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판2009. 8. 25. 02:16
 요즈음 한국의 인터넷을 살펴보니,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베라라는 독일 여성이 자신의 고국인 독일에서 펴낸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Schlaflos in Seoul)"이라는 책의 내용중 일부가 한국을 폄훼했다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사뭇 뜨거워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그녀가 대부분 맞는 말을 했다라고 얘기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녀가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였던 평소 이미지와는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라고 분개하는 중인데요...


  솔직히 필자는 그녀가 쓴 책을 직접 보지 못해서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 여부는 최종적으로 내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베라라는 독일 여성이 펴낸 책에서 한국을 폄훼했다라고 지적받는 몇몇 구절과 표현들을 둘러싸고... 

  이중적(?!) 행태를 보인 베라도 정말 문제이지만, 그보다 우선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책임을 지라는 둥 천박한 언론의 탓이라는 둥 하는 블로거들의 의견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한국 네티즌들의 분분한 반응에 대해서 문득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미수다 베라 논란은 결국 한국 사회내 시민의식의 성숙도 문제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그래서 점차 어른이 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필자는 개인적으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한 일들과 여러 말들...다시 말해 자신의 언행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된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어른이라면 자신에 대한 외부의 평가나 비판보다는, 우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는 마음 속 비판에 좀더 치중하고 냉정해져야 하며, 그럼으로써 잘못된 부분들에 대한 자기 반성과 처절한 점검을 통해 두번다시 똑같은 습관 혹은 행동이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의 어른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정말로 민주주의적이고 성숙한 공론과 의식이 굳게 자리잡은 사회가 된다라고 판단하는데요...

  이런 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독일 여성 베라가 언급했다는 지나친(?!) 한국 폄훼 발언이나, 그 반대로 좀더 원문에 가깝게 번역했다라는 내용의 우열과 사실 여부를 가리기에 앞서, 그녀가 던진 대부분의 지적이나 비판은 한국 사회에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것이 아닙니까?...

  여기에서 필자도 과거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로 번역을 조금 해 본 경험이 있었는데, 원문과 한국어에서 풍기는 뉘앙스 자체가 판이하거나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에 있어서의 해석은 번역가 자신의 주관적인 단어나 어휘의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판단하며, 다만 얼마만큼 원문에 가까운 번역을 했느냐라는 문제로 귀결되는데... 


  만약 베라가 독일에서 펴낸 책에서 언급한 내용 자체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문제가 되고 추후에 진위 여부를 가린 뒤에라도 내용상에 시정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겠지만, 엄연한 사실을 바탕으로 쓴 책의 표현 방식을 일일히 문제삼는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내 구성원들이 유아기적 단계의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강력하게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필자가 항상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것중에 하나는, 왜 한국 사회는 외국이나 외국인 개개인의 평가나 비판에 대해 그렇게 목을 메느냐는 겁니다. 

  필자가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한국이라는 국가는 아예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서방의 주요 언론이나 방송에서 한국을 비중있게 다루는 일은 극히 예외에 속합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한국 소식을 다루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북한 핵 미사일과 관계되어서 언급되거나 국회에서의 극한 몸싸움같은 매우 수치스럽고 부정적인 모습으로써만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로 이들에게 한국은 그저 그런 주변국가중에 하나일뿐인데, 무슨 사회적 국가적 이미지를 그렇게 관리한다고 이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어떤 이가 혼자서 극심한 나르시즘에 빠져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대단하고 똑똑하다라고 믿고 살았는데, 어느날 누군가가 그런 자신에게 너 별로 대단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문제점들을 아주 솔직담백하게 지적하니까, 거의 패닉 상태에 가까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외국의 누군가가 한국에 대해서 좋게 말했다고 하면, 그 외국인의 신분이나 사실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일단 반색을 하고 내심 좋아하며, 그 반대로 한국과 한국인들을 조금 거칠게(?!) 비판했다라는 소식이 들리면, 해당 외국인에게 온갖 욕과 비난이 무성한 지금의 한국 사회가 과연 성숙한 민주 시민들이 넘치는 그런 사회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합니까?...

  막말로 툭 까놓고 얘기해서, 베라라는 독일 여성이 독일을 대표해서 온 대사나 정부의 주요 사절단인가요? 아님 독일 사회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문인이나 언론계 인물인가요? 그것도 아님 다른 분야에서라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인가요?

