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판2011. 12. 24. 19:23
 얼마전 필자는 피겨 여왕 김연아와 관련하여, 약간은 색다른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가...이른바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종편방송에 일일 앵커 형식으로 깜짝 출현을 했으며, 이로 인해 진보적 색채를 지녔다고 여기는 분들의 비판과 질책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의제 설정에 첫 단추(?)를 끼운 공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말들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요...

 
 오늘은 소위 김연아와 공지영으로 대변되는 종편 방송 논란의 진짜 문제점(?)을 필자의 관점에서 한번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문단에서는 최근 사회적 이슈를 주도한다는 "나꼼수"에 대한 필자만의 생각을 잠시 밝힐 예정이며, 마지막으로는 필자가 2년 전에 언급했던 디지털 방송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생각을 언급함으로써, 오늘의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1. 김연아, 공지영의 논쟁에서 보여지는 불편함

 그렇게 말들이 많았던 종편 개국도 벌써 한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초 진보를 자처하시는 분들의 우려(?)나 예상(?)과는 달리 시청률도 저조하고 프로그램의 내용도 고만고만한 모양새입니다. 그래서인지, 종편 개국과 관련하여 벌어졌던 김연아와 공지영 논란은 다른 사회적 이슈처럼 소리없이(?) 흘러가는 분위기처럼 비춰지고, 이 부분에 대해서 새삼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필자가 시류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시겠지만, 분명히 생각해 볼 만한 몇 가지 화두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김연아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과연 어떻습니까?...  국민 요정, 피겨의 여왕 등등... 그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인정하는 대중적 인기와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이도 어리고 미모까지 겸비한 최고의 재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그녀를 싫어한다거나 비난하기는 그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녀가 무엇을 하든지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게 힘과 희망을 주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 대중들의 바램이자 심리겠지요...

 그런데, 이런 그녀가 보수 성향으로 정평이 나 있는 조중동의 종편 개국 방송에 출연했다니, 진보 성향을 가진 분들의 실망과 상실감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의 심사를 대변이라도 하듯이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김연아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고, 여기에 김연아를 아끼고 따르던 팬들과 공지영으로 대변(?)되는 진보 측 사람들간의 일대 논쟁이 벌어졌으며...
 
 결국에는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둥 종편도 상업성 방송이기에, 김연아가 출연을 하고 안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봉합(?)을 꾀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김연아에 대해서 실망했다는 반응과 함께, 이제 운동은 그만두고 방송 매체나 따라다니며 돈이나 벌려고 한다라는 식으로 나름의 정리(?)를 하시는 분들이 상당한 것을 보면서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공지영이라는 작가는 왜 김연아에게 그런 비판을 쏟아냈으며,왜 사람들은 김연아가 종편 개국 방송에 출연한 것을 두고 그렇게 말들이 많았을까요?...

 김연아의 팬들과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간에 논쟁의 결말처럼, 말 그대로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이고 보수 진영에서도 김연아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있을테니, 그녀가 거기에 출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이며, 팬들에 대한 당연한 서비스이며 의무일텐데 말입니다. 

  이미 여러분들도 필자도, 그리고 공지영이라는 작가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김연아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너무 좋아서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종편이 이것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그만큼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 인물의 이미지 혹은 사진이나 영상이 미치는 심리적 효과가 너무나도 크다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던 셈인데, 필자가 여기에서 이런 고리타분하고 도식적인 얘기를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공지영이라는 작가는 요즘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도가니라는 영화의 모토가 된 소설의 원작자이며, 그동안 여러 편의 베스트 셀러를 기록한 인기 작가입니다. 여기에, SNS의 하나인 트워터를 통해 수 많은 팔로우어를 거느린 인물이기도 하지요. SNS가 쌍방향 소통이고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기능한다라고 진보 측 인사들은 주장을 하고 있고, 여기에 대해 공지영이라는 작가도 크게 이의를 달지는 않을 것이며, 실제로 세계 전역에서 SNS를 통해서 사회 정치적인 격변이나 개혁이 일어나고 있으니, 더더욱 이런 주장에는 힘이 실리겠지요...

