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평론2012. 7. 1. 19:15

 지난 포스팅에서 이명박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절차상 부당함만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왜곡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선동성 포스팅과 논제들에 대해서, 한일간 협정과 어업협정을 비롯한 독도 문제의 역사적 기원을 짚었었다.

 

 오늘은 그에 못지 않은 주제로써, 소위 "입진보들의 도그마"와도 같은 구호와 논리를 비판하려고 하는데, 다름아닌 "외환위기를 둘러싼 책임론과 재벌규제의 방향"에 대한 부분이다.

 

 

 

외환위기는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에 의한 결과물이다? 천만에!!!

 지난 1997년 12월 이후, 한국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비정규직"이라는 낯설었던 단어가 어느덧 우리네 일상에서 흔히 보여지는 단어가 되었으며, 명예 퇴직이나 조기 퇴직 혹은 "구조조정"이나 "노동의 유연화"라는 말들을 경제나 경영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까지도 입에 올릴만큼, 우리네 생활 전반에서 외환위기가 끼친 영향과 피해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다.

 

 

 1997년 연말에 "IMF외환위기"가 도래하고, 우리네 사회의 곳곳에서 그로 인한 "피해와 희생"이 뒤따르게 되자, 그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대기업 혹은 재벌위주의 경제 시스템이 문제였다"(?!)라는 얘기들이 "확고한 논리나 구호로써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줄기차게 박정희식 경제모델을 폄하하고, 과거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의문과 반기를 들어온 범진보 세력이나 입진보들의 지지를 받는 야당 정치인들의 입장에서야, 이런 식의 비난이 내심으로는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경제 시스템 전반을 모두 부정하게 되면, 보수로 대변되는 세력들을 한국 사회 내에서 축출하거나 그 영향력을 감퇴시킬 수 있으니까, 일견 이것이 일반 국민들이나 국가에도 큰 보탬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연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보지만, 아무리 따져 보아도 이건 정말 아니라고 판단되는데, 이제부터 이 "종교적 도그마"와도 같은 "재벌 책임론""박정희식 경제 모델이 문제(?!)"였다라는 논리의 진짜 문제점과 폐해를 살펴 보겠다.

 

 

 흔히, 외환위기가 오게 된 이유는 한국이 특정 기업...다시 말해서 대기업이나 특정 재벌들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경제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정치권이 선거자금이나 정치자금 목적으로 재벌들에게 특혜를 남발하면서 생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의 폐해라고 지적을 한다. (물론 이런 부분들도 외환위기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그러나, 이것이 주된 요인이 결코 아니었다라는 얘기이다!!!)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국가와 은행 그리고 재벌로 연결되는 소위 3각편대가 한국을 외환위기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주범(?!)이었다라는 말인데, 사실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라는 것이다.

 

 

 1992년부터 서서히 가시화된 세계화라는 구호는 한국 사회에 여러가지로 작용하였었는데, 대부분 한국의 후진적인 사회 시스템이나 정치 체계 혹은 경제 시스템을 개혁하는 방편으로써,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모델로 삼아...다시 말해서, 소위 "외부 충격론을 이용하여 일대개혁을 하겠다라는 방향"이었다라고 필자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필자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한국은 1992년 연말에서야 박정희로 대변되었던 군부 통치가 아닌 야당 경력의 김영삼이란 인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그가 대통령직에 오른 이후로 사회 경제 내의 각종 규제 철폐와 외국에 대한 개방을 줄기차게 추진하였다라는 점에서 그렇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이 지난 1960년대 초반부터 유지하였었던 국가중심 혹은 통제의 계획경제나 사회 시스템을 일종의 구태로 간주하고, 그 반대로 가는 것만이 진정한 민주화이며 개혁이라고 여겼다라는 말이며, 이 흐름에 대해서 당시 일반국민들이나 야당의 그 어떤 인사도 문제점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다.

 

 

 문제는, 그런 식의 개방이 우리 경제의 혈관이자 핏줄에 해당하는 금융 방면에서도 맹렬하게 진행되었다는데 위험성과 심각성이 숨어 있었는데, 바로 "단기외채 차입에 따른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민간인들에 대한 대출 등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덕분에 당시 해외여행 자유화라는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전까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였다라는 부분들...소위 "민주화와 개방"이라는 이름아래 당시 김영삼 정부나 야당은 이 문제에 대해서 아예 심각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였다라는 것이 1997년 외환위기의 진짜 원인이었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설픈 민주화와 개방이 외화를 통한 단기차입에 불을 질렀고, 이것이 외환위기를 불러서 다시 한국 정부와 사회 전체를 옥죄고 한국 경제를 망가뜨림으로써, 중산층은 서서히 사라지고 빈부의 격차와 노동의 유연화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되었다라는 것인데...거두절미하고 아래 도표를 보시길 바란다.   

 

 

 

 

 1994년부터 한국에 들어오는 단기외채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당시, 이런 현상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랜 군부통치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에 기인한 민주화 세력들과 일반 국민들의 개혁요구가 맞물려졌고, 여기에 소위 세계화라고 지칭되는 외부 세계로의 개방화, 그리고 한국경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그 규모가 커지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주문이 일어남으로써, OECD회원국 가입에까지 이른 주변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문제는, 개방도 좋고 민주화도 다 좋은데, 과거 군부독재로 대변되는 국가중심적인 경제시스템을 극도로 혐오한 나머지, 어설프게 개방을 서둘렀고, 정부의 간섭과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문제라고 하여서 이를 방치하였는데, 그런 부문 중에 가장 뼈아픈 것이 바로 외환위기를 부추긴 단기외채 차입이었다라는 말이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이전까지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외국으로부터 외화를 들여와서 한은으로 대변되는 시중은 행들을 통해서, 재벌로 대변되는 대기업들에 계획경제적인 관점에서 대출을 해 주었으며, 이러한 자금을 바탕으로 대기업들은 공격적인 경영과 기업확장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한국 경제로 발전하였던 것인데, 이걸 하루 아침에 바꾼답시고 정부의 역할을 사실상 방기하였다라는 얘기이다.

 

 

 그러면서도, 당시까지 유지되었었던 외화에 대한 고정환율제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한국과 외국의 환차익이나 한국내 고금리를 기피한 외환 거래가 성행할 만반의 조건들을...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주화 세력들이 발벗고 도와준 셈이었다라는 이 "지독한 아이러니"...

 

 

 

 외환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거부하면서도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고, 정부가 산업경제를 추동하기 위한 자금을 국내적으로 충당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저축률을 고무하기 위해 유지하였었던 "고금리를 그대로 놓아둔 결과", 기업들이 정부나 시중은행을 통해서 들여온 외화를 자금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들이 나서서 외국은행이나 투자자를 유치하였었고, 그런 식으로 빌린 싼 이자의 단기 외화를 통해서, 과거 박정희 시절로 대변되었던 공격적 경영과 무리한 설비투자를 지속했던 것이 "진짜 위기의 원인"이었다라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였던 당시 시중은행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순수 국내자본으로써 기업들의 자금을 충당하자라는 취지의 고금리가 일반국민들의 예금율을 당시 서방선진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였겠지만 (박정희식 개발모델의 선순환적인 성장과 발전의 강점), 이를 통해서 "예대마진을 추구하기에는 적절치 못했던 것"이다.

 

 

 자연히 시중은행을 비롯한 종금사나 상호신용금고같은 금융권의 움직임도 저렴한 단기외채를 빌려와서, 국내의 높은 이자율에 기댄 서민대출을 무분별하게 남발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라는 말이다. 이 와중에 김영삼 정부나 야당 혹은 시민사회나 민주화 세력들은 민주화와 개방이라는 미명아래 이런 식의 변화를 외려 권장하거나 크게 고무시켰으며, 국제수준에 걸맞는 엄격한 회계기준이나 금융의 개방에 따른 세계적 수준의 금융인재 양성과 인프라 구축에 대한 부분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시를 복기하자면....만약 1992년 이후에, 한국 사회에서 정부가 나서서 은행권의 단기 외채로 대변되는 외화 차입이라든가 고금리에 기초한 예대마진을 외화로 충당하는 것을 문제삼았다면, 당장 특정재벌 옹호 내지는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이라는 민주세력들의 목소리에 집중포화를 받을 판이었다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재벌의 소유지분""오너 일가의 황제경영"을 문제삼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생각하시는가...이미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통한 문어발식 경영구조를 막겠다라는 취지의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과거1986년에 도입되었다가, 1997년 외환위기로 외국 자본에 의한 공격적인 기업인수와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화두가 되자 1999년에 폐지되었다라는 사실들을 알고나 계시는지...

 

 

 외려, 당시 그런 식으로 어설픈 민주화와 개방을 하면서 재벌로 대변되었던 대기업들에 대한 규제만 형식적으로 강조하다 보니까, 대기업들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한국 정부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외국은행이나 투자자들을 통해서 외화를 차입하는 관행에 가속을 붙였다라고 보여지지 않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당시에는 "금융시장의 개방과 재벌에 대한 개혁이 일종의 동일어처럼 보였다"라는 사실...박정희식 경제모델로 대변되던 국가중심의 철저하고 계획적인 외환 통제와 자금배분을 통한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경영을 관치금융 정경유착과 재벌의 독과점 체제라고 규정하고 도맷급으로 매도하면서, 과도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민주화에 역행하며 잘못된 과거의 관행을 연장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회적 풍토가 1992년에서 1997년 외환위기까지 한국 사회 전반에 은연중에 퍼져 있었다라는 불편한 진실들...

 

 

노무현 참여정부의 외환위기에 대한 성찰부족, 구체적 정책과 비전의 부재,입진보 세력들의 안이한 인식과 무능함

 필자가 위에서 지적한 사항에 대해서 이 포스팅을 보시는 당신은 김영삼 정부 당시의 민주화 세력들로 대변되던 입진보들의 민주화 운동과 그 방향의 문제점이 어떤 식의 뜻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해서 동의하시겠는가?

 

 이제 이야기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당장의 곤경을 해소하기 위해서 외환위기의 근본적 원인과 대안을 고민할 여력이 없었던 김대중 정부가 아닌 노무현 참여정부의 외환위기에 대한 인식과 그를 따르던 친노 세력 혹은 입진보들의 안이한 인식과 문제점들에 대해서 짚어 보겠다. 

 

 우선, 아래의 도표를 보시길 바란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실질적으로 출범한 2003년부터 증권을 통한 투자가 급증하였다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필자가 위에서 밝혔듯이, 한국 사회를 외환위기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근본원인이 박정희식 모델과 재벌들에게 있다고 보고, 외환위기부터 노무현 참여정부 출범전까지의 기간동안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나 비전을 갖지 않은 체, IMF가 제시하는 구조조정 방안에 따라서 기업들을 구조조정하고 금융시장의 문호를 그야말로 활짝 열어 버렸으며, 외국의 투자는 무조건 받아야만 한다라는 절박감이 너무나 지나쳐서, 이에 대한 규제나 감시기능은 아예 접어버린 결과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론스타"에 매각하였다가 그들이 차익을 실현하고 "먹튀 논란"에 빠진 지금의 상황을 만든 근본원인이었다라는 얘기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존 보수세력뿐만이 아니라...소위 좌파나 진보로 규정되거나 이를 표방하는 입진보들도 항상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라고 강변하였지만, 그들이 보여주거나 가리키는 얘기들은 당시 상황과 국면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대증요법이나 임시방편이의 성격이었지,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나 대안의 차원이 아니었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더욱 골을 때리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서 그토록 피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외채의 비중이 다시 늘었다라는 점이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임기를 수행하였던 2006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까지 단기외채의 비중이 늘어난 것을 어떻게 보아야만 할까...

 

 물론...한국의 입진보들도 1997년의 외환위기를 통해 외환보유고에 대비해서 지나친 외화의 단기차입은 엄청난 리스크와 실패를 가져온다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때만 되면 환율방어 차원에서라도 외환보유고에 신경을 쓰며, 이는 언론에서도 자주 보여지는 일종의 관행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시중에 자리를 잡은 은행들을 통한 외화의 단기 차입들...특히, 외국계 은행을 통한 단기외채의 차입과 함께, 시중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율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고찰과 대안 부재 혹은 정책 부재의 결과가 바로 이런 모습을 보인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한국 주식시장과 시중은행에 대한 외국인들의 지분율이 점점 커지고, 이를 통해서 국내 경제와 기업들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는 와중에서도...우리 사회와 정치권 그리고 입진보로 대변되는 시민사회는 오로지 재벌규제와 공정거래만을 외치고 있었으니...위기가 또 다시 찾아와도 똑같은 형태로 피를 보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결국,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명박 정부 초기에 들어서야 외화의 단기차입이 1997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문제를 야기하고 그 이면의 핵심이라는 얘기들이 공론화되었고, 이것이 정책으로써 반영되기 시작하였다라는 이 "불편하고 서글픈 진실"들을 어떻게 보아야만 할까...

 

 진짜 무능하고 대책이 없으며, 오로지 일반국민들의 막연하고 해묵은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꾸준히 자극하고, 시기에 따라서 터지는 민감한 각종 정치 사회 이슈에 따른 일시적 여론과 대중들의 반응에 말초적으로 호응하거나 맞대응하며, 입으로만 하는 정책 구호와 서비스에 몰두한 이들이 과연 누구란 말이던가...  



 


 

 

 

 

 바로 그래서, 위기는 항상...혹은 다시 반복되곤 하는데, 다시 위의 도표를 보시길 바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증권투자와 기타 투자라는 명목으로 증가하는 저 수치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는가를 말이다.

 

 이미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지고 정책적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는 한국경제에 위기가 찾아오면, 우리사회 내의 재벌이나 대기업들이 직접적인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그 누군가가 재미를 톡톡히 본다라는 불편한 진실은 아예 눈감아버리고서, 여전히 재벌개혁 내지는 막연한 구호로 포장된 경제민주화라는 허상을 쫓고 있는 입진보들과 친노로 대변되는 민통당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미, 한국경제를 추동하였던 국가중심의 계획경제 시스템은 그 잘난 민주화와 개방이라는 미명아래 어처구니없는 외환위기를 불렀었고, 그로 인해 우리 경제의 혈관인 시중은행의 지분 중 외국인들의 비중이 60%를 넘은지가 이미 오래이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지분율도 이미 40~50%에 육박하는데도,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기업퍼주기나 특혜 혹은 기업오너의 황제경영이 문제라며, 대통령의 불통과 재벌일가의 내부지분율 얘기나 줄기차게 꺼내고 있으며, 전체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수치로 환산해서 그 비중이 기업오너와 일가의 내부지분율보다는 낮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전개하면, 그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지금, 입진보들과 포퓰리즘적 정책을 구사하는 친노 민통당 때문에 사람들이 뭔가를 크게 헷갈리고 있는데, 대기업 혹은 재벌의 "내부지분율"은 말 그대로 "고정적인 주식" 내지는 "붙박이 주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기업들의 거래에 대한 감시나 공정거래 강화를 통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오너와 그 일가 혹은 내부지분율을 낮추는 "출총제"를 통해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얘기이다. 

