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평론2012. 7. 26. 19:51



 지난 시간에 케인스 경제학이 통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케인스 경제학의 핵심은 유효수요인데, 정부의 기능이나 역할이 비대해지고, 인위적인 정부지출 혹은 재정지출을 통한 유효수요가 국민들의 소비수준을 넘어서서 과잉설비 상태에 이르면, 정부의 재정적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뿐이며, 민간 부문은 민간 부문대로 정부의 국채 발행(재정지출의 수단)으로 인한 자금의 부족과 시장의 압박에 빠져서 경기 침체의 늪에 더욱 빠지게 된다고 정의하였다.

 

 

케인스 경제학이 통하지 않는 이유, 그 불편한 진실

 

 

 

 

 또한, 케인스 경제학은 유효수요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며, 그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경기 억제책을 쓰면 실업률이 오르며, 그 반대로 경기 부양책을 쓰면 실업률은 떨어지지만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진단하였고, 그 이면에는 대대적인 유효수요나 과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석유 에너지 시스템의 문명이 도사리고 있어서, 석유(석탄 천연가스 등등)를 비롯한 화석연료 수급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필연적인 가격 상승을 피할 길이 없다고 진단하였다.

 

 

 

 

 여기에, 이런 경기의 악순환은 정부의 재정지출이 한계점에 도달하였다는 측면과 민간 부문의 소비여력이 동시에 침체되거나 축소된 최악의 상황이기에, 케인스 경제학이나 신고전경제학파인 통화주의 학파의 주장이 모두 통하지 않으며, 대공황 이후 케인스 경제학으로 풍요를 맞이한 제1세계의 보편적 복지 모델은 결국 시장과 소비, 자본의 이윤 창출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석유를 비롯한 식량 에너지 주택 문제 같은 기본적인 생활 필수재의 폭발적인 수요와 공급이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만약에 제1세계의 국가에 해당하는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과 같은 복지 혜택이나 생활수준을 위해서 한국을 비롯한 중국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이 서구 선진국들의 과거 경제발전 모델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 결과는 가히 전지구적인 재앙이지만, 그 누구도 석유 문명이 가져다 준 혜택을 완전히 포기하고 중세의 암흑기와 같은 문명 퇴보를 바라는 정치 세력도 사회 제반세력도 없으며, 이런 생각이나 인식 자체가 석유 문명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깊이 인식되거나 생활 전반을 180도로 바꿀 만큼 가시적이지 못하며, 기존의 교육이나 언론 방송 정치 문화 방면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구태 일변도에 구시대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하였는데, 오늘은 전 포스팅에서 밝힌 케인스 경제학의 한계...

 

 

 

 다시 말해서, 정부의 재정적자의 한계...그리고 민간 부문의 침체라는...한마디로, 정부와 시장의 실패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 현시점에서 정부도 아니고 시장도 아닌, 제3의 영역인 협동조합의 문제점을 다루려고 한다.

 

 

 

 

문재인의 협동조합 발언으로 보는 친노 민통당의 인식 수준 문제

 문재인이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활성화시켜서 경제난과 국가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자라고 주장하였다는데, 왜 문재인을 비롯한 민통당의 잠재적 대선 주자들이 한결같이 협동조합 얘기를 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필자가 지난번 글이나 위에서 간략하게 다시 밝혔듯이 시장과 정부의 실패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대안이 협동조합밖에는 없다고 하는 일종의 절박함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매도되거나 비판받는 경제난이나 식료품을 중심으로 한 물가의 폭등, 공공요금의 지속적인 인상과 부동산 경기의 하락은...

 

 

 사실 김대중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부터 이미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의 결과물일 따름이며, 그 결과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시화되고, 부동산 경기에 직격탄을 쏘게 되면서, 우리들의 눈에 확연히 들어온 것일 따름이었다.

 

 

 

 또한, 2008년 세계적인 곡물 파동으로 인한 식료품 물가의 폭등도 알만한 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마치 세계 경제 사정과는 별개인 한국만의 문제이며, 정권 교체만 되면 뭔가 상황이 달라질 것처럼 2030세대의 감성 혹은 열정이나 일반 서민들의 계층간 위화감이나 반이명박 반기업 정서를 과거사 테마를 통해서 자극함으로써...

 

 

 사실상 자신들의 확고한 정치적 입지를 꾀하고, 서민 생활면에서 보면 아무런 실체가 없으며, 소모적 갈등과 혼란만 가중시키는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면서, 진보 담론 전체를 노무현 참여정부가 잘한 것이라는 측면으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부동산 버블이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장과 정부에 얼마나 심각한 위기가 되고 있으며, 서민들의 가계살림도 이미 위기경보 수준에 들어섰음을 진지하게 다루지 못한다라고 진단하였다.

 

 


 

 



 자연히, 노무현 참여정부의 과오와 불편한 진실은 접어두면서 2008년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경제적 난관 앞에서도...

