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블로그

  필자가 실제 살던 곳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강남 8학군의 대표적인 명문 고등학교에 운좋게(?!) 배정을 받은 것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필자 본인이 아니라 필자의 어머님이 좋아하셨다!), 그곳에 사는 친구들이 워낙에 잘 사는 부모를 가진 이들이 많아서 학생들이 걸친 사복 차림에서 보여지는 빈부의 격차를 보다 확실히 느꼈었으며, 도시락 반찬을 가지고도 놀림을 상당히 자주 받곤 하였다.

  당시 필자가 싸 가지고 다니던 반찬은 감자조림과 김치가 유일했었는데, 당시 필자의 반에서 조금 논다라는(?!) 불량한 친구들은 필자의 도시락 반찬을 보며 감자공장 자식이냐고 놀렸었고, 그때마다 필자는 말없이 도시락을 들고 교실 밖 잔디밭에 나가 밥을 마저 먹으며 눈물을 글썽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또한 당시에는 오리털 파카가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인기였었지만, 그 옷 한벌을 사 입을 돈이 없어서 솜으로 된 잠바를 입고 다녔었다. 당시엔, 그마저도 그 옷 하나밖에 없어서 너무 오래 입고 다니다보니, 손목 부위와 팔꿈치 부위가 다 떨어져서 다른 천을 대어 꿰매어 입고 다녔었는데, 그런 필자의 모습을 보고 거지 새끼라고 놀리던 학교 친구들이 한없이 미웠으며, 왜 나는 이토록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부모님에게 원망하고픈 마음도 당시에는 매우 컸었다. 

  자연히, 독서에 더욱 매진하면서 현실의 어려움과 절망스러움을 잠시나마 잊거나 달래며 이겨 나갔고,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정을 가진 필자를 놀려대던 친구들의 입과 콧대를 꺾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공부밖에 없다라는 생각에 더욱 이를 악물고 학업에 열중하였다.
 
  그러다보니, 학교 성적은 정말 우수한 축에 들었는데 하루는 이런 일이 생겼다...

  필자가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하면서 옆자리에 앉게 된 친구는 강남에서는 꽤 알아준다는 의사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네 집안에서 개인 과외다 뭐다해서 그렇게 사교육비를 들여도 성적이 신통치 않았고, 자꾸 엇나가기만 해서 그의 어머님이 학교로 찾아오는 일이 꽤 잦았었다.

  물론, 이 친구가 상당히 비뚤어지게 나가고 있기는 했지만, 당시 나이로 보나 정서로 보나 지금의 일선 중고교에서처럼 막가는 비행 청소년은 아니었고, 그저 불량학생 취급을 받을 정도의 행태를 부리며 다녔다. 다시 말해서, 기본 심성이 비뚤어지거나 근본적으로 악한 본성을 타고난 친구는 절대로 아니었으며, 다만 집안에서 요구하는 목표가 아버지나 집안의 다른 어르신들처럼 의대를 들어가라는 식으로 너무 높고 압박을 받다보니, 이 친구 입장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였다가 폭발하면서 일종의 반항심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필자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런 그의 행동이 십분 이해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배부른 이들의 전형적 투정(?!)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자신의 생일이라고 필자를 집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당시, 필자는 정말로 고민이 많았었다. 생일 초대를 받았으니 갈 때 선물이라도 하나 챙겨가야 하는데, 정작 입고 갈만한 그럴싸한 옷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초대를 거절하려 했지만 그간 이 친구가 보였던 여러 호의가 생각났고, 어린 마음에 그래도 친구인데 생일 축하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생일 초대받기 얼마전부터 시작한 신문 배달을 통해 벌었던 돈 일부를 털어 좋은 책 두 권을 사서 예쁘게 포장한 뒤, 처음으로 그 친구가 사는 집을 방문했었다. 

  당시 그 친구가 사는 집은 청담동의 고급 주택가였다. 필자는 정말이지 그렇게 멋지고 넓은 공간을 가진 집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가구부터 시작해서 전자 제품 하나까지 모두 외제였다. 특히나, 소니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워커맨과 전축등은 정말로 필자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필자는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던 것이다...

