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평론2012. 5. 22. 08:34

 요즈음 통합진보당의 갈등과 극심한 내분...그리고, 검찰의 서버 및 당원명부 압수 수색등을 지켜보면서 필자뿐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무척이나 답답하며 가슴이 아플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 불교계에서 벌어지는 성호스님의 폭로 행위와 이번에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같은 비당권파들이 벌인 행태가 매우 유사하다라고 보여져서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백양사 도박 몰카의 한 장면 ⓒ구글 이미지

 

 

성호 스님의 폭로와 좌파 스님 몰아내기...그 다음은?

 필자뿐만이 아니라 불교를 믿지 않는 대다수 일반 국민들이 이번에 성호스님의 폭로를 지켜보면서 느끼거나 생각한 점은 조계종 내에서 여러 갈등과 암투가 상당하구나라는 정도의 막연함 혹은 누가 주체가 되어서 그런 몰카를 찍었으며, 그로 인해 누가 책임을 지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겠구나라는 일반적인 사회 통념...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도덕적이며 세속적인 가치에서 초연하고 담담해야 할 스님들이 거액(?! 이 부분도 명확하지 않다...)의 도박을 하고 룸살롱을 드나들고 여기에 술과 담배 여자까지(?! 이 부분도 세상의 인식이나 경험과는 다른 형태로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세상에는 항상 예외가 있고 스님이 룸살롱을 간 사실이 바로 여자를 데리고 놀았다라는 사회적 통념으로 연결되는 것은 일반적인 인식이지 명백하게 밝혀진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취하였다라고 하는 부분에서 크게 분개하거나 냉소하는 도덕적 잣대의 측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필자는 이런 일반적 인식을 되짚기보다는 성호 스님의 폭로 행태와 언론 플레이의 과정에 집중하려고 한다.

 

 

 

 성호 스님이 도박 몰카라는 충격적인 동영상을 통해서 일부 고위급 승려들의 도덕성을 문제삼자, 결국 당시 도박을 하였던 일부 승려들...그 중에서도 실천승가회에 소속된 승려들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며, 조계종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였다는 사건 전개...그러면서도 조계종의 해명 과정에서 도박 행태를 일종의 놀이문화라느니 특정 스님이 룸살롱에 출입하기는 했지만 도덕적으로 문제될 일은 하지 않았다느니 하는 애매한(?!) 입장이 나왔었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자,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진보 성향의 언론에서도 조계종의 공식 해명이란 것이 너무 어이없다라는 반응의 만평까지 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성호 스님이 계속해서 다른 추가 의혹을 밝히겠다라고 하면서 여러 얘기들을 각종 언론에 흘렸으며, 그의 이야기들은 여과없이 일반 시청자나 독자들에게도 전달되면서, 조계종과 불교계 전체의 위상과 도덕성에 대한 불신이 대대적으로 형성되었다라는 점이다. 여기에, 보수 언론에서는 도박에 몰두하였었던 일부 스님들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이라든가 광우병 촛불집회 그리고 제주해군기지 반대와 같은 첨예한 정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던 실천승가회라는 승려조직에 속하였다라고 밝히면서 여러모로 정치적 해석을 내놓았고, 종교와 정치의 영역은 과연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다시 불을 지피기도 하였던 것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성호 스님의 충격적인 도박 몰카 폭로와 그에 잇달은 조계종의 어설픈(?!) 혹은 구차한 해명 그리고 성호 스님의 추가적인 의혹 제시와 일반 여론의 흐름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조계종의 대응이 성호 스님도 과거 성추문이라든가 여러 불미스런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라는 사실들을 언급하면서, 일종의 공세적 맞불을 놓기 시작했고 급기야 성호 스님은 자신의 폭로 목적이 불교계 내의 좌파 스님들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었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던 사실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호 스님에 대한 평가가 일종의 프락치라든가 이명박 정부의 음모라는 둥 혹은 조계종 내부의 권력 암투라든가 조계종...더 나아가서는 불교계 고위급 승려들 전반의 도덕성이 무척이나 해이하다라는 식의 비난과 얘기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필자는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성호 스님의 폭로 목적이 좌파 스님을 몰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이 보도되자마자, 마치 그런 얘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성호 스님에 대해서 땡중이라는 둥 일개 파계승 주제에 친정부적 발언이나 하고 있다라거나 누구의 사주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 혹은 성호 스님의 폭로로 인해서 어떤 스님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그로 인해 벌어질 파장에 대해서 분석을 하는 포스팅이나 기사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성호 스님의 폭로와 그에 따른 여러 행태에 대해 진보적 성향의 언론이나 블로거들...그리고 SNS상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파워 트위터리안들이 그다지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라는 점은 분명하다라는 점에서, 이제 유시민과 심상정 조준호의 비례대표경선 부정의혹과 관련된 행태를 되짚어보려고 한다.

 

 

유시민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과연 순수한 목적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 (명분이라는 허울에 가려진 기회주의자의 득세와 사회적 무관심에 대한 단상)

 비례대표경선 부정의혹에 대한 조사보고서 발표 전까지만 해도 이번 4.11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로서의 위상을 확보하지는 못하였지만 통합진보당의 약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음을 부정하는 일반 국민들은 표면적으로는 그리 많지 않았었다. 또한,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보다는 도덕적이고 진취적이며 친서민적인 정당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들이나 기대들이 팽배했던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경선과정에서 조직적인 부정을 했다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론이 얼마나 급속도로 악화되었던가...보수 언론은 비례대표 경선부정을 주도한 당권파의 도덕성뿐만이 아니라 이념적 성향에 대해서 집중적인 포화를 날렸으며, 전보 성향의 언론들은 절치적 민주주의와 당권파의 패권주의를 연일 문제삼으며 전방위적으로 당권파를 공격하였다. 여기에는 진보 성향의 논객들뿐만이 아니라 블로거들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는데...