 

 

 

 일반 민간 기업체나 시장이 보여주지 못한 생존과 이윤을 담보한 서구 선진국들의 협동조합 모델이 몇몇 시민단체나 지역공동체 차원이 아닌 범정부 혹은 범정치권의 표피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한국 사회에서도 이 협동조합 모델을 적용하여서 대안을 찾자라는 움직임들이 여야 혹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활발하게 진행중이라는 측면을 따져보면, 일단 문재인의 발언은 또 한번 일반 서민들의 환심이나 사고 정치적 표를 구걸하는 포퓰리즘 내지는 이미지 정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협동조합 정착에 대한 시민단체나 재야운동가들의 헌신적 노고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노고에 곁다리나 끼고 보자라는 계산을 하려는 정치모리배들을 비판하는 것이니까 오해 마시길 바란다...)

 

 

 

 

 과연, 친노 문재인이 언제부터 그렇게 협동조합을 구상하고 대안으로 삼았다라는 말인가...

 

 

 

 얼마전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중적 발언도 그렇고, 대체에너지에 대한 구상도 막연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처럼, 협동조합 발언도 그저 숟가락 한번 얹어보겠다는 심산이 너무 눈에 보인다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문재인이 분배를 얘기하면서도 4.11 총선 패배 이후에는 성장에 방점을 둔다라고 하였는데, 실상 자세히 따져보면 그런 말이 협동조합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기 때문이기에, 이제부터 길고 긴 서설을 마치고 본격적인 얘기인 협동조합에 대해서 논지를 전개하련다.

 

 

 

정보통신혁명과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도래

 여러분은 아마도 스마트 폰(한국이 3000만대의 스마트폰 보유자들의 국가라니 놀랍지 않은가...)을 하나씩은 가지고 계실 것이다. 테블릿 PC와 여타의 음향이나 영상 혹은 게임과 관련된 전자기기들도 여럿 보유하고 있는 이들도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구글 이미지

 



 인터넷을 통해서 쇼핑몰을 검색하여서 원하는 물건을 찾아보고 가격대를 비교하거나, 마음에 드는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스마트 폰을 통해서도 전자 결제를 간단하게 할 수 있을만큼, 현대 사회의 정보통신 혁명은 가히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터넷이나 전자적 정보고속도로망을 이용한 네트워크 경제 시스템은 필자나 여러분들이 학교나 책에서 보고 들은 기존의 시장 경제 시스템과는 차원이 다른데,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과거,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급되지 못하였던 199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구입하려면,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영세 규모의 레코드 소매점이 아니면 시내 중심가나 대로변에 위한 대형음반판매점에 시간을 내어 직접 들러서, 그 곳에 비치된 음반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구입을 하여야만 했었다.

 

 

 

 만약에, 자신이 구입하려는 음반이 이미 다 팔려 나가거나, 혹은 아직까지 해당 음반판매점에 비치되지 않은 상태라면,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거나 예약 주문을 한 뒤에, 다시 시간을 내어서 방문을 한 다음 음반을 구입하거나 배송 주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음반 구입 전에 전화를 통해 음반 비치 여부를 확인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 초중반인 당시에는 휴대전화도 대중화되지 않았으며, 집이나 회사에서 전화를 걸어서 상품의 비치 여부를 물어보는 상담건수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것이었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과연 어떠한가...

 

 

 

 만약에, 여러분 중 누군가가 음반을 비롯해서 마음에 드는 서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뒤, 인터넷을 통해서 쇼핑몰이나 서점을 검색하고, 상품의 재고량이나 가격대를 파악하는 것도 클릭 몇 번이면 끝나는데다가, 주문을 하고 전자 결제를 한 뒤에 배송 주문까지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던가...

 

 

 

 과거,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러 모습은 결코 대중적이지도 않고, 쉽게 상상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체계가 결코 아니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시장경제가 컴퓨터와 SNS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정보 통신의 혁명이 가져다 준 속도와 생산력을 완전히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로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서 주문을 하거나 결제를 하기는 쉬워도, 인기 상품인 경우에는 주문량과 재고량의 차이가 빗나가는 경우도 더러 있으며, 무엇보다도 주문한 상품이 배송되는 시간만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속도와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바로 이런 측면을 얘기하는 것이란 말이다.

 

 

 

 

 예를 좀더 구체화를 시켜보자....

 

 

 

 기존의 음반구매는 돈이나 카드 결제를 통해 소비자가 물품을 구매하고 판매자는 상품을 배송하는 정도의 관계였다라고 한다면, 현재는 애플 아이튠즈 등을 이용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나 곡수를 선택하며 그에 따라 요금을 차등 지불하는 관계로 바뀌지 않았는가.

 

 

 

 기존에, 소비자와 판매자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던 음반거래는 점차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애플이라는 IT기업이 제공하는 아이튠즈를 통해서 음악을 다운로드 받거나 들을 수 있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인터넷 SNS를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 경제시스템에서는 상품(음반)과 용역제공자(애플사와 그들이 제공하는 아이튠즈)와 사용자(음악을 다운로드 받거나 정액제를 통해서 일정기간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전통적 의미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대신하며, 정해진 시간동안의 상품과 용역 사용권이 물리적 상품 및 용역 교환을 대체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자연스럽게도, 기존의 시장 거래나 오프 라인에서 각 단계를 차지하던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거래의 단계마다 조금씩 붙으면서 최종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전가되던 마진이라는 부분에서의 비용절감이 가능해진 것이다.