 

 오히려 지금 재벌일가의 내부지분율에 가려서...언론으로부터 도외시되고 있는 외국인들이 전체 주식 사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닥 크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전체 상장기업에 투자를 골고루 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50대 기업이나 30대 혹은 10대 대기업에만 집중적으로 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착시현상일 따름이지, 이미 한국 경제를 재벌이 독점하거나 추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에는 모두가 눈을 감은 체, 그 해묵은 과거사로 인한 반감들, 반기업 정서와 잘못된 처방...그리고 알량한 금융지식과 정치적 도그마에 가까운 대기업 때리기는 정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라는 말이다!!!

 

 물론, 대기업이나 재벌들이 지나치게 문어발 확장을 했었던 과거와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목격한 사례들도 분명히 있었고, 지금 이 시각에도 무분별하게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었던 사업들까지 접수함으로써, 일반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이나 여론의 빈축과 함께 해묵은 과거사가 데자뷰를 일으키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문제의 원인과 위기는 다른 방향에서 커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대한 과거의 기억과 감정만을 앞세워서, 합리적인 토론과 공론을 반영하지 못하게 하는 지금의 입진보 세력들과 친노 민통당은 더 문제라는 말이다!!!

 

 이미, 시중은행과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지주사의 외국인 지분이 최고 70%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은행만은 재벌들의 소유가 되게 할 수 없다라는 어쭙잖은 금산분리 원칙만을 고수하면서, 그나마 유지되는 재벌들의 순환출자 구조를 출총제 부활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거나 무너뜨리면, 그것이 온전히 우리네 중소기업들과 일반 국민들의 살림으로 연결된다라는 단순 공식에 빠진 입진보 세력들...

 

 대기업 혹은 재벌 오너들의 불공정 관행과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일체의 행위에 대한 투명한 감시 체계와 법적인 제제는 더욱 강화시켜야만 하겠지만, 그 이면에 자리잡은 자금의 흐름 왜곡과 진짜 위기의 원인들은 계속 방치하는 여야 정치권의 무능함과 안이함...그리고 이를 지적하지 않는 시민사회와 논객들은 모두 다 중도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기성정치권에 일체의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는 일반국민들의 이름으로써 처벌하거나 개혁을 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제...이 기나긴 포스팅의 결론을 내려야만 하겠는데, 과거 우리 사회에서 박정희로 대변되는 국가중심의 경제체제와 대기업 혹은 재벌들이 보였던 각종 부도덕한 관행과 정격유착에 대한 비리 때문에...민주화와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뻘짓"들을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해서 충실히 수행하였고, 한국사회 내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짚어보지 않는 관계로 인해서, 위기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그 파장이나 범위를 예측 혹은 가늠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라는 현실인식을 가지시길 권하는 바이며, 해묵은 과거사의 감정들일랑 이제는 제발 접으시고 진짜 한국 사회의 안정과 일반 국민들의 생활과 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진정한 진보나 보수, 진짜 서민을 위한 여당 혹은 야당으로 환골탈태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또한, 이에 못지 않게 과거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으로 몸집을 키운 대기업과 재벌 오너...그리고, 그의 일가들도 사회적 책임을 실천으로 보이시고, 기업간 내부거래와 불공정관행같은 구태의연한 경영에만 몰두하면서도 정부의 시장개입을 적극 반대하거나, 사회적 합의와 공론을 계속 분열시키거나 좌절시키는 "치킨게임"들은 이제는 접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이미, 우리들이 어찌할 수 없을만큼 외국 자본에 의한 국내 경제의 잠식은 음울한 공상이 아닌 현실이며, 이에 대해서 과거의 관행과 불건전한 기업행태와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는 대기업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며, 이는 또다시 국가의 성장 잠재력과 일반국민들의 미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 우리네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정파나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가 아닌 진짜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 관점에서 풀어 보려거나 해결하려는 정치인과 기업인...그리고 오피니언 리더와 방송인 언론인들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과연 당신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책임과 비전 혹은 청사진이나 대안을 가지고 계시는가...단순히 재벌규제를 통한 경제민주화가 아닌 우리네 경제의 진정한 자주권 회복(눈에 보이는 한일관계나 미국에 대한 종속이라고 반이명박 정부만을 외치는 정치 구호가 아닌!!!)과 함께...과거 "아시아의 기적"으로 대변되었었던 "박정희식 개발모델의 영광"을 다시 재현 혹은 "업그레이드"하여서, 이제는 그 과실을 우리 국민들이 다함께 공유하는 "사회적 대타협의 길"이 과연 무엇일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시길 부탁 드린다...

 

 

재벌개혁의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하나? (☜새누리당과 민통당의 재벌에 대한 시각, 개혁방향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

"국민연금 주주권행사 의무화법" 발의, 재계"연금사회주의 우려"



 

 

                                                                                                 ⓒ기획재정부

 

 



*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역사

  • 1986.12 출총제 도입(자산 4천억원 이상 대기업 대상)
  • 1998.2  폐지
  • 1999.12 재도입
  • 2002.4  적용대상기업 변경(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 2004.12 제도개편(예외인정 범위확대)
  • 2007.4  적용대상 축소(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 2009.3  폐지


 

 

 



※참고 논문 및 도서 목록


Paul Krugman (The Myth of the Asian Miracle)


Linda Lim (Who's "Model" Failed? Implication of the Asian Economic Crisis)

 

부키, 개혁의 덫

부키, 쾌도난마 한국경제

21세기 북스,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창비,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인가 

김광수 경제연구소 편저,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동아시아 외환위기 분석 P15~54)

 

 

 

 

 

 

 

 P.S: 대책없는 입진보들의 재벌개혁과 허접한 논리를 적극적으로 편집하고 베스트에 올리는 다음 뷰도 일반 국민들이나 우리 경제의 앞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라고 본다.

 

지금 이 시각, 인터넷을 통해 다음 뷰를 잠시 검색해보니까, 100대 기업 자산이 정부마저 앞질렀다면서, 이게 모두 이명박 정부 탓이란다...^^

 

 

 하지만, 이것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성장하고 규모를 키운 이른바 재벌로 대변되는 100대 기업을 전부 이명박 정부 들어서 특혜를 주어서 키웠다라는 말인가...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는 삼성으로 대변되는 재벌이나 대기업이 전혀 특혜를 받지 못하였거나, 공정거래법상의 엄청난 감시와 제재를 받기는 하였었던가? ^^

 

 진짜 코미디같은 일들이...거대 포털사이트와 여기에 붙어서 트래픽을 유도하는 뭐같은 시사 블로거들과 함께, 사회 여론과 나라의 앞날을 아주 공개적으로 말아 먹는구나...이런 식으로 자꾸 진영논리를 편다면,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의 삼성과의 밀월관계와 그 대책없음 내지는 무능함을 제대로 파헤치는 포스팅을 올려 드리는 길 밖에 없겠지...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12. 2. 10. 06:29
 총선 정국을 맞아 여야 모두가 여러 선심성 공약이나 실효성이 의심되는 복지에 대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요즈음, 야당이 총선 핵심이슈로써 한미FTA를 문제삼으며 한미FTA폐기를 내용으로 하는 서한을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에 보냈다라는 뉴스를 보았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야당의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라고 판단되어서 몇자 적어보기로 했다.

                                                                       ⓒ구글 이미지

한미FTA에 대한 불편한 기억들
 2007년 한미FTA협정에 대한 뉴스를 접하였을 당시부터, 필자는 계속해서 이 문제를 꾸준히 지켜보았었다. 그리고, 노무현 참여정부나 지금의 이명박 정부나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어쩌면 이렇게 공통점이 있는지 사뭇 놀라게 되는데, 이를테면 이런 내용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시작한 한미FTA가 문제였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 내용이나 실상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거나 충분한 토론과 합의라는 절차를 무시한 체, 일사천리로 몇몇 관료들과 참여정부 내각의 인사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같은 극소수의 인물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진행되었다라는 것이 지금의 사회 정치적 혼란을 키운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더욱, 문제였던 부분은 당시 농민들의 집회를 막기 위해서 고속도로에서부터 농민들의 상경을 원천봉쇄하였을뿐만 아니라 그들이 한푼두푼 모아서 만들었던 한미FTA반대 광고조차 방송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최악의 조치였다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당시에는 놀랍게도...사법부에서도 그리고 입법부인 국회 내에서도 지금과 같은 격렬한 반대나 시위는 찾아보기 어려웠으며(구 민주노동당만은 제외라고 생각한다...), 한결같이 한미FTA의 정당성과 경제 효과에 대한 분석들에 매달렸었다. 

 지금은 통합진보당으로 당명이 바뀌었지만, 과거 민주노동당 당원이자 택시운전기사였었던 허세욱 씨의 분신자살에 대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단 한마디의 유감표명도 하지 않았었다. 당시, 필자는 그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에서 커다란 실망과 분노를 느껴야만 했었는데, 진실로 한미FTA가 구국의 결단이고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라면, 그래서 허세욱 씨를 비롯한 진보 인사들과 농민들이 그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라면, 허세욱 씨의 죽음에 대한 유감과 애도 정도는 하였어야 마땅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말로 이상하게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가 과거에 보여주었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강경한 모습만을 고수하였던 것이다. 물론, 진보 인사들과 농민들이 벌인 시위에 대해 물대포를 쏘고 과잉진압을 해서 한미FTA반대시위를 무산시킨 비하인드 스토리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문제가 없느냐면 그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한미FTA재협상은 없다라고 거듭 공식입장을 밝혔으나 정작 미국의 요구대로 한미FTA재협상을 추진하였을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우리들에게 조금 유리하게(?!) 협상이 진행되었다라고 알려진 자동차 부문에서 또다른 양보를 함으로써, 한미FTA에 대한 반대 여론을 환기시키고 그 타당성을 더욱 의심케하는 상황을 자초한 것은 온전히 지금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최강국이고 우리네 근현대사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지금도 꾸준히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역대 정부들이라면, 그리고 그만큼의 미국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민족 의식을 고민하는 정치인들이었다면,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은 대단히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와 대책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것이 원칙이고 정상적인 모습일 터인데, 노무현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무슨 준비를 하였고, 사회적 공론 수렴과 합의는 어떻게 이끌었다는 말인가?...

지금 시점에서 야당의 한미FTA폐기 서한이 갖는 의미(?!)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더더욱 필자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글머리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총선을 앞두고 벌이는 야당의 정치적 행태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지금의 미국도 대선 정국이다. 그리고, 미국도 경제 위기와 극복방안에 대한 화두가 최대 핵심 이슈중 하나라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FTA협정을 비준하고 그것을 자신의 재임기간의 경제적 성과 중 하나로 언급하는 일이 있었고, 심지어는 미국의 자동차가 한국의 거리에서 더 많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야당의 서한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말인가?

 지난 4년간 한미FTA찬성 혹은 반대라는 입장만을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만 거듭한 우리들과는 달리, 미국은 철저한 의견 수렴과 분석을 바탕으로 한미FTA재협상과 비준에까지 이른 것인데, 이제 와서 그걸...한미FTA협정을 먼저 제안한 우리가 폐기한다라면 그 뒤에 오는 외교적 파장이나 마찰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발언과 정치 행태를 하면서 국민들의 지지와 표를 끌어모을 생각을 하는지 심히 우려스럽고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정말로, 한미FTA에 대해서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그리고 미국과의 외교 관계나 한반도의 급변하는 여러 정세를 고려한다라면 한미FTA폐기라는 허황된(?!) 얘기보다는...우선은, 피해를 보는 계층에 대한 철저한 대책과 경쟁력있는 분야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준비와 비전을 가지고서 이 사안에 임하면서, 최대한 우리들에게 이롭게 한미FTA재협상을 이끌어내도록 하는 것이 정말로 책임있는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일 것인데, 이게 지금 무엇을 하자라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정말로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미FTA의 ISD조항이 문제라며 그것을 재협상하라고 거리 시위를 벌이더니만, 이제는 한미FTA전반에 걸친 모든 사항들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면서, 총선 핵심 이슈로 삼겠다라는 야당의 정치 행태에 무슨 진정성과 비전을 기대할지 필자는 심히 의문스럽다.(대선까지 염두에 두고서 벌이는 그 복잡한 정치공학적 계산들을 여기서 일일히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런 와중에서 실질적인 피해를 보는 농민들같은 계층의 분노나 국민들의 원초적 반미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의 정치 외교 경제 문제를 국내용(?!) 이슈로 만드는 자기모순적인 정치구태는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다.)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 시작한 한미FTA와 지금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한 한미FTA의 내용들은 자동차 부문의 몇몇 추가 합의사항을 제외하면 동일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인 것처럼 주장을 거듭하면서 과거 자신들의 발언과 정치적 입장을 180도로 바꾸는 정치 행태에는 신물이 나는데, 한번 아래의 발언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어떤 주장과 생각을 하실지 궁금해서 올려본다.

 2007년 2월, 당시 노무현 참여정부의 국무총리였으며 지금은 통합민주당의 대표가 된 한명숙 씨가 " 한미FTA는 개방을 통해 우리 경제체제를 한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핵심과제로 높이 평가한다" 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던 것을 잘 상기해 보시길 바란다.

 왜 지금에 와서는 5년 전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한미FTA에 대해서 이토록 말과 정치적 입장이 바뀌었는지에 대해서 먼저 입장표명부터 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필자는 한미FTA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지난 5년간 공론을 수렴하고 재협상에서부터 비준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미래의 한반도 정세와 비전에 대한 전략을 수립한 지금 시점까지도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하며 시간을 낭비한 우리네 한심한 사정을 곰곰히 생각하면, 그런 미국을 상대로 선뜻 한미FTA를 반대한다거나 폐기하자라는 말을 할 수 없겠다라는 암담한 심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입장인 것이다.
 
