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성매매 여성을 주변에서 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 그런 여성을 보셨다면, 어떤 생각들을 떠올리십니까? 대부분의 남성이라면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한번쯤 훔쳐 볼 것이고, 여성분들이시라면 자못 눈쌀을 찌푸리거나 혐오스런 마음으로 해당 성매매 여성들을 넌지시 바라 보시겠지요? 

  필자도 남성인 관계로 그런 여성분들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해당 여성의 얼굴이나 가슴, 몸매의 굴곡에 시선이 가서 꽂히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관념상으로나 머릿 속으로는 필자와 같은 혈기왕성한 남성들의 성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여성의 성까지도 철저하게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렇게 무섭구나라고 생각하며 절치부심하곤 합니다.

 
 프롤로그
  그리고 바로 이런 측면에서, 지금도 경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분들은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에 부차적인 것이거나, 사회 구성원들이 원한다
면(?!) 언제든지 바꾸거나 선택 혹은 통제할 수 있는 체제, 이념 정도로 간단하게 치부하거나 생각하시겠지만, 필자는 그런 식의 어설프고 순진하며 이상에 찬 이분법적 견해와 단순 무식한 사고 체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한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든 혹은 그것과는 다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를 지녔던간에, 그 곳에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일단 침투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매우 흡사하게 변해 버리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성매매 여성들이 아닐까 싶어서, 오늘은 영화 인터걸을 통해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진단하고, 결론 부분에서 필자가 하고픈 얘기들을 조목조목 소개하면서 이 포스팅을 마치고자 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인터걸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구소련 개혁파들에 대한 강렬한 의문이 생기다
  여러분들은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지금의 러시아에서 공공연히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구소련의 후신격인 국가입니다. 구소련은 한때 자본주의 체제의 본산인 미국과 일대 자웅을 겨루었던 세계 최고의 초강대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지닌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지요.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르게, 소위 시장의 원리보다는 공공재의 개념과 국가의 역할이나 기능이 매우 강했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사익 추구나 각 집단간의 사적 이해 관계보다는 국가 혹은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도록 규정하고, 그런 이념과 사상을 태어날 때부터 교육을 통하여 끊임없이 주입시켰으며, 국가 경제는 철저하게 계획 경제의 개념으로 움직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렇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고 공산주의 이념을 주입시킨 사람들의 노동 의욕은 갈수록 떨어져만 갔고 방만해진 정부 내 관료들의 무사안일함과 부정 부패는 극에 달했으며,  사회 전반에 대단히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사고가 넘쳐 흐르다 보니까, 점차 구소련 사회 전체가 활력을 크게 잃어 버리면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경제적 여력마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급기야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여러 군소국가들을 지원하기는 커녕, 중앙 정부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참담한 실정에까지 이르렀으며, 바로 이것이 구소련의 경제적인 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하려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낳은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와중에 나온 영화가 인터걸이었는데요. 필자가 짐작하기엔 아마도 지금 한국의 10대와 20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잠시, 인터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인터걸 개봉당시 고르바초프를 위시한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이 영화를 보며 " 인터걸이야말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정한 산물 " 이라고 찬탄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필자는 바로 여기에서 강렬한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세계 초강대국 소련의 최고 권력자와 개혁을 주장하고 그것을 실행하던 구소련의 최고 엘리트인 개혁파 세력들이, 당시 구소련의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기로서니, 고작 성매매 여성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 한편을 보고서, 그토록 극찬을 하고 구소련 내에서만 영화 관램객이 무려 4천만명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의문은 당시 어린 나이의 필자가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경제적 지식과 역사적 배경을 가졌음을 훗날 깨달았는데요. 
필자가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로써 훗날 깨달은 고르바쵸프를 위시한 구소련 개혁파 세력들의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구소련은 위에서 필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익 추구를 금기시하다 보니 사회가 점차 극단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은 필연이었겠지요. 자연히 유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잔재해서 성문제에 관한한 제대로 된 공론조차 나오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 구소련도 성과 성담론을 극단적으로 터부시하였으며, 그로 인해 당시 구소련에서는 지금의 러시아에서와 같은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는 존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폐쇄적이고 경직된 체제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로 인해 소위 시장 개방의 물결이 구소련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자, 성적인 측면도 활짝 열리게 되면서 인터걸이라는 존재가 생겨났고, 이것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당시 소련인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던 것인데요..