 

 

 오프라인 상의 물품보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인터넷 서점을 통한 책 구입 비용이 더 저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나 여러분들이 저렴한 구입비용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즐긴다라는 것은 기존의 시장에서 판매단계를 줄이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결국 일자리의 소멸 혹은 실업과 연결되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인쇄문화와 출판사 메이저 신문사들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보통신혁명의 발전이 소비자에게는 시간 공간의 단축과 편의를 제공하고, 상품의 가격을 낮추니 구매자 입장에서야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며, 기업 입장에서도 새로운 통신이나 생산기술을 통해 거래비용을 단계별로 축소하거나 줄일 수 있으니, 마진은 점점 축소되면서 일자리도 위협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마진은 각 단계별 거래비용에 따라서 달라진다. 단계가 급격하게 줄고 상품거래 정보가 투명해지면 마진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때문이다...이런 식의 경제 경영상의 조직기법 변화는 1980년 이후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사무자동화가 본격화되면서, 시너지 효과와 기업 경영 전반의 노하우를 혁신하는 단계로 가게 되었고, 바로 이런 흐름에 힙입어서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제의 세계화가 가능했다라는 얘기이다... )

 

 

 

 이 부분에서의 핵심은 기존에 시장에서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는 명백한 구분과 한계가 존재하였다라는 것이다.

 

 

 판매자는 최대한 자신이 만들거나 도매로 구입한 상품을 자신이 거래한 비용보다는 높게 판매하여야만 하고, 소비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액 한도 내에서 구입을 꾀하거나, 신용 거래를 통해 갚을 수 있는 정도의 상품가를 원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상호 불신과 상호 견제의 측면 혹은 상품가를 둘러싸고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일종의 적대적 긴장이 존재하기 마련인 것이다.

 

 

 판매자는 상품 판매를 통한 이윤 추구가 목적이며,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하여서, 자신이 가진 소비여력을 보호하고 다른 상품을 구입할 여지를 남기기 위한 지속적인 선택과 협상의 과정이 바로 기존의 시장 경제 시스템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네트워크 시스템의 경제모델은 이런 식의 구태의연한 시장모델이 감당할 수 없거나 시간적 공간적으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 되었는데, 온라인 무료다운로드나 기술라이센스 공유 혹은 로열티나 저작권을 지불하고, 일정 시간동안 판매자의 상품이나 기술을 공유하거나 사용하는 관계로 전환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소비자와 판매자의 영역이나 구분이 모호해진다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 위에서 설명한 정의가 이해가 되지 않으시는가...

 

 

 다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요즈음,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IPTV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케이블 방송이나 인터넷 영화 다운로드 등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기존의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의 영화 관람이라는 것은 본인이 직접 영화관에 가서 표를 예매하거나 구입하여서, 영화관에서 배정한 시간대에 정해진 좌석에 앉아서 영상을 감상하여야만 하였다면, 지금은 여러 미디어 기기와 정보 통신의 발달로 인해서, 굳이 극장을 가지 않아도 되며 정해진 좌석에 앉아서 남들과 똑같은 팝콘 등을 먹으며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 아닌가 말이다.

 

 

 문제는 해당 영화가 미국 헐리우드같은 거대 영화사와 배급사를 통해서 만들어지거나 유통되는 경우에, 온라인 다운로드나 IPTV를 기반으로 하는 케이블 방송 등은 영화상영에 대한 저작권이나 기술적 측면의 라이센스를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분명히, 영화의 판권과 소유권은 미국 헐리우드 영화사나 배급사에 있지만, 여러분은 온라인 다운로드에 대한 접근권이나 저작권 상의 일부비용만 부담하면, 그 영화 자체를 자신만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닌 일정 시간이나 정해진 횟수만큼 영화를 보거나 다운로드받을 수 있지 않느냐라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금액을 지불하지 않고 일정 기간동안에 볼 수 있는 무료다운로드 영화라든가 팩키지 상품 등을 끼워서 판매하기도 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점점 무료 다운로드에 대한 유혹이 커지고, 일단 어떤 음악이나 영상 혹은 영화나 드라마가 무료로 인터넷이나 여타의 미디어 기기를 통해서 유포되면, 무료 다운로드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대단히 곤란한 일이며 자기 양심의 문제로 변화하지 않던가...

 

 

 만약, 여러분이 특정 영상이나 영화를 무료로 다운로드한다라는 것은 해당 영화를 만들거나 창작하고 여러 단계에 걸친 노고와 비용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체, 그 노력의 결실을 취한 것이니까 전통적인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라면, 틀림없는 사단이 생기거나 법적 공방으로 비화할 소지가 크다고 단정할 수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 경제 시스템 상에서는 누가 무료다운로드의 길을 최초로 만들었으며, 얼마나 많은 이가 이를 통해서 해당 영상이나 영화 등을 다운받았는지를 측정한다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며, 이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점점 더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 경제 시스템 모델이 성공하려면 상품을 판매하는 측과 그것을 구매하거나 일정 기간 공유하려는 측 사이에 상호 신뢰와 협력의 원칙과 일정한 규칙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시스템을 유지하기가 대단히 곤란하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시스템은 상호간의 신뢰감이나 의무감 혹은 공동운명체 동반성장의 개념이 확고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대단히 섬세하고 복잡한 체계이다.