 

 

 여기에서 생각을 한번 정리해보시길 바란다...

 

 조준호의 조사보고서라는 것이 확실한 주체 파악과 물증을 가진 상태에서 발표된 것이었는가?  그리고, 그런 조사보고서의 발표 후 당권파의 당혹스러움과 격렬한 반발...그야말로 비상식적(?!)으로 보여지는 반발 행태에 비해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등이 보여준 침착함의 대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비당권파가 사전에 이미 합의를 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예외적인 침착함이 아니었을까?...

 

 당권파로 대변되는 이정희 이석기 등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언급하면서 재조사나 공청회 혹은 백분토론을 제안하였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유시민 심상정 등이 일언반구의 대응조차 하지 않으면서 언론에 대고는 계속해서 보고서의 일부 내용들은 분명히 부실이 아닌 부정경선이라는 사실에 어떠한 변화가 없다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당권파의 패권주의 그리고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들만 주구장창 떠들지 않았었던가?

 

유시민의 느닷없는 "애국가 사랑" (☜이 기사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뜬금없이 애국가 논란과 진성당원의 실체 문제까지 촉발시키면서 당권파...아니 더 나아가서는 구 민노당의 이념적 정체성과 경직성...평당원들의 명예까지 문제삼으며 진보 언론뿐만 아니라 보수 언론의 집중포화까지 유도한 정황들...

 

 

 

 이게, 성호 스님이 도박 몰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조계종 고위층 승려들의 도덕성을 문제삼은 뒤, 언론에 일부 의혹을 계속 흘리면서도 조계종과의 직접적인 대면이나 접촉은 꺼렸던 사실들 (성호 스님 자신이 어디에 기거하는지도 비밀이라고 밝혔었다!!!), 그런 성호 스님의 계속되는 의혹 폭로와 언론의 공격에 어설프게(?!) 변명조로 대응하는 조계종...그리고, 성호 스님의 좌파 스님 축출이 목적이라는 보도에 대해서, 성호 스님도 결코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라고 맞대응하는 조계종의 모습에서... 통진당 내분과 유시민의 행태에 대한 아무런 연관성도 보지 못하였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왜 성호 스님은 조계종의 고위층 승려들의 도박 몰카를 언론에 흘렸을까? 과연, 그는 아무런 사심없이 불교계의 도덕적 정화나 불교계의 장래와 불교 신자들의 신뢰나 믿음에 대한 우려와 걱정에서 비롯된 순수한 행위를 하였다라고 바라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유시민이 말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란 것이 과연 순수할까? 4.11 총선의 결과가 국참당 계열은 고작 한석만을 건져서 당내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바로 그래서 유시민 자신이 4.11 총선 결과에 크게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라고 하소연한 정황들...그것은 겨우 생환해서 돌아온 PD계열의 심상정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총선 결과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얻었다. 원내교섭단체(20석)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전국적인 야권 연대의 경험을 쌓았고 제3당으로 올라섰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운 의석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 대표는 총선 결과에 크게 실망해 “집에 간다”는 말을 부쩍 많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권파는 6~7석을 얻고, 진보신당 탈당파인 심상정 대표와 노회찬 대변인은 생환했지만, 국민참여당계는 전북 남원·순창에서 1명의 당선자를 내는 데 그쳤다. 국민참여당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유 대표가 정치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1~2주가량 했다. 그러나 그 뒤로 당 개혁 작업에 의욕을 갖고 당권 도전 여부를 고민해왔다”고 전했다....

 

ⓒ한겨레 기사. 유시민과 이정희의 "밀애"는 오래가지 않았다 라는 기사에서 일부 발췌 

 



 여기에, 당권파가 그동안 노동계의 문제보다는 이념적이고 거시적인 측면에 집중한다라는 사실에 내심 불만을 가졌고, 4.11 총선 결과 울산 창원이 새누리당에 떨어진 참담한 결과를 받아본 민주노총의 조준호가 밝힌 조사보고서...그런데, 조사보고서의 부정 혹은 부실 경선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체, 모든 부정 경선의 책임을 사회적 통념대로 당권파가 지고 그들 전부를 통합진보당에서 축출하겠다라고 나서는 정황들은 어떻게 보아야만 할까? 그리고, 이로 인해서 검찰의 압수 수색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을 막을 명분이 마땅치 않은 극단적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과연, 이런 식으로 여론몰이를 해서 당권파를 배제한 다음에 통합진보당에 남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이미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으로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우월성도 철저히 무너지고, 전국 정당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스킬이나 개념조차도 없는 일개 생양아치 집단으로 이미지가 전락한 지금의 통합진보당에게 무슨 장미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통진당의 이미지를 180도로 쇄신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당권파가 자리를 비운 그 자리에 또아리를 틀고서 그간의 이념적 색채를 완전히 탈피하여서, 그야말로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유시민같은 이들이 표현하기로는 중도적인!!!^^) 색채의 정당 만들기에 주체로 나설 세력이나 인물이 과연 누구일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니던가?

 

 

 설령, 유시민이나 국참당이 당권파 배제 후에 민주노총이나 PD계열 평당원들의 반발에 의해서 통합진보당을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 실망해서 돌아선 지난 4.11 총선의 유권자들....필자처럼 제3의 정당 출현을 바라던 중도층 성향의 표심의 상당 부분을 다시 친노 주축의 민주통합당으로 공짜로 가져 올 수 있으며,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 야권연대같은 거 근본적으로 아예 파기하거나 공론화하지 않을 수 있는 절호의 구실과 호기가 왔는데, 친노 세력이 주축이 된 민주통합당과 유시민이 뭐가 아쉽겠는가 말이다...