 


 한국 사회 내에서도 당초 우려와는 달리, SNS의 강세에 종편 방송이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이렇게 시대는 급변하고, 이런 흐름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왜 과거의 진영 논리, 편가르기 논리식 논쟁을 주도하였는지에 대한 의도가 필자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입으로는 SNS를 통한 쌍방향(?) 소통을 얘기하지만, 여전히 의제는 특정 인물이 주도를 하고 있고, 그 특정 인물조차 쌍방향 소통의 대명사인 트워터를 하면서도, 과거의 신문이나 방송이 일방향적으로 대중들에게 정보나 뉴스를 전달하던 시대의 프레임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고 접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라는 얘기입니다.  

 보수로 대변되는 조중동을 반드시(?!) 무너뜨리기 위해서 김연아라는 인물의 대중적 이미지와 호감도에 일종의 금이 가게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만큼, 공지영 작가나 진보를 자처하는 분들은 사상적 여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까...아니면 대중들의 인식 수준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선수를 친 것인가요?...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들 각자가 좀더 고민하시길 바라고...필자는 한국인은 특히나 이미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라는 정도의 결론으로 마무리하면서, 다음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2. 나꼼수를 통해 본 SNS 의제 설정에 관한 단상

 SNS 열풍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더군요...바로 "나는 꼼수다" 줄여서 나꼼수 열풍이 실로 대단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나꼼수는 현정부의 정책이나 사회적 이슈를 그들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자신들의 생각을 SNS를 통해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데 성공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오죽하면, 나꼼수의 일원인 김어준씨가 미국 하버드대에까지 초대를 받았겠습니까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것이 아닙니다.

 ...요즘에 텔레비젼을 살펴 보면, 오디션 열풍이 실로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의 이름을 보면 "나는..." 이라는 식으로 시작되는 프로그램들이 상당하다라는 것을 여러분들도 알고 계실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고 자신이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할 경우에, 개인적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끼기에 이런 류의 제목들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라고 하겠습니다. "나는 꼼수다"라는 제목도 사실 이런 시대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고, 알게 모르게 일반 대중들의 정체성과 자각을 일깨우는 측면이 존재합니다. 또한, SNS가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도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 과거 자신들이 보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게 되고,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이건 정말 철저한 가정이지만...만약에 현정부가 없었다면, 나꼼수는 존재했을까요...(?나꼼수 맴버들도 현정부를 위한 헌정 방송이라고 공언을 한 것을 보면 그리 틀린 가정은 아닌 듯 합니다만...) 현정부의 정책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나꼼수의 의제 설정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모두 보수와 진보의 대결 혹은 편가르기식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얘기를 진행할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냉정한 판단입니다. 

 왜냐하면, 그 방송을 보고서 사람들이 내리는 반응이나 결론은 언제나 항상 현정부는 안된다, 보수는 가망이 전혀 없다라는 도식적인 결론만 도출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번이라도 이런 틀을 벗어나서 보수와 진보가 논쟁하고 대결한 적이 있었던가요?...전혀 없었습니다...시대가 변하고 권력 구도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고, 세대간의 역학 관계나 인식이 변했다고 말들은 하면서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집권 세력에 대한 저항 의식을 좀더 세련되게,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의 젊은이들 구미에 맞게 표현하는 틀을 하나 만든 정도이지요...

 어쨌거나, 여기서도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자면...SNS를 통한 의제 설정에서 집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식과 함께,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의 편가르기식 논리를 좀더 진화(이 부분은 아래 디지털 방송을 얘기하면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시켜서, 나꼼수는 저항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미국에까지 진출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라는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음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3. 디지털 방송
 
필자는 몇 년전에 미디어 법 논란과 관련하여, 디지털 방송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세계적이자 시대적 흐름이기에, 급변하는 미디어 체계를 정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국가적 전략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거대 자본(디지털 방송에서 외국 자본의 유입이 꼭 외국인의 이름으로만 이루어질까요? 자본의 속성상 이건 정말로 순진한 생각이겠지요...?)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그런 측면에서 조중동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법적 제도적 정비를 통해서 투명성을 강화하면서 미래를 대비하자라고 주장하였다가, 진보적 성향을 가진 분들에게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거의 3년이 흐른 지금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미디어 랩법을 둘러싸고 여야가 벌이는 논쟁의 기저에는 보수와 진보의 세력 다툼에 기반한 지분 나누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하는 말입니다...
 
 광고에 대한 비율을 조금이라도 늘리겠다라는 여당과 조중동이나, 이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야당이 싸우는 동안에도... SNS에서의 1인 미디어나 나꼼수같은 대안 언론 매체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면서도...다들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한쪽에서는 종편의 광고를 좀더 늘리려고 하고 한쪽에선 줄이려고만 하다 보니, 정작 군소 지방 언론사나 신문사가 거덜이 나게 생겼다지요...

