고 그러려면 책도 정말 많이 보고 여러 경험...구체적으로는 세계 각지로의 여행이라든가 뭔가 남다른, 이를테면 요리같은 기술도 조금 겸비해야 유리한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지요. 또한 동양문화권의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으며 그런 문화적 배경은 알게 모르게 연애를 할 때에도 작용을 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확실히 미국 백인 남성과 한국 남자를 비교해보면 대부분 미국 남성이 말도 더 많이 하고 자기 표현을 적재적소에서 맛깔스럽게 잘 하는 편이더군요...


  3.또한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을 해도 한국 남성으로써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종종 생기는데, 가령 내가 아닌 다른 남성과 여행을 간다거나 버젓이 자신의 남자 친구가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른 남성들과 스킨 쉽을 한다거나 상당히 친근하게 어울리는 모습등은 솔직히 머리로는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가슴 속은 부글부글 끓기 마련이지요...거기다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소위 포커 페이스가 잘 되지 않는 관계로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기에 파티나 모임이 끝난 이후 사소한 오해나 말 싸움등으로 번질 소지가 커지는 것이며 바로 이런게 이른바 문화적 차이라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4.그리고 흔히 말하길, 백인 여성들은 남자의 외모를 별로 보지 않거나 잘 따지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같은 값이면 그네들도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 동양 남자에게 더 호감을 보이고 관심을 표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글쓴이의 어머님은 가끔 거리에서 마주치는 뚱뚱한 미국 여성들을 보면 이렇게 말을 하곤 하십니다. " 어머..어머.., 쟤를 어떡하니!..."  사실 글쓴이가 보기에도 미국인들의 비만율은 상상을 초월하며 한국의 어지간한 뚱녀들은 감히 명함도 못 내밀 초거대 사이즈의 체구를 자랑하시는 여성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선천적으로 백인 여성들의 체구나 키가 한국 여자들보다는 크기 때문에 한국 남자들이 그녀들의 곁에 서면 백인 남성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굉장히 왜소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다시 말해서 왠지 자신없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곤 하는데 바로 이런 측면도 일정부분 작용하지 않는가하는 얘기들을 미국 친구들과 나누었었습니다.


  5.마지막으로 위에서 말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거나 실행에 옮기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이민을 온 소위 이민 1세대들은 미국에서 정착하면서 여러 말 못할 고초를 많이 겪으면서 어렵게 이곳에 뿌리를 내린 그만큼, 이른바 한국인의 정체성과 함께 특유의 보수적인(?!) 측면들이 굉장히 강합니다. 요근래 몇 년간 미국에 온 글쓴이나 다른 젊은 친구들은 많이 다르지만 우리들보다 10여년 정도만 윗 세대분들만 하더라도 그 보수성은 한국의 어지간한 늙은이들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실정이다 보니 종종 외국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자식과 마찰이 생겼다거나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부모들의 사례나 얘기를 듣게 되거나 접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더군요.

  사실 이 경우는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글쓴이가 사귀는 여자 친구의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이 친구가 국적은 브라질이지만 어머니는 미국인, 아버지도 미국계 브라질인인 관계로 아주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브라질로 간 이후에도 미국에 자주 왔었으며, 외모나 사고 자체도 부모님의 영향 때문인지 정통 백인 여성의 모습이기에 다른 미국 남성들도 관심을 보이곤 하는데, 정작 글쓴이의 친척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너 , 그 애와 정말로 결혼할 생각이냐? 그래도 결혼은 한국 여자 (여기서는 한국인 2세를 의미함!) 하고 해야 하지 않겠니? 아들은 너 하나뿐인데 홀로 계신 너희 어머니를 생각해야지...그래, 네 어머니가 허락하시든.." 등등의 말을 듣고, 또한편으로는 실제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학업을 끝마친 후, 내가 이 친구를 따라서 그녀의 부모님이 계시는 브라질로 가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여자 친구가 미국에 머물러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결정을 못한 상황이네요...

  또한 다른 백인 여자애들의 말을 들어 보아도 만약 본인이 내 여자친구처럼 한국 남자를 사귀게 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면 결혼까지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 난색을 표하며 대답을 딱 부러지게 못하였는데, 그 이유를 좀더 자세히 물어보니 미국 사회에서는 백인 남자와 동양 여자간의 사랑은 허용을 해도 그 반대인 백인 여자와 동양 남성간의 결합은 사회적 금기(?!)로 여긴다네요. 그래도 만약 백인 여자가 결혼을 강행한다면 상당한 사회적 관계의 어려움 속에 직면한다니 이게 말로만 듣던 보이지 않는 인종적,문화적 편견이구나 싶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미국 사회가 굉장히 자유롭고 합리적인 듯 해도 자세히 그 내면을 살피면 이렇게 도처에 보이지 않는 편견이나 쉽게 풀리지 않을 오해가 있음을 확인하고 동양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 남성으로써 뒷맛이 상당히 씁쓸했다고 할까요...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어적 표현력의 상대적인 결핍, 너무나 당당하고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백인 여성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녀들과의 관계를 설정할지, 그리고 어떻게 그녀들에게 다가가야 할지를 모르는 데에서 생기는 자신감의 결여, 백인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신체적 조건들, 거기에다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직은 너무나 강고한 문화적, 인종적 선입견이 겹치면서 한국 남자와 백인 여성간의 사랑이 결실을 이루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은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을 나름 내려 보았습니다. 

  하지만 진실로 서로간에 관심이 있고 상대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위에서 글쓴이가 언급한 여러 장벽들은 결국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국 남성들만큼 자신의 가족과 친지에 대한 책임감이 충만하며 좋은 아버지, 성실한 남편의 역할을 보여주는 가정적인 남성상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 남성은 그 힘들고 어렵다는 군대도 의무적으로 다녀오지 않았습니까...솔직히 정신력이나 의지의 강함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절대 백인 남자들에게 밀리지 않으니까 백인 여성앞에서 먼저 주눅이 들거나 쉽게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랑은 이성이나 무슨 조건보다는 분명히 감정이 앞서는 명제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서로 좋아하는 차원의 느낌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배려하려는 진실된 마음을 끊임없이 요하는 고도의 심리적 긴장과 기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정신적인 안정과 여유를 필요로 하는 아주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혹은 외국에 나와서 백인 여성을 만나거나 혹은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거나 진지하게 백인 여성과의 교제를 바라는 한국의 모든 남성들에게 백인 남성과는 다른 한국 남자 특유의 당당함과 성실함, 그리고 가정적인 모습등으로 어필하면서 그녀들에게 좀더 과감하고 자신있게 다가 가시라는 의미에서 화이팅~~! 을 힘차게 외치며 저는 오늘의 글을 이만 마치렵니다...

  P.S : 이미 작년부터 글쓴이와 알고 지내던 몇몇 이웃 블로거들은 오늘 글에서 언급한 여자 친구와의 사연을 조금 알고 계시지만 여러분 대부분은 아마도 처음 접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부탁인데, 이 글을 제 여자 친구인 가브리엘라도 본다는 생각을 한번쯤 하시고 혹시라도 근거없는 내용이나 소위 악플을 다시지는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약하나마 나름의 인지도(?!)를 가졌었던 다음 블로그가 아닌 티스토리 블로그 개설 후 처음 송고하는 기사임과 동시에 개인적인 얘기와 백인 여자친구의 모습을 상당한 고심끝에 어렵게 올린 글쓴이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리셔서 무슨 격려까지는 아니더라도 악성댓글만은 절대 사양하니까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