 

 다시 반문하는데...과연, 유시민이 말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순수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이제, 결론을 밝혀야 하겠는데...그 전에 성호 스님과 유시민같은 쌍둥이들 혹은 기회주의자적인 측면에서의 아바타들이 벌인 행태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나 일반인들의 상식에 대해 경종을 울릴만한 소재를 하나 언급하고 얘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요즘, 필자를 비롯한 대다수 남성들이나 여성들도 언론이나 뉴스 사회 면에서 자주 접하는 기사 소재가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성추행이나 성추문과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자라는 것이다. ( 이 소재는 필자가 작성한 전 포스팅에서 어떤 친노 성향의 지지자가 논점을 흐리면서까지 갖다붙인 새누리당의 모 국회의원 성추문에 대해서 판단 유보라는 필자의 시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답변의 성격도 일부 있다....)

 

 통상, 직장이나 학교 혹은 기타의 장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 혹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발언이나 행위들을 들었거나 당했다라고 폭로를 하거나 법원에 고소를 하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말이다...

 

 일단,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어떤 여성에 의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라고 폭로되거나 고소당한 남성은 사실 관계가 법적으로 명확히 밝혀질 때까지는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인간 취급조차도 받지 못하게 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정말로 그런 식의 행동을 했고,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법적인 혹은 이성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사람들은 은연중에 해당 남성이 피해 여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수치심 고통을 주었다라고 미리 단정하고 맹비난하기 마련인데, 바로 여기에 필자가 말하고픈 핵심이 있다라는 것이다.

 

 과거, 우리네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에 비해서 턱없이 낮았고, 그로 인해 여성들이 사회적 기회를 잡기가 힘들었다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사회내 주도권을 잡고서...이를테면, 직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부하 여직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농담이라든가 행위들...심지어는 해당 여성의 성을 강제로 갈취하는 행위들이 암암리에 빈번했었기에, 그런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회복하고자 여성가족부도 생기고 성적 범죄에 대한 법의 잣대도 대폭 강화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렇게 여성의 법적 지위를 위해 성적 범죄에 대한 법의 잣대를 높이는 것은 대단히 좋았지만, 그로 인해 오로지 여성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서 성적 수치심이나 성추문이 공론화되고 결정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되었다라는 사실인데... 요즘, 말많은 꽃뱀이라는 단어 속에 이런 남성들의 본의아닌 억울함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부터, 한국 사회에서 통상 남성의 사회적 법적 지위가 여성보다 높았던 것은 일반적 경험이자 통념이 되었고, 여기에 일반적으로 성적 범죄를 저지르는 주체와 그 피해 대상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세간의 일반적 인식이, 여성들의 법적 지위와 사회적 기회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지금까지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서, 이제는 성적 범죄에 있어서는 남성들이 되려 역차별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보여지지는 않는가? 설령, 법적으로 진실이 가려지거나 무죄라고 판별이 나도 이미 사람들의 인식이 그전같지 않게 되는 이유는 도덕성, 성적 갈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잣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필자가 여기에서 해묵은 남녀 갈등 조장이나 성적인 문제를 언급하여서 일종의 물타기를 하려고 이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선택한 것이 결코 아니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통상, 과거부터 기득권을 가진 남성이 여성에게 가해를 하고, 여성은 피해자였다라는 일반적 인식이 굳어진 상태에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어떤 여성이나 그 배후의 남성 혹은 특정 세력이 자신의 라이벌이나 적대 세력을 제거하는 방편으로써, 이런 성적 문제와 사회적 도덕적 통념을 활용할 기회가 더 많이 생겼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주도권 세력에 대한 도덕적 흠집 내기를 위해서 일반인들의 통념과 도덕성 혹은 그런 류의 잣대를 빌리는 것처럼 손쉬운 일도 없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해자 피해자 구도의 대입과 함께 일대의 도덕적 타격 그리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취함으로써 세간의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식의 권모술수는 우리네 사회에서는 일종의 처세술로 통하는 불편한 불문율...

 

 유시민 국참당 계열의 인사가 폭로한 부정경선 의혹에 대한 조준호의 일방적인 부실보고서...그리고 과거 패권주의로 주도권을 잡은 가해자 당권파와 그에 맞서다가 피해를 본 피해자 비당권파라는 구도...여기에, 일반 국민들의 도덕적 잣대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절대명분을 등에 업고서 중앙위원회를 통해서 비대위를 일방적으로 출범시키려고 하자 당권파 평당원들의 반발과 폭력까지 감내한 철저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취한 비당권파 유시민 심상정의 처신과의 오묘한 공통점들은 과연 어떻게 보시는지...

 

 이 말은 기득권을 누렸던 집단(통진당 당권파 혹은 불교계의 조계종)에 대한 반감이나 적대감에 불을 당길 수 있는 소재...그것도 도덕성에 일대타격을 줄 수 있는 특정 소재(부정경선 혹은 도박 성추문등등)를 들먹이면, 우리 사회 내에서 해당 남성이나 특정 세력은 그것을 변명하거나 해명하기에도 입장이 벅차거나 대단히 난처한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오로지 기존에 형성된 세인들의 통념과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 대한 반감 내지는 질투심 개인적인 이해심 등에 기반한다라는 불편한 진실들....

 

...다시, 통합진보당과 조계종 사건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두 사건의 공통점은 도덕성에 일대 타격을 입히는 방법으로써 기존에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을 축출하겠다라고 시작된 일이라는 유사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건에 대해서 일반인들의 인식은 기존에 자신들이 기억하거나 형성한 개념이나 도덕적 경험적 잣대에서 단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는 그런 감정적 모습으로 대처하였다는 점도 동일하다.