 하물며, 이런 일개 평범한 비판자인 필자같은 사람도 이 사안을 여러모로 고려하면 그런 무책임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는 것인데, 지금의 야당은 자신들이 집권하면 이 복잡하고 난해한 정치
외교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것처럼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서, 필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권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할 수 없으며 자연스럽게 제3의 대안 세력이나 안철수 교수님같은 인물의 정치 참여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P.S: 필자가 다음 뷰를 살펴보니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자발적 모임인 노사모와 지금의 안철수 교수님을 지지한다는 자발적 모임인 나철수를 비교하며, 노사모는 진실로 시민들의 모임이었지만 나철수는 특정 엘리트가 정치적 목적으로 만든 모임이라는 식의 논지를 전개하였고, 이에 대해 상당한 수의 분들이 동조하시는 것으로 보여서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구글이미지

 한번 잘 생각하시길 바란다. 노사모가 순수한 자발적 모임이었고, 그런 시작을 가진 노무현과 지금의 안철수를 비교하는 논리대로 가면, 필자가 그동안 거듭 강조했던 이런 비판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올 것이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나름의 소신과 원칙, 도덕적 측면의 우월함은 있었지만, 그것만큼의 구체적 전략과 비전의 부재로 인해 사안마다 수구보수세력의 반대에 부딪혀서, 부동산 문제라든가 한미FTA같은 엄청난 정치 경제적 실정을 남기고 말았다라는 비판 말이다.

 ...대체 언제까지 도덕적 순수함과 순결함, 순수한 시민단체 모임을 주도로 한 대안 세력을 얘기할 것인가? 그렇게 해서 집권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결말을 눈으로 보고도 여전히 느끼거나 생각하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만으로 정치를 하려니 그 시절의 추억이나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라는 것인가?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구태라는 생각은 전혀 안하고 있는 것인가?...

 2002년의 경제 정치 국제 정세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 이 시점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고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진짜 인재들이 더욱 많이 모여야만 한다. 물론, 여기서 인재라는 말이 특정 엘리트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안철수 교수님같은 인물이나 혹은 제3의 대안 세력과 함께 정치적 비전이나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필자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패를 보면서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집권 이전에 정말로 치밀하고 철저한 정책 로드맵과 비전을 수립하고 정권을 인수하여야만 한다라고 말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진실로 국민들을 위해서 이 나라를 책임지려는 마음이 있다면, 주변에 관련 정책이나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나 지식을 가진 이들을 모으고 사전준비를 충분히 하여야만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노무현의 노사모보다 안철수의 나철수라는 자발적 모임은 훨씬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정치권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련도 희망도 없는 사람이지만, 냉정하게 지금의 현실을 보면 그렇다라는 말이다.  

 솔직히...그런 주장을 하는 친노세력들의 속내를 살피면 더더욱 나철수를 때리는 이유야 자명하지 않겠나 싶다... 

 필자는 지금의 한국이 겪는 여러 위기 상황이 굉장히 근본적이고 장기간에 걸쳐서 풀어야 할 중대 위기라고 보고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정부나 여당의 잘못은 이번 선거에서 심판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야를 막론하고 그 누구나 되었든간에 진짜 인재들은 모으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그런 측면에서 안철수 교수님의 자발적 팬클럽이라는 나철수의 존재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님이 정치를 하겠다라고 분명히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관계로 인해, 그리고 실질적인 정치적 지지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라는 판단 아래 친노 그룹에게 암묵적 지지를 표명한 필자이지만, 지금 한미FTA문제에 대해서 보여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아무래도 영 마땅치가 않다...

 안철수 교수님께서 하루빨리 정치적 입장표명을 명확히 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의 위기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정책이나 대책을 고민하고 신념과 비전을 공유하는 인사들(엘리트...그것도 부동산이라든가 금융과 같은 복잡한 문제의 실무 경력과 전문 지식이 있는 엘리트라면 더더욱 모여야만 한다. 그리고, 진정한 보수와 진보적 시민 단체나 젊은이들도 많이 모여야 한다. 사실 노무현 참여정부도 노사모가 주축이라지만 결국 진보적 엘리트 세력과 국민들의 지지가 없었면 출범할 수 없었듯이 말이다!!!) 을 모으고, 허황된 말이나 비전으로 국민을 현혹하거나 선동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서 진실로 국민들을 위하고 조금이라도 실질적인 정책 대안이나 위기 관리를 하시길 바라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님의 개인적 자질을 살펴볼 때, 안철수 교수님만한 대권주자도 없다라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님은 과거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었다. 흔히 경제를 살아있는 생명체에 비유하곤 하는데, 인체만큼 복잡한 기관이나 조직은 그리 많지 않다라는 측면에서, 안철수 교수님의 남다른 마인드나 식견이 기대되는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라는 캐릭터는 더욱더 대권주자로서 손색이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21세기는 IT의 시대이며, 정보와 SNS를 통한 소통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라는 캐릭터는 개인 정보 유출이나 정보화 사회가 가지는 여러 위험성에 대한 남다른 비전과 식견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거기에, 안철수 교수님은 안철수 연구소라는 기업을 운영한 CEO경력까지 가지고 계신 분이다. 지금의 경제 위기라든가  리스크에 대한 남다른 생각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거기다가, 착한 기업가였다라는 사실까지 감안해서 생각하면, 더더욱 안철수 교수님의 정치 참여를 바라게 되지만 결정은 필자의 몫이 아니니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사견이자 바램으로 이해하셨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필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권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위기 상황과 정치권의 대응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다만, 현 시점에서 조금이나마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치 세력이 총선이나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랄뿐이다. 따라서, 필자같은 사람의 주장이나 생각을 전부 분석해서 조금의 헛점이라도 발견하고(필자의 개인적 사견을 가볍게 적어놓은 글들이나 암담한 여러 현실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냉소적 반어적 글들까지 자기들 멋대로 해석해서!! ^^), 그것을 문제 삼아서 일종의 정치적 반사 이익이나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행태가 필자에게 어떠한 감흥이나 긍정적 생각을 이끌어낼 수 없다라는 점을 인식하고, 다들 조금이나마 정신적 여유를 갖고 모든 사안들을 조금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보셨으면 좋겠다... 


※ 비록 지금 시점에서 나철수가 순수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라는 비판과 함께 자진 해산을 한 모양새일지라도 일반 국민들의 기성 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함께, 그것을 대체할 제3의 정치 세력의 출현이나 보수 진보를 아우를 중도 성향의 안철수 교수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결코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필자가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나철수에 대한 시각이나 비전은 안철수 교수님을 따르는 잠재적 그룹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함을 분명히 밝혀둔다!!!!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12. 2. 5. 16:13
 요즈음, 한국 사회 내에서는 여러가지 이슈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서 과연 총선과 대선을 앞둔 흑룡의 해라는 사실을 누구나 실감케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꼼수의 비키니녀 헤프닝(?!), 한미FTA 재협상 및 폐기에 대한 해묵은(?!) 논쟁, 보편적(?!) 복지를 외치며 내놓는 여야의 여러 정책(?!)이나 공약(?!)들이 과연 실효성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부분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오가거나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 모양새인데, 필자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이런 일련의 논의들의 방향뭔가가 잘못되거나 빠진 부분이 있는 듯 해서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나꼼수의 비키니녀 논쟁에서 보여지는 팬덤 문화는 진실로 진보적이고 건설적인 것인가?
 나꼼수의 일원이었던 정봉주 전 의원을 구명하자라는 시위의 한 방편으로써, 어떤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가슴에 몇 마디 문구를 새긴 영상을 올린 것이 이토록 큰 파장과 논쟁을 낳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처음에 비키니녀의 해당 영상을 접하며 보여졌던 나꼼수 맴버들의 몇몇 성적 농담과 표현들이 점점 확대되어서, 이제는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규정(?!) 및 공격,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시위 문화에 논쟁...또 다른 비키니녀들의 비호성(?!) 시위...진보 혹은 보수 언론 매체의 후진성(?!) 등과 같은 의제들이 동시에 튀어나오더니만, 급기야는 해당 시위를 처음 주도하였던 비키니녀가 나꼼수 맴버들이 자신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라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이에 나꼼수 맴버들이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내어놓은 것이 몸의 정치학과 성희롱의 성립요건(?!)이라고 하는 부분에 방점(?!)을 찍으며 상황이 더욱 복잡하게 변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의 본질에는 전혀 접근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떨쳐낼 수 가 없다.

 비키니녀가 해당 영상을 올린 당시에 보여 준 나꼼수 맴버들의 언행은 분명히 마초 진보라는 비판을 받을만한 여지가 존재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공지영을 비롯한 많은 여성들, 진중권을 비롯한 뜻있는 진보 성향 매체들의 비판은 분명히 일리가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보수 성향 매체들이 나꼼수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고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라고 필자도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꼼수 맴버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과 그들을 비호하기 위해 보여지는 비키니녀들과 지지자들의 행태에서 과연 진보라는 가치가 무엇인지 필자는 다시 한번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나꼼수 맴버들이 정녕 몸의 정치학과 새로운 시위 문화에 대한 철학과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입장이었다면, 당연히 이런 상황의 초기에 자신들의 가치관과 주장들을 거침없이 내어 놓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잘 알고 있거나 경험해서 확립된 지식들에 대해서는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연스럽고 명쾌하게 해당 사안들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지 않던가?...

 그런데, 이번의 비키니녀 논쟁에서 보여지는 나꼼수 맴버들의 행태에서 그런 거침없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평소 그들의 프로그램 진행 방식이나 스타일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에 더더욱, 필자를 곤혹스럽고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나꼼수 지지자들이 말하는 시위 문화와 몸의 정치학에 대한 부분들이다. 유럽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도 과감하게(?!) 누드 시위를 비롯한 각종 시위를 하고 있으며,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 사회적 대세를 모르는 페미니스트와 진보주의자들을 역으로 공격하는 그들의 논리와 팬덤 문화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없다.

 나꼼수를 지지한다는 분들은 유럽이나 미국이 그런 종류의 시위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회적 노력을 들였을지 진지하게 생각들이나 해 보았는가...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비호성(?!) 논리가 나오자 또다른 비키니녀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급기야 해당 영상을 올린 최초 비키니 시위녀의 공식입장은 더더욱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그렇게...또다른 비키니녀들이 시위에 동참하고 사과를 요구하지 않으면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 되고 새로운 사회적 조류에 동참하는 것인가?...해당 영상을 올렸던 비키니녀가 아주 쿨하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는 부분까지는 그런대로 이해가 가겠는데, 거기에 우리들끼리(?!) 싸워서 보수 진영에게 빌미를 제공하면 안된다라는 식의 진영 논리와 의견을 표명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 측면이 있지 않을까...? 

 나꼼수가 기존 언론들이 다루지 못한 부분들을 짚어주었고 저항 문화의 아이콘으로써 자리매김을 한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남성들이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들은 완벽한 신적 존재도 아니며, 그렇다고 진보적 가치를 완벽하게 추구하고 실현하는 사회적 선구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들에게 지나친 기대와 가치를 부여하는 마음들이 모여서 비키니녀 시위같은 헤프닝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꼼수 맴버들이 몸의 정치학을 얘기하면서, 성희롱이 아니라고 하면서 권력의 상관관계를 짚으며 나선 것은 더더욱 상황을 꼬이게 할 뿐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한국 사회 내에서 성희롱이란 것이 성립하는 기준이 권력의 상위에 있고, 그럼으로써 여성에게 어떤 식으로든 압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만의 것이라는 논리로 발전하게 되면, 그동안 수구꼴통보수라는 사람들이 보여준 일련의 성적 행위들과 잘못들 중 상당수는 면죄부(?!)를 받게 될 것인데, 과연 여성들이 그런 가치와 의견에 동조하고 따라줄 이가 얼마나 될지 심히 염려스럽다...

 지금의 여성들이 과연 자신들보다 영향력있고 높은 지위에 있는 몇몇 남성들이나 세력들에게서만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한다라고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어쨌거나, 나꼼수 비키니녀에 대한 필자 개인의 결론을 내려보자면...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적 담론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필자를 포함해서 남성들 대부분은 성적 담론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교육이나 문화적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하였다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필자는 판단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적 담론에 대해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보니까 혼란만 가중되고 논의는 안드로메다 은하계로 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나꼼수 비키니녀의 사진을 처음 접하면서, 비록 한순간이었지만 해당 문구보다는 가슴에 더 눈길이 가고 야릇한 상상도 잠시 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 보여지는 공지영과 진중권과 같은 이들의 비판과 논쟁들을 지켜보면서, 필자 자신도 모르게 남성 중심의 문화와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 매여있는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네 사회의 성적 담론이나 그것을 담보하는 문화적 수준은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반성과 생각을 하였었는데, 이게 지금 무엇을 하자라는 것인가...? 

 제대로 된 진보적 가치와 의제를 진행하는 나꼼수 맴버들이라면, 비키니녀 시위라는 헤프닝에 대해 자신들이 보였었던 경솔함을 스스럼없이 인정하고, 논의의 방향을 우리네 사회의 성적 담론 부재나 남성 중심의 문화가 만들어낸 여러 병폐들로 모아지게끔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랬더라면, 우리네 사회가 성이라는 문제들로 가리고 있었던 본질적 병폐들을 더욱 부각시키고 사회 이슈화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는데, 몸(?! 앞으로는 본의아니게도 남성이든 여성이든간에 과감한 노출성 시위를 볼 일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대예언을 남기고 싶다~~~^^)의 정치학과 함께 성희롱에 대한 나름의 기준점(?! ^^)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수구보수 세력들에게는 자신들의 행위나 사회적 관행에 대한 면죄부(?!)와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격이 되었으며, 성적 담론을 둘러싸고 문제의 본질을 짚어보고자 노력했던 몇몇 진보적 인사들이나 언론에 대한 불필요한 반발과 공격들...그리고 그릇된(?!) 팬덤 문화만 더욱 양산하고 말았다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결국 나꼼수 맴버들도 대중들의 인기로 인해 만들어진 허상같은 사회적 권력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은 아닐지...? 

                                                                      ⓒ구글 이미지

한미FTA논쟁...음모론(?!)이 판치게 되면...
 통합민주당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미FTA를 재협상하자라는 의견을 표명한다라는 뉴스를 보며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셨는가? 우리네 근현대사에 남겨진 수 많은 상처와 아픔들, 그리고 미국에 대한 반감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한미양국간 외교적 불평등성과 관련해서 개선점을 지속적으로 고민하여야만 한다라는 사회적 요구와 시대적 흐름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여러 인사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정치적 행태와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데, 필자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 이유가 있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지금은 한창 대선 선거 정국인데, 무슨 여력이 있어서 집권당도 아닌 민주당의 서한을 배려하고 챙긴다라는 말인가? 솔직히, 미국에서 차기 정권을 누가 맡든간에, 우리네 요구대로 순순히 한미FTA재협상이나 폐기를 받아줄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한국 사회 내에서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와중에, 민주당에서 뜬금없이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 서한을 보낸다라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이 내걸었던 한미FTA에 대한 공약을 환기시킴으로써 지지자들을 결속하는 한편, 잠재적 중도적 무당파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적 제스쳐가 아닌가...