  ...문제는, 당시 고르바초프나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은 그저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려는 자본주의 체제보다는 인간적인 가치와 사회 공동체적 이상을 추구하려는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100%로 확신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생각이 영화 인터걸의 주인공인 타냐가 경제적 안정을 원해서 스웨덴으로 가지만, 결국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시 소련으로 돌아간다라는 기본 줄거리에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 배경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이미 알다시피, 고르바초프와 구소련의 개혁파 세력들이 확신에 차서 추진하던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로 대변되던 시장 개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공산주의 체제의 우월성 증명이 결코 아니었으며구소련 체제내에 시장 개방의 물결이 가속화될수록 급격하게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제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로써만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구소련의 붕괴와 몰락을 외신을 통해 바라보면서 소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함께, 그로 인한 필연적인 역사적 종말을 갈망하였던 필자나 그 밖의 많은 운동권 선후배들은 커다란 충격과 방향 상실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필자도 그랬었지만, 한국 사회내의 수 많은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가들은 소위 물질 만능주의를 끝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도로 경멸하였으며,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을 보장받는 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소련 붕괴 당시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선뜻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인정과 자기 반성, 그리고 성찰과 학습의 깊이가 점차 심화되고,  대학 졸업후 사회에 진출하여 정말로 돈 많고 능력이 있으며 똑똑한 이들을 많이 알고 사귀게 되면서, 그리고 사회와 회사를 통해서 이론이 아닌 실무적인 경험들이 하나 둘씩 쌓여 가면서, 또한 간간히 외국 출장등을 통해 현지 실정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20대 초반 무렵의 필자가 거의 신앙처럼 믿고 간직하였었던 무슨 가치와 사실의 구분같은 이분법적인 생각이나 민주주의적 가치 추구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거나 혹은 그것을 추동하고 바꾸는 근본적인 힘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것인데, 이제 그 성찰의 일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에필로그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개혁파 세력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일부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공산주의 체제에 들어와도 사회 구성원들의 투철한 공동체적 의식과 가치,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수십년간 다듬어진 사회 공동체의 기본적인 질서와 통제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까지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는 그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서 사회 전반에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주기 시작하였으며, 외려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동안의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극도의 불신 회의와 함께, 중앙 정부에 대한 주변 복속 국가들의 반발까지 겹쳐지면서, 당시 구소련 사회 전체에 위기감을 크게 증폭시켰으며, 

  이런 급격한 사회 혼란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우려하고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쿠데타를 부르게 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더더욱 구소련 사회 전반의 통제력을 급격하게 상실시킴으로써, 결국엔 구소련 공산주의 체제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소련의괴와 몰락으로써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념은 그저 소설이나 상상에 불과한 것으로만 치부되고 마는 상황이 온 것이지요.

  그 반면에 자본주의 체제는 어떨까요...자본주의 체제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분명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었는데요. 과거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든 심각한 위기가 있었는데,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 대공황이라는 사태였죠.