  지금까지 필자가 파악하기로는 베라라는 여성은 그저 평범한 독일 여성이고,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 생활하면서 겪은 얘기들을 독일인의 시각에서 기술했던 것뿐인듯 한데, 이것조차도 용납이 안되고 일종의 사회적 국가적 평가라고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조급증과 사회 구성원들의 지나친 과민함과 여론등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를 좋게만 봐 달라는 세살배기 어린애들의 투정이나 서구 유럽에 대한 지독컴플렉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베라의 이중성을 탓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이야말로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이 아닐까
  여기까지 필자의 포스팅을 본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베라가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을 칭찬하고 좋은 말만 하더니만, 뒤로는 독일어로 된 책을 통해 한국을 비하하고 시쳇말로 깠다라고 내심 분개하면서, 그녀가 지적한 사안들의 사실 관계 여부를 일단 떠나 이중인격에 대해 실망하고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부분에서도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인터넷의 미수다 베라 논란이 사뭇 시끄러워서, 개인적 호기심에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몇 편 살펴 본 필자의 개인적 소감으로는,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현한 외국 여성들이 그래도 상당히 온건하고 매우 식적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짚었다라고 느꼈습니다.

  정말로 솔직하고 혹독하게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 혹은 지적하고 싶어도 지금같은 비정상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아는 외국인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얼굴과 실명이 공공연히 드러나는 지상파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얘기를 할 수도, 또한 프로그램의 존속 차원에서라도 그런 솔직한 비판들을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게끔 편집하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기존 관행이며 공중파 방송의 엄연한 현실이 아닙니까...  

  게다가, 비단 베라같은 외국인이 아니라도 한국 사회에서 인기 연예인이나 사회적 명사들이 한국 사회를 비판하기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힘든지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공공연한 사실이 아니던가요... 

  따라서 베라가 지적한 사안들이 일종의 불편한 진실에 해당한다라면...비록 책의 내용에서 비치는 거친(?!) 표현에 대해 여러모로 아쉬운 마음과 일종의 배신감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감정적 반응보다는 우선 독일 여성 베라의 비판이나 지적중에서 받아들일 부분은 겸허히 받아 들이고, 그런 측면들은 조금씩 고쳐야 한다라는 자성의 목소리나 생각을 보여야 하는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몇몇 네티즌들이 전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한국 사회에 대해 솔직하게 지적이나 비판을 한 그녀를 비난하며 극구 부정하
려는 모습들로 일관하는 것은, 마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연
상시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보이거나 생각이 되면, 그것은 영혼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상주의적 패러다임에 매몰된 사회 구성원들 그 누구도 감히 벌거벗은 임금님의 어이없는 행차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을 못하고 가식적으로 환호하고 열광하지만, 사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는 한 어린 아이의 솔직함에 의해서 사람들의 위선과 불편한 진실은 만천하에 드러나 버리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거벗은 임금
님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함으로써, 정말로 한심하고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한사코 거부한 체 끝까지 어이없는 행차를 계속하였다라는 슬픈 동화같은 얘기를 한국 사회는 현실 속에서 너무도 자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S: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필자가 바라보기에,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는 미수다 베라 논란은 문제의 본질을 철저히 외면한체 여전히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하는데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천박한 언론이나 미수다라는 프로그램 자체에 책임을 묻는 것이 과연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보는 것이냐라는 얘기이며, 
필자가 판단하기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말입니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근거없는 소문과 남의 뒷담화 까기를 즐기는
 가쉽 문화에 매우 관대하고 취약하면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평가나 비판에 대해서는 매우 과민하게 관심을 두고 결코 너그럽지 못한 이중성을 너무 자주 보이니까, 그걸 이용하려는 천박한 상업적 언론인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이며 미수다라는 프로그램도 편성되고 공공연하게 방송이 되어 왔었던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진짜 본질은 한국 사회 대중들의 근거없는 루머 혹은 가쉽에 대한 천박한 반응과 외부 비판에 대해 지나치게 완고하고 대책이 없는 맹목적인 집단주의, 국가주의 코드라고 필자는 생각하며,

  그런 측면에서, 이제는 
구태의연한 집단주의와 흑백논리에 찌든 국가주의 코드일랑 휴지통에다가 조용히 갖다 버리시고, 왠만해서는 타인의 개인적 사생활이나 인격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며, 근거없는 소문이나 뒷담화가 아닌 사실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는 개인주의적 마인드로 일대 전환을 꾀하는 것이, 이런 소모적 논란을 근본적으로 잠재우는 해결책이라고 필자는 감히 판단하는입니다.