 더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최근 위키리크스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공개한 한미양국간 외교 서한이나 질의 응답에 대한 사회적 루머나 반응들이다. 해당 사이트에서 공개한 자료에서 한미FTA와 관련하여, 미국이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지속하고 전략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라는 음모론적(?!)내용의 서한이 있었다라는 부분에만 100%로 집중하여서 한미FTA를 100%(?! 과연 이렇게 하는 것만이 노무현 참여정부의 과오를 청산하는 길이라고 믿는 것인가?)원점(?!)으로 돌리려고 한다라면, 그 사회적 외교적 여파와 파장을 실로 가늠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 사이트에서 공개된 내용과 비밀의 등급이 1급이 아니라는 부분에도 주목해 보시길 권한다. 미국이 우리네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끼치고 있는 영향력만 제대로 분석해도, 위키리크스의 서한은 새삼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고 놀라운 사실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새로운 사실을 확인한 것처럼 사회적 시각과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내걸었던 일련의 정치적 공약들을 실현하려고 한다라면 좀더 철저한 대비책들도 마련하면서 진행하시길 권하고 싶은데, 필자가 구체적 예를 하나 들어 주겠다.

 이것도 위키리크스라는 사이트에서 공개된 내용에서 비롯된 것인데, MB정권 말기에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비롯한 국방비용이 급증하고 있고, 여기에 한미양국간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라는 식의 논제를 전개하는 분들이 몇몇 있었다. 솔직히, 필자는 이 부분에서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든 한미FTA든간에, 이런 초대형급 외교 의제들을 차기 정권에서 진행하여서 얼마나 실질적이고 좋은 성과를 낼지를 회의하면서도 인정을 해 줄 수 밖에 없었지만, 논의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대내외적으로 여러 위기가 존재하지만 진정한 위기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일들이 음모론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몇몇 분들이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차세대 전투기 F-35를 문제삼았고, 이미 상당한 파장과 루머를 양산하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는데, 아래의 포스팅들을 잘 살펴보시고 필자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생각들을 좀더 하시기를 권하고 싶다...


 국방과 안보는 남북분단과 열강들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대단히 중요하고 민감한 정치 사회 경제적 의제이다. 따라서,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비롯한 무기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과 함께 실질적인 국방 안보 전략 수립 등으로 사회적 공론을 모아보자라는 측면으로 얘기를 진행하면 좋았을텐데... 필자가 이미 지적하고(노무현 참여정부 말기의 한미FTA를 언급하는 이유를 잘들 생각해보라!!!) 우려하였듯이(!!!) 논의의 방향이 오로지 MB정권을 친미정권이라고 매도하며(?!)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그럼으로써 전혀 진취적이도 않고 따져보면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된다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MB정권이 잘못한 부분을 엄중히 따져 심판하는 것과 반대를 위한 반대는 차원이 전혀 다르지 않겠는가...

 차기 정권에만 가면, 북한 리스크라든가 중국과 미국의 패권 전략이 180도로 바뀌기라도 한다라는 것인가? 

 논의의 방향이 F-35를 문제삼아서 현정권을 친미정권으로 규정하고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혔다라고 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을까? 한번 잘 생각해보라. 이미 위키리크스에서 여러 사안들에 대해 공개한 내용들에 대해서 미국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손놓고 있다라고 생각되시는가? 필자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아래의 기사들을 보시고, 차기 정권에 가서는 한번 제대로 하시는지 똑똑히 지켜보라고 권하고 싶어진다...



 ...무슨 얘기를 필자가 하고 싶은지 감들이 오시는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 한미FTA재협상에 대해 그토록 자신을 보이는 이유가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1급 비밀도 아닌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바로 위에서와 같이 F-35같은 사안처럼 문제들을 다룬다고 한다면, 표면적으로는 그것을 무산시키거나 저지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미국 입장에서 손해볼 것이 하나도 없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라는 얘기이다. 기존의 전투기종을 개량해서 공급한다라면(?!), 이미 실전 배치된 전투기종들을 전부 폐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불필요한 추가 비용을 지불할 공산이 있다라고 보여지지 않는가?...

 한미FTA에 대한 음모론적 시각이나 루머를 확산시키고, 그럼으로써 해묵은 반미감정을 부추겨서 표면적으로는(?!) 한미FTA재협상이나 폐기를 이끌어 낼 수도 있겠지만(?!그래놓고 자신들이 내걸었던 정치적 공약을 이행하였다라거나 노무현 참여정부의 역사적 과오를 모두 청산했노라고 선언할 가능성이 100%라고 대예언을 남기고 싶다...^^), 그동안 미국의 냉정하고 실리적인 외교 정치적 계산이 정지되거나 우리 뜻대로 따라준다라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필자가 거듭 강조하지만, 이런 측면들을 생각하여서 여러 변수(미국이 한미FTA재협상 요구에 대해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대응할 경우!!!)를 고려하고, 한미FTA(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세계 패권 아래에 놓여있는 한국의 정치 외교적 입지임에도 불구하고!!!)로 인해 발생할 피해 대책이나 대응 전략들을 먼저 고민하라고 거듭 주문하고 있는데도(차세대 전투기 F-35로 대변되는 국방 안보 측면의 소모적 논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국의 신속한(?!) 대응을 다시 한번 살피시길 간곡히 권하는 바이다!!!), 지난 4년도 모자라서 여전히 이런 모양으로만 논의를 전개하고 사회적 공론들을 소모적인 형태로 모아지게 만든다면, 바로 그런 세력이야말로 우리들 모두가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존재가 아닐까...?    

보편적 복지...실효성 논란과 관련된 불편한 진실들...
 요즈음 세계적으로 경제가 너무 어렵다보니, 사람들이 빈부의 격차라든가 사회 공공성에 대한 부분들과 관련된 요구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음을 여러분들도 뉴스나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총선이라는 시국과 맞물려서 그동안 우리네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고질적 병폐들인 재벌 개혁 문제, 사회 복지 확충에 대한 문제들을 여야 모두가 무슨 약속이라도 한듯이 일제히 쏟아내고 있는데, 이게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판단이 서지를 않는데 여러분들은 과연 어떠신가...?

 필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 그간 여러가지 주장들을 하였지만, 다시 이 문제를 길게 늘여 쓸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우선 아래의 포스팅을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필자가 위에 한미FTA 논쟁을 다루는 부분에서 대내외적으로 여러 위기가 있다라고 잠시 언급하였었는데, 이 위기가 근본적인 위기인지 아니면 표피적이고 일시적인 위기인지를 먼저 잘 짚어보고, 현재 여야가 보이는 복지 공약을 살피시길 바란다는 말이다.

 대내외적으로, 이란발 석유 문제라든가 유로존 위기... 북한 리스크 그리고 국내적으로 가계 대출 문제, 부동산 문제등등은 과연 일시적인 위기일까?...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여야를 막론하고 그 어떤 정치 세력도 근본적인 해법이나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필자는 판단하는데, 구체적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지금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타운과 관련하여서 출구전략을 쓰고 있다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장하는 내용이나 방향성이 원칙적으로는 맞다라는 것을 부정할 이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원칙적이고 이상적인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 방안이나 대책이 영 마땅치가 않아서, 많은 이들이 뉴타운 출구전략을 회의적으로 보거나 혹은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나오지 않았던가...

 뉴타운 출구전략과 관련하여서 TV토론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보수 혹은 진보 성향의 인사들 모두가 원론적인 얘기만 거듭하였지, 속시원한 해결책을 내어놓은 이를 보지 못하였다라는 부분을 잘 생각하시길 바란다. 여기에서, 더더욱 필자의 관심을 끌면서도 답답하였던 부분은 양자의 주장이 전부 일리가 있었다라는 점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지금의 위기 상황들은 대부분 뉴타운 문제처럼 결코 단순하거나 표피적인 것이 아니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MB정부와 여당의 여러 무리수와 실정들을 비판하고, 그것을 투표로써 심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야당의 공약이나 정치적 행태가 과연 이런 위기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도 꼼꼼히 따져가면서, 향후 한국 정치를 이끌 진짜 일꾼을 뽑기를 바라는 것이다.

 혹자가 한나라당의 당명 개정을 비판하고 새로운 당명인 새누리당의 허위성(?!)을 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필자는 같은 생각을 하였었다. 왜 한국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때만 되면, 그리고 정치적 이합집산을 끝내고 나면 당명을 바꾸는지 영 불만이었던 것은 필자만은 아니었음을 이번 기회에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명 개정이라는 부분을 둘러싼 논쟁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반사이익이나 챙기려는 구시태적 정치 행태에서 기성 정치인은 물론이거니와 일반인들도 쉽사리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라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있었다.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개정한다고 해서 이미 떠난 민심이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논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세계화를 운운하며 영어명을 문제삼은 것은 상당히 뜬금없다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과거, 김연아의 영어명 논쟁을 보면서도, 이건 정말 아니라고 느꼈었지만...도대체 한글로 된 표기를 온전하게 뜻을 살려서 영어로 이름을 짓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과연 우리가 받아들이는 그 느낌, 그 감정, 그 정서대로 영어권 국가의 국민들이 그 뜻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들이 우리가 지은 어떤 이름을 영어로 옮겨서 뜻을 알기 어렵다라고 해서 비웃는다면, 그건 그들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의 문제이지, 우리네 한글의 문제라든가 영어식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미국에 대해 여러 감정과 날을 세우면서도 사소한 부분에서는 그들의 기준에 맞추려고 이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세상 어느 국가가 당의 명칭을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의 기준에 맞추어 짓는다는 말이던가? 이건 당명 개정을 비판하는 차원과는 다른 문제가 아닐까?...

 ...어쨌거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당명 개정만으로 민심을 돌려보자라는 꼼수는 필자도 그리 좋게 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당명 개정 문제만을 문제삼으며 영어식 표기와 세계화까지 언급하면서 비판하는 모습도 결국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당명 개정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꼼수나 그것을 비판하려고 영어식 표기 문제를 언급한 것 모두 필자가 보기에는 억지스럽고 무리수에 가깝다라고 보여진다.

 그런 류의 비판에 영어식 표기 문제의 또 다른 이면을 짚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었는가?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문제없느냐면 그건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 답답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진실로, 그들이 변화를 추구하고 실질적인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라면 그런 정도의 비판은 무덤덤하게 넘겨야 하는 것인데, 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정말로 한심하게도, 당명 개정의 비민주성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며 자중지란을 벌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여러분들이 총선에 가서 알아서 판단하고 심판하시길 바라는 바이다. 

결단과 선택의 시기일수록 조급함과 극단성은 자제해야...
 이제 여러 얘기들의 결론을 말하겠다. 나꼼수 비키니녀 논쟁에서 보여지듯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성적 담론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필자는 지적하였다. 따라서, 이 부분을 고민하고 구체적인 사회 전반의 문제를 짚어보는 차원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총선을 앞두고 상대방을 때려서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심산으로 이 문제를 다루려는 무리들이 나서게 되면, 별로 관심을 두고 싶지 않고 언급조차 하기 싫은 강용석같은 인물들까지 언급하며 이 문제의 촛점을 물타기하는 상황이 벌어지니까 하는 얘기이다. 솔직히, 그렇게 문제있는 사람을 왜 자꾸 언급하면서 관심을 두는지 필자는 그게 더 이해가 안된다...

  한미FTA논쟁이든 F-35로 촉발된 국방관련의제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간에, 정말로 국익에 보탬이 되고 한미양국간 외교 관계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위험성과 극단성으로 가는 논의의 방향은 우리 모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정부가 잘못하여서 그것을 심판하고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민주 시민의 권리이겠으나, 정부에 대한 반감이 지나쳐서 모든 사안을 의심의 눈으로만 보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의 논리를 세우는 어리석음은 지향하기를 권하고 싶다.

 우리가 한미FTA라든가 F-35같은 문제를 고민할 때, 미국은 다음 단계를 생각하거나 좀더 세계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음도 아울러 생각하면서, 좀더 치밀하고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자세로 미국과의 관계를 짚으라고 주문하고 싶다.

 보편적 복지의 당위성에 대해서 그 누구도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구현하고 실천할 것인지의 문제와 그것을 주장하는 세력을 일치화시키는 우를 범하지는 말기를 권하고 싶다. 과거 뉴타운 공약을 내세우며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허상을 퍼뜨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거대여당이 된 지금의 새누리당이나, 시대적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란 얘기까지 튀어나오고, 그럼으로써 부의 불평등이나 복지 문제가 세계적 혹은 사회적 화두가 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만을 주장하면서 국민들에게 헛된 희망과 허상을 심어주면서, 총선에서의 득표 계산(?!)을 하려는 일부 무리들이나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라는 점도 잘 생각하시면서 냉정하고 준엄한 선택을 하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9. 27. 05:33
  요즈음 다음 뷰를 간간히 살펴보면, 소위 미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을 질타하거나 비판하는 글들이 상당히 자주 눈에 띕니다. 개인적으로는 과연 이게 다음 뷰의 전반적인 흐름이 바뀐 탓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아직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상당한 충격과 신선함으로 다가오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색다른 비판과 또다른 관점의 포스트가 나오는 것은 소위 의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그리 나쁠 것이 없다라고 필자도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관련 포스트들을 살펴보면서 필자가 갖게 되는 일차적인 생각은, 미국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좀더 객관성이 담보되거나 해당 분야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얘기들이 병행되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자꾸만 생겨나는데, 

 
필자가 왜 이런 생각과 말을 하느냐면, 그런 포스트를 읽고 난 독자들의 반응이 대부분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를 따라간다는 정황적 사실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미국 편의점(?!미국은 한국의 편의점과는 규모라든가 물건 판매의 성
격이 사뭇 다르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전문적인 약사들이 근무하고 있다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편의점이라는 표현은 분명히 어폐가 있다라고 생각됩니다!) 에서 치과 용품을 파는데 한국의 치과 의사가 보기에도 충격을 받았다는 일련의 얘기를 보고 나면,

  곧바로 터져 나오는 독자들의 반응이라는 것들
이 대부분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의 폐해가 이렇게 문제라는 둥 혹은 이런 미국식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MB정부를 맹렬히 비판하고 성토하거나, 그도 아니면 미국의 실상(?!)을 알고 보니까 한국의 의료 보험은 그래도 양반이니 감사해야 하며, 어떻게든 의료 민영화는 막아야겠다라는 다짐 아닌 다짐(?!)들이 쏟아져 나오는 식인데... 