  당시 자본주의는 정말로
생존 자체가 의심될만큼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소위 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었던 시장의 원리와 합리적 인간의 경제동이나 선택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철저한 허구였음이 만천하에 증명된 역사적 사건이 바로 대공황이었는데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대공황 당시 자본주의 체제도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그랬듯이,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과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을 일부 받아들여,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말하고 생각하는 복지와 공공재의 성격을 크게 강화하는 수정 자본주의의 형태로 일대 변신을 꾀함으로써 중대한 역사적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입니. 한마디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자 그 모습이 크게 변형되거나 무너졌었는데, 자본주의는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오히려 더욱 강고한 체제로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구소련
의 공산주의 체제는 전제 군주에 맞서 일어선 농민과 노동자들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서 세상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사상과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서 비롯되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각 여러분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의 익성과 공공재, 그리고 인간의 천부적 기본권과 만인의 평등을 열렬하게 추구하고 꿈꾸었었던 희대의 천재들이자 철두철미한 상가이며 행동가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와 이상, 천재들 나름의 투철한 개인적 실천, 그리고 세뇌 수준에 가까운 사상 이념 교육들은 정작 현실에서 대다수 평범한 인간들의 기본적인 성향과 본능과는 그리 맞지 않았었던 겁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기심과 탐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공공재와 공익성, 인간적인 가치를 아무리 강조하고 주장해도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으며, 바로 구소련처럼 종국에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상실하고 무너지게 되었던 겁니다.

  따라서, 이런 파국을 막으려면 적절하게
사람들의 기본 욕구도 채워 주어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가 도사리는 강력한 배경이라는 얘기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고, 개인만의생활과 사익 추구를 터부시하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권장하며, 또한 그것을 통해서 자본의 논리를 또다시 강화시키고 그 범위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는 완벽에 가까운 피드백 시스템을 갖춘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자본과 시장의 논리가 특정 사회 내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반응과 행태는 세계 어디든지 비슷하게 변하고 마는데, 그런 모습의 일환이 바로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거리가 아닌가라는 말입니다.

  필자가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을 다룬 자료 몇 가지를 세세히 살펴보니, 지금의 러시아 젊은이들은 구소련의 기억들이 거의 없으나 바로 위에 부모 세대들은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이것이 급격한 시장 개방과 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또 하나의 세대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사회적 요인이 되고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과거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며, 개인의 행복과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한결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니, 이거 한번 깊이 생각할만한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바로 이측면에서 이제 필자는 여러분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한 영역에서 사회의 공익성과 공공재의 개념을 추구하고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가치는 과연 자본주의와 시장의 논리를 통제하거나 제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것이 인간의 기본 본성이나 욕구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일까요?...

  산업 혁명이 발발하고 시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사회 집단이 역사에 출현하며 자본주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과거부터 지금 현재까지, 세계 유수의 모든 경제학자들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상하는 정치가와 시민 사회 모두가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한 그 근저에 도사린 본질적인 난제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각 한국사회 내에서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소위 미디어 법 문제도 결국 이것과 동일한 영역에 속한 문제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의 본능이라는 영역까지도 침투하고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단지 민주주의적 가치와 공공재라는 막연한 구호와 이념만으로써, 아무런 현실적인 대안이나 절충 혹은 타협 없이도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취사선택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문제냐는 말입니다.


  필자는 구소련의 영화 인터걸과 그것의 실제 연장판격인 러시아 성매매 여성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동안의 끊임없는 학습과 사회 경험등을 모두 종합해 볼 때, 자꾸만 회의적인 결론이 도출되며, 이런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일개인이나 어떤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막거나 거스를 수 없다라 일종의 무기력과 절망감,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진실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심각한 우려와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 오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좀더 생각해 볼 문제
  대공황 당시의 자본주의는 소위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시장의 원리를 맹신하였고 합리적 인간의 선택과 경제적 행위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다가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 공산주의 이념을 일부 채택하여,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말하는 복지 국가와 사회 공공재의 개념이 탄생한 것인데요.