  

이 시점에서, 필자는 광고 지분율을 둘러싼 정치권의 도식적인 논쟁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늘상 그랬던 것처럼, 이 부분에만 집중하면... 보수와 진보 진영간의 밥그릇 싸움은 평행선을 달릴 뿐 합치점을 절대로 찾을 수 없고 사회적 통합도 불가능합니다. 막말로 조중동이나 기존 방송사의 규모가 있는데, 이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군소 지방 언론사들이나 신문사에도  배정한다라는 발상 자체가 오히려 구시대적이고 역차별적(?) 소지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SNS의 최대 강점은 쌍방향 소통이라고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필자도 의제 설정이 아닌 정보 교환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말은 거의 100% 맞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보를 다루면서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인식하고, 그것을 변혁하겠다라는 자아가 강해지면서...소위 "나는..." 이라는 식의 프로그램이 크게 늘고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변화의 바람이 거센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디지털 방송도 사실 쌍방향 소통을 매개로 하는 방송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하시나요...? 

 필자는 3년 전 미국에서 디지털 방송에 대한 뉴스와 함께, 아이폰 그리고 페이스 북을 접하면서 디지털 방송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것은 필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비전이니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디지털 방송이 정말 쌍방향으로 진행이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초창기에는(?!) 그만큼의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처럼 관련 기술이 진화를 거듭한다면 SNS에서 보여지는 나꼼수처럼 각 방송사가 전하는 각종 뉴스나 정보, 콘텐츠를 시청자가 원하는 분량만큼만 보거나 자체적으로 재해석하고 편집할 수 도 있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라는 생각 말입니다. TV에서 나오는 드라마나 각종 콘텐츠를 보면서 인터넷이나 기타 다른 정보를 검색하는 단계에 이른 스마트TV가 선보이고, 음성만으로 기능을 수행하는 텔레비전도 등장한다고 하니 필자가 공상 과학 소설같은 상상을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만...     

 

 ...이런 마당에, 광고 지분율에만 목을 메는 것은 당장의 정치적 이해와 이득만을 생각하는 것이지, 디지털 방송의 가능성에 대한 무지가 아닐까요? ...텔레비젼을 보면서 프로그램이나 각종 콘텐츠를 자신이 보고 싶은 만큼만 볼 수 있다면, 광고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왜 프로그램만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큼 편집할 수 있고, 광고는 자신이 보고 싶은 만큼만 볼 수 있다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실까요?...

 필자가 판단하기에, 지금대로 스마트TV 기술이 발전하고 SNS를 통한 정보 교환이나 자체적 콘텐츠 생산이 가능하다면, 디지털 방송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꼼수의 형식처럼...일반인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나름대로 준비한 자료나 형식으로 상호간 토론을 진행하고 실시간으로 의견을 수렴한다든가, 독서 프로그램 같은 콘텐츠 생산에서도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무작위적인(?) 방법으로 책을 선정하게 하고, 그 책을 읽고 난 다음 작성한 독서 후기를 가지고 얘기하거나 토론하는 프로그램,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도 한 작가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대본에 의한 드라마가 아닌, 과거 이휘재의 인생 극장처럼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여러 대본을 만들어 놓고 각기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서 원하는 시청자에게 방송하는 형식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차원적이고 다원적인 방송 환경이 조성되면, 어느 시점에는 똑같은 프로그램의 내용도 시청자의 연령대나 기호, 혹은 학력 수준, 경제 사정에 따라 편집의 내용이 각기 달라지면서, 새로운 문화와 계층이 형성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고...

 ...그러려면, 디지털 방송에 대한 장기적인 국가 전략과 함께, 양질의 콘텐츠 생산에 따른 초창기 자금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3년전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미디어 법에 일부 동의를 했었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필자가 진보나 보수 양측 모두에게 너무 앞서가거나 지나친 기대를 했었던 모양입니다... 