  그리고, 독일 여성 베라가 자신의 모국어로 쓴 책을 직접 사서 읽어 보지도 않았으면서도, 인터넷에 떠도는 몇몇 말들과 허접한 기사들만 굳게 믿고, 그녀를 맹비난하고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악플을 남긴 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조용히 반성을 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녀에게 공식적으로 사과의 말들을 남기기를 바랍니다.

  또한, 필자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과연 몇 권이나 팔릴지도 극히 의문스럽지만, 베라가 독일에서 펴낸 책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망치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이 시각 그녀에게 가해지는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반응이야말로 독일 여성 베라에게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더 강하게 심어주는 단초이고, 비단 그녀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대내외적으로도 한국과 한국인들의 이미지를 아주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게끔 만든다는 사실을 여러분 모두가 제발 깨우치기를 부탁드리며,

  마지막으로, 이런 천박한 일반 대중들의 심리를 교묘히 자극하고 선동한 해당 언론사와 기자들은, 일벌백계 내지는 본보기 차원에서라도 강력한 광고 거부 내지는 불매 운동을 전개해야만 하며, 해당 기사(이런 것도 신문 기사라고 할 수 있을까?!)를 쓰도록 사주한 편집장과 기자들은 공식적인 사과 기사를 작성하도록 압력을 넣음과 함께, 아예 편집장이나 기자라는 신분이나 직함까지도 박탈해 버려야 한다라고 필자는 감히 주장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8. 14. 01:18
  어제 날짜로 다음 뷰에 올라온 노무현 이 양반, 이렇게 까발려도 되나? 라는 포스팅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포스팅의 성격은 모 블로거가 노무현과 관련된 책을 읽고 느낀 일종의 감상평이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후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진실성있는 정치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라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모아지는 듯 했습니다.

  우선 오늘의 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필자는 해당 포스팅을 작성한 블로거와 사뭇 친한 블로거 관계이며, 평소 그가 작성한 독서 관련 포스팅에 정말로 많이 공감하는 사람중에 한 명이지만, 이번만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노무현과 MB에 대한 개인적 추억과 첫인상의 느낌
  블로깅을 하면서 여태껏 이런 말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었지만, 필자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인 MB를 개인적으로 모두 만나 본 경험이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종로구 출마 시절, 모 감자탕 집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차 답례한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 보았으며,  MB는 서울시장 선거 당시, 필자가 모 여행사 대표와 함께 지방에 출장을 다녀 온 후 시내 유명 모 호텔 사우나를 찾아서 여독을 푸는 와중에서, 전부터 그곳을 즐겨찾던 MB와 우연히 만난 것이었습니다.


  노무현은 당시에도 참 소탈하고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인간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필자는 그런 그의 서민적인 모습에서 암울하게만 여겨졌던 한국 정치의 한가닥 희망을 보았으며, 5공청문회와 3당야합에 반대한 그의 담대한 모습에 반했었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특히나 인간적이고 서민적 이미지의 노무현을 직접 본 그날 이후로 노무현의 맹렬한 지지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었습니다. 실제로 노무현을 처음 만났었던 감자탕 집이라는 배경도 참 서민적인 냄새가 흐르지 않습니까...

  반면에, MB는 당시 김민석 민주당 후보와 서울 시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마당에 잠시 만나게 되었었는데, 필자가 사우나를 하면서 그의 몸매를 살짝 훑어보니 역시 소문대로(?!) 몸 관리와 건강 관리는 정말로 철저하구나라는 느낌과 함께, 현대 건설사 회장 출신의 정치인답게 매우 강하고 사뭇 거만하다라는 첫인상과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시내 모 유명 호텔 사우나를 마친 후, 탈의실에서 같이 옷을 입으며 옆 자리에 있던 모 여행사 대표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그의 성향을 능히 짐작하게 했더랬습니다...