 

 하지만, 그런 통념과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 그런 세력들을 공격한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가 왜 극명하게 다른 것인지에 대한 얘기들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바로 이 점이 필자가 오늘의 포스팅에서 지적하고픈 부분이라는 것이다!!!

 

                                                       

                                                                  유시민과 성호 스님에 대한 사뭇 다른 반응의 모습들

 

 

 국참당 유시민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통진당 당권파를 공격하고, 이로 인해 진보 세력의 양분이라든가 보수나 친노 세력들의 반사이익이 저절로 생기는 정황들...그로 인해 제3의 세력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기대가 어떻게 되든말든 극한 반발과 갈등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언론 플레이를 주도한 사실들...

 

 그런데도, 진보 논객들이나 진보 성향의 언론들이 친노 유시민의 의도나 추후의 행보에 대한 우려나 비관적 전망들을 보여주지 않는다라는 불편한 정황들...이런 식의 진영 논리와 정황이라면 성호 스님의 폭로는 조계종 고위층 승려들의 도덕성을 철저히 문제삼은 것이며, 비록 그 목적이 좌파 스님 축출에 있다라고 해도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성호 스님의 말 그대로, 도덕성도 의심되고 종교인로써 전혀 모범이 되지 못하는 일부 좌파 스님들이 위선적으로 일반 국민들이나 불교 신자들을 현혹하고 반정부 투쟁이나 일삼고 있다라고 하는 주장에도 적극적으로 여론 조성을 하고 힘을 실어주어야만 하는데, 그와는 반대되는 비판과 공격을 하고 있는 이 불편한 현실을 어떻게 봐야만 할까?

 

 

 성호 스님의 폭로가 애시당초 순수한 목적이 아니었으며, 그가 말하는 도덕성 문제나 종교인으로서의 자세라는 절대 명분이란 것의 실체는 좌파 스님들의 축출이었듯이, 유시민이 말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당권파 패권주의 청산이라는 구호의 순수함과 정당성 이면에는 당권파 주도에 대한 견제와 자신의 정치적 개인적 야심이 깔려있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겠는가?

 

 

 조계종에서 성호 스님의 과거 행적을 언급하면서 성호 스님의 폭로가 순수하지 않고 명분이 없다라고 하는 정황과 제3자 입장에서 통합진보당을 아끼던 필자가 유시민의 과거 정당파괴 행위와 조삼모사식 행동을 언급하며, 그런 유시민에게 일체의 정치적 기회를 주면 안된다라고 하는 주장과의 본질적 차이는 과연 얼마나 있는지...

 

 

 이게 과연 친노 그룹이나 유시민에 대한 개인적 감정에서 나온 단순한 인신공격인가? 아니면, 도덕성을 명분으로 상대를 죽이고 암암리에 그 자리를 탐하려는 기회주의자나 간웅의 교묘한 처세술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와 경종을 울리지 않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국민들의 앞날에 대한 진심어린 고언인지는...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보수 새누리당과 친노 세력의 민주통합당 외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노동 운동의 본산이라고도 볼 수 있는 진보 정당의 몰락이 일반 국민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인지에 대해서...필자는 궁금하고 또 궁금해지는 것이다!!!

 

P.S: 혹자는 필자가 이런 주장을 해도 여전히 "기회주의자의 화신" 이자 "갈등과 분열의 아이콘" 인 유시민을 두둔하며, 어찌되었든 그가 정당 개혁을 위해서 그동안 그런 시행착오를 반복하였으며, 이제 그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서 자신의 소신을 밝힐 기회가 왔다거나 진보 정당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라는 원론적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유시민이 무슨 한국정치사의 실험에 동원된 마루타라는 둥...유시민도 당권파 NL의 소행을 잘 몰라서 그런 피해를 보았다라는 피해자 코스프레의 가소로운 행태도 보이던데...

 

 그렇게, 정당 개혁을 한다라는 명분 아래, 정당을 해체하거나 탈당을 한 뒤에 유시민이 건진 과실은 국회의원 뱃지와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개인적 부귀영화였었다라는 사실... 유시민이 그렇게 정당들을 말아먹고 해당 정당의 평당원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원한을 심으면서, 그런 와중에 그가 얻은 것은 유시민 개인의 화려한 영화였다라는 말이다.

 

 

 필자가 오늘의 포스팅에서 사회적 상식이라는 것과 도덕성과 명분을 추구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그런 도덕성을 추구하고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서 어떤 특정한 의도나 개인의 영달을 달성하는 기회주의자적 행태에 대한 철퇴와 별도의 감시나 비판이 없는 시민 사회는 종국에는 무차별적 폭로와 상호불신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공작정치밖에는 남는 것이 별로 없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조준호가 조사보고서를 밝히던 시점에서 좀더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발표를 해서 당권파의 반발을 잠재웠다라면...여기에, 유시민 심상정 등이 공청회나 재조사에 순순히 합의를 하고 당원명부를 밝히라는 식으로 당권파 평당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언론 플레이를 자제하고 좀더 온건한 절차적 방법으로 대처했었다라면...

 

 그리고, 진보 논객들과 언론들이 부정경선의 주체도 모른 체 통상적으로 과거 당권파의 일부 패권주의와 연결시켜서, 일반 국민들의 여론으로써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책임을 묻고 서둘러서 당권파를 단죄하려고 시도하지만 않았다면 ( 한겨레가 어제서야 물증이랍시고 내놓은 문자 메시지 하나와 이석기의 노트북 관련 사례들이 부정 경선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졌다라는 결정적 증거란 말인가? 이거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후확신편향" 에 해당한다라는 것을 한겨레는 알고 있는가? 통진당 당권파가 아무리 어설프기로서니 그렇게 엉성하게 조작을 하였을까...아니면, 혹자의 주장대로 다분히 의도된 부실이 상당부분 깔려 있었는지는 검찰에 압수된 서버에 의해서 밝혀질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가 버렸다!!!)...