 SNS와 같은 정보의 쌍방향 소통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이나 콘텐츠의 제작은커녕, 과거 아날로그 방송에서 하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여기에 특정 정치인이나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보 보수간의 편가르기 식 싸움은 그야말로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3년전 필자처럼 원래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진보로부터는 보수 진영의 인물로, 보수로부터는 신뢰가 안 가는 인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분명히 말하였듯이 필자는 진영논리, 편가르기식 논리에는 진저리를 치는 입장이었으나 현실은 여전히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김연아가 종편에 출현한다고 하니까 진보 성향의 공지영이 작별 인사를 고한 것이나, 현정부에 대한 반감과 저항의식에 SNS를 통한 나꼼수를 선보인 것이나, 디지털 방송을 둘러싼 주파수 대역대 논쟁, 광고 지분율 논쟁이나 하고 있는 모습들은 모두 편가르기의 확장판이자 시리즈물일뿐입니다.
 
 SNS와 디지털 방송을 둘러싼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기술의 변화, 문화적 환경의 변화 그리고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고 기계적인 역학 구도에 골몰하며 무한 대결을 펼치는 기성 정치권, 의제 설정을 선도하는 일부 인사들로 인해서...진짜로 피해를 보는 것은 무당파적 성향을 가진 필자를 포함한 일반 국민들인 것입니다...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4. 2. 05:24
  요근래 한국의 뉴스를 살피니,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가 꿈의 200점대 고지를 뛰어 넘으면서 우승을 하고 난 후 그녀의 모교가 될 고려대가 그녀의 이미지를 차용한 광고를 내고 현정부의 여당인 한나라당은 그네들의 홈 페이지에 소위 김연아 패러디를 올려서 수 많은 네티즌들이 이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도가 지나치다라는 말들이 나오는 모양인데, 멀리서 지켜보자니 또 다른 이유에서(!) 김연아 패러디와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 반응이 사뭇 불편하게 느껴져 개인적인 견해를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기성 언론과 블로거 뉴스를 오르내렸던 수 많은 김연아 관련 기사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부분 김연아가 너무나 척박한 주변 환경을 이겨내고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으므로 정말로 대단한 선수이며, 우리는 거기에 대해 아낌없이 성원과 격려를 보내야 마땅하고, 외국의 피겨 스케이팅 관련자들도 한결같이 그녀를 칭찬한다는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전하면서, 또한편으로는 이렇게 소중한(!) 연아를 정말 짜증스럽고 보기 싫은 한나라당이 패러디했다는 사실에 자못 분개한다는 기사들이 주류인데, 그 심정은 글쓴이도 충분히 이해가 가고 일면 동감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치인들이 스포츠를 이용해 국민들을 현혹하고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린 사례는 한국 정치사에서 너무나 많아서 일일히 열거하기도 불가능할 지경인 판국에, 유독 김연아에게만은 이런 현상이 예외여야만 한다는 국민적 정서나 주장은 너무 과잉이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한편으로 김연아 선수가 더욱더 기량을 향상시키거나 제2,제3의 김연아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는 무심하면서도 얄퍅하게 패러디나 하고 좋은 분위기에 살며시 편승하거나 묻어 가려고 한다는 비판에도 분명히 일리가 있으나 유감스럽지만 이 부분도 100%로 동감할 수 없는 소지가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그렇게 여러분들이 열광하는 그만큼 한국의 정치인이란 작자들은 김연아라는 호재(?)를 결코 포기할 수 없게 된다는 반작용적(?!)인 측면은 왜 깊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가장 강력한 소재
 
글쓴이도 그렇지만 여러분들도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와 전국적인 응원의 열기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비록 짧은 한순간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온 국민이 무슨 좌우, 보수 진보등의 온갖 갈등에서 벗어나서 모두 하나가 되었었고 서로 부둥켜 안으며 마치 내 일처럼 기뻐했었던 사실을 회상하면서 지금의 여러 어려운 사회적 상황을 지켜보면 다급해진 한나라당이 김연아 패러디를 올릴 법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한국은 빈부간, 계층간의 갈등으로부터 시작해서 지역 갈등,남북 갈등,남녀간의 성적 갈등, 세대 갈등..등등 실로 세세한 언급이 거의 불가능할만큼의 여러가지 갈등과 모순들이 사회 내에 깊이 잠재되어 있다가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거나 정치적인 지형이 극단적으로 흐르면 무슨 수학공식마냥 분열과 대결 양상으로 곧장 치닫고는 하는데, 바로 이런 때에 스포츠만큼 국민을 하나로 묶고 단결시켜 주거나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를 띄워 줄 소재가 사실상 없다는 데에서 나오는 지극히 서글픈 사회적 헤프닝이 아니겠냐는 말이다.