  당시 민주당의 김민석 서울시장 후보는 MB의 청계천 공약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없다라고 주장하던 때였었는데, " 아이고...이게 누구십니까? 요즘 대내외적으로 상당히 바쁘시죠? 상대당 후보가 청계천 문제로 계속 공세를 취하는 모양이던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라는 모 여행사 대표의 짤막한 인사와 질문에 대해, 그가 짐짓 자신만만하고 태연하게 웃으며 던진 한 마디 대답은 "새파랗게 어리고 젊은 놈이 뭘 몰라서...나는 별로 상관 안한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시내 유명 호텔의 사우나라는 장소는, 간단하게 사우나를 한번 하려면 당시 한화로 2만원은 주어야 했기에, 벌써 서민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곳이었고, 게다가 당시 서울시장 출마를 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사우나 밖에 남자 수행원들만 3~4명에다가, 필자가 나중에 옷을 입고 나가다 보니까 상당한 수준의 외모를 가진 여성 전문 코디네이터가 MB이 무슨 방송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면서 그의 얼굴에 화장까지 시켜주더군요...  필자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역시 한나라당 의원답다라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모 호텔 사우나를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여기에서 과거 개인적 사연들을 줄줄히 털어 놓으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면, 어떤 인물이던간에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다 인간적 장점이 있고 나름의 매력이 있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적 면모와 정책 수행상의 모습은 차원 자체가 분명히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그런 인물이 매우 중요한 자리에 발탁되거나 노무현, MB처럼 나라 전체를 책임져야 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과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에는, 인간적인 측면만을 자꾸 되새기고 고려한다라는 것은 상당한 어폐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만 해도 필자는 노무현이나 MB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때에는 인간적으로 소탈하고 서민적인 행보를 보여왔었던 노무현에게 절대적으로 믿음과 신뢰를 보냈으며, MB에 대해서는 과거 현대 건설 회장 시절의 숱한 노동자 탄압 사례와 국회의원 선거부정으로 인해 국회의원직을 내놓은 전례등이 자꾸 뇌리에 떠올라서, 필자와 같이 사우나를 했던 모 여행사 대표가 그에게 몇 마디 인사와 질문을 던지고 헤어질 때까지, 단 한마디도 그와 인사라든가 말을 나누지 않고 그냥 듣고만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바로 MB가 서울 시장에 당선된 그 해 연말,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필자는 노무현 후보가 누누히 말하던 부동산 거품 제거와 정치권의 부정 비리 해소 그리고 과거사 청산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더랬습니다. 그래서, 집권 초반 그가 어이없는 탄핵을 당하게 되자 매일 같이 촛불을 들고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야합과 작태에 대해서 크게 분노하였으며, 탄핵 와중에 진행된 제 1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 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자, 드디어 노무현의 이상을 실현할 강력한 개혁 동인이 생겼다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가슴 뿌듯해하던 한때가 기억납니다.
 
  하지만, 그가 탄핵이 기각된 이후 대통령의 자리로 돌아온 그 날 이후로 벌인 일들은 필자가 평소 노무현을 통해서 그려 왔었던 서민들의 사회라는 바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들뿐이었습니다...
 
 
  ...필자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대한 극호감과 좋은 첫인상에 대한 기억들은 완전히 접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나, 한미FTA협정 체결 당시 분신자살을 하였었던, 고 허세욱 씨에 대해 단 한마디도 유감 표명이 없었다라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생각하면 할수록 인간 노무현의 소위 진실성에 대한 강한 의구심과 함께, 가슴 한켠에서 분노를 치밀게 하는 동기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만약 현정부 아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곳 인터넷은 또다시 성토 한마당의 난리가 났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필자는 지금 다음의 어떤 블로거들처럼 이상만 고집하고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꽉막힌 꼴통이 아닙니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과 그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시장 질서와 한반도의 초라한 국가적 위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깊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한미FTA같은 시장 개방화 조치가 어쩔 수 없는 측면과 현실을 담고 있다라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가 없는 노무현 참여정부식 한미FTA 에는 결코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하는 식으로의 대책없는 한미FTA 협정이 발효되면 농축산업과 의약품같은 국민들의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사회 경제적 비용을 미국에게 고스란히 맡기는 꼴이 될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에, 또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경제적으로도 별로 남는 것이 없겠다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걸 막으려면 실효성있는 장기적 국가 정책들과 대안들이 착실하게 마련되면서 협상을 추진했어야만 하는데, 당시 농축산업은 아예 포기를 하려는 모양새가 아니었습니까...

  또한, 한미FTA의 4대선결조건 명목으로 스크린 쿼터제를 폐지시킴으로써, 당시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한국 영화 시장과 관련 업계 전반을 불안하게 만들고 투자 여건을 열악하게 함으로써 불황의 늪으로 내 던지는 하나의 단초를 확실히 마련하셨지요. 게다가, 광우병 파동으로 수입이 전면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도 재개하면서 뼈 있는 부위까지 국내에 들어 오려고 했었고, 그 와중에 숱한 검역상 문제가 계속해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 단체에 쇠고기 검역 단계 축소에 대한 일체의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았던 비서민적인 정부가 바로 노무현 참여정부입니다.