 

 

 그 대신에, 네트워크 경제 모델은 제조업체 유통업체가 신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해서 순차적 단계의 시장교환에 의지하는 시장경제모델로써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시간과 공간상의 절약과 비용감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런 흐름은 역사적 측면이 매우 강한데,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써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면 시장의 범위와 상품의 종류도 더 다양하고 복잡해지기 마련이기에...

 

 

 그만큼 상거래건수가 예상이 가능하고 신상품 도입에 따른 리드타임(기획, 제품화, 최종 사용자에게 이르는 시간, 즉 거래 단계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의미함)이 길며, 미개발 혹은 미개척 소비자 시장이 흔히 발견되거나 주변에서 널려 있는 경우에는 시장에서의 직접교환과 수직적 혹은 순차적 단계를 갖는 과거의 시장경제모델이 경쟁력의 우위를 가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시간과 공간이 축소된 말 그대로 무한경쟁 세계화의 시대인 관계로, 기존 시장모델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구글이나 페이스 북 트위터의 비약적인 성장도 이런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기에, 지난 시간 글에서도 짚었지만,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 비용의 급등, 연구 개발과 관련된 각종 리스크(시설물의 대형화 집중화 경쟁업체로의 첨단기술 정보 유출 등등)의 증가, 상품과 용역의 라이프 사아클 단축, 네트워크 경제의 핵심인 단계적 축소로 인해 거래 단계의 마진은 줄었는데 인건비는 계속해서 상승할 수 밖에 없는 경제 시스템(용역을 쓰게 되는 이유),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개개인의 기호나 취향의 다양화로 인해 맞춤형 주문 생산이나 상품에 대한 소비자 그룹의 증가, 세계적 수준에서의 경쟁으로 인한 수익 마진의 감소로 인해서, 전통적인 시장교환과 단계적 계층적 사업모델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원을 공유하거나 리스크나 비용을 분담하고 수익을 나누어야만 하는 네트워크 혹은 분산형 경제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것은 시대적인 대세가 된 것이며,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증오해 마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의 특징인 아웃소싱, 주식 출자를 통한 이익분배, 공동비용절감과 같은 경영상의 기법들이 속속 출현하였다라는 얘기이다.

 

 

 신자유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들 눈앞에 괴물처럼 다가 온 것이 아니라, 시대 역사와 기술의 발전단계에서 기업과 시장 그리고 소비자인 국민들과 정부의 이해관계가 모종의 합치점을 발견하였기에, 그토록 쉽게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었던 측면도 존재한다라는 말이다.

 

 

 문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용어에서도 보여지듯이, 네트워크 경제의 장점인 시간과 공간의 단축을 통한 경영상의 혁신이나 수익 마진의 측면만을 고려하는 과거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모델의 마인드를 고집하였다라는 것이 위기를 다시 불러들인 근본원인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네트워크 경제 모델은 시장경제 시스템이 바라는 소비자와 판매자와의 적대적 긴장이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둘러싼 줄다리기...다시 말해서 이윤추구만이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상호 신뢰와 공동운명체라는 의식이 확고하지 않으면 그 위력이나 영향력을 100%로 발휘할 수 없다라는 얘기이다.

 

 

협동조합모델이 경제위기에 대한 진정한 대안일까

 이제, 다시 협동조합모델 얘기로 돌아와서 가만히 비교해 보시길 바란다.

 

 

 기존 시장과 정부의 역할이 실패한 이유는 결국 이윤추구와 지나친 소비 형태가 빚어낸 위기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여기에 정보통신 기술발달과 인구증가 (저출산이지만 의료기술 향상으로 인해서 고령화 인구는 계속 늘어나니 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 문제는 지금 사회나 경제를 유지하거나 추동하는 산업의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있다라는 부분임)가 겹쳐서 이 흐름을 가속화하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과 정부의 실패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표면화되고, 그로 인해 수 많은 이들이 근무하는 유수의 기업체들이 속속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실업자가 늘고 소비여력이 감소하면서 정부의 재정지출 압박이 그 어느 때보다도 늘다 보니까,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재정적자의 악순환이 도래한 것인데, 바로 이 시기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으면서도, 민간 기업이나 정부가 하지 못하는 각종 사업을 통한 이익 창출, 협동조합에 속한 회원들간의 편의나 사회적 복지에 관한 지원을 하는 협동조합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일 것인지는 불문가지의 일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 부분은 잘 언급이 되지 않고 있는데... 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구현된 현대정보통신 네트워크 경제 시스템의 장점을 그대로 구현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기업체는 이익창출을 위해서 주식을 발행하고 출자를 받아서 일정 수준의 이익분만 주주들에게 나눠주면, 그 나머지는 자신이 독식하는 기존 자본주의 모델을 따르지만, 협동조합모델은 1인1표의 원칙에 따라서 공동출자를 하고 이익을 공평하게 배분하며, 만약에 수익이 크게 창출되어서 잉여 자본이 생긴다면 그에 대한 이익분을 출자한만큼 받아가는 주식시장의 법칙이 아닌 이익 배분의 한계를 설정한다라는 부분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구글 이미지

 



 이는 자원을 공유하고 상호신뢰에 기반을 두며, 공동운명체라는 끈끈한 연대의식이 존재하지 않으면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네트워크 경제 시스템 모델과 일치하지 않는가....