  이건 얼핏 보기엔 대단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의 모습이라고 보이겠지만, 문제의 이면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사실을 한번쯤 제대로 논해보고자 합니다.

※참고할만한 자료
미국의 약사와 약학 대학

 그러니까, 오늘의 주제는 미국의 의료 보험의 제반 문제를 개혁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시도가 왜 어려운지를, 그리고 이를 통해서 한국의 MB정부가 시도하려는 의료 민영화 문제를 좀더 심층적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미국 의료 보험의 역사적 특수성과 오바마의 의료 개혁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
  MB정부의 의료 민영화 시도를 비판하는 이들의 포스트를 조목조목 살펴보면, 대부분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 체계를 들어 그 폐해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려하는 내용들이 주류입니다.

 사실 이런 모습들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가 모든 부분에서 압축 고도 성장을 하였기에, 역사적 선례나 기준들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대단히 많았으며, 그러다보니 많은 경우에 있어서, 미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같은 선진국의 정책 사례나 실패
를 모델로 삼거나, 혹은 비교 분석을 꾀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점은 필자도 십분 인
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비교 분석을 하고 모델로 삼으려고 하는 과정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장단점만을 피상적으로 살펴보거나 혹은 그것을 그대로 한국 사회에 적용시키려다가 더욱더 문제가 꼬이고정을 어렵게 만드는 사례들이 종종 있는데, 의료 보험 민영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논의의 과정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고 보여진다는 점입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하기에, 미국 의료 보험의 폐해를 비판하는 많은 이들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왜 미국은 여타 유럽의 선진국과는 달리 민영 의료 보험 체계가 미국 사회내 주류를 이루게 되었을까요?...

  의료 문제는 국민들의 건강권과 복지 문제에서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 사안으로써, 유럽의 대다수 선진국들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보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방식이 민영이든 혹은 공영이든간에, 그것을 국가가 일정 부분 개입을 해서 관리 통제하는 것에 반해, 이른바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은 정부의 관리나 규제를 받지 않는 민간 의료 보험 회사들이 주축이 되었을까라는 역사적 의문을 얘기하는 것으로써, 오늘의 포스팅의 본론으로 슬슬 넘어 가야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익히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크게 강조하면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크게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도 의료 보험 분야에서 국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의사와 환자간에 직접적인 계약이나 이해 관계로써 문제를 풀어가는 역사적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의사는 의료 서비스의 공급자이며 환자는 그 서비스를 사려는 소비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라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의료 문제를 관리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과 환자들간에 직접적인 소통이 원론적으로는 정답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원론적인 부분들이 현실에 그대로 반영된 모델이 바로 미국 사회였던 겁니다.

  물론 미국도 과거 대공황을 거치면서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같은 국가가 관리하는 의료 보험이 생겼지만, 기본적으로 그것들은 극빈자나 노약자들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보험이였고, 당시에는 인구의 구성비라든가 산업계 전반의 동향이나 국가의 성장 잠재력 측면에서 이들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기에, 그리고 당시 사회 구성체간의 이해 관계가 여러모로 맞아 떨어지면서, 여타의 유럽 선진국들과는 전혀 다른 민영 의료 보험 체제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히 이례적이고 독특하며, 소위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인 국민들 각자의 의사와 사회 각 계층간의 합의라는 원론을 극한의 경지에까지 구현하려다가, 본의 아니게도(?!) 크게 말썽이나 뒷탈이 생긴 대표적이고 매우 희귀한 케이스가 바로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 체계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오바마가 이런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 체계에 일대 변화를 주려고 해도, 일단 1920년대의 대공황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사회가 복잡 다단해졌고, 사회내 소수 민족의 구성비가 크게 늘었으며 자본주의 체제가 극도로 심화되었다라는 여러 구조적 측면들이 일차적 어려움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 자신이 직접 TV에 출연해 수차례 의료 보험 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여러 민족과 계층으로 나누어진 미국 국민들을 일일히 설득하기에도 매우 벅찬 실정이 된 것니다.

   게다가 미국은인의 능력과 노력 자유등을 크게 강조하다 보니, 애시당초 정부의 개입을 그리 반기지 않는 전통적인 분위기가 사회내에 깊숙히 잠재되어 있다가 신자유주의가 크게 득세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이런 인식이 더욱 굳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장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민간 의료 보험을 국가가 대신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한 법인데, 가뜩이나 경제 사정도 최악인 형국이므로 정부가 예산을 확보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것은 불을 보듯 뻔하겠지요...


  당연히 국민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국가적 예산이 확충되어야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할텐데, 세상 모든 자본주의 체제의 국민들이 세금을 올린다면 좋아할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라는 것이, 오바마 의료 개혁의 최대 딜레마인 셈이지요... 

  특히나, 미국 의료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빈민층의 대다수는 소수 이민족들이기에, 더욱더 미국 부유층과 중산층에게 세금을 부과하는데 있어서, 숱한 어려움과 반대가 생길 수 밖에 없게 되는 본질적 구조적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유난히 강조하였기에, 매우
자연스럽게도
가난은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나태하며 게을러서 그렇게 되었다라는 논리가 먹히게 되는 사회 구조를 가졌었고, 그것이 1980년대 초부터 신자유주의 사조와 결합해서 민간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당연한 댓가로써, 또한 중산층과 부유층에게는 본인이 열심히 일한만큼 제대로 된료 혜택이나 서비스를 선택하거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것이 매우 합당하고 당연하다라는 기존의 사회 인식으로 깊숙히 굳어졌다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미국인들의 이런 일반적인 사회 인식들부터 바꾸거나
허물지 못하면, 오바마의 의료 개혁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의료를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키운 미국의 초국적 제약 회사나 보험 회사들이 자신들의 생존권 차원에서 막강한 로비와 자금력을 앞세워서, 이런 미국민들의 기존 인식을 자극하거나 강화하는 일련의 모습들이 더더욱 이 문제를 꼬이게 만드는 매우 주요한 변수일지는 몰라도, 미국 의료 보험의 근본적 원인이나 문제의 본질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 필자가 강조하고픈 미국 의료 개혁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약회사나 보험회사들의 완강한 저항이나 정치적 로비가 있다라고 해도, 미국민들이 열렬히 원한다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어떻게든 보일텐데, 지금 미국의 상황은 그게 아닌 것 같다라는 말입니다.


  어쨌거나,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은 비록 지금 시점에서 엄청난 문제와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른바 소수 민족으로 대변되는 인종 구성 비율의 변화라든가 사회내 각 계층간의 구성 변화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개혁이나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이 점차 도래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관리하고 통제한 모델이 아니라 국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측면이 상당히 강하며,
 
  또한, 지금 이 시각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가 의료
개혁을 하겠다고 하면서 벌이는 일련의 모습을 살펴 보아도, 우선 미국 국민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설득하고 민영 의료 보험의 폐해와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홍보 차원에 집중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이제 한국의 의료 보험을 간략하게 살펴 보겠
습니다.


         한국 의료 보험의 역사적 특수성과 MB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 민영화의 불편한 진실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적 원칙과 가치에 입각하여 여타의 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민영 의료 보험의 길을 걸었다면, 한국의 의료 보험은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의 강압과 힘의 논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기형적(?!) 체계입니다.

  여러분들도 익히 아시다시피, 한국의 역대 군사 정권들은 쿠테타를 통해서 정권을 획득하였으며 그만큼 정통성이 취약하다 보니, 그것을 만회하고자 경제나 민생 분야에서 일련의 포퓰리즘적 정책들을 몇몇 도입하였었는데, 그것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과 같은 의료 보험의 근간이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의료 보험...다시 말해서 건강 보험은 유럽의 선진국들에 비해서 GDP 대비 지출율은 현저히 떨어지고 의료 수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의료 보험은 일반 국민들이 세금등을 덜내는 저비용 방식을 쓰면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 고효율을 지향하는 비정상적인 체제이며, 과거 30년간 이 체제는 비약적인 압축 성장을 거듭하면서, 서민들의 건강과 의료 수준에 크게 이바지한 측면이 분명히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한국이 과거 고도 경제 성장을 한 것과도 매우 흡사한 모습입니다.

  문제는 한국의 고도 성장의 이면에 숱한 농민들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희생이 있었듯이, 당시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나 체계에 그닥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사회주의적 의료 보험이라는 체계를 확립하면서도, 누군가가 희생을 강요받게 되었는데 그 희생자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점에 대한 논의나 고려는 이상하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는 점입니다.

  또한, 과거 산업화 시절에 한국의 개발 독재와 성장 우선주의 정책이 만들어낸 고도 경제 성장의 시대가 소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사회가 복잡다단해지고, 산업의 체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면서 궁극적인 한계를 맞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 만들어진 의료 보험의 기본 체계도 이제 한계를 맞고 있는 실정인데, 그 문제점들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건강 보험의 대표적 특징중 하나인 당연지정제를 놓고 생각해 봅시다.
  원칙적으로는 한국도 미국처럼 의사들과 환자들간의 직접적인 소통이나 커뮤니케이션 혹은 사회 구성체간의 합의를 통해서 의료 보험 체계를 만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인지 혹은 다행인지는 몰라도, 과거 군사독재 정권 당시에는 이러한 민주주의적 원칙들은 전혀 지켜지지가 않았으며, 당시 경제 사정이나 여러 여건들을 고려하여 매우 일방적으로 일반 서민들에게 인기를 얻을만한 내용으로써 전반적인 의료 보험 체계가 결정이 되다 보니, 의사들의 권리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 혹은 묵살되었던 겁니다.


  하지만,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의사라는 직업이 과연 어떤 것입니까? 의대를 들어가서 본과를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까지 모두 마친다면 적어도 평균 11년 이상의 고된 학업과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대표적인 전문 직업이 아닙니까? 따라서, 자신이 노력한만큼 돈을 벌고 잘 살 수 있는 진정한 자유 민주적이고 자본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라고 한다면, 모든 병원과 의사들이 행한 의료 행위에 대한 댓가나 수당이 동일하고, 그것을 지키도록 국가가 강제한다라는 것은 분명히 불합리하고 자유 민주주의적 원칙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주 능력있고 시설이 좋은 병원이나 의사나, 막말로 능력도 그저 그렇고 시설도 별로인 병원이나 의사가 환자들에게서 받는 진료비나 시술비는 똑같고, 그것을 차별화할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라는 얘기가 되는데, 

  최근들어 더욱 논란이 가열중인 교육 평준화에 따른 교육의 질적 저하 논란에서
처럼, 자연히 어느 시점이나 순간에서부터는 정상적인 경로로는 첨단 의료 기술을 한층 연구하거나 발전시키며, 병원의 시설을 최
첨단화하거나 고급화시키려고 누가 노력을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합리적이고 모순을 가진 의료 체제에서도 소위 규모의 경제 효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규모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그룹은 몇몇 재벌들이나 유명 대학들 혹은 아주 특출한 소수의 의사들뿐이지 않겠습니까?


  자연히 대다수 일반 병원이나 의사들은 낮은 의료 수가를 메꾸기 위해 특진이나 비급여와 같은 편법을 종종 쓰거나 성형외과와 같은 건강 보험 적용이 안되는 분야들에만 의사 지망생이 대거 몰리거나, 혹은 처방전에다가 불필요한 고가의 약품을 추가 기입하는 방법등의 불법이 시간이 흐를수록 기승을 부리거나 더욱 난무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일반 외래 환자들의 진료 시간을 줄여서 조금이라도 의료 수가를 더 받으려고 하다보니, 의사들은 의사들대로 격무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환자들은 환자들대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기는 힘들어지는 측면이 필연적으로 생기면서, 자연히 대학 병원이나 종합 병원을 가면 족히 1~2시간은 기다려서, 겨우 5~10분간의 진료를 받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지는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지면서, 환자들은 환자들대로 병원이나 의사들을 점차 신뢰하지 않거나 자기 밥그릇만 챙긴다고 불만을 갖게 되었고, 의사들도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의료 보험 체계와 국가나 사회 언론의 비뚤어진 인식과 무관심 그리고 선정적인 언론 보도에 내심 크게 분노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제로섬적인 구조나 상태가 바로 지금의 상황 아니던가요...

  게다가, 한국의 의료 보험 체계는 초창기에 지나치게 당시 경제 상황만을 고려해서 만든 근시안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다 보니 환자들에게 부담시키는 보험료를 너무 낮게 책정했었고, 그러다 보니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국민들의 생활 패턴이나 소득 수준이 크게 늘어나면서 생긴 각종 질병들...이를테면 암이라든가 뇌질환같은 현대 문명성 질병에 대한 보장폭이 OECD선진국들만큼 넓지 못하며, 그런 부분들을 메꿀 민간 보험들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의료 보험의 민영화에 무조건 반대한다지만, 실상 이미 한국 건강 보험의 질병에 대한 보장폭이 선진국의 그것에 비해서 낮으며, 그 간극을 민간 보험 회사들이 맡고 있는 실정에 대해서는 왜 모두가 침묵하는지 필자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건강 보험이 60% 그리고 나머지 40%는 본인 부담이나 비급여로 나누어지면서, 사실상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중에 약 40%는 민간 보험 회사들이 떠맡고 있다라는 사실을 왜 간과하느냐는 얘기입니다.                            

  솔직히 백혈병같은 질병에 걸리게 되면 도저히 현행 건강 보험만으로는 치료를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민간 보험을 한 두개쯤 따로 가입하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내 서민들의 일반적인 행태라는 것은 삼척동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만약, 이런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한다면, 정부가 의료 보험료를 획기적으로 올리고 질병에 대한 보장폭도 높이면서 낮은 의료 수가에 대해 불만이 많은 의사와 병원들에게 보다 많은 급여를 지급해야만 하는데, 그 예산 확보라는 것이 생각이나 말처럼 그렇게 쉽겠습니까?...