  친구의 어머님이 이층에서 내려 오셔서 생일 파티에 참석한 우리들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셨다. 필자가 지금 기억하기에도, 매우 비싸 보이는 실크 소재의 드레스 풍 원피스를 걸치셨고, 상당히 지적이고 차분한 이미지의 얼굴 가득히 여유로운 웃음을 띄시며, 생일을 축하하러 온 친구들을 하나하나 반갑게 맞이하시다가 필자의 순서에 이르자 일순 얼굴이 굳어지시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필자의 옷차림에서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라는 티가 팍팍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필자는 그 때 그 친구의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잊지 못한다. 친구의 어머님이 말씀하시길, " 아들!  네가 이 친구도 생일 파티에 초대했니?" 라고 물으시고, 친구가 그렇다고 답하자 필자를 돌아보며 다시 이렇게 물었다. " 너 어떻게 우리 아들하고 알고 지내는 사이니? 같은 학교 다니니? 아니면 다른 곳에서 만나서 알게 된 사이니?" 라고 말이다.

  당시 이런 질문을 받게 된 필자는 상당히 당황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었던 질문을 받았던 것도 당혹스러웠지만, 그 친구 어머님의 말투에서 필자를 무시하고 의심하는 느낌이 너무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심으로는 당혹스럽고 화가 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머뭇머뭇 대답을 하며 쩔쩔매고 있는데, 생일에 초대를 했던 그 친구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버럭 신경질을 내며 이렇게 말을 했다.

  " 엄마! 얘가 비록 집은 가난해도 공부는 학교에서 엄청 잘하는 친구로 선생님들도 다 인정하고 아끼는 모범생 친구란 말이에요! " 라는 말이 떨어지자, 필자를 바라보는 그 어머님의 눈길에 상당한 떨림이 있음을 확연히 느꼈으며, 더 이상의 추궁성(?!)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필자는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집안이 가난하다라는 둥 하는 얘기들을 들은 자체가 몹시 기분나쁘고 슬펐다. 만약, 친구의 정중한 요청과 생일을 축하하러 왔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당장에 뛰쳐 나가거나 화를 낼 그런 상황이었고,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기거나 괴로운 상황에 처하면, 바로 그 시절의 필자를 떠올리며 다시 이를 악물곤 한다...

  ...어쨌거나, 당시 필자는 그렇게 우울하고 슬픈 마음을 달래며 친구의 생일 축하를 해주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 친구의 어머님이 학교를 방문하셨다. 필자는 또 이 친구가 무슨 말썽을 피워서 어머님이 방문하셨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친구의 입을 통해 직접 사연을 듣고보니, 필자가 정말로 이 학교에 다니는지, 그리고 정말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지 확인하려고 직접 학교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필자가 정말 성적이 괜찮다라는 것을 담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자 태도가 180도로 바뀌어서 자기 아들과 친하게 지내라며, 필자 몫까지 아주 근사한 메뉴(거의 뷔페 수준이었습니다!!!)의 점심 도시락도 하나 더 싸서 친구를 통해 보내주기도 하고 집에도 자주 초대를 하셨다.

  하지만,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친구와 어울리기가 싫어졌다. 당시 필자가 그런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친구의 주변 환경이 너무 부러웠으며 그런 모습을 하나하나 듣고 보기가 너무 짜증이 나고 싫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 친구네 집은 국영수같은 주요 과목마다 개인 과외 선생이 따로 있어서 시간대별로 집을 방문해 특별 교습을 시켰었고, 공부 중간중간에 몸에 좋다는 과일과 머리가 좋아진다는 한약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이는 잘난 부모님들의 재력과 여유도 너무 부러웠다.

  또한, 고3 여름 방학이 다 지나도록 이 친구의 학업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지 않자, 이건 할아버지 때부터도 그랬고 형제가 모두 의사인 집안의 망신살(?!)이 크게 뻗치게 생겼다면서, 골치아픈(?!) 군대 문제도 있고 바라던 한국내의 유명 대학 진학 문제도 순탄치 않으니, 아예 이번 기회에 미국의 삼촌댁에 보내서 대학을 다니도록 하고, 거기에서 교민들의 자제중 괜찮은 여자애 하나 소개받아 결혼하여서, 한국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라는 자기 부모님의 말을 전하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푸념(?!)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한없이 부럽고 화가 났었다. 당시 필자는 아무리 원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그 친구는 부모님을 잘 만나서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라는 사실이 정말로 화가 나면서도 부러웠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그래서 반장을 해 보라는 추천이 들어 오거나 정말로 한번쯤은 하고 싶어도, 반장 부모님이 되면 통상 내야만 했던 무슨 육성회비다 뭐다하는 것들이 필자의 집안 사정이나 부모님 형편상 너무 부담스러워서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그 반장을, 그 친구와 집안의 레벨(?!)이 비슷하다라는 다른 친구들은 척척 맡을 수 있고, 그것을 아낌없이 뒷받침해주는 부모님들이 너무나 훌륭해 보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