 

 또한, 이런 일련의 극한 반발과 갈등의 행태 이전에...필자가 전 포스팅에서 주장한 것처럼 "진보 내의 트로이 목마"라고 의심을 받던 유시민이 단순하게 통진당 비례대표 자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추후 통합진보당의 개혁 작업에서 자신과 국참당은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라고 명백히 밝혀서 당권파로 하여금 권력 투쟁을 위한 음모라는 의심과 극한 반발을 사지 않았더라면, 일개 블로거인 필자가 이런 주장을 계속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지금 검찰에서 압수수색을 들어가는 일도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P.S 2: 지금 여러분들이 "정치적 기회주의자""마카아벨리" 라고 불러도 마땅치 않은 유시민을 두둔하는 그 논리 그대로 필자가 성호 스님의 폭로에 힘을 실어주는 사진 한장을 올려둔다.

 

유시민과 진보의 붉은 장미(☜보수 언론이 바라보는 유시민에 대한 시각이 과연 얼마나 조롱조이며 방관자적인 것인지 꼭 확인하시길 바란다.)

 

성호 스님의 주장대로 종교인의 입장에서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정치적 이슈에 매몰되는 좌파 스님들의 축출이라는 절대 명분에 불을 당길 한편의 사진을 말이다.

 

  

 한명숙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대해서 한명숙 지지자라는 어떤 스님(이 스님도 실천승가회 소속?)의 극단적이고 섬뜩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실은 사진 ⓒ조선일보

     

해당 기사: http://218.145.28.99/blog.log.view.screen?blogId=73049&menuId=297620&listType=3&from=&to=&curPage=30&logId=4388002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12. 2. 7. 22:43
 필자는 바로 전 포스팅에서 나꼼수 비키니녀 논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성적 담론에 대하여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라고 하였고,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실현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하시라고 하였다.

 오늘은 왜 나꼼수 비키니녀 논란에서의 성적담론 부재가 중요한지...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복지정책과 연관이 되는지를 한번 짚어봄으로써 우리 사회의 이면을 다루어보고 싶다. 말이 길어졌는데, 곧바로 얘기를 시작하련다...

 나꼼수 비키니녀 논란이 결국 몇몇 진보적 성향을 지향하는 여성카페 회원들의 성명발표로 마무리(?!)되는 모양새이다. 하긴, 나꼼수 시청자가 1천만에 육박했다고 하니까 더 이상의 논란이 자신들의 주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서라고 판단해서일까. 아니면, 여성들 자신들이 주장하던 내용들을 나꼼수 맴버를 비롯한 다른 남성들도 충분히 인지했다라고 판단해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러모로 참 씁쓸함이 남는 모양새가 아닐 수 없다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마초 진보라는 비판을 받았던 나꼼수 맴버들도, 그리고 페미니스트 성향을 가진 진보적 색채의 여성들도 또한 표현의 자유나 시위 문화의 새로운 조류를 주장하는 비키니녀들과 나꼼수 지지자들도... 모두가 자신들의 입장과 위치에서의 주장만을 한 것이지 그 이상은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다라고 필자는 생각했는데, 그 구체적 사례가 바로 미혼모이다.  


 성적 담론의 부재로 인해, 여성들이나 남성들 모두 무심코 사회적 차별과 무시를 가하는 대표적 사회 계층(?!)이 바로 미혼모가 아닐까... 일반 여성들이 특정 남성 혹은 남성 중심사회가 만들어 낸 사회가 빚어내는 여러 가지 차별과 성적 상품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대다수 여성조차 미혼모 문제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성적 담론과 성정체성에 대한 준비는 없는데, 유교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사회는 급격한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해 점점 서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일시적 혼란이나 과도기라고 말하기엔 상황이 너무 암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미혼모는 남성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성적 특성을 가진 여성들에게도 그리고 사회 구성원 대부분들에게도 철저히 소외되는 대표적 존재이다. 그릇된 성적 관념과 준비되지 않은 성적 담론이 넘실대는 기형적 사회 속에서 이들은 다른 이들의 따가운 시선과 무관심 그리고 불필요한 차별이라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감내하며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라는 말이다.

 
 심지어, 이들은 그들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서조차 소외되거나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가...잘못된 성적 관념과 통념이 넘실대는 사회이다 보니 내 가족 누군가가 미혼모라는 말을 선뜻 꺼낼 수도, 그렇다고 그런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당당하게 대처할 수 없게 만드는 이 불편한 사회 분위기는 누가 주도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일까...(노파심에서 몇 마디 부연 설명을 하련다. 필자나 다른 누군가가 이런 식의 비판을 가하면, 으례히 나오는 반응이 자기 자신은 제외하고 다른 집단이나 특정 개인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수렴되곤 하던데, 이 문제는 그런 진영논리, 편가르기식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또한, 미혼모들이 이유나 동기야 어찌되었건, 이런 불평등과 이중 삼중의 사회 차별 속에서 아이를 책임지고 키워나가는 와중에서, 그 아이가 받게 될 사회적 차별과 무관심은 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그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키우고 어떤 시각으로 사회를 보며 커 나갈지를 곰곰히 생각하면, 정말 이런 분위기와 사회적 시스템은 분명히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필자는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신가...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고 자연스럽게 남녀간 차별이나 규제를 없애려는 노력이 거듭되면서, 각 분야에서 기회 균등이 점차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고, 그만큼 활발해진 사회적 역량이 정치권에도 거센 입김을 불러 일으켜 여성의원의 비율할당제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미혼모들은 여기서도 철저히 제외되는 존재들이다.