  문제는, 인간이란 존재가 태생적으로 이기심과 탐욕을 가져서인지 이런 역사적 교훈을 철저하게 망각하고, 또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으로 시장의 질서만을 강조하고 공공재와 공익성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불황을 낳았다는 것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모두 동감하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과거 대공황을 극복한 것과 마찬가지 방식을 취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또다시 복지라든가 공공재의 개념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 체제나 역사가 수렴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되는 것일까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현재의 경제 불황은 과거 대공황 때만큼의 위기는 아니기에, 모든 것을 상품화시킴으로써 결국 인간까지도 하나의 자원이나 물질로 환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심화를 좀더 지켜 보아야만 모종의 결론이 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그런 결말이 필자나 여러분들 생전에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Posted by 네 오 NEO
사회 비판2009. 5. 14. 06:16
  여러분은 저작권하면 무슨 생각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특정 개인의 창작물이나 저작을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무단 도용과 그로 인한 법적 제재같은 것들을 연상하시나요? 글쓴이가 짐작하건데, 많은 분들이 저작권에 대해서 고민하고 논란이 분분하지만, 또다른 많은 분들은 지금도 여전히 저작권이란 말이 갖는 의미와 개념이 내심 못마땅하고 불편하시거나 혼란스럽고 이해가 안되는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필자는 그런 여러분들의 생각이 분명히 일리가 있고 저작권이란 개념 자체가 불편하고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역사와 배경을 짚어보면서 깨달았으며, 저작권 문제가 단지 법조계 인사(일부 법무법인)나 국회의원같은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만 관여할만큼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간략하게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인쇄 기술의 발전과 저작권 개념의 탄생
 누군가 여러분에게 인류 역사상 인간의 삶과 의식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님들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겠지만, 글쓴이는 인쇄 기술의 발달로 인해 구두, 필사 문화가 사라진 것을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혹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필자에게 물어 본다면, 인쇄 문화의 발전이 사유 재산과 시장이라는 개념과 시민 사회의 형성에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함으로써, 오늘 날 우리를 둘러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형성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사회에 필수 요소인 돈을 금속이 아닌 종이 화폐로 대량으로 찍어 낼 수 있게 됨으로써, 시장의 외연 확장을 꾀할 수 있게 되었고, 표준화된 지도의 대량 보급으로 육로와 해로를 통한 여행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무역과 교역의 범위도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장의 영역이 점차 복잡해지고 커지면서 거래되는 물품의 종류도 점차 늘어남에 따라, 상품에 대한 균일한 가격 체계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도표라든가 증권, 수표, 약속 어음같은 것들이 속속 출현하게 되었는데, 따지고 보면 이것들은 모두 인쇄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전에는 소수에 의해 독점되었던 필사본으로 된 서적들이 인쇄 기술로 인해 대량으로 찍혀 나오면서, 각 나라마다 가진 고유 언어로 된 책을 보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뚜렷한 국민적 정체성이 생기면서 민족주의가 발달하고 국민 국가가 형성되는데에도 인쇄는 일등공신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의 주제인 저작권의 개념도 인쇄 문화의 발전으로 인해서 생겨 났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나 중세 시대에도 이름이 알려진 저자들의 서적이 몇몇 있기는 하였지만, 그 수는 필사본이나 구두 문학으로 전해지는 얘기들에 비하면 극히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이 종이에다가 일일히 손으로 베껴쓰는 필사본은 그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보급량이 한정될 수 밖에 없었고, 해당 서적의 저자도 대부분 익명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한 권의 필사본 속에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집필에 관여했기에, 특정 저자라든가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인쇄의 발달은 저작권이란 개념을 점차 크게 강화시킵니다. 자기가 쓴 글이나 말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라는 개인주의적 발상과 근대 자본주의의 대표적 사조인 사유재산의 개념이 접목되면서, 특정 개인이 생각과 말을 소유할 수 있고, 그것을 알고 싶거나 듣고 싶은 사람들은 일종의 댓가를 지불하거나 치뤄야만 한다는 사고는 그 전의 역사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은 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누군가가 읽어 주는 필사본을 듣거나,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특정 화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형태로써 존재했다면, 인쇄에 의해 대량으로 출판된 서적은 개개인이 조용히 자신의 방에 앉아 생각을 하면서 읽어보게 만듦으로써 개인의 사생활이란 영역도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근대 시민 사회의 형성과 개인이라는 개념을 확립하는데도 크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쇄술은 근대 자본주의와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그 와중에 성격이 크게 강화되었던 저작권이란 개념은 근대의 사고와 철학을 반영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참고 자료: 저작권

