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판2012. 1. 7. 15:40

 흑룡의 해라는 2012년...새 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1주일이 다 되어간다. 필자는 물론이거니와 여러분들도 지금쯤이면 각자의 일터나 삶의 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계획과 꿈을 위해서 열심히 생활하고 계실 텐데...오늘은 그래서 조금은 가볍고 평범한(?) 일상 속의 얘기 한 토막으로 새 해의 첫 포스팅을 시작해 보련다.


 오늘의 포스팅은 필자(?)가 양복을 입게 된 이유에 관한 여러 가지 고찰들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 내에서도 관공서는 물론이거니와 꽤 많은 기업체들도 주 5일제를 실시하고 있고, 평일 중 하루 정도는 이른바 자율 복장을 실시하거나, 아예 주 5일 내내 평상복을 입게 하는 기업체들도 꽤 늘어났다.(물론 주말도 없이 계속해서 일을 하는 비정규직이나 직업의 특성상 유니폼만을 입고 근무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말이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도 딱딱하고 권위적인(?) 느낌을 풍기는 양복이 아닌, 캐주얼 스타일의 평상복을 입고 출근해도 무방한 그런 사무실에 속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자유스런(?) 사무실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양복 혹은 정장 차림을 근무시간 내내 고수하고 있는데, 필자는 왜 얼핏 고지식하고 사무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양복을 즐겨(?) 입게 된 것일까?...



인터넷,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선택의 허망함?

 필자가 주로 정장 혹은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니까, 누군가가 이미지나 스타일도 조금 바꾼다는(?) 차원에서 캐주얼 분위기의 평상복을 입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필자도 당시에 그 말에 수긍을 하면서 집에 보관해 두었던 캐주얼 스타일의 옷들을 몇 가지 꺼내어 입고 출근을 했는데, 자유분방한 느낌의 캐주얼 스타일을 입었던 필자 스스로도 왠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색했고 뭔가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필자가 어린 시절에 구입한 것이라 더욱 그랬었다!)  3~4일 정도 캐주얼 스타일 옷들을 입었다가 다시 양복 차림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물론 불과 6~7년 전까지만 해도...필자 역시 유행이나 트랜드에 대단히 민감했었고 나름 자신의 스타일을 가꾸고 발전시키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이나 인터넷을 수시로 훑어보았었다. 그리고, 그런 사이트에서 보아두고 마음에 든다라고 느꼈던 옷이나 전자 제품들을 적어두거나 직접 프린트로 출력해서, 백화점이나 동대문 주변의 아울렛 상점들 혹은 재래시장이나 용산 전자상가들을 돌아다니며 해당 제품들을 직접 구입해서 입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그렇게 구입한 제품들 중 그나마 전자 제품들을 제외하고는...다시 말해 온라인 쇼핑몰이나 인터넷에서 확인하고서 직접 백화점이나 대형 아울렛에 나가서 해당 제품들을 살펴보면, 온라인 쇼핑몰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이서 크게 실망을 했던 경험이 많았었다. 아마 쇼핑을 나름(?) 즐겨하는 사람은 대부분 동감하시겠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 나름 확인하고 마음을 두었던 제품과 실제 상황인 백화점이나 대형 아울렛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제품의 촉감이라든가 품질이 기대치에 미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여서 허탕을 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나름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여기까지 찾아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도 그렇지 않는가라는 일종의 체념적(?) 판단으로 구입한 물건들 중 상당수는 짧게는 한 시즌에서 길어봐야 2년 이상은 입지 못하거나 소비한 후에는 집안 한 구석에 보관되곤 하였는데...



....필자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좀더 얘기의 방향을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몇 해 전부터도 혹자는 이렇게 말들을 하였다. 인터넷,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요즘 시대의 대세이며, 소위 스마트(이 단어는 최근 유행하는 것이니 일종의 키워드라고 봐야 하려나?...))한 삶의 표본이라고 말이다. 요즘같이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을 고려할 때, 백화점이나 대형 아울렛등을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아이 쇼핑이라도 즐기겠다라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아도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이 느껴진다. 또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미리 확인하고 점찍어 두었던 제품들을 실제 매장에서 구입하면서 시간을 단축하는(?) 장점이나 측면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구입하는 물품들 대부분이 당시의 사회적 유행이나 트랜드를 반영하기에,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이용하기가 쉽지 않거나 아예 사용하기 곤란한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의류나 전자 제품의 경우는 유행이나 트랜드, 기술 발전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위에 필자의 경험담 속에서도 언급하였지만...온라인 쇼핑몰에서 확인하고 마음에 두었던 의류가 실제 눈으로 확인하였을 경우에,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다.