  진보 세력이나 시민단체들은 툭하면 국가가 건강 보험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라고 매우 무책임한 주장을 하는데,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야 달콤하고 좋은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말처럼 쉽겠느냐는 말입니다.
막말로 대다수 국민들이 의료 보험의 혜택의 범위는 보다 넓히기를 바라겠지만, 당장 유럽 선진국들 수준으로 의료 보험료의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규모의 상승을 적극 찬성할까요?...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사회와 저출산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며, 결국 이 말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가뜩이나 얇아진 유리 지갑을 좀더 털어서
계속 늘어만가는 노인층들을 전부 보필하고, 의료 재정 확충에도 기여해야 한다라는 말이 되는데, 이게 지금 한국 사회의 20~30대 젊은 세대들의 대체적 성향으로 볼 때, 이른바 세대간 갈등이나 사회 구성체간 갈등 혹은 극심한 혼란으로 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의료보험은 국민들의 건강권과 복지에 관한 부분이므로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허접한 민주주의적 원론을 들이대며 강변하려는 분들은, 국민 연금 재정 확충과 고갈에 대한 20~30대 직장인들이나 젊은 세대들의 불만과 하소연을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게다가, 현대 의학은 시시각각 발전하고 거기에 따른 첨단 장비나 수술 기법은 자연히 기존의 의료 보험 체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혹은 신종 전염볌이나 희귀 질병에 대한 백신이나 처방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측면들이 계속해서 생기면서, 이른바 의료 보험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의 영역이 계속해서 늘고 있는 실정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최근의 신종 플루와 관련해서 거점 병원을 지정하였다고 하는데,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이 한국 정부가 임의로 병원을 지정하였으며, 타미 플루의 사재기라든가 특진과 관련된 논란의 핵심은 바로 이런 획일적이고 의사들만의 희생을 강조하는 한국 의료 보험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반한 것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문제는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많은 분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미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 
한미FTA를 통해서, 한국의 일반 서민들에게 특히나 민감한 의약품에 대한 가격이 크게 오를 소지와 함께, 당연 지정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경제자유특별구역이라든가, 비록 외국 투자자에 한해서이지만 영리법인의 병원을 허용하자라는 국내외적인 여건들이 복잡하게 겹쳐져서, 의료 보험 재정의 고갈과 구조적 위기에 대한 논의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저 미국의 의료 보험 체계를 피상적으로 살펴
보자니 문제가 아주 많고 거기에 비하면 한국은 그래도 괜찮으니까, 그냥 이대로 지금의 체제를 가지고 가야 한다라고 하는 식의 실속없는 대나 비판적 논조는 정말로 구태중의
구태가 아닌가라는 얘기입니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 지정된 경제자유구역지구의 범위와 한미FTA로 인한 의료 분야의 예상되는 피해나 손실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더보기를 클릭하세요!



 결론: 의료 민영화 논쟁에서 찬성 혹은 반대를 하기에 앞서, 주변 조건과 현실에 모두가 솔직해지자
  결론적으로 말해서, 여러분들이 진정 한국의 의료 보험 체계를 지금처럼 유지하거나 더욱 발전시키고 미국적인 문제나 폐해는 막으려고 한다라면, 아무 대책없고 단순한 이분법에서 비롯된 무조건적인 의료 민영화 찬성이나 반대가 아니라, 사회 양극화와 경제적 불황이라는 국가 사회적 위기가 겹친 지금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떻게 하면 일반 국민들의 건강 보험료 부담은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의료 급여나 수가는 획기적으로 높여서 의사나 일선 병원들의 불만을 원천적으로 잠재우는 길을 모색한다거나 혹은 그런 방향의 논의가 여야 정치권과 시민 단체 그리고 언론에서 끊임없이 나오도록 사회 여론을 형성하거나 주도해야만이,

  지금이나 앞으로의 한국 사회내에서 의료 민영화 시도나 논의가 근본적으로
사라질텐데, 과연 지금 대다수 민주 진보 인사들이나 시민 단체 그리고 언론이나 다음 뷰의 시사 블로거와 네티즌들이 그런 생각이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필자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못한 관계로 인해,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도 의료 민영화 시도가 이미 있었던 것인데, 정말로 어처구니없게도(!!!) 그 당시에는 일부 진보 세력이나 시민단체들을 빼고는 그마저도 아예 문제 제기조차도 없었다가, 이제 한나라당과 MB이 집권하여서 의료 민영화가 시도되는 것처럼 사실을 크게 왜곡하거나 떠들며, 조중동식으로 말바꾸기를 시도하고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기만 하면, 그래서 정권이 다시 바뀌기만 하면 이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라고 보십니까?...-_-;;;


  의료 보험은 단순한 의료와 자본의 흐름이나 기득권과 일차적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기본권인 건강권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이기에, 소위 시장과 경제의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결코 안되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이 될 수 밖에 없는 분야중에 하나입니다.

  흔히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말처럼, 건강권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들의 행복 추구권의 바탕이자 기본권이기에, 의료 보험 체계에는 각 나라와 사회가 가진 특수성과 역사적 전통 혹은 연원 그리고 사회 구성체간의 이해 관계나 사회 정치 경제적 합의등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미국 민영 의료 보험의 폐해나 단점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서 피상적인 비교나 비판을 가하면, 상당히 오버스러운 모습이 되거나 여러모로 무리가 따른다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한국 사회는 소위 회자되는 사회주의적 의료 보험 체계로 지난 30여년간을 지내왔으며, 일반 국민들도 이러한 의료 체제에 대한 학습효과가 단단히 되어있는 상황인데, 한국 사회내 어떠한 정치 세력들이나 혹은 제반 계층이라도 이걸 하루 아침에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 시스템처럼 바꿀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지도 그리 많지 않다라는 것은 제주도 특별자치구의 영리법인 병원 논란 사례를 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매우 독특한 미국의 사례를 들며 지나치게 과장을 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막연한 공포와 겁을 주어서 문제의 본질을 계속 외면하게 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건강 보험과 민영 의료 보험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논의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라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필자는 판단하는 바입니다.

  즉, 미국식의 전면적인 민영 의료 보험 체계는 결단코 안되겠지만, 현실적으로 건강 보험이 담당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민간 의료 보험에 맡기거나, 이미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경제자유구역 특별법등으로 예외 사례가 될 수 있다라는 논의나 우려가 촉발된 당연지정제같은 강제 조항들을 일정부분 완화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아예 민간 의료 보험은 생각조차도 하지 말고 일반 국민들에게서 세금을 보다 더 많이 징수해서, 국민 세금으로 확충된 국가 재정으로써 의료
분야를 전반적으로 커버할 것인지를 두고, 사회 구성체 모두가 정말 심사숙고하고 대대적인 여론이나 공론을 수렴해서 하루빨리 원만한 결정을 도출해야 한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국가가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떠맡는 방식의 후자를 택하려면, 당장 의료 보험 공단의 재정 운용 상태에 대한 보다 투명한 감시 체계 확립과 함께, 건강 보험 재정을 방만하고 안이하게 운용한다라는 비판을 받는 소위 무능한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과 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 혹은 그 반대로 능력있고 참신한 신입 공무원들을 대폭 확충하는 재편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하고,

  이른바 탈세로 대변되는 자영업자나 고소득자에 대한 세무 조사도 다시 해서 조세 원칙의 형평성부터 철저하게 바로 세우면서, 또한 지역 보험 가입자와 직장 보험 가입자간의 불신이나 오해도 일정부분 해소하여야만 하고, 그럼으로써 일반 국민들에게 세수 확대에 따른 근본적인 불만이나 기존 인식들부터 바꾸거나 잠재워야만 하며, 상당수 민간
의료 기관들을 국가가 직접 사들여서 공공 의료 기관으로 만들어야만는데, 지금의 한국 사회내에서 과연 이런 일련의 근본적인 개혁들이 단시간내에, 진정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실행이 정말로 가능할까요?... 


  이미 한국 의료 보험의 문제는 고령화 사회와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그리고 국민적인 소득 향상에 따른 다양한 의료 수요와 한미FTA같은 전방위적인 무역 협정으로 약제비가 폭발적인 상승을 할 여지가 생기면서 한계선상에 이르렀고, 획기적인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 다다랐으며, 자연히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라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판단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국민들의 합의와 의사에 따라 추진했던 민영 의료 보험으로 막심한 피해를 보는 현실보다는, 국민들의 의사나 합의는 철저히 무시하고 마치 중세시대의 전제국가들처럼, 무자비하고 폭압적인 독재자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추진한 한국의 기형적인 의료 보험이, 지금 시점에서 더욱 효율적이고 서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부분들은 역사적인 일대의 아이러니이자 흥미로운 연구 대상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이전에 미국의 의료 보험 체계가 형성된 과정과 그것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보여주는 일련의 모습등을 통해서, 과연 현실적인 관점과 상황속에서 민주주의적 가치와 원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른바 정치적 포지션에 따라 수시로 말바꾸기를 하는 친노세력과 일부 노무현 지지자나 조중동같은 가증스럽고 혐오스런 모습이 아닌, 소위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문제를 좀더 심층적으로 알아보고 깊이 고민하였으면 좋겠습니다만...

  
  ...만약 이런 고민이나 논의가 앞으로도 없다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는 이제 더 이상의 질적인 발전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으며, 그저 소모적인 무한 논쟁이나 사회 계층간의 불신과 갈등만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의료 민영화를 살펴보면,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도 이 문제의 본질과 실상을 제대로 일반 국민들에게 알리고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처럼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던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건강 의료 보험 재정의 고갈과 시간 부족 그리고 경제 활성화등을 이유로 경제자유특별구역이나 한미FTA같은 예외적 케이스나 특별 조항 혹은 사항들을 계속 만들면서도,
 
  또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일반 국민들의 눈치나 여론 동향을 보면서 의료 민영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시행하지 않는 식의
포퓰리즘적이고 기만적인 대국민 정책으로써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것이, 지금 이 시각 의료 민영화 문제를 더욱 키우고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야기한 일차적 원인이며, 현 MB정부도 이 부분에서 노무현 참여정부와 똑같은 모습을 취하거나, 시간과 예산의 부족과 경제 활성화라는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명분을 또다시 이유로 들며, 더 한층 과격하게 나아가려고 한다라는 것이 한국 건강 보험 체계가 가진 불편한 모순이자 진실이라는 점과 함께, 대다수 일반 국민이나 시민 단체 그리고 언론도 이 문제를 장기적 관점이 아닌 자신들의 이해 관계가 얽힌 편향적인 사고와 시각 속에서만 바라보거나 풀려고 한다라는 점에서... 

  이른바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는 얼마나 성취하기가 힘들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영원한 미완결의 체제인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학습 효과가 거의 전
무하거나 부재한 현실이, 바로 지금 한국 사회의 태생적인 비극이자 불행의 씨앗이라는, 지극히 서글프고 답답해져만 가는 필자의 심정과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을, 이제는 여러분들도 다같이 공감하고 상황을 좀더 진지하고 치열하게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면서, 필자는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치렵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영화 다이 하드를 기억하십니까? 만약 그 영화를 보셨고 지금도 기억을 하신다면, 어떤 장면이나 대사가 가장 먼저 기억에 떠오르시나요? 필자는 개인적으로 볼때, 일단의 테러리스트가 건물이나 기타 공공 기관이나 장소를 점거후 인질들을 발판삼아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상황과 함께, 그런 위기 상황을 말끔히 해결하는 미국식 영웅 스토리의 대표작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이 하드라고 하면, 으례히 액션 영화 내지는 미국식 영웅주의를 절묘하게 영상화한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 대작이라고 여기고 계시겠지요?

 
프롤로그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는 문화에도 깊숙히 반영이 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헐리우드로 대변되는 영화를 통한 미국식 문화와 사고의 전파 혹은 주입은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다이 하드라는 액션 무비속에 숨겨진 미국의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 자본주의적 마인드와 경제 패권주의의 코드를 한번 들춰내 보려고 합니다.

 
  그럼 우선 이야기를 진행하기에 앞서, 다이하드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시점에서 다이 하드의 줄거리를 대충 마무리짓자면, 주인공 존 맥클레인은 결국 한스 구르버를 필두로 한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을 모두 물리치고 아내와 화해의 키스를 나누며 영화는 헤피 엔딩으로 끝이 나는데요.


  그럼 이제부터 영화 다이 하드의 내용으로 미국의 신자유주의 혹은 경제 패권주의적 사고와 코드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지요! ^^ 

영화 다이 하드의 시대적 경제적 배경
  우선, 영화 다이 하드가 나올 당시 미국의 국내외적인 경제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잠시 짚어 보겠습니다. 당시 미국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레이거노믹스 이후 뉴욕 월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적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맞서, 유럽은 독일과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소위 라인-알펜형 자본주의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또다른 한편에서는 일본과 한국을 위시로 한 동아시아형 국가 자본주의라는 3가지 형태의 자본주의가 서로 각축을 벌이던 19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유럽은 그야말로 잘나가던 독일을 주축으로 한 유럽 경제 블록권을 형성하고 미국의 경제 패권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안겨주고 있었으며, 일본을 위시로 한 동아시형 자본주의 체제 역시 일본의 부동산 거품으로 대변되는 자산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서, 미국내 주요 건물이나 영화사들이 줄줄히 일본에게 넘어가던 그런 시점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오늘의 포스팅을 잘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다이 하드에 숨겨진 미국의 경제 패권주의 코드
 
영화 다이 하드에서 존 맥클레인은 하고 많은 미국내 지역중에서 하필이면 뉴욕의 경찰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월 스트리트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월 스트리트의 금융 자산가나 투자자들을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한스 구르버를 위시로 한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은 바로 경제 블록권을 형성해 미국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하던 유로 연합을 상징하는 모델이지요. 나카토미 빌딩과 조셉 타카키 회장은 당시 일본내 부동산 버블로 호황을 누리며 미국내 주요 빌딩들을 사들이던 동아시아형 자본주의 모델의 선두주자인 일본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이 하드의 주요 내용을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통상 테러리스트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요?

  자기 나라의 독립이나 혹은 극단의 정치적 사회적 동기로 인해서 테러를 저지르고 그로 인해서 상대 국가나 사회에 심각한 불안과 혼란을 주는 것이 주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화 다이 하드에 등장하는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은 그런 목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나카토미 빌딩 금고 속에 숨겨진 1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채권 강탈이 주목적이었지요.


  또한, 나카토미 빌딩의 조셉 타카키 회장 역시 금고 속 채권을 지키려고 비밀번호를 밝히기를 거부하다가 한스 구르버의 총탄에 헛되이 목숨을 내어 놓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의미심장한 것은 한스 구르버나 칼, 그리고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유럽 출신이며 그들의 이름 또한 대부분 독일 혹은 스웨덴식 이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당시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일본의 경제 패권에 맞서 유럽 연합이 일본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라는 시대적 경제적 정황을 상징한다라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다이 하드라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나카토미 빌딩 금고에 있는 돈이 일본인 타카키 회장의 소유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스 구르버를 위시로 한 유럽 출신 테러리스트들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돈은 미국 내에 있고 당연히 미국의 돈이라는 사고가 영화 다이 하드 전반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뉴욕 월 스트리트를 대변하는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이 한스 구르버 일당에게 맞서자 한스가 이런 말을 하지요... "카우보이...자네가 무슨 람보인 줄 아는가?..자네 혼자서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저지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가...?"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당시 소련이 점차 붕괴 조짐을 보이면서, 소위 람보로 상징되는 카우보이의 나라 미국이 과거 보였었던 월등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군사 패권주의가 이제 자신들(유럽 연합)에게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라는 강력한 암시가 아닐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 다이 하드에서 한스나 다른 테러리스트들의 계획이나 목적이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나카토미 빌딩 금고 속에 있는 어머어마한 액수의 돈(경제)이지요.