노무현이 정말로 진실한 정치인이라면 이렇게 말해야만 했었다
  당시 필자는 노무현의 정책 추진 과정을 지켜 보면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은 이제 시간문제일뿐이라는 절망적 판단에 한숨만 몰아 쉬었었으며, 결국 정권이 바뀌고 난 후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이 현실화되자 사람들이 그때에서야 촛불을 들고 일어나는 것을 보며 더더욱 절망했었으며, 그 와중에 노무현이 봉하 마을에서 한 말....그러니까 "나는 도장은 찍지 않았다..."라는 얘기를 뉴스를 통해서 전해듣는 순간, 진실로 이를 갈았었던 사람이 바로 필자입니다. 이건 도박에 비유하자면, 정말로 전문적인 수준의 타짜와 도박판을 벌이다가 이제 마지막 카드만 뒤집으면 판돈을 모두 날릴 상황에서, 다음 사람에게 피박을 쓰게 될 도박판을 맡기고서 자신은 손 털고 떠난 격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검역과정 축소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 노무현이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에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의 물꼬를 모조리 터넣고 내려온 상황이었기에, MB이 그렇게 무모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인데, 노무현이 정말로 솔직한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닙니까?...

  내가 대통령 재임 당시 쇠고기 검역 조건을 파격적으로 축소시켰고, 그것은 한미 FTA협정의 선결조건이었기 때문이었으며, 그것이 빌미가 되어 결국 오늘날에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다라고 국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사과를 하면서, 그렇지만 나는 최소한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거부를 했다라고 말해야 진짜 진실하고 정직한 모습의 노무현이 아니었을까요?...

  또한, 작년 하반기에 이르러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 사태로 대변되는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한미FTA 재협상 얘기를 꺼냈었는데, 차라리 대통령 재임 시절 내가 크게 오판했었던 대표적 사안이 바로 한미FTA협정이라고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필자와 같은 강력한 비판자들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또한, MB의 대선 압승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정말로 솔직하게(!!!) 참여정부의 부동산 실정등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했고, 결국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왔으니까 여러분 모두 패배를 겸허히 수용하고,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서 보다 나은 대안과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어 달라는 절절한 부탁은 왜 하지 않은 것일까요?...

  노무현 참여정부가 일부 재벌들이나 배를 가득 채운 경상 수지 흑자라든가, 여러 통계나 수치상이 아닌 진짜 실질적인 경제 정책을 잘해서 서민들이 진실로 가계 살림이 나아졌더라면, 한국 국민들의 대책이 없을만큼 지나친 도덕성과 당위성 추구 성향으로 볼때, MB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그런 인물이었는데,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되게끔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자신임을 왜 허심탄회하고 공공연하게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필자는 지금의 한국이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면서, 그 원인과 함께 가장 중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 그의 이중성(?!) 때문에, 지금도 숱한 그의 지지자들은 마치 그들의 우상인 노무현처럼 일관성이라곤 전혀 없는 행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과거 친일 청산을 목 놓아 부르짖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고작 3~4년 전의 부동산 폭등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도 모두 부정하고 어처구니없는 미화를 시도하지 않나, 김대중 국민의 정부 당시 독도의 경제 수역권에 관련해서 한일어업협정이 얼마나 골 때리게 맺어졌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과 분노는 어디에도 없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협상에 대한 책임을 현정부에게만 묻다보니, 미국산 쇠고기가 왜 그렇게 졸속으로 수입되었는지에 대한 보다 큰 본질과 구조적인 원인 규명은 모두 사라졌고, 오로지 현정부에 대한 불신과 반대 논리를 세우는 것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는 형국이니 이거 정말 한심한 노릇이 아닙니까?