 우선,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품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몇 시간동안 아이 쇼핑을 즐기는 이유는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제품을 선택하기 위한 합리적(?) 행동의 산물이라고만 가정을 하고 얘기를 진행하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물품을 구입할 때도 위의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시간과 공간은 더욱 압축되면서, 좀 더 많은 정보와 광고의 홍수를 뚫고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제품을 고르기 위한 고도의 선택 전략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고충이 생겨났다. 거기에, 그렇게 시간을 내어서 고른 제품을 백화점이나 대형 아울렛, 혹은 대형 마트에 나가 확인하였을 때, 자신의 생각이나 애초 목적과 맞지 않을 경우의 시간까지 덤으로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도 생겨났다. 이것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보여주었던 화려하고 깔끔하게만 보였던 제품들의 이미지도...사실은 사진기라든가 마케팅이라는 고도의 편집이라는 필터링을 거치고 필자나 여러분의 눈 앞에 나온 것이기에, 현실에서 필자나 여러분들의 눈높이에 흡족한 경우는 드물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이다.


 물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대형 아울렛 등도 현란한 조명과 함께, 고객들의 심리와 동선을 교묘히 유도하는 측면이 존재하지만(백화점이 온라인 쇼핑몰의 공세와 각종 편의 시설에 밀려 곤란을 겪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런 주장은 시대적 흐름이나 소비자들의 소비 트랜드만을 놓고 생각하면 맞는 얘기이다. 하지만, 요즘의 백화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일종의 종합적인 테마 파크나 놀이 공원같은 성격으로 진화하고 있고, 이것은 단순한 상품 판매 매장이 아닌 문화적 복합 공간으로의 진화를 의미하기에 속단하기는 아지 이르다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 고객이 직접 물품을 구입하고 그것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지면서 느끼는 촉감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구매에서는 모방할 수 없는 장점이 아닐까...




 
 ...이 시점에서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소셜 커머스나 소비자 리포트같은 것들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라도 미리 체험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을 구입하는데, 굳이 백화점을 들를 필요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소비자들의 구매 취향과 패턴을 해당 제품의 판매자 입장이 아닌 소비자들의 입장과 눈높이에 맞게끔 투명성과 공정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만 가능할 것인데...지금의 상황이나 현실이 과연 진실로...아니 정말로 그러한가...????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필자는 위에서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양복 혹은 정장을 고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앞으로도 계속 양복 혹은 정장만을 고수해야 할까?...