 

 

 이미, 시장과 정부의 역할은 포화상태이거나 재정적으로 지원을 하기에는 실업자와 민간 부문의 소비 부문이 너무 방대하여서 여력이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라고 한다면, 협동조합의 모델에 유효수요분의 재정을 투입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바로 그래서, 한국의 이명박 정부도 협동조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이를 시행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여기에는 중대한 몇 가지 난관이 있다라는 말이다.

 

 

 우선,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서 거의 궁극의 경영혁신과 무한경쟁의 체제를 만들어버린 현재의 글로벌 시장의 효율성 추구와 이윤추구 그리고, 엄청나고 막대한 생산성의 영역을 과연 대체하거나 따라잡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대단히 회의적이다.

 

 

 협동조합을 통해서 간단하고 영세한 수준의 상품이나 재화를 교환하거나 판매하고, 이를 통한 수익을 공동으로 분배하는 방식은 노력하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일반 서민들이 출자하는 자금의 규모가 클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여기에 재화와 결합할 기술의 문제도 그리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현재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모든 재화나 사물들을 살펴보시길 바란다.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와 전자적 메카니즘으로 움직이는지 말이다.

 

 

 협동조합이 냉장고나 자동차 비행기를 생산해서 판매할 수 없지 않겠는가...필연적으로 기존 시장 경제 모델에서 최강자의 위치에 있는 다국적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 재벌들의 이윤추구 모델에 끊임없는 위협과 압박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바로 그래서, 일반 국민들은 기존 시장 경제모델과 협동조합의 영역에 동시에 속하게 되며, 자본조달과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도 기존 시장경제모델에서 한층 발전한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라는 개인적 회의나 판단이 밀려온다라는 것이다.

 

 

 자원을 공유하고 재화를 공평하게 분배하며 초과이익을 나누지 않고 비축하였다가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또 다른 협동조합의 모델을 만들어간다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인 사유재산 소유의 문제와 자유주의에 입각한 재산 원리와도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측면이 존재하기에, 협동조합은 언제든지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과연 상호연대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의 긴장관계와 이율배반적인 모순관계를 병행할만큼의 의식과 준비가 한국 사회에는 되어 있는가...

 

 

 시장경제(엄밀히 말하면 자본주의적 시장)의 장점인 노동의 분업과 자본의 조달 문제와 부의 축적 문제 , 성장을 통한 복지 수준 향상의 문제,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활동의 자유가...

 

 상호주의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신뢰와 공동운명체의 마인드로 변하는 시간이란 문제처럼...

 

 

 다시 말해서, 산업화나 조직의 체계를 바꾸는 것처럼 간단하게 변형시킬 수 있다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몹시도 순진하거나 머리가 상당히 모자라는 인물일 것이다.

 

 

 여기에,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인 정체성위기를 잘 극복하고 협동조합을 운영하다가도 세계적 수준에서의 변화...다시 말해서, 에너지 비용의 급등같은 급격한 변화나 정부의 법적 지원이나 재정적 지원의 단절이나, 협동조합 내부 구성원들의 변화로 인해서, 언제든지 협동조합이 시장에서 퇴출될 경우가 존재하는데, 이런 경우에 그동안 쌓아왔던 협동조합의 잉여자본의 배분 문제나 협동조합 회원이 보유하던 협동조합의 지분 처분에 관하여서, 자본주의적 마인드로 접근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라는 보장이 없다.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회원들에게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나누어준다라는 사실이 기존 시장이나 다른 지역 사회에 알려지면, 해당 햡동조합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며, 이는 협동조합 회원권이나 지분을 암암리에 매각하려는 유혹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라는 말이다.

 

 

 따라서, 내부유보금의 임의처리불가나 조합청산시 자본이익환수불가에 대한 세부적이고 치밀한 지침과 법적 장치가 정착되지 않으면, 협동조합은 또다른 투기적 버블의 통로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본주의에 입각한 기업의 주식을 통한 출자와 노동자 고용, 그리고 상품 생산과 잉여가치 창출, 시장 가격에 입각한 임금 지급과 남은 잉여가치의 독식이라는 기존 경영 경제학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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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 반해서, 조합원의 공동출자와 상품생산 및 공유, 시장가격에 합당한 재화의 배분과 남은 이윤들은 공동으로 분배하는 모델은 표면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차원이 다른 것이다.

 

 

 친밀한 유대, 신뢰, 상호 호혜주의, 그러면서도 시장에서의 역할을 고민하여야 한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생산하고 공급할 것인가의 기본 전제부터 시작해서 여러분들 각자가 지금 시대에서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거시적이고 세계적 차원의 역사관으로 점검하거나 의식의 끊임없는 혁신이나 재무장을 하지 않으면, 자본 시장과 생산양식의 틀이나 유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협동조합의 난관으로 지적되는 또다른 문제는 과소투자와 과소자본의 문제인데...