  이렇게 노무현이 실패한 원인에 대한 반성은 하나도 없이 그저 한나라당의 방해와 조중동의 선동 때문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다 보니까, 국민들의 실질적인 삶에 영향을 미칠 은행법은 그냥 놓아두고,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 미디어 법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대중들의 여론은 호의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 것으로 보이니 정말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최근들어 한나라당이나 뉴라이트 그리고 조중동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환 위중 소식에 대해 막말이 나온다고 다들 맹성토하시지만, 그런 자신들은 현직 대통령인 MB에 대해 더한 욕설과 비방도 서슴치 않고 있지 않습니까?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근거없는 비방과 욕설로 인터넷이 도배가 되는 것에 항시 눈쌀을 찌푸렸었는데, 이제 그 막가는 짓을 노무현을 지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라는 양반들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으니 정말 지독한 아이러니이자 일대 가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같은 식의 욕설과 비방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논리적이고 강력한 비판이 가능하고 합리적인 의견 수렴을 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는 하지 않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시길 바라며, 이 말을 끝으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고자 합니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정이 참 많은 민족이라는 얘기를 들어 왔었고, 실제로 필자가 미국에서 생활해 보니 그 말은 진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끈끈한 우정과 만남이 이루어지고 삶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보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감성과 함께, 소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하듯이, 자신이 지지하거나 개인적으로 친한 이들만을 마치 제 식구처럼 챙기려는 마인드가, 공적 영역인 정치나 시장 경제 부분에까지 지나치게 작용하면, 일대 사회적 혼란과 함께 소모적인 제로섬 게임만 남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작년에 미국에서도 대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탄생했습니다. 당시, 필자와 가까운 사이였던 에드라는 미국인은 골수 공화당원으로써 선거기간 내내 오바마를 말만 앞서는 허풍쟁이에다가 사회주의자라고 맹비난하던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백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결국 메케인 공화당 후보의 패배로 끝나자 나이 80이 넘은 이 백인 노인네가 꺼낸 첫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관련 포스팅 :
어느 미국인의 나이를 뛰어넘는 로맨스

  바로 부시가 하도 정치를 뭐같이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깨끗하게 공화당의 패배를 인정하고 민주당 오바마 당선자가 미국을 잘 이끌어주기를 바란다라는 소회를 털어놓는 것을 보면서, 왜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될 수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으며,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부분에서의 감정 구분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하는 미국인들의 철저한 개인주의적 마인드에 대해, 정말로 큰 부러움과 시샘을 느낌과 동시에, 필자의 조국인 한국의 암울한 정치 사회적 상황이 오버랩되었다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제는 노무현의 진실성 내지는 인간적 면모 타령들은 제발 좀 그만하시고, 그가 대통령이라는 공적 지위에 있었을 때 행하였던 일련의 정책들과 실패의 원인에 대해 좀더 치밀하고 객관적으로 보려는 마음과 정신의 여유를 찾기를 간절히 주문하면서,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치렵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5. 14. 06:16
  여러분은 저작권하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특정 개인의 창작물이나 저작을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무단 도용과 그로 인한 법적 제재같은 것들을 연상하시나요? 글쓴이가 짐작하건데, 많은 분들이 저작권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하지만, 또다른 많은 분들은 지금도 여전히 저작권이란 말이 갖는 의미와 개념이 내심 못마땅하고 불편하시거나 혼란스럽고 이해가 안되는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필자는 그런 여러분들의 생각이 분명히 일리가 있고 저작권이란 개념 자체가 불편하고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역사와 배경을 짚어보면서 깨달았으며, 저작권 문제가 단지 법조계 인사(일부 법무법인)나 국회의원같은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만 관여할만큼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간략하게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인쇄 기술의 발전과 저작권 개념의 탄생
 누군가 여러분에게 인류 역사상 인간의 삶과 의식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님들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겠지만, 글쓴이는 인쇄 기술의 발달로 인해 구두, 필사 문화가 사라진 것을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혹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필자에게 물어 본다면, 인쇄 문화의 발전이 사유 재산과 시장이라는 개념과 시민 사회의 형성에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함으로써, 오늘 날 우리를 둘러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형성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사회에 필수 요소인 돈을 금속이 아닌 종이 화폐로 대량으로 찍어 낼 수 있게 됨으로써, 시장의 외연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되었고, 표준화된 지도의 대량 보급으로 육로와 해로를 통한 여행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무역과 교역의 범위도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장의 영역이 점차 복잡해지고 커지면서 거래되는 물품의 종류도 점차 늘어남에 따라, 상품에 대한 균일한 가격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도표라든가 증권, 수표, 약속 어음같은 것들이 속속 출현하게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이것들은 모두 인쇄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전에는 소수에 의해 독점되었던 필사본으로 된 서적들이 인쇄 기술로 인해 대량으로 찍혀 나오면서, 각 나라마다 가진 고유 언어로 된 책을 보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뚜렷한 국민적 정체성이 생기면서 민족주의가 발달하고 국민 국가가 형성되는데에도 인쇄는 일등공신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의 주제인 저작권의 개념도 인쇄 문화의 발전으로 인해서 생겨 났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나 중세 시대에도 이름이 알려진 저자들의 서적이 몇몇 있기는 하였지만, 그 수는 필사본이나 구두 문학으로 전해지는 얘기들에 비하면 극히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이 종이에다가 일일히 손으로 베껴쓰는 필사본은 그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보급량이 한정될 수 밖에 없었고, 해당 서적의 저자도 대부분 익명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한 권의 필사본 속에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집필에 관여했기에, 특정 저자라든가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인쇄의 발달은 저작권이란 개념을 점차 크게 강화시킵니다. 자기가 쓴 글이나 말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개인주의적 발상과 근대 자본주의의 대표적 사조인 사유재산의 개념이 접목되면서, 특정 개인이 생각과 말을 소유할 수 있고, 그것을 알고 싶거나 듣고 싶은 사람들은 일종의 댓가를 지불하거나 치뤄야만 한다는 사고는 그 전의 역사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은 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누군가가 읽어 주는 필사본을 듣거나,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특정 화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써 존재했다면, 인쇄에 의해 대량으로 출판된 서적은 개개인이 조용히 자신의 방에 앉아 생각을 하면서 읽어보게 만듦으로써 개인의 사생활이란 영역도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근대 시민 사회의 형성과 개인이라는 개념을 확립하는데도 크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쇄술은 근대 자본주의와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그 와중에 성격이 크게 강화되었던 저작권이란 개념은 근대의 사고와 철학을 반영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참고 자료: 저작권