양복을 불가피하게(?) 선택한 이유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필자도 양복보다는 캐주얼 차림처럼 자유스럽고 편한 느낌의 옷을 걸치고 근무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또다시 필자의 연령과 체형에 맞는 캐주얼 스타일의 옷들을 구입해야만 한다. 기존에, 필자처럼 인생에서 중반의 나이 대에 접어든 소비자들이 구입하였던 캐주얼들은 이미 유행이나 트랜드를 지나 버려서, 다시 그것을 걸치더라도 과거 필자가 젊은 날 느끼고 만족하였던 그 옷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스타일이나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다시 사회적 트랜드나 유행을 세세히 살피고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미리 선택해야만 하며, 그것을 실제 눈으로 확인하고 구입하기 위해 별도의 시간과 노력과 돈을 준비해야만 한다. 하지만, 필자(?)가 몇해 전부터 경제적 사정이 점점 곤란해지면서, 온라인 쇼핑몰이든 백화점이든간에 아예 제품을 구입할 여력 자체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라면 이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필자(?)가 고집스럽게 혹은 바보스럽게도 양복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미지나 스타일을 변신할 시간적 여력과 경제적 사정이 따라주지 않는 이유가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이미지나 스타일을 바꾸고 그럼으로써 더 나아가서 필자 주변의 환경과 삶의 패턴을 혁신하는 일종의 실험(?)을... 필자도 젊은 날에 누구보다도 더 빨리 그리고 열렬하게 생각하고 꿈꾸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을 생각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점점 사라진다라는 불편한 진실 혹은 사실들에 가슴이 아플 때가 많아졌다. 필자가 양복을 고수하고 그것만을 입게 되면, 언젠가는 그 양복도 닳아서 못 쓰게 되거나 양복 단추들이 떨어져서 다시 수선을 해야만 되는 시기가 필연적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은 굳이 어려운 공식이나 전문가적 해법이 아닌 상식적인(?) 수준에서 제대로만 고찰을 해도 누구나 내릴 수 있는 하나의 필연적 결론에 불과하다. 이게 무슨 예측 가능성이니 확률이니 수학공식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배가 부르고 여유가 있는 이들이 하는 얘기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필자나 여러분들도 점점 나이를 먹을 것이고 육체는 쇠락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필자나 여러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자리를 젊은 사람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때가 올 것이며(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거나 찾는 일은 지금부터 시작해도 시간적으로 빠듯하기는 하겠지만...), 하루에 적당한 영양과 열량이 함유된 식사나 적당한 휴식 혹은 운동을 하지 못하면 결국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극단적 상황에 이르게 되면 생명까지도 잃게 되는 것은 무슨 예측 가능성이나 뜬구름 잡는 소리 혹은 밑도 끝도 없는 예언과는 차원이 다른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론을 내려 보자면, 필자(?)가 양복을 고수하는 이유는 고집이 유독 세거나 성격이 남다르다거나 혹은 스타일이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필자(?)가 처한 현실과 상황에서 취하게 되는 최선의 혹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만약, 필자가 양복이 아닌 캐주얼이나 한복 같은 전통 의류를 선택하려고 해도,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 경제적 여력이 수반되어야만 하는데, 현실적으로 살펴볼 때 당장 필자의 경제적 처지가 크게 나아질 기미나 여력은 보이지 않는다...
 
 ...설령, 경제적 여력이 생기더라도 캐주얼 혹은 한복과 같은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이 부분은 나중에 좀더 다룰 예정이다...!!!)에 집중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지만 이것도 경제적 여력(예를 들어, 필자가 양복이나 캐주얼을 새로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다른 부분에서의 여력을 대폭 줄여야만 한다. 만약, 그것을 줄이지 않고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려고 한다면 빚을 끌어다가 그런 계획을 추진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필자가 추후에라도 경제적 상황이 크게 호전되어 빚을 청산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가계는 파탄이 나게 될 것이고 필자가 바꾸려고 했던 스타일도 모두 공염불이 될 것이며, 이것은 무슨 예측 가능성이나 예언이 아니라 아직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나타날 현실인 것이다!!!)이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P.S: 시대가 변하고 사회적 트랜드(?)나 유행 혹은 기술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은근히(?) 혹은 막연하게라도(?) 기대를 하거나 크게(?) 열광을 하곤 한다.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기존의 방식이나 절차 그리고 시대적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 같은 일체의 사항을 배척하는 것이 혁신이고 스마트하다라는 생각들이 팽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이나 발견들은 필자나 여러분들이 대수롭지 않다거나 고리타분하게 여겼었던 일상적 혹은 평범한 가치 그리고 과거의 기술들을 재배열하거나 편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필자가 왜 카산드라의 저주(?그리스 신화에 보면 카산드라라는 인물이 있는데 예언을 잘해서 신의 질투를 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카산드라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전혀 믿지 않게 하는 벌을 받게 되었단다. 그런데, 카산드라가 트로이 목마에 관한 예언을 했고, 그 불길한 예언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라는 에피소드에서 차용한 단어이니까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같은 성격의 포스팅들을 올리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기가 편하실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9. 10. 02:32
  요즈음 한국의 정치계는 세종시 문제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축소 발언으로 더욱 쟁점화된 세종시는 원래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추진하려던 수도 이전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음에 따라, 당시 여야가 다시 합의를 하여 만든 법에 의거해서 추진된 행정중심복합도시(일명: 행복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부동산 시장의 상황이 급변하자 참여정부 당시의 원안대로는 세종시가 추진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었는데, 이것이 결국 구체화되거나 현실화되는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을 대변하는 대표적 정치인이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도지사라고 보여지는데요. 최근에 그는 미국을 방문하는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밝히기를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은 말뚝중 가장 잘못된 말뚝" 이라고 평했고, "지금이라도 그만두는게 좋겠다" 라고도 말했답니다.