  그들은 일련의 인질극을 통해서 무슨 정치 사회적 요구를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존 맥클레인이 그들에게 맞서고 끝내 한스 구르버 일당의 계획을 좌절시켰다면, 그것은 인질 구출이나 무슨 정의의 사도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막대한 액수의 채권, 즉 미국의 경제 패권주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소위 FBI와 경찰 서장으로 대변되는 미국 정부의 무능한 모습입니다. 이들은 규모면이나 인원 장비면에서 결코 한스 구르버를 주축으로 한 유럽 출신 테러리스트들(유로 연합)에게 밀리지 않았지만, 무능하고 단견적인 마인드로 인해서 영화 내내 한스 구르버 일당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바보 노릇만 합니다. 

  또한, 제4의 권력으로 대변되는 언론을 상징하는 리처드 쏜버그 기자는 전형적인 선정주의와 포퓰리즘적 보도를 일삼으면서, 시민들로 하여금 사태의 심각성과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고 상황을 오히려 더욱더 꼬이게 만들어 버리지요.

  이는 당시 미국 월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를 구축하려던 개인 혹은 기관 투자가들의 마인드...  그러니까 무능하면서도 규모만 비대하고 아무 짝에도 필요가 없는 정부와 정말로 한심하게도 말만 더럽게 많은 언론이라는 생각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보여지지 않습니까?...

  그래도 필자의 영화 해석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느끼신다면, 여기에서 좀더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해 볼까요? ^^ 

  다이 하드에서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그의 편을 들었었던 알 포웰 경사(레지날드 벤존슨 분)는 과연 어떤 것을 상징하는 캐릭터일까요?

  필자가 분석하기에는 알 포웰 경사는 바로 과거 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시대를 상징하는 캐릭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과거 미국은 자유주의적 사조를 바탕으로 정부의 규제가 없고 오로지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의 번영을 추구하다가 대공황을 맞으면서, 자유주의 사조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라인-알펜형 모델식으로 복지와 공공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일부 받아 들이면서 자유주의적 사조는 역사의 한켠으로 조용히 밀려나게 되었지요...마치 영화 다이 하드에서 알 포웰 경사가 실수로 사람을 쏴 죽인 뒤에, 총을 멀리하게 되었고 순찰이라는 말단 한직으로 밀려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다이 하드의 엔딩 부분을 다시 더듬어 보세요...존 맥클레인이 처치한 줄로 알았었던 칼이 최후의 도발을 하려고 하자, 알 포웰 경사가 총을 발사해서 칼을 진짜 골로 보내 버리는데요... 이것은 바로 과거 실패로 끝났다고 여겼었던 자유주의 사조가, 시대가 급변하고 미국의 경제 패권주의가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자, 다시 신자유주의로 되살아났다라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아내 홀리는 남편 존의 성인 맥클레인이라는 이름마저도 거부할 정도로, 과거 대공황의 역사적 기억 때문에 자유주의와 시장 만능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일본식 동아시아형 국가 자본주의 모델에 열광하였던 1980년대 후반 당시의 미국 국민들을 상징하며, 결국 남편 존 맥클레인의 새로운 면모...즉 신자유주의의 막강한 위력과 초인적인 매력 앞에, 기존의 사고와 기억들을 모두 떨쳐 버리고 열렬히 그것을 받아 들이게 된다라는 얘기이죠...


에필로그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반 더 빌 트의 영화 다이 하드 해석이 조금 흥미로우셨나요? ^^  다이 하드는 분명 액션 영화중에 단연 백미입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국가는 액션 무비 하나를 만들어도 절대 허투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헐리우드를 통해서 자신들의 패권주의와 사고 문화등을 전세계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널리 전파하고 끝없이 과시합니다. 영화 다이 하드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액션 무비의 고전적 공식과 흥행 요소를 모두 살리면서, 거기에 미국의 전통적인 카우보이 트렌드와 영웅주의로 대변되는 프론티어적 사고, 그리고 신자유주의 혹은 경제 패권주의 코드를 절묘하게 주입하여, 전세계의 액션 영화팬들을 열광시켰었던 진짜 수작중의 수작이라는 평을 끝으로, 필자는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치렵니다...^^     

P.S : 오늘의 포스팅이 사뭇 흥미로우셨다면, 지금 바로 가까운 비디오 샵에 가셔서 영화 다이 하드 1편을 빌려다가 한번 찬찬히 보시면서 포스팅의 내용을 확인하시기를 적극 추천하며, 그런 의미에서 바로 아래 추천 버튼을 한번 힘차게 클릭해주시는 센스도 절대 잊지 않으셨기를 기대합니다...^^  


                                                                                  ※사진 출처: 20th Century Fox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성매매 여성을 주변에서 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여성을 보셨다면, 어떤 생각들을 떠올리십니까? 대부분의 남성이라면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한번쯤 훔쳐 볼 것이고, 여성분들이시라면 자못 눈쌀을 찌푸리거나 혐오스런 마음으로 해당 성매매 여성들을 넌지시 바라 보시겠지요? 

  필자도 남성인 관계로 그런 여성분들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이나 가슴, 몸매의 굴곡에 시선이 가서 꽂히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관념상으로나 머릿 속으로는 필자와 같은 혈기왕성한 남성들의 성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여성의 성까지도 철저하게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렇게 무섭구나라고 생각하며 절치부심하곤 합니다.

 
 프롤로그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금도 경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분들은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에 부차적인 것이거나, 사회 구성원들이 원한다
면(?!) 언제든지 바꾸거나 선택 혹은 통제할 수 있는 체제, 이념 정도로 간단하게 치부하거나 생각하시겠지만, 필자는 그런 식의 어설프고 순진하며 이상에 찬 이분법적 견해와 단순 무식한 사고 체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한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든 혹은 그것과는 다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를 지녔던간에, 그 곳에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일단 침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매우 흡사하게 변해 버리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성매매 여성들이 아닐까 싶어서, 오늘은 영화 인터걸을 통해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진단하고, 결론 부분에서 필자가 하고픈 얘기들을 조목조목 소개하면서 이 포스팅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인터걸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구소련 개혁파들에 대한 강렬한 의문이 생기다
  여러분들은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지금의 러시아에서 공공연히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구소련의 후신격인 국가입니다. 구소련은 한때 자본주의 체제의 본산인 미국과 일대 자웅을 겨루었던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지닌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지요.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소위 시장의 원리보다는 공공재의 개념과 국가의 역할이나 기능이 매우 강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사익 추구나 각 집단간의 사적 이해 관계보다는 국가 혹은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도록 규정하고, 그런 이념과 사상을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통하여 끊임없이 주입시켰으며, 국가 경제는 철저하게 계획 경제의 개념으로 움직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렇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시킨 사람들의 노동 의욕은 갈수록 떨어져만 갔고 방만해진 정부 내 관료들의 무사안일함과 부정 부패는 극에 달했으며,  사회 전반에 대단히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사고가 넘쳐 흐르다 보니까, 점차 구소련 사회 전체가 활력을 크게 잃어 버리면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경제적 여력마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여러 군소국가들을 지원하기는 커녕, 중앙 정부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참담한 실정에까지 이르렀으며, 바로 이것이 구소련의 경제적인 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하려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낳은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와중에 나온 영화가 인터걸이었는데요. 필자가 짐작하기엔 아마도 지금 한국의 10대와 20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잠시, 인터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인터걸 개봉당시 고르바초프를 위시한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이 영화를 보며 " 인터걸이야말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정한 산물 " 이라고 찬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강렬한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세계 초강대국 소련의 최고 권력자와 개혁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행하던 구소련의 최고 엘리트인 개혁파 세력들이, 당시 구소련의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기로서니, 고작 성매매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보고서, 그토록 극찬을 하고 구소련 내에서만 영화 관램객이 무려 4천만명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의문은 당시 어린 나이의 필자가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경제적 지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졌음을 훗날 깨달았는데요. 
필자가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로써 훗날 깨달은 고르바쵸프를 위시한 구소련 개혁파 세력들의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소련은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익 추구를 금기시하다 보니 사회가 점차 극단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은 필연이었겠지요. 자연히 유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잔재해서 성문제에 관한한 제대로 된 공론조차 나오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 구소련도 성과 성담론을 극단적으로 터부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당시 구소련에서는 지금의 러시아에서와 같은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는 존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폐쇄적이고 경직된 체제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로 인해 소위 시장 개방의 물결이 구소련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성적인 측면도 활짝 열리게 되면서 인터걸이라는 존재가 생겨났고, 이것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당시 소련인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것인데요..

  ...문제는, 당시 고르바초프나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그저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려는 자본주의 체제보다는 인간적인 가치와 사회 공동체적 이상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100%로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생각이 영화 인터걸의 주인공인 타냐가 경제적 안정을 원해서 스웨덴으로 가지만,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시 소련으로 돌아간다라는 기본 줄거리에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 배경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이미 알다시피, 고르바초프와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이 확신에 차서 추진하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로 대변되던 시장 개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 증명이 결코 아니었으며구소련 체제내에 시장 개방의 물결이 가속화될수록 급격하게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제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로써만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소련의 붕괴와 몰락을 외신을 통해 바라보면서 소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함께, 그로 인한 필연적인 역사적 종말을 갈망하였던 필자나 그 밖의 많은 운동권 선후배들은 커다란 충격과 방향 상실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필자도 그랬었지만, 한국 사회내의 수 많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가들은 소위 물질 만능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도로 경멸하였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소련 붕괴 당시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선뜻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인정과 자기 반성, 그리고 성찰과 학습의 깊이가 점차 심화되고,  대학 졸업후 사회에 진출하여 정말로 돈 많고 능력이 있으며 똑똑한 이들을 많이 알고 사귀게 되면서, 그리고 사회와 회사를 통해서 이론이 아닌 실무적인 경험들이 하나 둘씩 쌓여 가면서, 또한 간간히 외국 출장등을 통해 현지 실정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20대 초반 무렵의 필자가 거의 신앙처럼 믿고 간직하였었던 무슨 가치와 사실의 구분같은 이분법적인 생각이나 민주주의적 가치 추구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거나 혹은 그것을 추동하고 바꾸는 근본적인 힘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인데, 이제 그 성찰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에필로그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개혁파 세력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일부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공산주의 체제에 들어와도 사회 구성원들의 투철한 공동체적 의식과 가치,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수십년간 다듬어진 사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질서와 통제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까지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는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서 사회 전반에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외려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동안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극도의 불신 회의와 함께, 중앙 정부에 대한 주변 복속 국가들의 반발까지 겹쳐지면서, 당시 구소련 사회 전체에 위기감을 크게 증폭시켰으며, 

  이런 급격한 사회 혼란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우려하고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쿠데타를 부르게 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더더욱 구소련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급격하게 상실시킴으로써, 결국엔 구소련 공산주의 체제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소련의괴와 몰락으로써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그저 소설이나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만 치부되고 마는 상황이 온 것이지요.

  그 반면에 자본주의 체제는 어떨까요...자본주의 체제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분명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었는데요. 과거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든 심각한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 대공황이라는 사태였죠.

  당시 자본주의는 정말로
생존 자체가 의심될만큼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소위 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었던 시장의 원리와 합리적 인간의 경제동이나 선택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철저한 허구였음이 만천하에 증명된 역사적 사건이 바로 대공황이었는데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대공황 당시 자본주의 체제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그랬듯이,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과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을 일부 받아들여,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복지와 공공재의 성격을 크게 강화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형태로 일대 변신을 꾀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입니. 한마디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자 그 모습이 크게 변형되거나 무너졌었는데, 자본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오히려 더욱 강고한 체제로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구소련
의 공산주의 체제는 전제 군주에 맞서 일어선 농민과 노동자들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서 세상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사상과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서 비롯되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의 익성과 공공재, 그리고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과 만인의 평등을 열렬하게 추구하고 꿈꾸었었던 희대의 천재들이자 철두철미한 상가이며 행동가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와 이상, 천재들 나름의 투철한 개인적 실천, 그리고 세뇌 수준에 가까운 사상 이념 교육들은 정작 현실에서 대다수 평범한 인간들의 기본적인 성향과 본능과는 그리 맞지 않았었던 겁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기심과 탐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공공재와 공익성, 인간적인 가치를 아무리 강조하고 주장해도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으며, 바로 구소련처럼 종국에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상실하고 무너지게 되었던 겁니다.

  따라서,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적절하게
사람들의 기본 욕구도 채워 주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는 강력한 배경이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고, 개인만의생활과 사익 추구를 터부시하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또한 그것을 통해서 자본의 논리를 또다시 강화시키고 그 범위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는 완벽에 가까운 피드백 시스템을 갖춘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특정 사회 내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과 행태는 세계 어디든지 비슷하게 변하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아닌가라는 말입니다.

  필자가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을 다룬 자료 몇 가지를 세세히 살펴보니, 지금의 러시아 젊은이들은 구소련의 기억들이 거의 없으나 바로 위에 부모 세대들은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이것이 급격한 시장 개방과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또 하나의 세대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사회적 요인이 되고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과거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며, 개인의 행복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한결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니, 이거 한번 깊이 생각할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바로 이측면에서 이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한 영역에서 사회의 공익성과 공공재의 개념을 추구하고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는 과연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통제하거나 제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것이 인간의 기본 본성이나 욕구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일까요?...

  산업 혁명이 발발하고 시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사회 집단이 역사에 출현하며 자본주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과거부터 지금 현재까지, 세계 유수의 모든 경제학자들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상하는 정치가와 시민 사회 모두가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한 그 근저에 도사린 본질적인 난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각 한국사회 내에서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위 미디어 법 문제도 결국 이것과 동일한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의 본능이라는 영역까지도 침투하고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단지 민주주의적 가치와 공공재라는 막연한 구호와 이념만으로써,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이나 절충 혹은 타협 없이도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취사선택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문제냐는 말입니다.


  필자는 구소련의 영화 인터걸과 그것의 실제 연장판격인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동안의 끊임없는 학습과 사회 경험등을 모두 종합해 볼 때, 자꾸만 회의적인 결론이 도출되며, 이런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일개인이나 어떤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막거나 거스를 수 없다라 일종의 무기력과 절망감,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진실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심각한 우려와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 오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좀더 생각해 볼 문제
  대공황 당시의 자본주의는 소위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시장의 원리를 맹신하였고 합리적 인간의 선택과 경제적 행위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다가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 공산주의 이념을 일부 채택하여,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말하는 복지 국가와 사회 공공재의 개념이 탄생한 것인데요.