컴퓨터, 인터넷의 발전과 하이퍼 텍스트의 출현, 그리고 저작권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쇄 기술에 이어서 현대인의 생활 형태와 의식을 크게 바꾼 두번째 역사적 계기는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이라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정보가 교환되는 방식은 기존의 통신 체계나 인쇄 서적으로 전파되는 방식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의 정보 전달은 기존의 통신이나 서적의 보급에 의한 순차적이고 직선적이며 단선적인 방식과는 사뭇 다른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순서라든가 인과 관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 그 자리에 연속적이고 통합된 정보의 창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오프라인 상의 주체와 객체라는 것이 접속점과 네트워크로 변환되었으며, 모든 유저가 동시 접속이 가능해지면서, 정보는 순식간에 수정되거나 쇄신되는 역동적 관계의 그물망이 끊임없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터넷은 기존의 인쇄 기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인쇄물은 일정한 수의 사실이나 정보를 정해진 페이지나 권 수가 한정된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폐쇄적으로 제시했다면, 사이버 공간이라는 정보의 창에서는 모든 정보에 대해 각주나 출전이 무한히 확대되거나 수정됨으로써, 새로운 상부 혹은 하부 텍스트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른바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로 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책이 단편적이고 경계선이 분명했었다면, 하이퍼 텍스트는 접속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듯 연결 지향적이며 정확하게 경계선을 정하거나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책은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책은 어떻게든 결말이 있겠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부단히 수정되고 변화하기에 결론이 나기 힘들며 오직 과정만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책은 누군가가 구입했다가 시간이 날때마다 다시 훑어볼 수 있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순간순간 수정, 변환되기에 접속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마련인 겁니다.

  문제는 이런 하이퍼 텍스트의 특성이 기존 인쇄 문화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였던 저작권의 개념에 심각한 의문과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에는 특정 서적의 저자가 누구누구의 소유라는 발상이 별다른 무리없이 적용이 가능했었는데, 하이퍼 텍스트상에서는 이 개념이 너무나 막연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위 문단에서 간략하게 하이퍼 텍스트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하이퍼 텍스트란 것 자체가 피아를 구분짓는 배타성과 개인적 독립성보다는 포괄성과 연결성에 그 바탕과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특정 텍스트의 어디까지가 이 사람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저 사람의 것인지를 나누기가 너무나 힘들고, 이런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굳이 관념적으로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지금의 인터넷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전 세계 수 많은 유저들이 가히 천문학적인 수에 해당하는 개별적인 접속점들을 통해서 어떤 네트워크나 자료에 접근한 다음, 해당 자료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이 가진 정보와 재조합하거나 편집한 뒤, 다른 네트워크나 경로를 통해서 간단하고도 신속하게 전파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식으로 모든 종류의 자료가 한 사람의 창조적 노력이나 노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경과 오프 라인을 초월한 광범위한 시공간인 사이버 스페이스 상에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의 손을 무수히 거친 후에 형성된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면, 과연 이게 누구의 소유인지를 가리기가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일까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프랑스의 이론 문학가인 Roland Barthes는 하이퍼 텍스트란 결국 저자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저작권의 개념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넷 통신은, 기존에 책을 대하던 방식인 읽고 쓰는 성찰적이고 개개인만의 개별적인 과정들을 공개되고 순식간에 변화하는 사이버 공간 속에 연결시켰기 때문에, 창조적인 저작의 존재를 보장하는데 필수적이었던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오프 라인의 틀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크게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커뮤니케이션과 뉴미디어 과정을 지도하고, 가상 현실에 대해 세계적으로 아주 저명한 학자인 Michael Heim도 텍스트가 특정 개인의 저작이라는 의식이 희박해지면 자연스럽게 창조 활동을 하는 저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회적 흐름이나 추세가 강해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저작권 개념이 혼란스러운 이유와 우리가 해야 할 일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쇄 문화의 발달과 함께 생겨난 저작권이란 개념 속에는 근대 자본주의의 사유재산 개념과 시장의 원리가 녹아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그리고 그로 인해 생성된 하이퍼 텍스트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인 개념이기에, 지금도 논란과 혼돈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며, 인터넷 접속자나 개인 홈페이지, 블로그 등을 운용하는 모든 유저들에게 확연한 지침이나 의식이 쉽사리 확립될 수 없는 철학적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오늘 포스팅의 주제입니다.
 