  필자가 세종시에 관련하여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발언이나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위시한 한나라당의 의원들의 미온적이고 회의적인 반응을 살펴 보자니, 이미 정부나 여당에서는 세종시 계획을 축소하려고 구상중이거나 구체적 계획을 잡은 듯 하고, 그에 반해 야당에서는 지역 균형 발전을 훼손하고 대선 시절의 공약 파기라는 주장을 하면서, 현정부의 정책 일관성과 신뢰성을 문제 삼으며, 소위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는 형국으로 보여집니다. 
 
 우선 오늘의 포스팅을 시작하기에 앞서 분명하게 밝히고 가는데, 필자는 세종시에 관한한 현정부와 집권여당의 방침에도, 그렇다고 야당의 극력 반발하는 모습에도 결코 동조할 수 없는데,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세세히 밝히고 그간 고민했던 필자 나름의 조촐한(!!!) 비전을 결론 부분에서 한번 밝혀 보려고 합니다.

만약, 참여정부 시절에 수도 이전이 성사되었다면 과연 수도권의 집값은 떨어졌을까
  지금도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이 괜찮았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이런 말들을 곧잘 하십니다. 참여정부 당시, 수도 이전만 하였더라면, 수도권의 집값은 떨어지고 지방 균형 발전에도 크게 일조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대한 한나라당과 조중동, 이른바 강남으로 대변되는 수도권의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좌절시킨 일등공신이라며 크게 분개하고 있지요. 따라서, 수도권의 집값 상승도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정보다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뉴타운 공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들도 꽤나 많은 듯 합니다.


  멀게는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짧게는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진행된 한국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분명히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충분하고도 넘친다고 필자도 인정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 이전을 한다고 해서 지역 균형 발전이 되고 기존 수도권의 집값이 과연 잡혔겠는가라는 부분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당시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거의 전방위적인 조치를 취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집값을 잡는다는 목적으로, 신도시와 혁신도시 그리고 행정수도를 추진했었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있거나 모두 동의하실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면서 이런 취지로 개발을 하게 된 주변 집값과 땅값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혹시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이해를 좀더 돕기 위해서 필자가 관련 도표를 몇 개 준비하였으니까, 아래 도표를 한번 봐 주시길 바랍니다.

                                      참여정부 당시 신도시 아파트 값 상승률 도표  ⓒ다음 미디어


                                            전국 토지가격 총액 변동 추이 ⓒ국토 해양부 2007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과연 수도권 집중과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되거나 지어졌던 신도시, 혁신도시 그리고 행정도시가 노무현 전대통령이 말하던 원래의 취지를 살리고 실질적 효과를 보았던가요?...  

  닥터아파트가 제출한 참여정부 당시 신도시 아파트 값 상승률을 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2007년 국토해양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국 토지가격 총액 변동 추이에 따르면, 1997년말 1290조원이었던 땅값이 노무현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에는 2911조원으로 2.26배나 상승했습니다.

 도표 내에서 지자체별로 살펴보면, 신도시등 각종 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경기도가 지난 10년간의 민주화 정부동안 241조원에서 827원으로 3.24배나 토지 가격이 뛰었으며, 특히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알려진 세종시의 개발을 둘러싸고 충남의 땅값이 46조원에서 142조원으로 무려 3.04배나 뛰었습니다.

 또한 송도, 청라 지구등 노무현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각종 개발로 인해, 소위 강남 버블 세븐지역의 선두주자였었던 송파구보다도 인천의 상승세가 오히려 더 두드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각 정치권의 쟁점이 된 세종시와 관련해서, 충남 연기군같은 경우 5.09배라는 기록적인 토지 가격 상승을 기록했는데, 이렇게 각종 개발로 인해서 땅값이 치솟으면 토비 배상비로 정부의 예산이 훨씬 많이 풀리게 되고, 게다가 치솟은 토지 가격에 대비한 실질적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 각 건설사가 자신들이 시공하는 아파트나 주택의 분양가를 올리게 된다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도,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뉴타운 공약과 한나라당의 반대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뛰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참여정부 당시의 부동산 실정과 그로 인한 부동산 버블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노무현 지지자분들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얘기이지만, 그 시절의 구체적 실상이나 개별 상황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라고 필자는 당시 경험을 통해서 판단하고 있으며, 이렇게 된 이유는 결론 부분에서 나름의 비전을 제시하며 다시 밝히겠습니다.