 

 예를 들어서,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면서 제품가가 상승하거나 생산량이 감소하게 되면 협동조합이 제 아무리 하늘을 나는 재간이 있다라고 해도 고용이나 수익 배분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이윤극대화의 시장원리와도 배치되는 협동조합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이다.

 

 

 협동조합에 속하게 된 회원들 간에도 선후가 있고, 시간상의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협동조합을 여러 사유로 인해서 떠나거나 탈퇴해야 하는 회원들이 협동조합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계획한 장기적인 사업 프로그램에 동의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공동출자의 수명보다 조합원의 협동조합가입기간이 짧을 경우에, 1인1표의 원칙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 부적절한 투자나 장기적인 사업모델로 공동출자되거나 비축된 자본을 훼손하거나 위축시키는 사례가 발생하거나, 장기적 사업 모델의 수익을 받을 수 없는...

 

 

 다시 말해서, 협동조합을 가까운 시일내에 떠나야 할 사정이 생긴 회원들의 반발이 협동조합의 공동출자나 1인1표제 정신에 입각한 수익 배분의 원칙이나 정체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라는 말이다.

 

 

 이럴 경우에, 조합원이 최소한의 수익이나마 건져보자고 조합회원권이나 지분을 임의로 처분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모델에서의 기업은 주식발행을 통해 자본을 충당하지만, 기업이 도산하거나 해채되는 경우에 주주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배당을 요구하거나 주식을 처분할 수 있다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것이다.

 

 

 이는 조합원들의 경제적 사정이 그리 여유가 없는 서민적인 협동조합이나 지역공동체의 경우에 더욱 심각한 위협요소가 아닐 수 없는데, 이런 부분들 때문에 일정한 보호나 규칙을 세워 줄 정부나 별도의 자금 지원 기구가 분명히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1인1표제의 공동출자는 특정 집단이나 다수의 결정에 의해서 조합원 다수의 수익 배분이나 창출에만 매진할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한다.

 

 

 협동조합의 원칙상 회원권이나 지분을 마음대로 매각할 수 없고,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업계획을 그대로 따라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협동조합원들이 생긴다면, 그 협동조합은 외부의 시장압력과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의 마인드의 도전을 받아서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이다.

 

 

 이런 경우에, 주식회사의 소액주주는 비록 피해를 조금 보더라도, 주식을 처분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공동출자와 공동배분...공동운명체와 상호신뢰에 기반한 협동조합에서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니, 이 부분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여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이에 대한 반박이나 모델이 있다라고 해도, 현실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위험성이나 난관이 더 강하게 다가오며 그 유혹이나 압박을 견디기에는 곤란한 측면이 많지 않겠는가....

 

 

 또한, 생산성이 높은 조합원에서 생산성이 낮은 조합원으로의 소득재분배가 처음에는 용인이 되더라도, 어느 수준 이상의 잉여자본 축적과 협동조합 규모의 확대가 이루어지고 나면, 수익 배분의 비율에 대한 복잡다단한 규칙들을 세워야만 하는데, 말썽이나 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이런 모델을 상정하고 예측해서 규칙을 못 박아 두기도 쉽지 않다라는 것이다. (금융 부문의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식의 모델 상정은 필히 엘리트적이거나 협동조합 모델에 깊숙이 관여 혹은 교육이나 현장실습을 가진 이들이 주도하기 마련이며, 이들이 어떠한 마인드와 원칙에 따라서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1인1표제의 협동조합 원칙을 무너뜨릴 내부 권력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위에서 언급한 모든 사항들을 간단히 정리하련다.

 

 

 네트워크 경제모델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루어진 현대문명의 산물이며, 시간과 공간상의 제약을 줄임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모델의 주역인 기업의 경영혁신과 경제학상의 기본모델 설정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되었다.

 

 

 기존 시장모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공간 초월의 속도 때문에, 시장에서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영역이나 역할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으며, 공동 소유나 시간적인 접근권이나 한정적인 회원으로써의 권리를 사고 파는 관계로 변하였다라고 하였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려면 상호신뢰와 공동 배분 그리고, 공동운명체라는 마인드를 공유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라고 논지를 전개하였다.

 

 

 시장 경제모델에서의 기업은 이익을 창출하고 잉여가치 중 일부를 노동자에게 지급하며, 자본을 투자한 주주들에게는 일정 수준의 배당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독식하는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마인드로 움직이지만, 협동조합은 공동출자와 1인1표제의 원칙에 입각하여서 축적된 잉여가치를 공동으로 배분하고, 그래도 남는 이익은 생산성이나 이익창출의 공로 여부와는 관계없이 일정 수준으로 재분배를 하여야 한다라는 차이가 있다라고 하였고, 이것이 현실적으로 적용되기가 쉽지 않다라고 진단하였다.

 

 

 바로 그래서, 요즈음 한창 주가를 올리는 안철수 교수님의 마인드는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님은 힐링캠프라는 인기프로그램에 출연하여서 분명히 이렇게 발언하였다.

 

 

 자신은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고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이다.