컴퓨터, 인터넷의 발전과 하이퍼 텍스트의 출현, 그리고 저작권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쇄 기술에 이어서 현대인의 생활 형태와 의식을 크게 바꾼 두번째 역사적 계기는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이라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서 정보가 교환되는 방식은 기존의 통신 체계나 인쇄 서적으로 전파되는 방식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의 정보 전달은 기존의 통신이나 서적의 보급에 의한 순차적이고 직선적이며 단선적인 방식과는 사뭇 다른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순서라든가 인과 관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 그 자리에 연속적이고 통합된 정보의 창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오프라인 상의 주체와 객체라는 것이 접속점과 네트워크로 변환되었으며, 모든 유저가 동시 접속이 가능해지면서, 정보는 순식간에 수정되거나 쇄신되는 역동적 관계의 그물망이 끊임없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터넷은 기존의 인쇄 기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인쇄물은 일정한 수의 사실이나 정보를 정해진 페이지나 권 수가 한정된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폐쇄적으로 제시했다면, 사이버 공간이라는 정보의 창에서는 모든 정보에 대해 각주나 출전이 무한히 확대되거나 수정됨으로써, 새로운 상부 혹은 하부 텍스트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른바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로 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책이 단편적이고 경계선이 분명했었다면, 하이퍼 텍스트는 접속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듯 연결 지향적이며 정확하게 경계선을 정하거나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책은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책은 어떻게든 결말이 있겠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부단히 수정되고 변화하기에 결론이 나기 힘들며 오직 과정만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책은 누군가가 구입했다가 시간이 날때마다 다시 훑어볼 수 있지만, 하이퍼 텍스트는 순간순간 수정, 변환되기에 접속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이 더 편리하기 마련인 겁니다.

  문제는 이런 하이퍼 텍스트의 특성이 기존 인쇄 문화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였던 저작권의 개념에 심각한 의문과 도전장을 던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에는 특정 서적의 저자가 누구누구의 소유라는 발상이 별다른 무리없이 적용이 가능했었는데, 하이퍼 텍스트상에서는 이 개념이 너무나 막연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위 문단에서 간략하게 하이퍼 텍스트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했지만 ,하이퍼 텍스트란 것 자체가 피아를 구분짓는 배타성과 개인적 독립성보다는 포괄성과 연결성에 그 바탕과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특정 텍스트의 어디까지가 이 사람의 몫이고 어디까지가 저 사람의 것인지를 나누기가 너무나 힘들고, 이런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굳이 관념적으로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지금의 인터넷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전 세계 수 많은 유저들이 가히 천문학적인 수에 해당하는 개별적인 접속점들을 통해서 어떤 네트워크나 자료에 접근한 다음, 해당 자료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이 가진 정보와 재조합하거나 편집한 뒤, 다른 네트워크나 경로를 통해서 간단하고도 신속하게 전파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식으로 모든 종류의 자료가 한 사람의 창조적 노력이나 노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경과 오프 라인을 초월한 광범위한 시공간인 사이버 스페이스 상에서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의 손을 무수히 거친 후에 형성된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면, 과연 이게 누구의 소유인지를 가리기가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일까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프랑스의 이론 문학가인 Roland Barthes는 하이퍼 텍스트란 결국 저자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저작권의 개념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인터넷 통신은, 기존에 책을 대하던 방식인 읽고 쓰는 성찰적이고 개개인만의 개별적인 과정들을 공개되고 순식간에 변화하는 사이버 공간 속에 연결시켰기 때문에, 창조적인 저작의 존재를 보장하는데 필수적이었던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오프 라인의 틀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크게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커뮤니케이션과 뉴미디어 과정을 지도하고, 가상 현실에 대해 세계적으로 아주 저명한 학자인 Michael Heim도 텍스트가 특정 개인의 저작이라는 의식이 희박해지면 자연스럽게 창조 활동을 하는 저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회적 흐름이나 추세가 강해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저작권 개념이 혼란스러운 이유와 우리가 해야 할 일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쇄 문화의 발달과 함께 생겨난 저작권이란 개념 속에는 근대 자본주의의 사유재산 개념과 시장의 원리가 녹아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그리고 그로 인해 생성된 하이퍼 텍스트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인 개념이기에, 지금도 논란과 혼돈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며, 인터넷 접속자나 개인 홈페이지, 블로그 등을 운용하는 모든 유저들에게 확연한 지침이나 의식이 쉽사리 확립될 수 없는 철학적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오늘 포스팅의 주제입니다.
 