노무현의 수도 이전 공약을 둘러싼 정치권의 한심한 발상과 구태
  이 시점에서 얘기의 방향을 잠시 돌려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폐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필자가 이렇게 물어보면 대답은 실로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누어지겠지요...
 
  여러분들이 무슨 답을 할지 일일히 재단하거나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주의와 연고주의라고 판단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땅덩어리를 남북으로 가른 것도 모자라서 영호남이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대며 다시 동서로 갈라진 형국이니, 국가가 제대로 된 발전과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퇴행적인 구도를 계속 유지하려다 보니, 영남이든 호남이든간에 특정 지역을 연고로 가진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이 속한 지역은 상대적 소외를 당한다라는 암묵적인 경험과 공감대가 깊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지 않습니까? 속된 말로 경부선과 호남 고속 도로간의 도로폭과 지역 발전 상황을 비교해 보아도 그렇고,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거론된 새만금과 같은 사업을 보아도 그렇고, 전부 표면적으로는 지역 균형 발전을 얘기하지만, 그 이면엔 지역 연고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영호남이 양측으로 나뉘어 세력 다툼을 하는 와중에서 제 3자적 입장의 캐스팅 보드를 쥔 지역으로 충청권이 거론되는 일들이 생겨났고, 바로 이런 배경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당의 대선 후보 시절 설파한 수도 이전 공약은 엄청난 휘발성과 폭발력을 가진 정치(!!!) 이슈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처음부터 수도 이전 문제는 필자가 바로 위 문단에서, 이른바 지역 균형 발전과 관련하여 참여정부 시절의 구체적인 부동산 실정의 결과에서도 밝혔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직은 집권을 한 것이 아닌 야당 후보시절인 관계로 인해 구체적인 지역 균형 발전이나 부동산과 관련된 경제적인 측면의 치밀한 준비나 계획 청사진보다는, 정치적인 부분에서의 고려와 안배나 순수한 의도 취지가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해서 나온 공약이었다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지가 실패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정치권이 내년에 실시될 지방선거에서 지역 주민들의 표심을 끌어 모으고,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는 목적으로서만 세종시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지역 주민들과 지역 균형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론: 세종시로 대변되는 지역 균형 발전, 그리고 참여정부의 취지를 계승하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도 여전히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였는가 아니였는가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지만, 필자는 이미 참여정부 시절에 벌어진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과거 사실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런 것들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정말로 생각하고 깊이 고려하며 토론을 해야만 할 부분은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취지나 방향은 좋았는데 그것이 왜 실패했는가이지, 엄연한 과거 사실을 부정하며 실패였나 아니였나라는 탁상공론식 토론을 벌일 한가한 시절이나 단계가 아니라는 점을 우선 깊이 인식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감히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필자는 이제부터 나름의 비전을 한번 밝혀 보려고 하는데요... 노무현 참여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민주 정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원대한 취지와 구상을 뒷받침할 정책 역량이 참여정부나 당시 집권 여당 모두에게서 너무 부족했고, 정권 말기에 뒤늦게서야 마련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LTV, DTI)을 추진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또한 이미 위에서 도표로 밝혔듯이, 수도권의 과밀화와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이나 경기도 인근 지역에 신도시 행정도시, 혁신도시를 만들면 이른바 강남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너무 단순하고 기계적인 발상으로 부동산 문제에 대응한 것이 부동산 폭등이라는 화근을 더욱 키운 주범인 셈입니다.

  한국 사회는 모 아니면 도라는 흑백논리와 진영논리 때문에 일을 크게 그르치곤 하였는데, 이런 모습은 정치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기존의 시스템이나 체제를 무조건 180도로 바꾸는 것만이 개혁이고 진보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 주도의 수출 지향적 경제 구조를 가진 현 상황이 문제라고 해서 인위적으로 중소기업을 국가에서 아무리 지원하고 키운들 경제 체제가 단숨에 바뀐답니까? 사람들은 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노력할까요? 표면적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해서 규모를 키워도 그 이면에 대기업에만 깔린 무수한 혜택이나 메리트, 기존에 쌓여진 인프라가 빚어내는 시너지 효과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역학 구도가 바뀌지 않듯이, 지역 균형 발전이나 부동산 문제도 단순하게 수도권의 기능을 분산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파트 재개발을 한다고 하면, 으례히 해당 아파트 단지의 사용년한이 얼마였나를 가지고 따지지만, 실제로 해당 아파트를 정밀 내사하고 감리를 거쳐 보면, 법으로 정한 기한보다 훨씬 더 오래 사용해도 괜찮은 아파트가 있고, 법으로 정한 기간은 아직 채우지 못했지만, 시공단계에서의 부실로 인해 벌써 건물 전체에 균열이 가거나 물이 새는 등, 건물 외관이나 시설적인 측면에서의 문제가 심각한 아파트가 존재하듯이, 기계적이고 경직된 탁상공론식 정책이 아니라 지역적 특수성과 현실 상황에 맞는 정책과 법을 유연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라는 말입니다.