 

 

 자신이 진정 좋아서 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공정한 마인드에 입각해서 나누려고 하는 마인드에 충실하다라면, 그래서 그런 모습들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라면, 수익창출은 목적이 아닌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가라는 발언을 듣는 순간에 필자가 느낀 감동과 감탄의 정도가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분명히, 이런 마인드는 안철수 교수님의 주영역인 컴퓨터와 네트워킹적 시스템의 장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인드야말로 협동조합을 설립하거나 운영하는 기본 대전제와 정체성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중세에서 근대초기에 옛 봉건체제를 새로운 통신 수단인 전화나 무선통신이 대체하고, 금속활자 기술을 통한 인쇄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시민들에게 정보의 확대와 시대정신을 고취시킨 것처럼...

 

 

 바로 그래서, 새로운 통신과 시민들의 의식확대와 물적 기반에 대한 자유권 사유재산권과 개인의 영역인 프라이버시가 강조되고, 결국에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더욱 가속화된 시장 상거래와 정보의 교환 시민들간의 연대가 강화되면서, 결국에는 봉건 체제를 무너뜨렸듯이....

 

 

 그래서, 계급제도에 따른 고정된 소유의무와 생계에 기초한 봉건 경제모델이 사유재산과 개인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모델에 자리를 내어 준 것처럼...

 

 

 지금도 정보통신의 혁명인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더욱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고, 여러분들 각자의 생활영역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오면서, 기존의 시장과 자본주의 모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속도와 세계적 차원의 글로벌 시장이 탄생하고 무한경쟁의 체제로 들어섰다라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생각하시길....

 

 

 안철수 교수님이 생각하는 기업가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보시려면 아래의 더보기를 클릭하세요!!!

 

 

 

 



 정보통신의 발달로 전통적인 소유개념이 무료 다운로드나 불법 다운로드 혹은 기술의 도용으로 인해서 중대 위기에 봉착한 측면이 있으며, 개인의 영역이었던 사생활까지도 신용카드 사용내역이나 간단한 주민번호 조회...

 

 

 그리고, 주변에 널린 CCTV등을 통해서 언제든지 다른 모든 이들이 열람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서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성에 대한 기본 철학과 윤리 그리고 19세기부터 정교화된 시민이라는 개념까지 다시 정립하여야만 하는 역사적 분수령으로 점차 다가서는 시점에 놓인 여러분들이 5.16 쿠테타 심판을 외친다라는 것야야말로 구태이며 과거의 망령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시장도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그 모든 주체들이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도되는 정보통신의 시대이다.

 

 

 그리고 이를 추동하는 에너지는 여전히 전기이며, 이것을 만드는 1차 에너지는 화석연료라는 사실은 야권이나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협동조합 모델이 역사적 과도기에 생겨난 산물(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좀더 다룰 예정이다!!!)이며, 이 모델이 현실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차원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라는 말이다.

 

 

 과거, 노예제도를 물적 기반으로 하는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농업과 영농을 기반으로 하고 농노를 고용하거나 거느리던 봉건 체제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데 1400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와 무한경쟁을 강화하고 거의 무한대로 수렴하는 정보통신 사회가 가능하게끔 만든 석유문명 체계의 종말은 앞으로도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5.16쿠테타가 구시대적이고 민주사회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자 불행이라고 주장하지만, 문화 인류학이나 역사학적 차원에서 보자면, 일제 해방 이후에도 봉건적이고 형식적인 유교 마인드에 머무르던 한국 사회를 근대화하고 석유문명체계로의 일대전환을 맞이하게 한 절대적 국가권력이 가능하게 된 계기라는 차원에서는 분명히 다른 얘기나 진단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구현하고 생각하는 모든 정보나 마인들들을 총괄하는 정보화 사회는 석유문명의 선행이 없었다면 도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몇몇 특정 개인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여타의 정보 시스템들을 통해서, 이미 사회 구석구석까지 깔린 정보고속도로망을 장악하거나, 국가 공공기관들의 영역을 언제든지 위협할 수 있으며, 기업이 보유한 첨단기술이나 상품정보가 아주 작은 USB를 통해서 유출될 수 있는 시기에 여러분들은 살고 있다.

 

 

 과거, 전두환이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벌인 일련의 학살행위도 아날로그적인 인쇄매체인 언론을 통제하고, 물리적 공간과 시간에 제약을 받는 특정언론인들을 탄압하거나 강제 해직시키는 방법으로 정보 통제가 가능할 때나 있었던 일이지, 지금같은 정보통신 사회에서 이런 참담한 과거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라고 보시는가... (여기서도 언론통제나 미디어 장악을 말하는 이들이 있을 것인데, 조중동 종편의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인터넷의 무수한 군소방송 매체나 인터넷 뉴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늘고 있고 무한경쟁을 하는 추세에서, 언론의 독점과 통제도 과거처럼 용이하지도 않으며, 다만 정보의 질과 시스템 체계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목적의 방향성이 다를뿐인 표현의 과도한 자유의 시대가 왔다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불통이라면서, 온갖 의제와 비판꺼리를 만들어서 성토를 하지만, 사실 노무현 참여정부도 그렇게 잘하지 못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억지 춘향식의 여론몰이가 가능한 이유가 정보통신의 폐해라고 한다면...

 

 

 그리고, 개인의 신상털기와 반대의견을 가진 이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과 근거없는 루머확산에 매진한다라면....