  며칠 전 WBC가 끝나고 나니까 일본이나 미국처럼 보다 폭 넓은 야구의 저변화를 위해서 아낌없는 국민적 성원과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극히 판에 박힌 말들이 난무하더니만, 이제 그 대상이 단지 김연아로 바뀌어 또다시 되풀이되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지난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당시 월드컵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한국은 지금부터 유소년 축구를 육성해야 한다고 발언하자 대부분의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성 언론을 비롯해서 여러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대대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공언을 했었지만 지금 과연 그 열기와 관심이 실제 축구장에 반영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고개를 저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김연아에 대한 국민적 열광이 또다른 형태의 왜곡된 스포츠 종목으로의 인기 편중과 국민적 우상화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자꾸 생긴다. 사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김연아가 활약하는 피겨 스케이팅 종목만 비인기였고 척박한 환경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몇몇 특정 종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이 사정은 다 마찬가지라는 점을 생각해볼때 더욱 그렇다.
  
선진국형 사회 스포츠가 아닌 전근대적인 엘리트 스포츠가 빚어내는 왜곡된 국민적 관심과 열기
 
이 시점에서 잠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 글쓴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당시 나는 학교의 야구부 선수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지켜 보았었는데, 그들은 학교 수업은 듣지도 않았고 거의 매일 무슨 연습이다 경기다 하며 자리를 비우곤 했었으며 선생님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였었다. 당시 그들에게는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허락이 되지 않은 듯 보였으며 수업에 어쩌다가 들어 왔다고 해도 연습과 경기에 지쳐 피곤해서인지 수업 시간내내 잠만 퍼질러 자다가 교실을 나가는 모습으로만 나의 기억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한국의 거의 대부분의 스포츠 선수들이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마도 이런 식이라고 보여진다. 


  여기서 왜 글쓴이의 고교 시절 얘기를 하냐면 간단하게 말해서, 한국의 스포츠는 유럽이나 미국 혹은 가까운 일본처럼 저변화되고 대중적인 기반을 토대로 나오는 사회 스포츠가 아닌 엘리트 스포츠 선수만을 따로 육성하는 방식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특별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소수의 선수를 국가 혹은 지역 ,학교가 선별,선택 한 후 집중 육성함으로써 국내 혹은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는 이 망국적인(?!) 패러다임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시절부터 시작해서 10 년간의 소위 민주화 정부를 거치고 난 지금까지도 이른바 스포츠를 통한 애국주의를 은연중에 국민들에게 주입하고 현혹하면서 그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면서 여전히 건재하다. 여러분은 분명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시겠지만 여러분들이 특정 스포츠나 선수에게 열광을 하면 할수록 정치 사회적인 모순이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사회 비판적 시선은 상대적으로 상당부분 완화되거나 누그러진다는 역사적 학습효과(?)를 기성 정치인들은 지난 수 십년간 톡톡히 경험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나면, 특히나 금메달이 확정되면 하염없이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눈물을 흘리는 선수의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이들이 그렇게 다른 외국의 선수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하리만치(?!) 우는 이유야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사연이 분명 있겠으나, 표면적으로만 살펴 보아도 그만큼 한국의 스포츠 환경이 너무나 척박하고 이른바 소수 엘리트 육성방식에 의해서 키워진 자신들이 만약 좋은 성적이나 메달을 따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개인적 실패의 차원을 떠나서 국민적, 국가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사회 혹은 인생의 낙오자(?!)라는 지극히 절박하고 긴장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 온 그간의 생활들이 떠올라서 더욱 서럽게 우는 것이 아닐까... 

  IMF외환위기 당시 실의에 빠진 국민들을 위로했다던 야구의 박찬호나 골프의 박세리를 한번 생각해보자.
바로 지금처럼 당시에도 국민들이 사회 내에서 아무런 희망이 없다며 그만큼 그들에게 열광을 한 덕분에(?!),
당시 박찬호 같은 경우는 거의 매일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면서 하루 아침에 국민적 영웅이 되었으며 박세리는 무슨 외환위기 극복 공익광고에까지 출현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런 스포츠 애국주의의 물결은 이제 한나라당의 김연아 패러디로 좀더 업그레이드 되어서 국민들 앞에 나타난 것일뿐 사실상 그 내면에 흐르는 본질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라는 점을 여러분들도 분명히 느낄 것이라고 글쓴이는 판단한다.