  이건 마치 미국의 주마다 법이 다른 것과도 비슷합니다. 한국이 미국에 비해서 비록 규모가 매우 작은 나라이지만 부동산이라든가 지역 균형 발전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미국보다도 사정이 더 복잡하고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다고 감히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수도권이 가진 복합적 인프라와 그것들이 연결되어 빚어내는 독특한 메리트와 시너지 효과, 그리고 그것을 따르고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인식과 의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않는한 그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니 좀더 간단하고 분명하게 말하자면, 특히 부동산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터전의 개념의 아닌 투기나 재테크의 대상으로써 널리 인식되는 상황부터 개선하는 정책들을 일관성있게 수립하고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금같은 시국에는 세종시같은 도시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수도권내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중과세나 부동산 투기의 자금줄을 원천적으로 틀어막는 LTV와 DTI같은 금융 규제들을 더욱더 세분화하고 강화해서, 부동산으로는 더 이상 불로소득을 올릴 수 없다라는 인식을 시장과 사람들의 가슴속에 확고히 심어준 뒤에, 세종시와 같은 수도권의 행정기능이나 그 밖의 주요 인프라를 분산시킬 도시를 점진적으로 건설해야만 한다라고 필자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여정부 시절엔 부동산 가격이 자고 새면 오르기만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약속과 정책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었고, 그 결과 시장이 더욱 요동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상태에서, 게다가 수도 이전이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충청권의 민심을 추스리려고 여야가 일련의 법안이나 계획을 졸속으로 잡고, 그를 바탕으로 추진된 세종시라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얼마나 지역균형발전에 공헌을 할지도 매우 회의적이고 의문스러우며,

  또한 참여정부 시절 형성된 부동산 버블의 급격한 붕괴를 막으면서도 한국 경제의 체질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지닌 현정부가 망국적인 부동산 버블을 재연해서 경기를 부양하려고 하고 있으니 문제가 더더욱 꼬이고 있다라는 것이며,


  또다른 한편으로, 비록 현실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그 취지만큼은 높이 받들어야 할, 이른바 세종시로 대변되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이상과 계획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수도권의 건설족과 일부 투기꾼 그리고 중산층의 이해관계 때문에 축소 혹은 백지화시키려는 현정부와 집권 여당의 이해하기 어려운 권모술수적 행태, 그리고 실질적인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고려보다는 소위 지역민들의 표심을 계산한 야권의 허울좋은 정치 공세등등....여야를 막론하고 양측 모두가 부동산 안정이라든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소모적인 정치 공방으로써만 세종시를 다룰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이제 결론을 말하자면, 참여정부가 추진하였던 세종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가장 잘못된 말뚝이라기보다는,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의 폐단...그리고 그것에 편승하려는 정치인들의 속성과 구태의연함, 마지막으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로 거듭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영화 다이 하드를 기억하십니까? 만약 그 영화를 보셨고 지금도 기억을 하신다면, 어떤 장면이나 대사가 가장 먼저 기억에 떠오르시나요? 필자는 개인적으로 볼때, 일단의 테러리스트가 건물이나 기타 공공 기관이나 장소를 점거후 인질들을 발판삼아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상황과 함께, 그런 위기 상황을 말끔히 해결하는 미국식 영웅 스토리의 대표작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이 하드라고 하면, 으례히 액션 영화 내지는 미국식 영웅주의를 절묘하게 영상화한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 대작이라고 여기고 계시겠지요?

 
프롤로그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는 문화에도 깊숙히 반영이 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헐리우드로 대변되는 영화를 통한 미국식 문화와 사고의 전파 혹은 주입은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다이 하드라는 액션 무비속에 숨겨진 미국의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 자본주의적 마인드와 경제 패권주의의 코드를 한번 들춰내 보려고 합니다.