  문제는, 인간이란 존재가 태생적으로 이기심과 탐욕을 가져서인지 이런 역사적 교훈을 철저하게 망각하고, 또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시장의 질서만을 강조하고 공공재와 공익성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불황을 낳았다는 것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모두 동감하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과거 대공황을 극복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을 취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또다시 복지라든가 공공재의 개념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 체제나 역사가 수렴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경제 불황은 과거 대공황 때만큼의 위기는 아니기에, 모든 것을 상품화시킴으로써 결국 인간까지도 하나의 자원이나 물질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심화를 좀더 지켜 보아야만 모종의 결론이 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그런 결말이 필자나 여러분들 생전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Posted by 네 오 NEO
시사 평론2009. 7. 14. 06:31

  지난 주,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있었습니다. 상식과 원칙의 확립, 그리고 특권과 반칙이 횡행하는 한국 사회를 확 바꾸겠노라던 노무현의 재야 운동가 시절의 이상과 정치적 신념은 결국 비극적인 자살로써 끝이 나고 말았는데, 아직도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언제나 서민들을 위하였으며,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재평가한다면서 쉴새없이 노무현 미화성 글들을 다음 뷰에 올리고 있는데, 우연히 이런 글('준사람 노무현', 내가 쓰고싶은 노무현 묘비명)을 보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해당 글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노무현은 자신의 권력을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넘겨주었었고, 무슨 민주주의적 가치 수호를 위해 끝내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날렸으며, 그 결과 그가 남긴 무슨 가치가 시민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네~~하는 식의 논리와 실상은 하나도 없는 전형적인 신파류 글이었습니다. 그동안 필자는 이런 류의 포스팅을 대하면서 심한 염증과 회의를 느껴왔었기에,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정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하고 발전시켰는지 한번 제대로 짚어 보기로 했습니다.

  글이 조금 길다고 여겨지시는 분들은 마지막 문단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부분만 읽어 보셔도 무방합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의미를 성찰하지 못한 민주화 세력과 국민들
  우선 노무현의 민주주의적 가치 수호를 논하기 전에, 1987년 6월항쟁을 잠시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80년대 당시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의 압정에 지친 국민들은 결국 6월항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6.29 선언을 얻어내게 되지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까지도 사람들은 1987년 6월항쟁을 통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단계 더 발전했고, 그 이후로 민주주의적으로 정치 사회적 변화가 꾸준히 이어지다가 현정부에 들어오면서, 다시 박정희 유신독재나 5공시절로 회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기본적 전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이런 질문에는 여러가지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국민들 스스로가 사회나 정치 그리고 기타 제반 여건들에 대해 분명한 자기 소신과 목소리를 밝힐 수 있고, 그런 식견이 가능한 바른 언론과 함께 관련 정보의 제공이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는 점에서 보면, 6월 항쟁이 진정 민주주의적 가치를 한단계 높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앞서게 됩니다.


  만약, 진실로 국민들이 전두환 군사정권의 폐해와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성찰을 했다면, 아무리 당시 민주주의 진영의 대표라는 양김씨의 반목과 분열이 있었다고 해도, 12.12 군사 쿠테타의 주역인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인데, 결과가 과연 어떠했습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다수 한국인들은 도무지 자기 반성이나 성찰은 하지 않는 관계로, 전두환의 폭정에 대한 반감으로 6월 항쟁을 시작하였으나, 그 뒤에 일어난 사회 정치 그리고 기타 제반 여건에 대한 토론이나 전국민적인 공론은 사실상 없었기에, 결국 전두환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던 노태우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으며, 그 다음은 김영삼이라는 희대의 변절자가 펼치는 소위 3당 야합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열린 5공 청문회와 김영삼의 일방적인 3당합당 선언에 반대했던 노무현이라는 신인 정치인이 국민적인 주목을 받기는 하였었지만 말입니다.


6.25 남북전쟁이후 최대 동란이라는 IMF외환위기로 탄생한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
  사람들은 흔히 말하길, 변절이건 뭐건간에 그래도 김영삼 문민의 정부 시절부터 서서히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라고 평하지만 필자는 이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형식적, 표면적으로는 민주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으나 내면적으로는 곪고 썩어 들어가고 있었기에, 결국 국가 부도와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상황을 당시 일반 국민들이 전혀 예측하거나 가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치러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과거 박정희 유신 독재의 잔존 세력인 김종필과 소위 DJP연합을 하고서도 이회창 후보를 고작 35만표 차이로 누르고 신승을 하지요.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만약, 국민들이 외환위기 사태의 본질, 다시 말해서 한국 경제의 재벌 독식 체제와 수출과 내수간 불균형에 대한 처절한 자기 반성 그리고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깊이 인식하고 자기 반성을 했었다면, 과연 지금의 한나라당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외환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과연 김대중은 당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논리나 이성을 싫어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툭하면 욱하는 감정적 기질로 볼 때, 한나라당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만 했었는데, 그렇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회 원내 1당 혹은 제 1야당의 위치를 확고히 굳혔었지요. 또한 소위 천문학적인 액수의 대선 비자금 문제가 터지면서 차떼기당이라는 수치스런 이미지를 창출하고 국민들의 엄청난 지탄을 받고서도 그들은 지금 이 시간까지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원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민주화 세력들이 진짜로 무능했으며, 일반 국민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되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비단 현정부만이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역대 기성 정치권 세력들이 모두 국민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글쓴이는 판단합니다.

부동산 규제 철폐와 카드 남발로 인위적 경기 부양을 시도했던 김대중 정부
  어찌되었거나, 김대중은 이런 일반 국민들의 천박한 의식과 단순한 심리를 잘 알고 있었던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속한 시일 내에 외환위기 극복에 힘을 쏟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는데, 문제는 그 방법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은행이나 제2 금융권의 신용카드 신규발급에 대한 규제를 전혀 하지 않음으로써, 잠재적인 신용 불량자(결국 신용 카드 남발은 노무현 참여정부에 이르러 신용 불량자 400만명을 양성하는 결과가 됨!)를 크게 키웠으며, 부동산과 건설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부동산 규제에 대한 법적 규제나 조항들을 대부분 철폐시킴으로써, 노무현 참여정부 기간동안 벌어진 사상 유례가 없는 부동산 폭등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편으로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부터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알짜배기 기업들을 하나하나 외국인들에게 차례로 매각했었지요. 당시 엄청난 기업 구조 조정의 여파로 실업자의 대열에 들어선 이들이 대부분 무슨 창업이랍시고 그동안 자신들이 모았었던 돈과 퇴직금, 그리고 은행의 대출금등을 통하여 마련한 식당이나 기타 오락시설의 범람으로 인해,

  인구 대비 자영업자의 비율이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이는 훗날 영세 자영업계의 총체적 위기와 그로 인한 가계 부실의 심화 그리고 내수 침체의 악순환으로 들어가는 보증수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선을 꾸준히 밀고 간 것이 바로 지금 이시각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었고, 당시 소수의 진보 인사를 제외한 범민주화 세력과 수구 보수 진영은 모두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했었으며, 일반 국민들은 뭔가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사태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거나 깨우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만들어 낸 노무현 대통령의 배신과 변절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늘상 원칙과 합의 그리고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고 말했고, 그가 과거 재야 운동가 시절에 보인 몇몇 모습들은 그의 이런 주장에 강한 신뢰감을 부여함으로써, 결국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뒤집고,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감동을 선사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중 그 누구보다도 한국 사회의 제반 모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랬었기에, 한국 경제와 자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문제만은 반드시 해결하겠노라고 공언했고, 모든 부분에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겠노라고 하였지만, 과연 결과가 어땠을까요... 

  부동산은 노무현 참여정부가 정책을 발표하면 마치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격이 더욱 뛰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를 비롯해서 경제와 부동산에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동의를 하는 부분이니까 말도 안되는 얘기들은 더 이상 없기를 바라지만,

  어찌되었든간에,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했었던 강한 의지와 이상에 비해서 실제 부동산 관련 정책 수행에서 빚어진 잦은 실수와 함께 실무 행정부서 그리고 당시 여당과의 정책 조율 실패는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과 말만 무성하게 많았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복안 그리고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을 심도있게 인식하지는 못했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부의 원천이며, 경제적 불평등의 시작이자 끝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노무현은 부동산 잡겠다는 말만 하다가 참여정부 5년 임기를 끝마친 셈이 되어 버렸지요.

  여러분도 너무나 잘 알다시피,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합니다. 따라서, 진정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부의 재분배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데, 부동산 문제가 이렇게 꼬이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될 턱이 있겠습니까.

  또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였는데, 재벌에 대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행태를 보면 의구심은 더욱 강해집니다. 역대 정권들을 보면 한결같이 경제 개혁과 서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을 주장하지 않은 정부가 없었으나,

  그 실제적 방법은 어처구니없게도 한결같이 재벌 중심의 왜곡된 경제 구조를 개혁하기보다는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그들을 더욱 키움으로써,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그들을 통한 수출을 하는 것이 박정희 유신독재 이후의 한국 사회였고, 그런 왜곡된 경제 체제와 패러다임이 바로 특권과 반칙의 진정한 몸통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노무현은 어떻게 재벌들에게 대처했을까요?

  그는 어쭙잖게도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의 특권을 버리면, 사회 제반 세력들도 그것을 따라오리라고 순진한 어린애마냥 믿은 모양새입니다. 그 결과, 검찰을 비롯한 정부내 주요 사정 기관이 개혁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것이 과연 국민들에게 권력을 이양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 세력을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삼성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해 거의 헐값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넘겨주는 참담한 상황을 지켜 보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모두 분개하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7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직전까지 기소를 하지 않았었으며, 삼성 에버랜드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명의로 삼성생명 주식을 거의 헐값에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세청과 감사원은 아무런 조사도 취하지 않거나 조사를 하고서도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조사 내용을 검찰에 넘기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노라고 했었던 기억들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십니까.

  SK그룹 총수가 계열사와의 주식교환으로 1조 ~2조원대에 달하는 실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당 이익을 취해서 분식회계 혐의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마지못해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기는 했었지만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하였으며, 그 결과 SK그룹 총수가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시기가 과연 언제였던가요...

  또한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엄청난 금액의 횡령과 탈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명목으로 곧바로 사면을 한 것은 또한 누구였습니까... 

  현대 자동차 글로비스 사태에서 보여지듯이, 총수의 개인 회사와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를 통한 자금 빼돌리기가 공공연히 횡행하는데도 아무런 언급도 없이 수수방관하였지요.

  또한 한화 그룹 회장이, 자신의 아들이 구타당한 것에 대한 보복 폭행을 저질러서 엄청난 여론의 질타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 정의 확립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넘쳤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 유예 판결과 함께, 사회 봉사 명령 정도로 상황을 마무리지은 것이 현정부 임기 때의 일이던가요, 아니면 노무현 참여정부 임기 때의 일이던가요...

  그가 넘겨준 소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국민에게 간 모습이란 것의 실체가 과연 무엇입니까? 이게 과연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 그리고 노무현이 그토록 말했었던 원칙과 상식에 부합하고, 또한편으로 반칙과 편법, 특권이 없는 사회란 말인가요? 실상은 그가 넘긴 권력이 모두 시장으로 간 것이며, 한국의 시장을 지배하는 재벌들이 그 권력의 수혜를 톡톡히 받았다고 보는 것이 보다 올바른 진단이 아닐까요?

  위에 열거한 모습을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보고 살펴보면, 노무현 참여정부나 현정부나 재벌들만을 편들고 그들을 키움으로써, 경제를 꾸려가겠다라는 지극히 얄팍하고 허술한 발상을 가졌다라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필자는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참여정부의 이런 친재벌적 성향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란 것들은 탐욕이 너무나도 지나쳐서 조금 더 이익을 얻기 위해, 노무현을 근거없이 좌파라고 규정지은 것일뿐, 실제 노무현 참여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이나 내용은 대부분 서민들보다는 재벌들에게 돌아가는 과실들뿐이었는데도, 다들 까마귀 고기을 구워 먹었는지 불과 3~4년전의 과거는 모두 잊고 그를 열심히 찬양하고 있는 형국이니 이거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 아닙니까...

  일부 노빠들이 때만 되면 부르짖는 노무현 참여정부시절 사상 최대의 외환 보유고는 환율 폭등과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로 순식간에 바닥이 보이는 허수에 불과하였으며, 또한 사상 최대의 무역 수지 흑자라는 성과도 일반 국민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았었기에, 비정규직은 계속해서 늘었으며 급기야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온 시점이 언제인지를 한번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국민들과의 진솔한 소통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대통령 퇴임 전후의 일이었고, 정작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이랄 수 있는 경제 분야를 완전히 재편하고, 그로 인해 대다수 한국인들의 삶의 형태를 크게 바꾸는 한미FTA협정 추진 과정상의 비민주성과 야만성, 그리고 한미FTA와 관련해서 일반 국민들을 철저히 기만하는 교활함은 도대체 그가 추구하는 민주적 가치와 소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자꾸 회의하게 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이 서민을 위하는 대통령이었다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통하는 근본적 이유는 지난 1987년부터 지금까지 대다수 한국인들이 역사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이 전혀 없었으며, 무슨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나 인간적인 가치 추구보다는 오로지 돈 잘 벌고 생활이 그럭저럭 유지되면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물신주의적 의식의 천박함과 함께,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민주화 세력과 극렬 노빠들 그리고 수구 꼴통 세력들의 정치적 이해 관계가 서로 맞물려 벌어지는 또 한편의 비극인 셈인데...
 
  무슨 노무현이 날았다는 둥 그의 가치가 시민들의 머리 위에 내려 앉았다라는 둥의 감성에 호소하는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이들이 다음 뷰에는 여전히 넘치네요...-_-;;;

  필자는 마지막으로 해당 포스팅을 작성한 광신적인 믿음의 자칭 논객이라는 노빠와 함께, 너무나 서민적인 대통령인 노무현 찬양가를 부르짖는 이들에게 시원하게 욕을 한마디 하고 싶은데, 공개적인 포스팅에다가 비속어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비슷한 어감의 단어로써, 대책없이 노무현을 찬양하는 여러분들의 위선과 가식에 찬 모습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오늘의 포스팅을 이만 마치렵니다.
                                                   
                         십할  비양심!  족구하라고 그래!


※사진 출처: 다음 이미지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