이러다가 박세리 때처럼 미국이 아닌 일본으로 피겨 유학을 떠나려는 이들이 나오지나 않을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며 작용이 있으면 분명히 반작용이 있듯이 ,여러분들이 김연아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치리만큼 과열된다 싶으면 교활하고 노련한 정치인들은 그 열기와 관심을 어떻게든 정치,사회적인 난관 극복이나 모순,갈등의 봉합용(?!) 소재로 쓰게 된다는 사실을 그저 반감이나 분노의 차원이 아닌 좀더 현실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보다 깊이 생각하면서 이번 한나라당의 김연아 패러디와 그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을 살펴보면 조금은 다른 생각과 느낌이 들 것이라고 글쓴이는 감히 확신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김연아에 대한 대대적인 국민적 호응과 뜨거운 열기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이런 우려마저 생겼다.

 외환위기 당시 골퍼 박세리가 LPGA에서 승승장구하고 국민적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명성과 부를 쌓게 되자, 한국의 부모님들 중 재력이 꽤나 있다는 분들이나 심지어는 일부 중산층의 학부모들까지 자신의 자제들을 너도나도 미국에 골프 유학을 보내겠노라고 난리 부르스를 쳤었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힙입어 박세리 이후에도 몇몇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이 두각을 나타내었었지만, 이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골프의 사회적 저변 확대를 통한 선수 육성이 아니라 엘리트 스포츠 선수를 키워내는 또다른 방식이기에, 이제 국제무대에서 연일 승승장구하는 김연아 선수와 국민들이 그런 그녀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또다른 일군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제를 소위 피겨 선진국이라는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 제2의 김연아처럼 만들겠다고 설쳐대는 가관이나 꼴불견을 조만간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결론
 김연아는 분명 여러분들의 성원과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과 실력을 충분히 겸비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열광하는 여러분의 심정도 십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다시 한번 글 말미에 분명히 밝혀둔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토록 칭찬하고 열광하는 김연아도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대부분의 비인기 스포츠 종목에 비하면 거의 전폭적인(?!) 수준에 가까운 사회,국가적 지원(?!)으로 특출한 외국인 코치를 만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 프로그램의 지도를 받아서 결국 오늘 날과 같은 성적을 내었으며, 이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소수의 엘리트 스포츠 선수를 선발하고 집중 육성한 뒤, 국제 대회에 출전시켜 좋은 성과를 거두게 하고, 마치 그것을 국가적인 위상이 향상되었다는 이미지로 바로 연결시키거나 국민들의 관심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려는 정치적인 소재로 사용했던 과거 군사독재 정권과 민주화 정부(김대중 정부 시절 월드컵 열기속의 서해교전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결말이 났는지를 깊이 생각하시길!) 시절의 구시대적인 행태라는 점에 문제가 숨어 있으며, 지금도 김연아 패러디 같은 것들을 통해 그대로 구태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정말로 답답하고 서글픈 현실과 함께 정작 여러분 자신들이 실제 생활의 개선을 위한 노력엔 상대적으로 부실하거나 주변 환경과 사회적 모순에는 개인적으로 내심 한계를 느끼며 대부분 무기력하거나 혹은 무심하게 넘어 가면서도, 그 반대급부로써 김연아와 같은 일부 스포츠 선수에게 지나치게 열광하며 관심을 보이는 모습들...양쪽 모두 머나먼 이국 땅에서 마음 편하게 지켜 보기에는 왠지 불편한 것이다...

 
p.s
 
요즘 한국의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보면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말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이에 반해 미국인들은 누군가를 마냥 부러워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보다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사회에서 누군가가 다른 이를 부러워하거나 선망한다고 말하거나 열광을 보내면 돌아오는 대답은 너도 그렇게 하면 되지라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이런 측면은 그들에게서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보여지며 한국에 계시는 여러분들도 김연아같은 이들을 지켜보며 선망하고 열광하며 잠시라도 삶의 위안을 받았다고 느끼는 심정을 조금은 다른 차원으로...이를테면 각자의 생활과 본질적 사회 문제에 좀더 치열하게 집중하시기를 바라며 이런 말이 한국 사회내에서 유행이 되기를 개인적으로 희망해 본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가 아니라 부러우면 하는 거다...나도 !!! 라고 말이다...

 
Posted by 네 오 N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