 학교를 다니든 혹은 직장을 다니든..그것도 아니면 그 어떤 계층이나 직군에 속하든간에 일단 미혼모라는 사실(?!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낙인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위협받거나 불필요한 차별과 선입견에 시달려야만 하는데, 그 원인은 오로지 성적 담론의 부재와 그릇된 성관념이 빚어내는 결과라니 정말로 암담하지 않은가...    
 


 정부에서 얼마 전에 무상보육정책을 내어 놓았는데, 그 정책이 2세까지의 아동만을 대상으로 한다라는 내용이 알려지자, 일각에서 아이를 어머니에게서 떼어놓음으로써, 정서적 인격적 차원에서조차도 전혀 실효성이 없거나 효과가 의심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어났었고, 결국 정부가 5세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라는 수정된 정책을 발표한 것으로 아는데, 여기에서조차 미혼모는 제외된 것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필자는 당시 정부의 정책은 물론이고 그것을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이, 마음은 있어도 아이를 돌볼 수 없는 경제적 형편이나 사회적 위치라는 것이 있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부도 그리고 정부의 무상보육정책을 비판하는 이들도 모두 자신들의 위치나 평범한 부부관계를 전제로 한 가정들만을 염두에 두고서 무상보육정책과 논쟁을 거듭한 것은 아닌지... 비단, 미혼모뿐만이 아니라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부부가 밤늦게까지 일을 하게 되는 맞벌이 부부의 사례들도 무시할 형편은 아닐 것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라고 필자는 판단하는데, 그것을 언급하면서 오늘의 얘기를 마치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정책을 얘기하면 대부분 돈과 관련하여서 생각들을 하고, 그러다보니 MB정권 비판자들은 4대강(이 부분은 거듭 강조하지만 복지정책보다는 부동산이나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서 비판을 하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예산을 복지에 썼으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무차별적 비난을 가하고 있고, 비교적 중도의 입장을 견지하는 진보나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조차 복지 정책을 예산과 관련하여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무슨 정책만 내어 놓으면 일단 그 대상이 확연히 눈에 띄거나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분야나 계층에게만 복지 혜택이 돌아갈 공산도 점점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 국가의 복지 정책이 최우선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은 가장 소외받는 계층과 집단이거나 혹은 당장은 효과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혜택이 시급한 분야가 되어야만 하는데, 미혼모는 그릇된 사회적 통념과 성적 담론의 부재로 인해서 이런 부분에서조차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현실을 곰곰히 돌아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것이다. 

 민주 국가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인간답게 존중받고 살아갈 권리를 가지는 사회이자 국가를 말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과연 어디쯤에 와 있는지 잘 생각해보시길...

 비키니녀 논란, 표현의 자유, 시위 문화, 진보적 저항 언론, 여성의 사회 진출, 기회 균등의 사회라는 화두들이 모두 자신이나 자신들이 속한 집단이나 조직이 좀더 지금의 사회 내에서 인간다운 대접과 존중을 받기를 원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 미혼모들처럼 자신들의 입장이나 처지조차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우리네 사회의 인식과 인권에 대한 개념은 걸음마 단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다시 말하겠다. 미혼모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적 지원을 위한 복지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지만, 그 이전에 잘못된 성적 관념과 사회적 통념들...그리고, 나와 다른 처지나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사회 전체의 불관용과 선입견들도 반성하는 사회적 흐름이나 조류도 좀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미혼모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나 선입견으로 인한 차별을 받는 계층이나 집단 혹은 개인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과연, 이들에 대해 필자를 비롯한 여러분 모두는 과연 어떤 생각과 시각과 말들로써,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과 무관심, 인격적 상처를 주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성의원의 비율을 몇 %로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나 공천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신들의 입장과 권리만을 주장하기 전에 우선 내가 누리고 싶은만큼의 권리를 다른 이들도 똑같이 원하고 있음도 생각하시길 권하고 싶다. 한국 사회는 나와 다른 이들, 다른 사상, 다른 생각, 다른 집단 혹은 조직에 대해서 동등하게 대우하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사회공공성이란 것이 꼭 돈이나 복지 정책같은 외형적인 부분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고민하였으면 좋겠다. 

 사회 시스템이나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시행하고 그 정책에 영향을 받는 계층이나 집단이 복잡해질수록 그런 정책이나 사회적 흐름이 빚어내는 사각지대와 거기에 놓여있는 이들의 입장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아울러 형성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S: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몇 자 부연설명을 적어놓겠다. 이 포스팅은 나꼼수를 흔들기도 아니고 야당을 비판하기 위해서 쓴 글도 아니다. 이번 비키니녀 논란을 보면서 생각한 필자의 생각을 적은 것이지, 누구를 가르치거나 훈계하려고 쓴 저급한 차원의 글은 더더욱 아니다.

 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것이 이번 총선에서의 승리는 이미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여러분은 왜 이렇게 안달을 하고 조바심들을 치는 것인가? 그동안 보았던 정부의 실정과 여당의 잘못에 대해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투표로써 심판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도 지금의 분위기를 아니까 여러 공약들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러분들이 그렇게 아둥바둥 한다고 해서 그들이 단번에 세상에서 사라지기라도 한다라는 것인가? 나꼼수 시청자가 1천만이 넘었다고 해서, 그들에 대해서 또한 일련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씁쓸함을 표현하는 것조차 진영논리 편가르기식 논리로 일관해서 보는 그 조급함과 편협함을 내려놓고, 모든 사안이나 의제 혹은 문제들을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보기를 바란다.