 또한 이렇게 근대 자본주의와 시장의 원리를 반영한 구시대적인 사고와 개념을 토대로 생긴 저작권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나 토론을 일부 법조계 인사나 국회의원같은 특정 인사들에게만 맡겨 놓고, 모두가 무기력하게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법조계 인사, 포털 사이트 관계자, 네트워크 시스템 개발자, 인터넷 보안 전문가, 시민 단체, 시민 패널,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모여서 저작권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토론이나 논의와 함께, 수시로 급변하는 사이버 공간과 하이퍼 텍스트에 보다 적합한 새로운 지침과 윤리강령을 자체적으로 확립해 가자는 대대적인 여론 조성과 노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글쓴이는 판단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 참고 도서겸 소스
*Roland Barthes [Image, Music, Text] New York, Noonday Press
*Michael Heim [Electric Language: A Philosophical Study of Word Processing]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S: 필자가 오늘의 포스팅을 올리기 전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작권과 관련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실로 엄청난 양의 자료와 정보가 뜨더군요. 그 중에서 민노씨네 님이 정리한 자료가 내용면이나 사고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고 , 해당 자료를 작성한 이의 노고가 너무나 역력히 보이는 포스팅이어서 링크를 시키니까, 방문하셔서 한번쯤 참고하시고 저작권에 대한 사유와 개념의 폭을 넓히시길 바랍니다.

※ 저작권 관련 참고 사이트: http://minoci.net/52

 흥미로운 사유 한 토막
  여러분은 왜 유대인들이 지금의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에는 여러가지 답이 가능하겠지만 글쓴이는 오늘의 주제인 저작권과 하이퍼 텍스트와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만큼 그 연원이나 뿌리가 깊은 분야가 없으며, 그런 특정 종교의 교리나 규범을 담은 경전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사고,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마련입니다. 유대인들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만의 종교인 유대교가 있고 , 탈무드라는 경전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탈무드의 원전을 살펴보면 그 구조가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라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시나요...
  사해 주변 미슈나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탈무드 원전(위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본문이 가운데에 위치하고 그 주변 상하 좌우로 각 주와 해설이 붙어 있는데, 고문서학자들과 과학자들의 고증과 분석에 의하면, 그 내용이 수시로 고쳐지거나 계속 첨가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탈무드는 여타의 종교 경전과는 달리 끝 페이지가 백지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또다른 정보와 사유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그것을 재해석해서(!!!) 자신들만의 지혜로 만들고 보존하기 위한 그들만의 독특한 사고와 문화를 반영한다라는 기록이 경전 속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로 지난 2000여년간 나라를 잃고 방황을 할때, 유대인들만의 정체성과 사고를 간직하고 후손에게 전달하는 주요한 매개체였던 무수한 탈무드 사본들도 위의 원전과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점을 세세히 살피고 현대의 사이버 공간과 하이퍼 텍스트라는 개념을 대비시켜 생각해보면, 이미 유대인들은 수 천년전에 오늘 날의 하이퍼 텍스트와 흡사한 사고를 가졌었다는 말이며, 바로 이런 의식과 문화가 그들이 정보를 다루거나 처리하는데에 있어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게 했고, 바로 그런 점이 지금의 세계에서 유대인들을 최고의 자리에 가게 만든 원동력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잠시 가졌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