 
  그럼 우선 이야기를 진행하기에 앞서, 다이하드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시점에서 다이 하드의 줄거리를 대충 마무리짓자면, 주인공 존 맥클레인은 결국 한스 구르버를 필두로 한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을 모두 물리치고 아내와 화해의 키스를 나누며 영화는 헤피 엔딩으로 끝이 나는데요.


  그럼 이제부터 영화 다이 하드의 내용으로 미국의 신자유주의 혹은 경제 패권주의적 사고와 코드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지요! ^^ 

영화 다이 하드의 시대적 경제적 배경
  우선, 영화 다이 하드가 나올 당시 미국의 국내외적인 경제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잠시 짚어 보겠습니다. 당시 미국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레이거노믹스 이후 뉴욕 월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적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맞서, 유럽은 독일과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소위 라인-알펜형 자본주의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또다른 한편에서는 일본과 한국을 위시로 한 동아시아형 국가 자본주의라는 3가지 형태의 자본주의가 서로 각축을 벌이던 19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유럽은 그야말로 잘나가던 독일을 주축으로 한 유럽 경제 블록권을 형성하고 미국의 경제 패권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안겨주고 있었으며, 일본을 위시로 한 동아시형 자본주의 체제 역시 일본의 부동산 거품으로 대변되는 자산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서, 미국내 주요 건물이나 영화사들이 줄줄히 일본에게 넘어가던 그런 시점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오늘의 포스팅을 잘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다이 하드에 숨겨진 미국의 경제 패권주의 코드
 
영화 다이 하드에서 존 맥클레인은 하고 많은 미국내 지역중에서 하필이면 뉴욕의 경찰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월 스트리트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월 스트리트의 금융 자산가나 투자자들을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한스 구르버를 위시로 한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은 바로 경제 블록권을 형성해 미국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하던 유로 연합을 상징하는 모델이지요. 나카토미 빌딩과 조셉 타카키 회장은 당시 일본내 부동산 버블로 호황을 누리며 미국내 주요 빌딩들을 사들이던 동아시아형 자본주의 모델의 선두주자인 일본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이 하드의 주요 내용을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통상 테러리스트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요?

  자기 나라의 독립이나 혹은 극단의 정치적 사회적 동기로 인해서 테러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서 상대 국가나 사회에 심각한 불안과 혼란을 주는 것이 주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화 다이 하드에 등장하는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은 그런 목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나카토미 빌딩 금고 속에 숨겨진 1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채권 강탈이 주목적이었지요.


  또한, 나카토미 빌딩의 조셉 타카키 회장 역시 금고 속 채권을 지키려고 비밀번호를 밝히기를 거부하다가 한스 구르버의 총탄에 헛되이 목숨을 내어 놓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의미심장한 것은 한스 구르버나 칼, 그리고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유럽 출신이며 그들의 이름 또한 대부분 독일 혹은 스웨덴식 이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당시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일본의 경제 패권에 맞서 유럽 연합이 일본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라는 시대적 경제적 정황을 상징한다라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다이 하드라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나카토미 빌딩 금고에 있는 돈이 일본인 타카키 회장의 소유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스 구르버를 위시로 한 유럽 출신 테러리스트들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돈은 미국 내에 있고 당연히 미국의 돈이라는 사고가 영화 다이 하드 전반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뉴욕 월 스트리트를 대변하는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이 한스 구르버 일당에게 맞서자 한스가 이런 말을 하지요... "카우보이...자네가 무슨 람보인 줄 아는가?..자네 혼자서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저지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가...?"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당시 소련이 점차 붕괴 조짐을 보이면서, 소위 람보로 상징되는 카우보이의 나라 미국이 과거 보였었던 월등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군사 패권주의가 이제 자신들(유럽 연합)에게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라는 강력한 암시가 아닐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 다이 하드에서 한스나 다른 테러리스트들의 계획이나 목적이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나카토미 빌딩 금고 속에 있는 어머어마한 액수의 돈(경제)이지요.