 과연 미혼모가 미성년의 어린 여성들만의 문제인가? 본질적으로 그것이 아니잖은가 말이다!!! 어떤 연령, 어떤 계층, 어떤 상황에 있는 여성이든간에, 미혼모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국 사회에서는 다른 국가나 사회들과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할만큼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라는 현실을 지적하였고, 그 문제의 본질에 잘못된 성적 담론과 성관념이 있다라는 말을 하였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를 비롯해서 그 누구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총선에서 분명 야당이 이길 것은 자명하니, 당연히 지금과 같은 표피적인 논쟁은 지양하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한국 사회는 일대일 개인일 경우에는 그나마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동등하게 취급을 하는데, 어느 한 쪽이 세력이 늘거나 영향력이 생기면 반드시 상대방을 자신들과 똑같이 동화시키거나 제외시켜야만 된다라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는 듯 해서 정말로 답답하고 아쉽다... 
Posted by 네 오 NEO
  여러분은 성매매 여성을 주변에서 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여성을 보셨다면, 어떤 생각들을 떠올리십니까? 대부분의 남성이라면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한번쯤 훔쳐 볼 것이고, 여성분들이시라면 자못 눈쌀을 찌푸리거나 혐오스런 마음으로 해당 성매매 여성들을 넌지시 바라 보시겠지요? 

  필자도 남성인 관계로 그런 여성분들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이나 가슴, 몸매의 굴곡에 시선이 가서 꽂히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관념상으로나 머릿 속으로는 필자와 같은 혈기왕성한 남성들의 성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여성의 성까지도 철저하게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렇게 무섭구나라고 생각하며 절치부심하곤 합니다.

 
 프롤로그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금도 경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분들은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에 부차적인 것이거나, 사회 구성원들이 원한다
면(?!) 언제든지 바꾸거나 선택 혹은 통제할 수 있는 체제, 이념 정도로 간단하게 치부하거나 생각하시겠지만, 필자는 그런 식의 어설프고 순진하며 이상에 찬 이분법적 견해와 단순 무식한 사고 체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한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든 혹은 그것과는 다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를 지녔던간에, 그 곳에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일단 침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매우 흡사하게 변해 버리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성매매 여성들이 아닐까 싶어서, 오늘은 영화 인터걸을 통해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진단하고, 결론 부분에서 필자가 하고픈 얘기들을 조목조목 소개하면서 이 포스팅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인터걸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구소련 개혁파들에 대한 강렬한 의문이 생기다
  여러분들은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지금의 러시아에서 공공연히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구소련의 후신격인 국가입니다. 구소련은 한때 자본주의 체제의 본산인 미국과 일대 자웅을 겨루었던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지닌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지요.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소위 시장의 원리보다는 공공재의 개념과 국가의 역할이나 기능이 매우 강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사익 추구나 각 집단간의 사적 이해 관계보다는 국가 혹은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도록 규정하고, 그런 이념과 사상을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통하여 끊임없이 주입시켰으며, 국가 경제는 철저하게 계획 경제의 개념으로 움직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렇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시킨 사람들의 노동 의욕은 갈수록 떨어져만 갔고 방만해진 정부 내 관료들의 무사안일함과 부정 부패는 극에 달했으며,  사회 전반에 대단히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사고가 넘쳐 흐르다 보니까, 점차 구소련 사회 전체가 활력을 크게 잃어 버리면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경제적 여력마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여러 군소국가들을 지원하기는 커녕, 중앙 정부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참담한 실정에까지 이르렀으며, 바로 이것이 구소련의 경제적인 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하려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낳은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와중에 나온 영화가 인터걸이었는데요. 필자가 짐작하기엔 아마도 지금 한국의 10대와 20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잠시, 인터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인터걸 개봉당시 고르바초프를 위시한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이 영화를 보며 " 인터걸이야말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정한 산물 " 이라고 찬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강렬한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세계 초강대국 소련의 최고 권력자와 개혁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행하던 구소련의 최고 엘리트인 개혁파 세력들이, 당시 구소련의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기로서니, 고작 성매매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보고서, 그토록 극찬을 하고 구소련 내에서만 영화 관램객이 무려 4천만명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의문은 당시 어린 나이의 필자가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경제적 지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졌음을 훗날 깨달았는데요. 
필자가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로써 훗날 깨달은 고르바쵸프를 위시한 구소련 개혁파 세력들의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소련은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익 추구를 금기시하다 보니 사회가 점차 극단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은 필연이었겠지요. 자연히 유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잔재해서 성문제에 관한한 제대로 된 공론조차 나오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 구소련도 성과 성담론을 극단적으로 터부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당시 구소련에서는 지금의 러시아에서와 같은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는 존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폐쇄적이고 경직된 체제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로 인해 소위 시장 개방의 물결이 구소련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성적인 측면도 활짝 열리게 되면서 인터걸이라는 존재가 생겨났고, 이것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당시 소련인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것인데요..