 또한 이렇게 근대 자본주의와 시장의 원리를 반영한 구시대적인 사고와 개념을 토대로 생긴 저작권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나 토론을 일부 법조계 인사나 국회의원같은 특정 인사들에게만 맡겨 놓고, 모두가 무기력하게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철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법조계 인사, 포털 사이트 관계자, 네트워크 시스템 개발자, 인터넷 보안 전문가, 시민 단체, 시민 패널, 그리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모여서 저작권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토론이나 논의와 함께, 수시로 급변하는 사이버 공간과 하이퍼 텍스트에 보다 적합한 새로운 지침과 윤리강령을 자체적으로 확립해 가자는 대대적인 여론 조성과 노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글쓴이는 판단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 참고 도서겸 소스
*Roland Barthes [Image, Music, Text] New York, Noonday Press
*Michael Heim [Electric Language: A Philosophical Study of Word Processing]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P.S: 필자가 오늘의 포스팅을 올리기 전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작권과 관련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실로 엄청난 양의 자료와 정보가 뜨더군요. 그 중에서 민노씨네 님이 정리한 자료가 내용면이나 사고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고 , 해당 자료를 작성한 이의 노고가 너무나 역력히 보이는 포스팅이어서 링크를 시키니까, 방문하셔서 한번쯤 참고하시고 저작권에 대한 사유와 개념의 폭을 넓히시길 바랍니다.

※ 저작권 관련 참고 사이트: http://minoci.net/52

 흥미로운 사유 한 토막
  여러분은 왜 유대인들이 지금의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에는 여러가지 답이 가능하겠지만 글쓴이는 오늘의 주제인 저작권과 하이퍼 텍스트와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만큼 그 연원이나 뿌리가 깊은 분야가 없으며, 그런 특정 종교의 교리나 규범을 담은 경전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사고,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마련입니다. 유대인들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만의 종교인 유대교가 있고 , 탈무드라는 경전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탈무드의 원전을 살펴보면 그 구조가 하이퍼 텍스트의 형태라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시나요...
  사해 주변 미슈나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탈무드 원전(위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본문이 가운데에 위치하고 그 주변 상하 좌우로 각 주와 해설이 붙어 있는데, 고문서학자들과 과학자들의 고증과 분석에 의하면, 그 내용이 수시로 고쳐지거나 계속 첨가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탈무드는 여타의 종교 경전과는 달리 끝 페이지가 백지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또다른 정보와 사유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그것을 재해석해서(!!!) 자신들만의 지혜로 만들고 보존하기 위한 그들만의 독특한 사고와 문화를 반영한다라는 기록이 경전 속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로 지난 2000여년간 나라를 잃고 방황을 할때, 유대인들만의 정체성과 사고를 간직하고 후손에게 전달하는 주요한 매개체였던 무수한 탈무드 사본들도 위의 원전과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점을 세세히 살피고 현대의 사이버 공간과 하이퍼 텍스트라는 개념을 대비시켜 생각해보면, 이미 유대인들은 수 천년전에 오늘 날의 하이퍼 텍스트와 흡사한 사고를 가졌었다는 말이며, 바로 이런 의식과 문화가 그들이 정보를 다루거나 처리하는데에 있어서 남다른 재능을 보이게 했고, 바로 그런 점이 지금의 세계에서 유대인들을 최고의 자리에 가게 만든 원동력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잠시 가졌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osted by 네 오 NEO