  그들은 일련의 인질극을 통해서 무슨 정치 사회적 요구를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존 맥클레인이 그들에게 맞서고 끝내 한스 구르버 일당의 계획을 좌절시켰다면, 그것은 인질 구출이나 무슨 정의의 사도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막대한 액수의 채권, 즉 미국의 경제 패권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소위 FBI와 경찰 서장으로 대변되는 미국 정부의 무능한 모습입니다. 이들은 규모면이나 인원 장비면에서 결코 한스 구르버를 주축으로 한 유럽 출신 테러리스트들(유로 연합)에게 밀리지 않았지만, 무능하고 단견적인 마인드로 인해서 영화 내내 한스 구르버 일당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바보 노릇만 합니다. 

  또한, 제4의 권력으로 대변되는 언론을 상징하는 리처드 쏜버그 기자는 전형적인 선정주의와 포퓰리즘적 보도를 일삼으면서, 시민들로 하여금 사태의 심각성과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고 상황을 오히려 더욱더 꼬이게 만들어 버리지요.

  이는 당시 미국 월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를 구축하려던 개인 혹은 기관 투자가들의 마인드...  그러니까 무능하면서도 규모만 비대하고 아무 짝에도 필요가 없는 정부와 정말로 한심하게도 말만 더럽게 많은 언론이라는 생각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보여지지 않습니까?...

  그래도 필자의 영화 해석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느끼신다면, 여기에서 좀더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해 볼까요? ^^ 

  다이 하드에서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그의 편을 들었었던 알 포웰 경사(레지날드 벤존슨 분)는 과연 어떤 것을 상징하는 캐릭터일까요?

  필자가 분석하기에는 알 포웰 경사는 바로 과거 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시대를 상징하는 캐릭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과거 미국은 자유주의적 사조를 바탕으로 정부의 규제가 없고 오로지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의 번영을 추구하다가 대공황을 맞으면서, 자유주의 사조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라인-알펜형 모델식으로 복지와 공공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일부 받아 들이면서 자유주의적 사조는 역사의 한켠으로 조용히 밀려나게 되었지요...마치 영화 다이 하드에서 알 포웰 경사가 실수로 사람을 쏴 죽인 뒤에, 총을 멀리하게 되었고 순찰이라는 말단 한직으로 밀려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다이 하드의 엔딩 부분을 다시 더듬어 보세요...존 맥클레인이 처치한 줄로 알았었던 칼이 최후의 도발을 하려고 하자, 알 포웰 경사가 총을 발사해서 칼을 진짜 골로 보내 버리는데요... 이것은 바로 과거 실패로 끝났다고 여겼었던 자유주의 사조가, 시대가 급변하고 미국의 경제 패권주의가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자, 다시 신자유주의로 되살아났다라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아내 홀리는 남편 존의 성인 맥클레인이라는 이름마저도 거부할 정도로, 과거 대공황의 역사적 기억 때문에 자유주의와 시장 만능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일본식 동아시아형 국가 자본주의 모델에 열광하였던 1980년대 후반 당시의 미국 국민들을 상징하며, 결국 남편 존 맥클레인의 새로운 면모...즉 신자유주의의 막강한 위력과 초인적인 매력 앞에, 기존의 사고와 기억들을 모두 떨쳐 버리고 열렬히 그것을 받아 들이게 된다라는 얘기이죠...


에필로그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반 더 빌 트의 영화 다이 하드 해석이 조금 흥미로우셨나요? ^^  다이 하드는 분명 액션 영화중에 단연 백미입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국가는 액션 무비 하나를 만들어도 절대 허투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헐리우드를 통해서 자신들의 패권주의와 사고 문화등을 전세계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널리 전파하고 끝없이 과시합니다. 영화 다이 하드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액션 무비의 고전적 공식과 흥행 요소를 모두 살리면서, 거기에 미국의 전통적인 카우보이 트렌드와 영웅주의로 대변되는 프론티어적 사고, 그리고 신자유주의 혹은 경제 패권주의 코드를 절묘하게 주입하여, 전세계의 액션 영화팬들을 열광시켰었던 진짜 수작중의 수작이라는 평을 끝으로, 필자는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치렵니다...^^     

P.S : 오늘의 포스팅이 사뭇 흥미로우셨다면, 지금 바로 가까운 비디오 샵에 가셔서 영화 다이 하드 1편을 빌려다가 한번 찬찬히 보시면서 포스팅의 내용을 확인하시기를 적극 추천하며, 그런 의미에서 바로 아래 추천 버튼을 한번 힘차게 클릭해주시는 센스도 절대 잊지 않으셨기를 기대합니다...^^  


                                                                                  ※사진 출처: 20th Century Fox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