  ...문제는, 당시 고르바초프나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그저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려는 자본주의 체제보다는 인간적인 가치와 사회 공동체적 이상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100%로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생각이 영화 인터걸의 주인공인 타냐가 경제적 안정을 원해서 스웨덴으로 가지만,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시 소련으로 돌아간다라는 기본 줄거리에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 배경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이미 알다시피, 고르바초프와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이 확신에 차서 추진하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로 대변되던 시장 개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 증명이 결코 아니었으며구소련 체제내에 시장 개방의 물결이 가속화될수록 급격하게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제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로써만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소련의 붕괴와 몰락을 외신을 통해 바라보면서 소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함께, 그로 인한 필연적인 역사적 종말을 갈망하였던 필자나 그 밖의 많은 운동권 선후배들은 커다란 충격과 방향 상실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필자도 그랬었지만, 한국 사회내의 수 많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가들은 소위 물질 만능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도로 경멸하였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소련 붕괴 당시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선뜻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인정과 자기 반성, 그리고 성찰과 학습의 깊이가 점차 심화되고,  대학 졸업후 사회에 진출하여 정말로 돈 많고 능력이 있으며 똑똑한 이들을 많이 알고 사귀게 되면서, 그리고 사회와 회사를 통해서 이론이 아닌 실무적인 경험들이 하나 둘씩 쌓여 가면서, 또한 간간히 외국 출장등을 통해 현지 실정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20대 초반 무렵의 필자가 거의 신앙처럼 믿고 간직하였었던 무슨 가치와 사실의 구분같은 이분법적인 생각이나 민주주의적 가치 추구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거나 혹은 그것을 추동하고 바꾸는 근본적인 힘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인데, 이제 그 성찰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에필로그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개혁파 세력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일부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공산주의 체제에 들어와도 사회 구성원들의 투철한 공동체적 의식과 가치,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수십년간 다듬어진 사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질서와 통제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까지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는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서 사회 전반에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외려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동안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극도의 불신 회의와 함께, 중앙 정부에 대한 주변 복속 국가들의 반발까지 겹쳐지면서, 당시 구소련 사회 전체에 위기감을 크게 증폭시켰으며, 

  이런 급격한 사회 혼란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우려하고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쿠데타를 부르게 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더더욱 구소련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급격하게 상실시킴으로써, 결국엔 구소련 공산주의 체제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소련의괴와 몰락으로써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그저 소설이나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만 치부되고 마는 상황이 온 것이지요.

  그 반면에 자본주의 체제는 어떨까요...자본주의 체제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분명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었는데요. 과거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든 심각한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 대공황이라는 사태였죠.

  당시 자본주의는 정말로
생존 자체가 의심될만큼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소위 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었던 시장의 원리와 합리적 인간의 경제동이나 선택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철저한 허구였음이 만천하에 증명된 역사적 사건이 바로 대공황이었는데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대공황 당시 자본주의 체제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그랬듯이,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과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을 일부 받아들여,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복지와 공공재의 성격을 크게 강화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형태로 일대 변신을 꾀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입니. 한마디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자 그 모습이 크게 변형되거나 무너졌었는데, 자본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오히려 더욱 강고한 체제로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구소련
의 공산주의 체제는 전제 군주에 맞서 일어선 농민과 노동자들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서 세상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사상과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서 비롯되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의 익성과 공공재, 그리고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과 만인의 평등을 열렬하게 추구하고 꿈꾸었었던 희대의 천재들이자 철두철미한 상가이며 행동가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와 이상, 천재들 나름의 투철한 개인적 실천, 그리고 세뇌 수준에 가까운 사상 이념 교육들은 정작 현실에서 대다수 평범한 인간들의 기본적인 성향과 본능과는 그리 맞지 않았었던 겁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기심과 탐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공공재와 공익성, 인간적인 가치를 아무리 강조하고 주장해도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으며, 바로 구소련처럼 종국에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상실하고 무너지게 되었던 겁니다.

  따라서,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적절하게
사람들의 기본 욕구도 채워 주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는 강력한 배경이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고, 개인만의생활과 사익 추구를 터부시하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또한 그것을 통해서 자본의 논리를 또다시 강화시키고 그 범위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는 완벽에 가까운 피드백 시스템을 갖춘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특정 사회 내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과 행태는 세계 어디든지 비슷하게 변하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아닌가라는 말입니다.

  필자가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을 다룬 자료 몇 가지를 세세히 살펴보니, 지금의 러시아 젊은이들은 구소련의 기억들이 거의 없으나 바로 위에 부모 세대들은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이것이 급격한 시장 개방과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또 하나의 세대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사회적 요인이 되고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과거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며, 개인의 행복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한결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니, 이거 한번 깊이 생각할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바로 이측면에서 이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한 영역에서 사회의 공익성과 공공재의 개념을 추구하고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는 과연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통제하거나 제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것이 인간의 기본 본성이나 욕구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일까요?...

  산업 혁명이 발발하고 시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사회 집단이 역사에 출현하며 자본주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과거부터 지금 현재까지, 세계 유수의 모든 경제학자들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상하는 정치가와 시민 사회 모두가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한 그 근저에 도사린 본질적인 난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각 한국사회 내에서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위 미디어 법 문제도 결국 이것과 동일한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의 본능이라는 영역까지도 침투하고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단지 민주주의적 가치와 공공재라는 막연한 구호와 이념만으로써,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이나 절충 혹은 타협 없이도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취사선택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문제냐는 말입니다.


  필자는 구소련의 영화 인터걸과 그것의 실제 연장판격인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동안의 끊임없는 학습과 사회 경험등을 모두 종합해 볼 때, 자꾸만 회의적인 결론이 도출되며, 이런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일개인이나 어떤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막거나 거스를 수 없다라 일종의 무기력과 절망감,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진실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심각한 우려와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 오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좀더 생각해 볼 문제
  대공황 당시의 자본주의는 소위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시장의 원리를 맹신하였고 합리적 인간의 선택과 경제적 행위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다가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 공산주의 이념을 일부 채택하여,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말하는 복지 국가와 사회 공공재의 개념이 탄생한 것인데요.

  문제는, 인간이란 존재가 태생적으로 이기심과 탐욕을 가져서인지 이런 역사적 교훈을 철저하게 망각하고, 또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시장의 질서만을 강조하고 공공재와 공익성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불황을 낳았다는 것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모두 동감하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과거 대공황을 극복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을 취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또다시 복지라든가 공공재의 개념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 체제나 역사가 수렴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경제 불황은 과거 대공황 때만큼의 위기는 아니기에, 모든 것을 상품화시킴으로써 결국 인간까지도 하나의 자원이나 물질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심화를 좀더 지켜 보아야만 모종의 결론이 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그런 결말이 필자나 여러분들 생전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