 

 

 상호신뢰와 공동운명체에 입각한 네트워크 시스템은 그 근간부터 무너져 내릴 것이다.

 

 

SNS, 희망의 전주곡이 되기 위한 조건

SNS,표현의 자유와 전기세 인상의 함수관계

 

 

 그리고, 그에 기반한 경제 모델들도 점차 활력을 상실할 것이며(세상 어느 누가 무료로 정보를 제공받는데 피나는 노력과 혁신을 하고 창조를 하려고 하겠는가...), 네트워크 경제 모델의 장점만을 활용한 거대 기업들의 득세와 자본주의적 마인드의 위력 앞에서 무기력감과 정치적 배신감에 몸부림치며, 이런 이해불가의 상황을 여전히 정부와 과거사 탓으로 돌리면서, 민족주의(조선족이나 중국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이나 증오심 등등) 나 보호무역주의 강화(한미FTA 나 여타의 자유무역거래에 대한 대책없는 거부감)라든가, 네트워크 시스템의 장점이 아닌 폐해만을 보이는 시민사회나 정부의 나약함과 우유부단함을 거부하고, 보다 강력한 권력과 리더쉽을 구상하는 지도자를 요구하는 역사적 반동의 단계로 나가게 된다는 말이다.

 

 

 

 과연, 여러분들이 말하는 5.16 쿠테타 청산이 과거와 미래의 대결구도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구현하는 정보화 사회의 혜택들이 석유문명체계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기원이나 본격적인 발전의 동력이 5.16 쿠테타에서 비롯되었다라는 보다 거시적인 역사관의 부재에서 오는 것인지는 여러분들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정보가 국경과 기업과 사회간 장벽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상태에서, 여전히 과거사를 들먹이며 독재의 망령과 막연한 공포감에 호소하는 친노 문재인 이해찬같은 친노 정치세력들이 정보통신기술의 정수인 스마트폰이나 모바일을 통한 경선을 한다라는 이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아이러니...

 

 

 안철수 교수님의 기업 운영 마인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천박하고 알팍한 정치계산 속의 협동조합을 외치는 문재인같은 이들이 행여나 이런 역사적 시대적 정신을 파악하고 이를 추동할 리더쉽을 보이겠는가 말이다!!!...

 

 

 석유문명 체계가 우리네 사회 생활 전반을 장악하고 거의 중독수준에 이른 현단계가 종말을 맞이하려면 아직도 수십년 어쩌면 백년 이상이 소요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전에 기상이변이나 환경적 급변으로 인한...혹은 신종전염병이나 인구통계학상의 대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욱 크지만 말이다...여기에는 화석연료 자원확보를 위한 전쟁도 포함된다...) 

 

 

 그 사이의 긴장관계를 담보하고 시대를 바라보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여력이 없을만큼, 지금 한국 사회는 부동산 버블과 재정위기 민간부문의 침체 가계부채의 한계상황,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라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되지도 않는 과거사 타령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미국도 노예해방과 여성들의 참정권 양성평등과 인권의 개선까지 140여년이 소요되었다. 이것은 다른 선진국들도 모두 거쳐가는 석유문명의 체계와 근대 산업화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다만, 한국 사회는 그들과는 달리 50년만에 이 과정을 기적적으로 완수하였기에, 각 세대간 시대간 인물들이 현존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속한 시대의 정신에 머물러 있고, 이 모두를 통합할 거시적 역사관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고,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진보와 보수 모두가 각자 나름의 일리가 있고, 어느 한 쪽도 일방적으로 잘했다라거나 잘못했다라고 말할 수 없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라는 것이다.

 

 

 지금은 중도 보수나 보수 세력들의 프레임이 먹힐 수 밖에 없는 중대한 위기국면이 틀림없다. 현재의 상황을 조절하거나 과속화시키는 부분은 그 누구의 영역도 아닌 역사의 도도한 진행...다시 말해서, 신의 영역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복잡다단한 각국의 이해관계를 생각해보라...석유문명체계를 둘러싼 모든 사회적 영역의 담론이나 규칙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역사의 분수령이나 임계수치에 이르려면 생각지 못한 계기나 사건들이 촉발되어야 하고, 이에 대해 대응할 준비가 된 사회제반계층이 존재해야만 문명의 형태가 발전하거나 바뀐다라는 의미이다...)  

 

 

 안철수 교수님도 박근혜도 다 대통령감으로써 합당할 수 있다라는 열린 마인드가 없이는 사회의 통합이나 급변하는 역사의 분수령에 놓인 한국이라는 국가를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다.

 

 

 안철수 교수님이 펴 낸 안철수의 생각이 시중 대형서점과 온라인 인터넷 서점에서 이미 매진되었다는 사실에서, 안철수 교수님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망만을 보는 기성 언론들과 정치권 그리고 여타의 일반 국민들과는 달리...

 

 

 필자는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을 통해서 전통적 시장 경제의 출판물이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네트워크 경제의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수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면의 현실과 역사의 법칙을 관찰하거나 파악하고, 바로 이것이 안철수의 시대적 마인드가 놓인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상징한다라고 보는 것이다....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